'4대강 정비' 용역 맡은 건기연 '보안 누설 때 처벌 감수' 서약서 강요

조홍섭 2008. 12. 31
조회수 8941 추천수 0
 '제2 양심선언' 단속 성격 짙어
 
 
최근 ‘4대강 정비안’ 용역을 다시 맡은 한국건설기술연구원(건기연)이, 용역에 참여한 연구원들에게 보안사항의 철저한 이행과, 불이행 때 처벌을 감수한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강요해 파문이 일고 있다.
 
 
30일 건기연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조용주 건기연 원장은 지난 29일부터 4대강 정비 용역에 참가하고 있는 건기연 연구원 40명에게 일제히 서약서를 쓸 것을 지시했다. 서약서는 연구진들이 △자의로 연구에 참여했고 △계약서 보안사항을 이행하겠으며 △본인 귀책으로 보안사항이 누설될 경우 처벌과 제재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돼 있다.

 
건기연 쪽의 이런 방침은 양심선언 파문을 빚은 김이태 연구원과 같은 사례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입단속을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에 대해 연구원들은 “이미 ‘보안각서’를 썼는데도 또 서약서 작성을 요구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몇몇 연구원은 서약서 작성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건기연 연구진은 그동안 정부 용역을 수주 받을 때면 관례적으로 발주처에 보안각서를 써 왔으며, 이번 4대강 정비용역 계약 때도 보안각서에 응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연구원은 “보안 각서 이외에 또다른 서약서를 요구하는 것은 연구원들에 대한 위협이자 연구진을 불신한다는 것”이라며 “그러려면 차라리 일을 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건기연 쪽은 내부 ‘보안업무 취급규정’에 특정 연구과제에 대해 별도의 ‘보안 서약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건기연의 ‘보안 서약서’ 제도는 2001년 만들어졌지만 그동안 한 번도 시행된 적이 없다.

 
건기연은 지난 5월 “(건기연이 국토해양부로부터 용역을 받은) 4대강 정비안은 사실상 대운하”라는 취지의 양심선언을 했던 김이태 연구원을 애초 “처벌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도, 지난 23일 정직 3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내린 바 있다. 건기연은 지난 12일 철회됐던 4대강 정비 용역안을 다시 수주한 상태다. 송창석 기자 number3@hani.co.kr
 
 
4대강 서약서와 연구용역안 뜯어보니
 
건설기술연구원(건기연)이 김이태 연구원에 대한 중징계에 이어 4대강 용역에 참가한 연구진들에게 서약서까지 요구한 것은 4대강 정비 사업에 대한 비판의 입을 틀어막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건기연이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국책연구소라는 점에서, 서약서 요구는 정부의 입김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도 나온다.

 
4대강 사업은 우선 일의 순서부터 크게 잘못돼 있다. 정부는 ‘기본 계획’도 수립돼 있지 않은 4대강 정비사업을 지난 29일 착공부터 하고 말았다. 건기연 서약서에서 보듯, 지난 12일 국토해양부가 건기연에 맡긴 용역은 4대강 정비의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연구였다. 한 국책연구원 관계자는 “기본계획과 실시계획이 수립된 다음에 공사를 발주하고, 그런 뒤에야 착공에 들어가는 게 순서”라고 말했다. 그는 “선도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첫 단추인 기본 계획도 없는 사업에 무조건 삽질을 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더욱이 4대강 종합정비 용역도 급조된 것임이 드러나고 있다. 국토부와 건기연은 12월 초 만해도 4대강 정비 용역안을 애초 계획돼 있던 18개월짜리 ‘4대강 유역 종합치수계획 연구’ 용역에 끼워 계약을 맺으려 했다. 하지만 청와대 쪽의 닦달에 못이겨 4대강 정비안에 대해서만 별도 연구 용역을 24억5천만원에 맺었다는 게 여러 통로로 확인되고 있다.

 
<한겨레>가 이날 단독 입수한 국토부의 용역 지침 ‘4대강 종합정비 기본계획 수립 과업지시서’를 보면, 정부가 알맹이없이 홍보부터 앞세우는 태도가 잘 드러난다.

 
과업지시서에 있는 마스터플랜의 주요 내용은 △하천 정비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고 표준모델 개발 △표준모델에 유역 특성을 반영한 타입별 정비원칙 설정 △기존계획·신규계획·지자체 건의사항 등을 포함·검토해 액션플랜 수립 등이다. 기본계획 수립이라는 용역 제목에서 확인할 수 있듯, 아직은 구체화 단계에서 먼 얘기다.

 
이처럼 밑그림조차 없는 용역인데도 정부는 용역비 24억5천만원 중 홍보비로만 모두 5억원을 책정했다. 이는 5개 설계업체 컨소시엄의 설계비(10억원)에 이어 11개 세부항목 중 두번째로 많은 액수다. 4대강 정비의 핵심이라고 정부가 주장해 온 치수·이수·하천환경 검토(3억원), 수질예측(1억원)보다 훨씬 많은 액수다. 정부는 이미 홍보비 명목으로 △지자체·관련기관·업계 등 교육 위한 지침 제작 △대국민 홍보 및 의견수렴 위한 동영상·브로슈어·리플릿·애니메이션·어린이 만화 제작 및 세미나·토론회 개최 등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놓은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책연구원 관계자는 “타당성도, 기본계획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벌써부터 막대한 홍보비를 쓰는 용역은 전례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여론을 수렴해서 투명하게 진행하기보다는 비밀리에 밀어붙이면서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방식은 ‘지금은 국민의 반대가 심하니까 대운하가 아닌 것처럼 하지만 언젠가는 4대강 정비사업이 대운하로 선회할 수밖에 없다’는 국민들의 의혹을 부추길 뿐”이라고 덧붙였다. 송창석 기자 number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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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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