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느릿 산길 걸으며 찾아가는 꽃 자연

조홍섭 2008. 11. 12
조회수 14167 추천수 0

새로운 취미생활 꽃산행…디카 하나면 재미 더해
사랑하는 연인인양 귀한 산들꽃 발견하면 반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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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에 몰입한다는 것은 곧 즐거움이다. 그것을 하는 동안에 온 정신이 집중되어 잡념이 사라지는 무아지경에 이를 수 있는 일이라면 취미로서 최고일 것이다. 순간이나마 일상생활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서, 음악, 연주, 그림, 영화, 여행, 캠핑, 등산, 스포츠를 좋아하여 스스로 즐기는 이들은 남들이 누리지 못하는 행복감에 흠뻑 빠져서 산다. 판에 박힌 일상에서 가끔씩 탈출할 수 있는 청량제 같은 취미가 있고 그것을 통해 즐거움으로 세상을 살아가니, 세상에 부러울 게 없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이런 취미생활의 영역에 새로운 주제 하나가 최근에 보태졌다.

 

식물원 꽃은 이미 양성을 잃어 감흥 희석

 

꽃을 찾아서 관찰하고, 사진 찍고,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가는 것을 취미로 삼는 동호인이 많아진 것이다. 이들에게 즐거움의 원천을 제공하는 꽃은, 도시의 화단이나 공원에서 아름다움을 선물하는 장미나 튤립 같은 외국에서 들여온 원예종 꽃이 아니다. 우리 입맛에 부담가는 맛과 향을 내는 서양의 허브는 더더욱 아니다. 신종 취미의 대상의 되는 꽃들은 산과 들에 저절로 자라는 산들꽃, 자생 나무와 풀꽃들이다. 산들꽃과의 만남에 푹 빠져서 살아가는 이들은 산들꽃 한 송이를 보기 위해 천릿길을 멀다않고 달려가기 일쑤다.

 

디지털 카메라 하나만 있으면 더욱 멋들어진 취미가 된다. 접사 촬영이 비교적 쉬운 디지털 카메라가 널리 보급되면서 조금만 노력하면 누구나 꽃사진 전문가가 된다. 보고 즐기기만 해도 좋은 산들꽃인데, 그것을 자신이 직접 찍어서 곁에 두고 오래 볼 수 있으니 재미도 쏠쏠하고 보람도 남다르다.

 

꽃은 화단에도 있고 식물원에도 많다. 하지만 이를 거부하고 자연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꽃을 만나러 떠난다. 그도 그럴 것이 식물원에 심어 기르는 꽃은 그것이 설령 우리꽃이라 하더라도 이미 야성을 잃고 만 경우가 대부분이다. 환경조건이 원래 살고 있던 자생지와 다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생지에서 작은 키에 앙증맞은 꽃을 피우던 식물이 키가 커져서 볼품없이 되는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어디 그뿐이랴. 그 꽃의 주변에 살고 있는 다른 꽃들이 자연에서 이웃하여 함께 살고 있는 식물들과는 완전히 다른 종이요 다른 모습이다. 그래서 심어놓은 산들꽃들이 전해주는 감흥은 희석되기 마련이다. 산들꽃 마니아들은 공원과 식물원을 과감히 버리고, 산과 들 자연 속으로 나선다.

 

꽃산행 하다보면 자연 보호 생각 절로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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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들로 꽃을 만나러 달려가는 일은 그냥 산을 오르내리는 등산과는 거리가 있다. 정상에 오르는 것을 고집하지 않고, 경치를 감상하고 꽃을 찾아가며 느릿느릿 걸어 오른다. 그래서 이들이 꽃을 찾아 나서는 산행은 이름도 ‘꽃산행’이라 구분하여 부른다. 꽃을 만나러 산을 오르는 목적 산행이 바로 꽃산행인 것이다.

 

꽃산행을 할수록 식물친구가 점점 늘어난다. 처음에는 이름도 낯설었던 산들꽃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를 수가 있게 된다. 이들이 언제 싹이 트고 꽃을 피워 열매를 익히며, 어떤 곳에 살기를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도 차츰 눈을 뜨게 된다. 산들꽃 친구들이 사는 곳이 생태계 곧 자연임을 알게 되고,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산들꽃들이 보전되어야 한다는 것도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귀한 산들꽃을 만나 희열을 맛보는 일도 생겨난다. 오랫동안 보고 싶어서 병이 날 정도였던 식물을 꽃산행에서 우연하게 만났을 때의 기쁨은 참으로 대단하여 그 여운이 오래 간다. 이런 경험은 연애시절의 뜨거운 열정을 다시 샘솟게 하여 산들꽃을 더욱 사랑하게 만들고, 꽃산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한다.

 

사람들을 몰입하게 하는 꽃, 자생 산들꽃. 이들이 있어 자연은 아름답고, 인생도 더불어 즐거워진다. 주말이면 산들꽃이 사는 산과 들로 달려가 이들을 만나고 싶고, 안부를 묻고 싶어진다. 산들꽃과의 만남을 위해 자연 속에 드는 우리는 이미 자연인이다.


현진오(이학박사, 동북아식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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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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