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간분쟁 해결의 지름길

신창현 2008.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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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갓집하고 측간은 멀수록 좋다는 옛말이 있었다. 이제는 처갓집이 가까워야 아이를 맡길 수 있고 측간도 안방으로 들어왔다. 옛날에는 냄새도 그렇고 보기도 안 좋아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측간이었다. 내 집에서 멀리 떼어 놓으면 남의 집 가까이 갈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이웃 간에 측간분쟁도 종종 발생했다. 필요하지만 가까이 두고 싶지 않은 측간이 안방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수세식이라는 과학기술과 좌변기 디자인 덕분이다. 냄새나고 보기 싫은 측간이 변소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화장을 고치고 책을 읽는 화장실이 됐다. 내 집 옆에는 안 된다는 비선호시설이 아니라 방마다 하나씩 설치하고 싶은 선호시설이 됐다.

 

하지만 화장장과 납골당, 소각장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은 아직도 측간시절에 머물러 있다. 서초구에서는 청계산 기슭에 화장장을 설치하려는 서울시와 주민, 서초구 간에 분쟁이 발생하여 10년 째 계속되고 있다. 서울시 도봉구에서는 성당 안에 납골당을 설치하려는 천주교회와 주민, 도봉구 간에 분쟁이 발생한 지 3년이 넘었다. 부천시에서는 그린벨트에 화장장과 납골당을 설치하려는 부천시와 주민, 구로구 간에 분쟁이 발생하여 5년 째 진행 중이다. 하남시에서는 광역화장장과 납골당을 설치하려는 시장을 해임하기 위해 주민소환투표까지 실시할 정도로 분쟁이 격화된 후 경기도가 사업계획을 취소했다. 소각장도 많이 발생하는 분쟁의 대상이다. 서울시 양천구, 노원구, 강남구, 마포구 소각장을 비롯해서 부천시, 광명시, 군포시, 과천시, 수원시, 용인시, 이천시, 화성시, 파주시, 의정부시, 양주시, 청주시, 천안시, 전주시, 익산시, 광주시, 영광군, 무안군, 마산시, 부산시, 경산시 등 지난 10년 동안 소각장을 설치하는 곳마다 측간분쟁으로 진통을 겪었다.

 

이러한 측간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자치단체들이 사용한 방법들을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시설을 현대화하고 주거지역과 멀리 떨어진 산속에 설치하여 환경피해, 건강피해에 대한 불안과 우려를 해소하려고 노력했다. 둘째, 이미 설치해 운영 중인 시설들의 현지견학을 통해 소각장과 화장장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셋째, 교통피해, 교육피해, 집값피해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도로, 상수도, 복지회관 등의 선호시설들을 함께 설치하고, 시설운영 수익금의 일부를 주민복지 사업비용으로 배분했다. 넷째, 화장장과 납골당은 공동묘지를 재활용하고 장례식장, 매점, 화원 등의 부대사업을 주민들이 운영할 수 있게 했다. 다섯째, 시설의 위치가 인접 자치단체와 경계지역인 경우에는 공동으로 설치하여 비용을 절약하고 주민지원 사업에 필요한 재원도 공동으로 마련했다. 여섯째, 비선호시설의 불이익을 상쇄하기 위한 주민지원 계획들을 먼저 제시하고 신청지역을 공개모집하여 주민들의 자율성을 존중했다. 일곱째, 자치단체와 의회, 시민단체가 처음부터 함께 정보를 공유하며 시설규모, 입지선정 방법 등을 합의하여 추진했다. 요약하면 화장장, 소각장의 비용과 편익을 설치지역과 비설치지역이 공평하게 분담하고, 불이익을 우려하는 이해관계자들이 처음부터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도록, 대화와 타협으로 사업을 추진한 자치단체장의 리더십이 측간분쟁 해결의 성공요인이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은 예산이 주민지원 사업비로 집중돼 새로운 형평성과 효율성 문제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재원조달의 지속가능성 문제도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위험하고 불안한 시설은 멀리 떨어진 산속에 설치하는 것이 불가피하지만 화장장과 소각장은 주택가 한 가운데 있어도 문제가 없을 만큼 과학기술이 발전했다. 서울시의 3개 소각장은 모두 주택단지 안에 있고 도쿄의 무사시노 소각장은 시청과 하나로 연결돼 있다. 화장장도 시청 옆에 설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종합병원의 장례식장 옆에 화장로를 설치하는 방안도 있다. 소각장과 화장장이 안전하다고 주민들을 설득하기보다 행정기관이 먼저 청사 옆에 설치하는 솔선수범이 측간분쟁을 해결하는 지름길이다.

 

신창현환경분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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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측간분쟁
신창현 환경분쟁연구소 소장
환경분쟁연구소장. 갈등과 분쟁이 있어야 먹고 사는 분쟁 전문가. 복잡한 환경분쟁을 명쾌한 논리와 합리적인 대안 제시로 풀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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