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 따른 ‘마을숲’ 기후완화 효과있다
400여년전 조성된 송말숲 산림과학원 연구팀등 조사
방풍림 구실 톡톡, 여름엔 시원…겨울엔 푸근
풍수지리의 지세를 보완하기 위해 조성하는 마을숲이 실제로 기후를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과학적인 조사 결과가 나왔다.
풍수지리에서 명당은 ‘바람을 거두고’(藏風) ‘물을 보듬는’(得水) 형국이다. 이런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곳에는 지세를 보완할 비보(裨補) 숲을 조성했다. 그래서 마을 밖으로 나가는 동구길이 열려 있고 개울이 빠져나가는 산간계곡의 열린 곳에는 수구막이로 마을숲이 만들어진 곳이 많다.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송말2리에 있는 송말숲은 풍수지리에 따른 대표적인 전통 마을숲이다. 산줄기로 동·서쪽이 둘러싸인 지형의 이 마을은 남쪽으로 터진 곳을 보완하기 위해 느티나무 등으로 이뤄진 약 3천㎡ 면적의 숲을 400여년 전부터 조성해 관리해 왔다.
국립산림과학원 박찬열·최명섭 박사와 서울대 환경대학원 고인수·이도원 교수팀은 2004년부터 기상관측을 통해 송말숲이 마을의 미기상에 끼치는 변화를 연구했다. 그 결과 마을숲이 낮 동안 주로 부는 골바람과 이 지역 주풍인 남서풍을 막는 방풍림 구실을 톡톡히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마을숲에서 숲 높이의 두 배인 40m 떨어진 곳에서 지난해 봄 관측한 풍속은 숲 바깥보다 남동풍일 때 평균 20%, 남풍일 때 25%, 남서풍일 때 45% 줄어들었다. 올봄에는 이런 풍속저감 효과가 숲에서 120m 떨어진 곳까지 미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풍속이 줄어들면 주변보다 온도 상승, 습도 증가, 증발량 감소 같은 미기후 변화가 나타난다.
실제로 연구팀은 겨울철 남풍이 불 때 숲 바깥들과 안들 사이에 체감온도 차이가 최고 3℃에 이른다는 사실을 밝혔다. 숲 안쪽이 바깥보다 온도가 높고 풍속이 약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여름철엔 마을숲 안이 밖보다 기온이 1~2℃ 낮았다. 지난해 8월 4~6일 낮 동안 숲 바깥에선 모두가 불쾌하다고 느낄 불쾌지수 83 이상이었지만 숲 안에서는 그런 시간이 절반에 그쳤다.
이 마을 임창열(77)씨는 “어릴 때부터 아무리 바람이 매운 겨울에도 숲 안쪽으로 들어오면 갑자기 푸근하게 느껴지곤 했다”고 말했다. 국립산림과학원 박찬열 박사의 조사 결과, 송말숲은 기후 완화 효과 말고도 원앙·꾀꼬리·소쩍새·쏙독새·찌르레기 등 31종의 새들에게 서식처를 제공했다.
과학원 신준환 산림환경부장은 “풍수지리에서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해 마을숲을 조성했다는 것은 바람과 산불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지혜를 당시의 문화적 언어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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