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있던 ‘마을숲’ 어디 갔어?
내고향 들머리, 뒷동산, 느티나무 고목 아래‥ 액도 막아주고
홍수 막아주고 지혜가 넉넉히 쉼쉬는 곳 깎이고 뽑혀 사라져
고향 하면 떠오르는 풍경의 한 가운데에 ‘마을숲’이 있다. 마을 들머리나 앞들, 갯가, 뒷동산의 솔밭이나 느티나무 고목 아래에서 마을 제례와 축제가 벌어지곤 했다. 한국인에게 이런 원초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대표적인 고향 경관이자 사람과 자연이 교감하는 최소 생태단위인 마을숲이 산업화와 농촌붕괴와 함께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최근 시민운동단체와 정부, 지자체가 마을숲 복원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 훼손을 막기에는 미약한 형편이다.
지난 16일 찾은 경북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 금당실 마을에는 3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인공 소나무숲인 ‘금당실쑤’가 마을을 가로지르는 녹색 띠를 이루고 있었다. 소백산맥의 산줄기들을 등진 마을 앞에 넓은 들과 하천이 펼쳐진 아늑한 분위기가 전국에서 이름난 명당터임을 느끼게 한다.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이른바 ‘물 위에 연꽃이 피어 있는’ 형국이다. 이 명당의 약점인 마을 앞쪽의 열려 있는 곳을 막기 위해 숲을 조성했다고 알려진다. 안동대 안동문화연구소는 금당실쑤가 이런 풍수적 비보림의 기능 외에도 마을을 향해 부는 바람을 막아주고 홍수 때 금곡천이 마을로 넘치는 것을 막는 실질적 구실도 한다고 풀이했다.
소나무 베어 팔아 마을 지켜
애초 2㎞ 길이로 마을을 모두 감싸 안았던 이 솔숲은 현재 4분의 1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다. 숲에는 운동과 휴식시설이 놓여있고, 잘 닦인 오솔길이 곳곳에 나 있어 주민의 왕래가 잦아 보였다. 숲을 파고든 농가들도 눈에 띄었다. 그래서인지 소나무들은 활력이 떨어져 보였고 후계림을 이룰 어린 소나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만큼이나마 솔숲을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을 주민들의 오랜 보전 노력 덕분이다.
‘사상송계’는 금당실 주민들이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1890년대 초 결성한 모임이다. 1903년에 작성된 명부에는 계의 목적으로 “선대유산을 영구 지속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송림이 주민의 삶속에 깊이 뿌리내리게 된 역사적 배경을 송계 대표 양인환(70)씨와 조합장 변병화(72)씨가 들려주었다.
1892년 마을의 주산인 오미봉에서 금을 채광하려던 러시아 광산회사 소속 광부들과 마을의 지기가 끊어진다며 이를 가로막던 주민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 광산회사 현장책임자 2명이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러시아와의 외교문제로까지 번진 이 사건 때문에 주민 2명이 구속됐고 사건이 확대되면서 마을의 존립이 위태로워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마을에서는 배상금과 로비자금 마련을 위해 공동재산인 금당실쑤의 소나무를 베어 팔았고, 어린 나무와 새로 심은 소나무가 자라 오늘에 이르렀다. 소나무는 마을을 지켜준 보배인 셈이다.
몇 그루만 남은채 유원지로
박재혁 용문면장은 “재원이 확보되면 속성수로 심은 은행나무와 잣나무를 소나무로 바꿔 심고 오미봉과 끊어진 송림을 연결하는 복원사업을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남한강 지류인 섬강이 용곡천과 만나는 강원도 원주시 호저면 무장리에는 보기 힘든 시무나무 20여 그루가 작은 숲을 이룬 곳이 있다. 해방 전까지만 해도 남한강을 오르내리며 소금배나 뗏목들이 쉬어가던 나룻터였다. 1800년께 경주이씨 집성촌 주민들은 시무나무 숲을 만들었다. 뱃길 휴식장소이자 섬강의 홍수를 막고 마을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이민우(71) 종중대표는 “이곳의 옛 이름인 장개 하면 시무나무 숲으로 유명했다”며 아쉬워했다. 숲은 한국전쟁 때 훼손되기 시작해 80년대 하천 제방공사를 하고 도로를 놓으면서 이제 흔적만 남았다. 홍수를 막던 숲이 사라지자 제방이 필요했고, 그것도 모자라 땅을 돋우자 시무나무들이 1m 이상 흙에 묻혀 근근히 살아남아 있다.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에 있는 성황림과 신림은 ‘웃당숲’과 ‘아랫당숲’으로 불리던 대표적인 토착신앙이 깃든 마을숲이었다. 그러나 아랫당숲은 잇단 수해피해와 당국의 무관심으로 수령 150년 된 소나무 몇 그루만 남은 채 유원지로 전락했다. 지난해에는 치악산 국립공원에서도 해제돼 200여년간 내려온 토착신앙림의 소멸이 눈앞에 다가왔다.
동행한 신준환 국립산림과학원 산림환경부장은 “전통 마을숲은 우리가 현대문명을 받아들이느라 잊고 있었던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곳”이라며 “숲의 역사와 기능을 제대로 규명하고 주민참여를 통해 엉터리 복원을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을숲 전국에 1000여곳 “국가차원 조사 시급하다”
마을숲은 마을의 역사, 문화, 신앙 등을 바탕으로 인위적으로 조성되고 유지돼 온 숲을 가리킨다. 마을숲의 명칭은 숲을 뜻하는 ‘수’ ‘쑤’ ‘림’ 등의 접미사를 달거나, ‘수구막이’ ‘성황림’ ‘숲정이’ ‘숲마당’ ‘당숲’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신라 때 함양 태수 최치원이 조성한 함양 상림과 1648년 담양의 홍수피해를 막기 위해 부사 성이성이 쌓은 제방에 조성한 관방제림은 널리 알려진 마을숲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마을숲에 대한 조사로는 조선총독부가 1938년 펴낸 <조선의 임수>가 처음이다. 목재벌채를 목적으로 대규모 숲만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전국의 마을숲은 141개로 집계했다. 김학범과 장동수는 1987년부터 6년간 전국적인 조사를 바탕으로 1994년 <마을숲>(열화당)을 펴냈다.
<마을숲>을 보면, 전국의 마을숲은 약 400개이며 1938년 조사 때 있던 곳 가운데 92곳이 숲의 기능을 상실했다. 서울에 있던 동대문구 창신동·휘경동의 왕산로 주변숲, 동대문구 제기동의 선농단, 마포구 망원동 망원정 주변숲,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도로변숲, 종로구 방산동 조산, 청계천 임수 등 9곳의 마을숲이 모두 사라졌다. 마을숲은 강원·경북의 영동해안과 경북 북부지역, 전남 남해안 지역, 소백산맥의 지리산 주변, 충청도 서부지역에 집중 분포하고 있다.
마을숲의 규모는 대체로 300평에서 1만평 사이이며 수종은 소나무와 느티나무가 많다. 소나무숲에는 풍수지리나 유교적 배경이 많은 반면 느티나무숲은 토착신앙적 배경을 갖는 예가 많다. 마을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고 둘러싸인 경관을 만들기 위해 마을숲을 만들기도 한다. 입지별로는 동구숲, 동산숲, 호안숲, 해안숲, 마을주변숲 등으로 나누는데, 강이나 하천변의 호안숲이 가장 많다.
마을숲의 생태적 특징은 한꺼번에 심어 비슷한 연령의 한두 수종이 우세하고, 이용에 방해가 되는 하층식생을 제거해 땅표면이 드러나고 뿌리가 노출되는 경향이 많다. 또 인근 지역에 자생하는 수종을 주로 심으며 후계림이 잘 양성되지 않아 늙고 큰 나무로만 숲이 구성되곤 한다. 마을숲 보전을 위한 움직임도 최근 싹트고 있다. 문화재청은 지난해부터 문화재 가치가 있는 마을숲 조사를 2년째 하고 있으며, 시민단체인 생명의 숲도 전통 마을숲 복원 공모사업을 벌이고 있다.
김학범 한경대 조경학과 교수는 “농촌과 마을 공동체가 붕괴하면서 도시 주변에 남아있는 마을숲들이 곧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다”며 “전국에 1천여개가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마을숲에 대한 국가 차원의 조사와 연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예천·원주/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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