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새, 새만금 버리고 금강으로 가다

조홍섭 2008.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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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방조제 건설 2년…철새 기착지 기능상실

초원·사막화한 개펄 외면…서해안 쉴 곳은 이제 금강 하구뿐

 

 

untitled-3_copy_2.jpg“뒷부리도요 4, 민물도요 12 , 개꿩 8….”

 

탐조용 망원경인 필드스코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나일 무어스(새와 생명의 터 대표)가 외쳤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에서 온 교사 에밀리 스타일스는그가 부르는 내용을 복창하며 공책에 받아 적었다.

 

한 무리의 도요새가 수면에 스치듯 금강 하구에서 유부도 쪽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지난 18일 새만금 도요·물떼새 모니터링에 나선 국제 조사단원 일부가 충남 서천군 장항선착장에서 새들을 세고 있었다. 도요새들은 수십~수백 마리씩 떼지어 낮은 고도로 강 중앙을 따라 서쪽으로 날아갔다.

 

“위험한 부두시설과 천적을 피한 저공비행입니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건 다른 데선 먹이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죠.”

 

나일 무어스는 이제 금강 하구는 서해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도요새들의 주요한 기착지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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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선을 타고 금강하구의 무인도인 대죽도로 향했다. 만조가 가까워져 오자 도요새들은 좁아 드는 개펄을 따라 종종걸음으로 먹이잡이에 몰두했다. 도요새나 물떼새를 보려면 만조를 노려야 한다. 개펄에 넓게 퍼져 먹이를 찾던 새들이 밀물 때 좁아든 곳에 몰려들기 때문이다.

중부리도요가 특유의 높은 소리로 외지인의 침입을 알렸다. 맹금류인 새매가 출현하자 수천마리의 뒷부리도요가 날아오르며 장관을 연출했다. 마치 겨울철새인 가창오리의 군무 같다. 섬의 모래톱에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동물인 검은머리물떼새 400여 마리와 저어새 8마리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겨울 난 큰뒷부리도요새의 휴식처

 

새만금 방조제가 가로막힌 지 21일로 2년이 됐다. 물막이 전 연간 약 40만 마리의 도요·물떼새가 들러 서해 최대의 중간기착지이던 새만금 개펄은 그 사이 대부분 초원과 사막으로 바뀌었다. 이제 금강하구는 월동지인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동남아와 번식지인 러시아·알래스카를 잇는 장거리 이동경로의 핵심 ‘급유지’가 됐다.

 

새만금의 도요·물떼새에 국제적인 관심이 쏠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뉴질랜드 정부는 지난 1월 한국 정부에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북극으로 이동하는 도요·물떼새가 크게 줄었다며 금강하구를 람사습지로 등록해 달라고 요청해 오기도 했다.

 

올 4~5월 새만금과 금강하구, 곰소만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영국,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미국, 타이완 등 7개국에서 30여명의 탐조가들이 참가해 3년 째 도요·물떼새 모니터링 활동을 벌이고 있다.

 

금강 하구둑 밑에서 필드스코프를 보던 프레드 반 게서가 “우리나라에서 온 큰뒷부리도요다!”라고 소리쳤다.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 지방에서 단 오렌지색 가락지가 이 새의 다리에 감겨 있었다. 이들은 몇 주일 사이에 갯지렁이와 조개로 체중을 두 배로 늘린 뒤 6천㎞ 거리의 여정에 오른다.

 

붉은어깨도요의 운명은 가장 큰 관심거리다. 켄 고스벨 오스트레일리아 물새연구그룹 회장은 금강하구 근처 장항개펄에서 붉은어깨도요 2200 마리를 봤다며 “방금 도착했는지 허겁지겁 먹이를 먹더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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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와 시베리아를 오가는 비둘기만한 이 도요새는 전 세계 개체수의 30%인 12만 마리가 새만금을 찾았다. 지난해 새만금엔 전년보다 5만여 마리가 준 3만여 마리만 찾아왔다. 금강하구에선 전년보다 2만 마리가 늘어난 5만 마리가 관찰됐다. 방조제가 막힌 뒤 적어도 3만~4만 마리는 행방이 묘연해졌다.

 

나일 무어스는 “생태계가 복잡해 단정할 수 없지만 이 종이 위기에 처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며 “새만금에서 끔직한 변화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조개 등 먹이 줄자 양보 없는 밥그릇 싸움…서둘러 떠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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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지난해부터 심상치 않은 변화가 감지됐다. 동료들과 사이좋기로 소문난 이 도요새들이 공격적으로 바뀌어, 먹이를 지닌 상대를 부리로 쪼거나 날개를 붙드는 모습이 발견됐다. 보통 때라면 5월 중순까지 머물던 도요새들이 4월에 서둘러 떠나는 현상도 목격됐다. 올해는 이들의 주 먹이인 작은 조개들이 보이지 않는다. 붉은어깨도요는 마치 부리 끝에 눈이 달린 것처럼 개펄에 부리를 찔러 넣을 때의 미세한 감각 차이로 부근에 있는 조개의 위치를 알아내 잡는 ‘초능력’을 자랑한다. 이런 멋진 진화의 성과도 먹이가 없어지면 아무 소용이 없어진다.

 

새만금에 찾아오던 도요·물떼새는 2006년 19만8천여 마리에서 지난해 8만7천여 마리로 절반 이상 줄었다. 올해는 지난해 수준이 발견되고 있지만 먹이부족이 문제다.

 

국제조사팀이 18~19일 동안 센 도요·물떼새는 금강하구 5만8천여 마리, 새만금 4만7천여마리, 곰소만 3천여 마리 등이다. 애초 새만금에는 금강하구보다 4배 가량 많은 새들이 온 데 비추어 현저히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새만금은 아직도 세계적인 도요·물떼새의 도래지라는 점이다. 이곳에는 람사르 협약에서 국제적인 보호습지의 기준인 전 세계 이동 개체수의 1% 이상인 종이 11종이나 된다. 

 

국제조사단은 올해까지 3년간의 조사결과 보고서를 올 10월 경남 창원에서 열린 람사르 총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한겨레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철새 AI 감염 조사 ‘알래스카 전파 막아라’

 

도요새 일시 포획해 얻은 정보 전세계에 공개

 
untitled-1_copy_3.jpg지난 19일 전북 군산시 옥서면 새만금 개펄에선 또다른 도요새 국제 공동조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국립환경과학원과 농림수산식품부는  미국 야생동물보전협회(WCS)와 함께 도요새·물떼새의 조류 인플루엔자(AI) 감염 조사에 나섰다.

 

조사의 초점은 동남아·오스트레일리아에서 새만금을 거쳐 알래스카로 이동하는 큰뒷부리도요와 민물도요에 맞췄다. 알래스카의 야생동물이 조류 인플루엔자에 감염되는 것을 막는 것이 1차 목적이다.

 

 협회 수의사인 크리스틴 스미스는 “이제까지 야생조류의 인플루엔자는 문제가 없었는데 밀집 사육된 가금류와 유전자를 교환하면서 독성이 강해졌다”며 “아직 알래스카에 조류 인플루엔자 발생 사례는 없지만 감시를 늦출 수 없다”고 말했다.

 

조사를 하려면 도요새를 포획해야 한다. 연구팀은 밤중에 도요새가 날아가다 걸리는 새그물과 낮 동안 먹이를 찾아 해변을 걷다가 함정에 갇히는 포획장치를 개펄에 설치했다.

 

개펄에서 먹이를 찾던 민물도요 한 마리가 잡혔다. 무게와 길이를 잰 뒤 날개 밑에서 피를 뽑고 깃털을 채취했다.

 

조사 책임자인 스티브 잭 박사는 “이 조사로 조류 인플루엔자 감염 여부뿐 아니라 아종 확인, 깃털의 동위원소를 통해 겨울을 난 지역 추적, 유전체 분석 등 다양한 과학정보를 얻어 전세계 과학자들에게 공개하게 된다”고 말했다.

 

민물도요는 마지막으로 고유번호가 달린 알루미늄 가락지를 단 뒤 15분 만에 풀려났다.

 

한겨레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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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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