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기암 절경은 산악빙하가 깎아낸 ‘작품'

조홍섭 2020. 0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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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과학자, 국제학술지 발표…권곡·U자형 계곡·마찰 흔적 등 25곳 제시


ku1.jpg » 금강산 1만2000봉의 절경을 낳은 결정적인 요인은 최근의 산악빙하였다. 전원석 외 (2020) ‘지질유산’ 제공.

금강산의 비경이 형성된 것은 2만8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 때 쌓인 두꺼운 얼음이 계곡을 깎아낸 결과라는 북한 과학자들의 연구결과가 나왔다. 북한의 이번 연구는 금강산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하기 위한 준비로 알려졌는데, 설악산도 마찬가지로 세계유산 지정을 추진 중이어서 남·북 협력의 가능성이 주목된다.


ku2.jpg » 금강산 전역에서 발견된 빙하 흔적. 검은 원은 권곡, 초록 원은 유자형 계곡, 푸른 원은 빙하가 남긴 마찰 무늬를 가리킨다. 전원석 외 (2020) ‘지질유산’ 제공.

전원석 김일성대 지질학자 등 이 대학 지질학부 연구진은 국제 과학저널 ‘지질유산’ 최근호에 실린 논문 ‘금강산의 자연사 가치와 국제 비교 분석’에서 “산악빙하의 작용으로 빼어난 경관과 가치 있는 지질·지형을 이룬 금강산이 중국 황산 등 이미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곳과 견줄 만하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1990년대 말 금강산 일대에서 빙하 흔적을 처음 발견한 이래 쌓인 북한 과학자들의 연구성과를 정리해 보여준다. 연구자들은 산악빙하가 금강산 지형에 남긴 흔적으로 권곡 15곳, 유(U)자형 계곡 2곳, 기반암이 긁힌 자국 8곳을 제시했다.


ku3.jpg » 외금강의 권곡. 산 정상 부근이 빙하에 의해 움푹 팬 지형이다. 전원석 외 (2020) ‘지질유산’ 제공

권곡은 높은 산지 비탈을 빙하가 마치 숟가락으로 도려낸 것 같은 지형으로, 비로봉 계곡에 1500m 길이의 계곡이 이렇게 형성됐으며 구룡연 계곡 상류에 전형적으로 나타난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권곡이 산 양쪽 사면을 깎아내 기다랗고 가파른 능선만 남은 칼날 능선은 비로봉을 중심으로 채하봉과 집선봉으로 이어진다고 논문은 적었다.


ku4.jpg » 산 양쪽이 빙하에 의해 깎여나가 가파른 능선만 남은 외금강의 칼날 능선. 전원석 외 (2020) ‘지질유산’ 제공.
 
빙하가 성장해 바닥과 양쪽 벽을 깎아내는 힘이 세지면, 물의 침식으로 브이(V) 자형이던 계곡이 유(U) 자형으로 바뀐다. 연구자들은 “상팔담과 구룡연 계곡이 전형적으로 빙하가 깎아낸 계곡으로 단면이 유 자를 이룬다”고 밝혔다.


ku5.jpg » 구룡연의 유 자형 계곡. 오른쪽 폭포는 가지 빙하가 본 빙하에 합쳐지는 현곡이다. 침식력의 차이 때문에 높이 차이가 났다. 전원석 외 (2020) ‘지질유산’ 제공.

금강산의 화강암은 중생대 백악기 때 땅속에 마그마가 관입해 형성됐는데, 식는 과정에서 수직과 수평으로 쪼개지는 특성을 지니게 됐다. 신생대 들어 동해가 형성되고 태백산맥이 솟는 지각변동 과정에서 금강산 화강암에 균열이 생겼다.


화강암 암반 가운데 쪼개지는 특성과 균열이 나타나는 곳은 빙하에 쉽게 침식된다. 100m 암반 구간에 8개의 호수가 줄지어 형성되는 상팔담의 절경은 이렇게 생겨났다고 연구자들은 설명했다. 금강산의 산악빙하는 두께가 100m가 넘었던 것으로 알려지는데, 암석이 섞인 빙하가 암반을 깎아낸 줄무늬가 상팔담에 남아있다.


ku6.jpg » 상팔담에서 발견된 빙하 마찰 흔적. 상팔담은 빙하가 낳은 다양한 지형을 보여주는 절경이다. 전원석 외 (2020) ‘지질유산’ 제공.

연구자들이 이 마찰 흔적의 우라늄 동위원소를 이용해 생성 연대를 측정한 결과 2만8000년 전으로 나타났다. “이 시기는 마지막 빙기로 (빙하 퇴적층)에서 확보한 꽃가루와 포자에서 추정한 연대 2만3000∼2만6000년 전과 비슷하다”고 논문은 적었다.


연구자들은 “지금은 빙하가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금강산 곳곳에 남아있다”며 “산악빙하가 깎아낸 화강암 지형의 아름다움과 학술 가치는 같은 중생대 화강암 지형인 중국의 황산과 산칭산, 미국의 요세미티 국립공원, 일본의 야쿠시마 국립공원 등 이미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곳을 능가한다”고 밝혔다.


k8.jpg » 상팔담이 형성된 원리. 화강암에 절리와 균열이 많이 난 곳에 빙하의 침식이 집중돼 먼저 깎여나가 담이 만들어졌다. 전원석 외 (2020) ‘지질유산’ 제공.


한편, 금강산과 비슷한 자연사를 지닌 설악산을 세계자연유산으로 신청하기 위한 준비가 진행 중이어서 남·북한이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협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나라는 1995년 설악산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 신청했다가 현장실사 후 평가가 부정적이자 신청을 철회한 바 있다. 이후 당시 부족했던 지질·지형학적 가치를 보완해 재신청하기 위한 연구가 문화재청 주도로 3년째 이뤄지고 있다.


이 연구에 참여하는 이광춘 상지대 명예교수는 “북한은 금강산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 신청하기 위해 그 요건의 하나인 이번 논문을 낸 것으로 안다”며 “설악산에도 빙하 주변의 특징인 다양한 암괴류가 분포하는 등 빙하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지형이 많기 때문에 남·북한이 함께 세계자연유산 지정을 신청해야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인용 저널: Geoheritage, DOI: 10.1007/s12371-020-00454-7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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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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