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종 뱀장어 3종 출현…소양호엔 유럽산, 청평호엔 미국산

조홍섭 2017. 09. 26
조회수 24677 추천수 1

수입해 기르던 외국 뱀장어 자원조성 위해 방류하며 섞인 듯

생태계 교란, 유전자 오염 우려…일본서도 유럽산 뱀장어 문제


e1.jpg » 정치망에 포획된 뱀장어. 극히 일부이지만 우리나라 자연에는 외국산 뱀장어가 살아가고 있다. 홍양기 박사 제공.


소양호에서 정치망을 쳐 뱀장어 122마리를 잡은 중앙 내수면연구소 연구원들은 유전자 분석을 하면서 깜짝 놀랐다. 길이 79㎝, 무게 1㎏ 남짓한 뱀장어 한 마리가 유럽산 뱀장어로 나타난 것이다. 청평호에서는 유럽산과 함께 북미산 뱀장어도 잡혔다. 금강하굿둑 바로 아래에선 인도네시아 등 열대 아시아에 서식하는 열대 뱀장어가 나왔다.

  

외래종 뱀장어 3종이 우리나라 하천과 호수에 서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국립수산과학원 중앙 내수면연구소는 2014∼15년 동안 전국의 뱀장어 주요 분포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포획한 뱀장어 429마리 가운데 4마리가 외래종으로 확인됐다고 한국통합생물학회가 발간하는 학술지 <동물 세포와 시스템>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국내에서 외래종 뱀장어의 서식이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e2.jpg » 중앙내수면연구소 연구진이 금강하굿둑 하류에서 뱀장어 조사를 벌이고 있다. 홍양기 박사 제공.


유럽과 북미의 뱀장어는 북대서양 한가운데 있는 사르가소 해에서 번식한다. 아시아 뱀장어는 태평양 마리아나제도 근처에서 산란한다. 알에서 깨어난 어린 뱀장어 해류를 타고 표류하다 자라난 고향의 하천으로 수천㎞의 긴 여행을 떠난다. 유럽과 북미 뱀장어가 자연적으로 우리나라 하천에 올 가능성은 전혀 없다. 다른 외래 어종처럼 사람이 옮겨왔을 수밖에 없다. 

 

연구진은 이들 외래종 뱀장어가 실뱀장어 상태로 수입해 양식하던 것을 자원조성을 위해 지자체가 방류할 때 섞여들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소양호와 청평호 유역에는 뱀장어 양식장이 없어 외래종 뱀장어가 탈출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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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장어는 한국·일본·중국·베트남 등 동아시아 하천에 살다 성숙하면 서태평양의 마리아나 해저산맥으로 이동해 번식한다(■ 관련 기사: 민물장어의 심해여행, 사랑과 죽음을 위해). 양식이 불가능해(최근에 실험실에서 성공했지만) 치어(실뱀장어)를 잡아 기르는 방식으로 생산해 왔다. 

 

뱀장어 수요가 급증해 치어가 모자라자 1993년 이후 다른 나라의 실뱀장어를 수입했다. 유럽산 뱀장어의 치어는 2005년부터 수입됐다. 유럽에선 뱀장어 개체 수의 90%가 사라지자 2007년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해 수출을 금지했다. 그러나 모로코 등 북아프리카의 유럽산 뱀장어 수출은 지속해 지난해 모로코는 중국에 이어 2번째로 큰 실뱀장어 수입선이었다. 실뱀장어 수입국은 19개국에 이른다. 북미산 실뱀장어도 2004년 이후 계속 수입하고 있다.

 

금강하굿둑에서 잡힌 열대 뱀장어의 기원은 불분명하다.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 살지만 최근 일본과 대만으로 서식지를 넓혔기 때문에 해수온 상승을 따라 한반도로 분포지를 넓혔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금강 유역에 열대 뱀장어를 수입해 기르는 양식장이 있어 탈출한 개체일 수도 있다.


e3_Uwe Kils.jpg » 유럽산 뱀장어 치어. 한때 우리나라에서 다량 수입했지만 멸종위기로 2007년 이후 국제거래가 중단됐다. 우베 킬스/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동아시아의 뱀장어는 유럽산과 북미산 뱀장어와 같은 온대지역 뱀장어로서 형태가 비슷해 정확하게 구분하려면 이번 연구에서처럼 유전자 분석을 해야 한다. 열대산 뱀장어는 지느러미가 작아 형태적으로 구별된다. 

 

논문 주저자인 홍양기 중앙 내수면연구소 박사는 “외래종의 출현 개체수가 미미해 당장 별다른 영향을 끼칠 것 같지는 않다”면서도 “뱀장어가 최상위 포식자여서 토종과의 경쟁과 기생충이나 병원체 전파, 유전자 오염 등 생태계 교란 우려가 있어 면밀한 조사와 추가 유입 방지대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실뱀장어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일본과 대만 등은 이미 외래종 뱀장어가 유입돼 자연계에 퍼지고 있다. 1970년대부터 실뱀장어 수입이 급증한 일본은 2000년대 들어 외래종 뱀장어가 곳곳에서 발견됐다. 최근 코마 아라이 도쿄대 생물학자 등은 과학저널 <어업학>에 실린 논문에서 관동지방 도네 강 상류 뱀장어가 거의 모두 유럽산 뱀장어인 사실을 보고해 충격을 주었다. 도네 강은 일본에서 유역이 가장 넓은 강이다. 연구자들은 주변에 양식장이 없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 풀어놓은 것으로 보았다. 일본에서도 ‘자원조성’을 명목으로 물고기를 마구 풀어놓는 관행이 있다.


Anguilla_anguilla.jpg » 유럽산 뱀장어.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그렇다면 외래종 뱀장어가 생태계에 끼칠 영향은 없을까. 논문 교신저자인 이완옥 중앙 내수면연구소 박사는 “몇 년 전에는 무분별한 방류가 이뤄졌지만 현재는 유전자를 확인한 뒤에만 방류하도록 하는 규정이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최소한의 안전판은 마련된 셈이다.

 

그렇지만 일단 외래종이 자연에 풀려나오면 주워담기는 매우 힘들다. 특히 뱀장어는 최상위 포식자여서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앞서 일본 도네 강에서도 유럽산 뱀장어는 유럽의 개체들보다 오히려 발육상태가 좋았다. 토종 뱀장어에 강력한 경쟁상대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e4.jpg » 북미산 뱀장어. 유럽산, 동아시아산 뱀장어와 함께 온대 지역에 서식하는 3대 뱀장어이다. 클린턴 앤드 찰스 로버트슨,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외래종이 전파할 기생충과 병원체도 저항력이 없는 토종에 괴멸적 타격을 줄 수 있다. 역설적으로 동아시아의 뱀장어에서 기원한 기생충이 유럽과 미국 뱀장어의 부레에 심한 손상을 입혀 심각한 개체수 감소를 일으키기도 했다.

 

맨눈으로 구분이 어려운 유럽과 미국산 뱀장어를 모르고 또는 의도적으로 방류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양식장에서 외래종 뱀장어의 우발적인 탈출을 막기 위해 유출구 봉인, 담장 건조상태 유지, 양식장 유출수의 소독 등의 규제가 논의되고 있다. 


e5.jpg » 토종 뱀장어. 외래종에 의해 유전자 오염이 일어날 우려도 있다. 홍양기 박사 제공.


더 근본적인 문제는 유전자 오염이다. 우리나라에서 성숙한 외래종 뱀장어가 토종과 교잡을 형성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금강에서 잡힌 열대 뱀장어는 바다로 산란여행을 떠나기 위해 노란빛에서 은빛으로 몸 빛깔이 바뀐 상태였다. 국내 전문가들은 이들이 별개의 종이고 산란 시기나 장소 등이 달라 교잡의 가능성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본 연구자들은 성숙한 유럽산 뱀장어가 동아시아 뱀장어와 함께 번식지로 이동하던 것을 동중국해에서 포획해 우려를 낳았다. 일본의 뱀장어 전문가 아키히로 오카무라는 동아시아 뱀장어와 유럽산 뱀장어가 인공적으로 잡종화할 수 있음을 실험으로 보였다. 유럽산 뱀장어와 북미산 뱀장어의 잡종은 자연상태에서도 나타났다. 따라서 유럽산 뱀장어가 동아시아 뱀장어와 같은 시기에 함께 무리 지어 마리아나 해산의 번식지에 간다면 잡종화가 일어나, 새로운 중간 형질의 뱀장어가 동아시아 하천으로 확산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자원확보를 이유로 1960년대 이후 외래 어종을 대규모로 방류해 왔으며, 파랑볼우럭(블루길), 큰입배스, 떡붕어 등이 토종 물고기 자리를 차지하는 등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Yang-Ki Hong, Jung-Eun Kim, Jeong-Ho Lee, Mi-Young Song, Hee-Won Park & Wan-Ok Lee (2017): Occurrence of exotic eels in natural waters of South Korea, Animal Cells and Systems, DOI: 10.1080/19768354.2017.137710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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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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