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계속된 밤, 얼어붙은 바다…대멸종 부른 기후 격변

조홍섭 2017. 08. 22
조회수 26641 추천수 0

기후모델로 공룡 멸종시킨 중생대 말 운석 충돌 영향 재현

대기 상층은 가열, 광합성 중단돼 생태계 괴멸…'핵 겨울' 비슷


NASA asteroid impact_s.jpg » 중생대 말 공룡 등 생물 대멸종 사태를 부른 대형 운석 충돌의 상상도. 미항공우주국(NASA)


6600만년 전 중앙아메리카 유카탄 반도에 지름 10㎞의 운석이 떨어졌다. 날개 달린 공룡(새)을 뺀 생물 종의 4분의 3이 멸종했다. 그때 지구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컴퓨터 기후모델을 이용해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미 국립대기연구센터와 콜로라도대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미 국립학술원회보(PNAS)> 22일 치에 실린 논문을 통해 당시 지구의 기후 격변과 회복 과정을 재현했다.


당시의 상황을 추정할 1차 단서는 전 세계 퇴적층에 남아있는 대화재의 흔적인 검댕이다. 연구자들은 전체 검댕의 양을 150억t으로 추정하고, 이런 규모의 화재가 지구 전체에 벌어졌을 때 기후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정량적으로 모의했다.


거대한 운석이 지구와 충돌하자 그 열로 암석과 물이 증기가 되어 성층권으로 솟구쳤다. 냉각돼 작은 알갱이로 굳었다. 이때 생긴 소 구체의 얇은 층이 당시의 세계 지층에서 발견된다. 


young2.jpg » 외계 천체 충돌 때 암석이 증발해 굳은 탄소 알갱이(소구체). 미국 뉴멕시코에서 발견된 것으로 급속한 가열과 냉각이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제임스 위트케 외, PNAS


작은 구체들은 대기권에 진입하면서 공기와의 마찰로 가열된다. 작은 불똥이 전 세계에 떨어져 내렸고, 지구 전역에 화재가 일어났다. 150억t의 검댕은 이런 거대한 화재의 결과였다.


논문 주 저자인 찰스 바딘 미 국립대기연구센터 과학자는 “(공룡 등) 육지의 많은 대형 동물이 충격 직후 광범한 화재와 지진, 쓰나미, 화산 분출로 멸종했지만 바다에 살거나 땅굴 또는 물속으로 피신한 동물은 살아남았을 것”이라며 “우리가 보려고 한 것은 충돌로 생성된 검댕이 장기적으로 살아남은 동물에 끼친 영향”이라고 이 연구소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짙은 검댕 층이 햇빛을 가로막아 지구에는 2년 동안 달밤 수준의 어두운 밤이 계속됐을 것으로 연구자들은 계산했다. 햇빛이 사라지자 바다 먹이사슬의 핵심인 식물 플랑크톤이 광합성을 할 수 없게 됐다.


적어도 1년 반 이상 식물 플랑크톤의 광합성이 불가능해지자 생태계는 뿌리부터 흔들렸다. 연구자들은 설사 검댕 발생량이 추정한 것의 3분의 1인 50억t이더라도 1년 동안은 광합성을 할 수 없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nu-1.jpg » 운석 충돌 18개월 뒤부터 42개월 사이 지구표면 평균 온도 시뮬레이션 결과. 검은 선은 빙점의 경계이다. 바딘 외 PNAS


태양 복사가 차단되자 지표면은 급속히 식었다. 기온은 육지 표면에서 평상시보다 평균 28도, 바다 표면에서 11도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위도와 고위도는 연평균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고, 바다도 얼어붙었다.


연구자들은 중위도의 경우 바다 표면이 얼어붙은 기간은 3∼4년에 이르고 식물의 광합성은 1∼2년 동안 불가능해 생물이 피난해 살아남을 곳은 거의 없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열 대 바다 표면의 온도는 10∼15도로 그리 낮지는 않았지만 빛의 양은 3년 동안 정상치의 10% 이하에 그쳐 생명 활동을 보장하기 힘들었다.


검댕이 햇빛을 차단해 지표는 냉각됐지만 대기 상층에서는 온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15㎞ 상공의 대류권에서 상승 폭은 50∼100도, 45∼60㎞ 성층권에서는 200도나 높아졌다. 


성층권 온도 상승은 오존층 파괴를 불렀다. 또 수증기가 늘어나 수소화합물이 형성되면서 다시 오존층 파괴로 이어졌다. 지상에는 가공할 양의 자외선이 내리쪼였을 것이다.


대기 상층부에 형성된 다량의 수증기는 ‘핵겨울’의 급격한 종말을 불러왔다. 강수량이 급증하면서 검댕 층은 불과 몇 달 사이에 사라졌다. 


hiroshima_미 국방부.jpg » 핵폭탄이 히로시마에서 폭발하는 모습. 전면 핵전쟁이 일어나면 운석 충돌과 비슷한 지구적 재앙이 일어날 수 있다. 미 국방부.


연구자들이 기후모델로 재현한 중생대 말의 운석 충돌 상황은 냉전기 때 나온 전면 핵전쟁이 초래할 ‘핵겨울’ 시나리오와 비슷하다. 바딘은 “핵전쟁으로 발생할 검댕의 양은 중생대 말 충돌에 견주면 매우 적은 것”이라며 “그러나 검댕이 기후를 비슷한 방식으로 바꾸어 지구 표면을 식히고 대기 상층을 덥혀 파국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은 분명하다”라고 말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Charles G. Bardeen et al, On transient climate change at the Cretaceous−Paleogene boundary due to atmospheric soot injection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PNAS), www.pnas.org/cgi/doi/10.1073/pnas.1708980114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얼굴에 손이 가는 이유 있다…자기 냄새 맡으려얼굴에 손이 가는 이유 있다…자기 냄새 맡으려

    조홍섭 | 2020. 04. 29

    시간당 20회, 영장류 공통…사회적 소통과 ‘자아 확인’ 수단 코로나19와 마스크 쓰기로 얼굴 만지기에 어느 때보다 신경이 쓰인다. 그런데 이 행동이 사람과 침팬지 등 영장류의 뿌리깊은 소통 방식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침팬지 등 영장류와 ...

  • 쥐라기 바다악어는 돌고래처럼 생겼다쥐라기 바다악어는 돌고래처럼 생겼다

    조홍섭 | 2020. 04. 28

    고래보다 1억년 일찍 바다 진출, ’수렴 진화’ 사례 공룡 시대부터 지구에 살아온 가장 오랜 파충류인 악어는 대개 육지의 습지에 산다. 6m까지 자라는 지상 최대의 바다악어가 호주와 인도 등 동남아 기수역에 서식하지만, 담수 악어인 나일악어...

  • ‘과일 향 추파’ 던져 암컷 유혹하는 여우원숭이‘과일 향 추파’ 던져 암컷 유혹하는 여우원숭이

    조홍섭 | 2020. 04. 27

    손목서 성호르몬 분비, 긴 꼬리에 묻혀 공중에 퍼뜨려 손목에 향수를 뿌리고 데이트에 나서는 남성처럼 알락꼬리여우원숭이 수컷도 짝짓기철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과일 향을 내뿜는다. 사람이 손목의 체온으로 향기를 풍긴다면, 여우원숭이는 손목 분...

  • 뱀을 향한 뿌리 깊은 공포, 새들도 그러하다뱀을 향한 뿌리 깊은 공포, 새들도 그러하다

    조홍섭 | 2020. 04. 23

    어미 박새, 뱀 침입에 탈출 경보에 새끼들 둥지 밖으로 탈출서울대 연구진 관악산서 9년째 조사 “영장류처럼 뱀에 특별 반응” 6달 된 아기 48명을 부모 무릎 위에 앉히고 화면으로 여러 가지 물체를 보여주었다. 꽃이나 물고기에서 평온하던 아기...

  • 금강산 기암 절경은 산악빙하가 깎아낸 ‘작품'금강산 기암 절경은 산악빙하가 깎아낸 ‘작품'

    조홍섭 | 2020. 04. 22

    북한 과학자, 국제학술지 발표…권곡·U자형 계곡·마찰 흔적 등 25곳 제시 금강산의 비경이 형성된 것은 2만8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 때 쌓인 두꺼운 얼음이 계곡을 깎아낸 결과라는 북한 과학자들의 연구결과가 나왔다. 북한의 이번 연구는 금강산을...

인기글

최근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