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고래 심장 1분 2회 뛰는 비밀
가속 돌진 사냥에 산소 다량 소비, 대동맥 ‘풍선’ 조직으로 혈류 조절

지구에 존재한 모든 동물 가운데 가장 큰 대왕고래는 갓 태어난 새끼도 무게 2.5t에 길이 7m에 이른다. 북태평양의 성숙한 5∼10살 대왕고래는 길이 20m에 무게는 70t을 훌쩍 넘긴다.
대왕고래가 이처럼 큰 몸집을 유지하기 위해 생리적 한계까지 심장박동을 조절하는 사실이 밝혀졌다. 먹이 사냥을 위해 잠수할 때는 산소 소비를 줄이기 위해 극단적으로 심장박동을 늦추고, 반대로 바다 표면에 떠올라 잠시 쉴 때는 10배 이상 심박수를 늘려 부족한 산소를 보충한다.

제러미 골드보겐 미국 스탠퍼드대 해양생물학자 등은 야생 상태의 대왕고래에 흡입 컵을 이용한 심전도 측정장치를 부착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고 26일 미 국립학술원회보(PNAS)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대왕고래는 수심 150∼200m 깊이로 잠수해 약 15분 동안 크릴떼를 사냥한 뒤 바다 표면에 나와 1∼4분 동안 휴식하면서 산소를 보충한 뒤 다시 잠수하는 행동을 되풀이한다. 먹이 사냥은 매우 에너지가 많이 드는 방식이어서, 깊이 잠수한 뒤 입을 크게 벌린 채 위쪽 먹이 떼를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해 자신의 몸무게보다 많은 먹이와 물을 한꺼번에 삼킨다. 이후 수염 사이로 물을 빼내면서 활공하듯 서서히 깊은 곳으로 잠수해 다시 급가속하는 사냥에 나선다.


문제는 산소가 많이 필요한 급가속 사냥 때 공기를 흡입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연구자들이 캘리포니아 몬터레이 만에서 15살짜리 대왕고래에서 측정한 결과를 보면, 먹이 사냥을 위해 잠수를 시작하자 심장박동수는 분당 4∼8회로 떨어졌고, 극단적으로 분당 2회로 줄어들기도 했다.
사냥을 위해 돌진할 때 이 수준에서 2.5배 정도 빨라졌지만, 아직도 무게 70t의 포유류에서 예상되는 심박수의 절반에 그쳤다. 연구자들은 그 비밀을 ‘대동맥 활’이라는 기관에서 찾았다. 일종의 풍선처럼 탄력이 강한 이 기관은 혈류를 조절하는 기능을 하는데, 심장에서 나오는 피를 한꺼번에 보관했다 필요한 장기에 서서히 보낸다.

일반적으로 포유류는 작은 동물이나 큰 동물이나 마찬가지로 평생 심장이 10억번쯤 뛴다. 그래서 분당 1000번을 뛰는 뒤쥐처럼 작은 동물은 수명이 짧고, 분당 30회인 코끼리처럼 큰 동물은 장수한다.
의료와 보건, 영양 덕분에 장수하는 사람(분당 60∼100회)은 이런 공식에서 벗어나 평생 심박수가 20억 번이다. 이번 연구에서 대왕고래도 일반적 포유류의 대열에서 벗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사냥을 마치고 표면에 나온 대왕고래는 편안히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다. 심박수는 잠수 때의 10배 이상인 분당 25∼37회로 치솟는다. 연구자들은 “물속에서 고갈된 산소를 빨리 보충하기 위한 것”이라며 “(고래의 덩치에 견주면) 최대 속도로 심장이 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게 180㎏으로 동물 가운데 가장 큰 대왕고래의 심장은 “쉴 때 빠르게 뛰고 일할 때 느리게 뛰는” 독특한 양상을 보인다. 만일 대왕고래보다 큰 고래가 있다면, 덩치가 클수록 포유류의 심장박동이 느리기 때문에 잠수하느라 잃은 산소를 짧은 시간 안에 보충하지 못할 것이다. 대왕고래가 왜 지상 최대의 동물이 됐는지를 짐작하게 되는 대목이다.
연구자들은 “대왕고래는 잠수할 때와 바다 표면에 올라왔을 때 모두 심각한 생리학적 한계에 직면하는데, 이것이 동물의 몸 크기 진화를 제약하는 것 같다”고 논문에 적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J. A. Goldbogen et al, Extreme bradycardia and tachycardia in the world’s largest animal, PNAS, https://doi.org/10.1073/pnas.1914273116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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