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로 남은 수백만 이집트 따오기는 어디서 왔나

조홍섭 2019. 12. 03
조회수 16381 추천수 0
유전 다양성 높은 것으로 밝혀져…야생 집단 유인해 일시적 길들였을 가능성

e1.jpg » 고대 이집트 시대 관 속의 미라와 함께 매장한 사후세계에 관한 안내서인 ‘사자의 서’ 가운데 따오기의 머리를 한 신 토트(가운데)가 판결의 결과를 기록하는 장면. 와세프 외 (2019) ‘플로스 원’ 제공.

고대 이집트인들은 무병과 장수, 또는 애인과의 갈등을 풀어달라고 신전을 찾아 지혜와 마법의 신인 토트에게 기도했다. 아프리카흑따오기는 사람 몸에 기다란 부리가 달린 토트 신의 살아있는 화신이었다. 마치 요즘 성당에서 촛불을 봉헌하듯, 사람들은 신에게 따오기 미라를 바쳤다.

이집트 고대 지하묘지에는 따오기 미라가 수 ㎞에 걸쳐 바닥부터 천장까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수백만 개에 이르는 미라의 따오기는 어디서 왔을까.

e2.jpg » 지하묘지에 빼곡하게 쌓여있는 따오기 미라. 와세프 외 (2019) ‘플로스 원’ 제공.

이제까지 정설은 대규모의 중앙집중식 따오기 농장을 운영해 막대한 수요를 충당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라 따오기와 현생 따오기의 유전자를 비교 분석한 고 유전자 연구에서 이집트의 따오기는 야생에서 왔다는 결론이 나왔다.

샐리 와세프 오스트레일리아 그리피스대 고생물학자 등 국제 연구진은 2500년 전 따오기 미라 14구에서 미토콘드리아 디엔에이(DNA)를 추출하는 데 성공해, 현생 아프리카흑따오기 26마리의 것과 비교했다. 과학저널 ‘플로스 원’ 13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고대 따오기의 유전 다양성은 현생 새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높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e3.jpg » 개별 따오기 미라의 모습. 와세프 외 (2019) ‘플로스 원’ 제공.

이집트인들은 사람뿐 아니라 고양이, 악어, 쥐, 몽구스 등 다양한 동물을 미라로 만들었다. 그 가운데 따오기는 압도적으로 많았다. 

투나 엘-게벨 공동묘지에는 400만구의 따오기 미라가 있고, 사카라 매장유적지에는 매년 1만 구씩 총 175만구의 따오기 미라가 보관돼 있다. 따오기 미라를 바치는 풍습은 기원전 600년께 시작돼 기원전 450∼250년에 절정을 이뤘다. 해마다 수만 마리의 따오기를 어떻게든 조달했다는 얘기다.

막대한 규모에 비춰 따오기를 산업 규모로 길렀다는 주장이 일찍부터 나왔다. 한 사제가 기원전 2세기에 남긴 글에는 “따오기 6만 마리에 주기적으로 클로버와 빵을 먹이로 줬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프랑스 자연사학자 조지 큐비에는 1825년 따오기 미라를 살펴본 뒤 “위 날개뼈가 골절된 뒤 다시 아문 개체가 있는 것으로 보아 사원에서 가축화한 것임에 틀림없다. 야생이라면 날개가 부러진 새가 살아남지 못했을 것 아닌가”라고 적었다.

e4.jpg » 미라 속 따오기의 골격. 와세프 외 (2019) ‘플로스 원’ 제공.

만일 따오기를 대규모 중앙집중식 농장에서 증식했다면, 근친교배와 유전자 병목현상으로 인해 유전 다양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연구자들은 추론했다. 요즘 공장식 사육장에서 닭이 거의 한 가지 품종으로 유전 다양성이 단순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연구 결과 미라의 따오기는 현생 야생 따오기와 마찬가지로 유전 다양성이 높았을 뿐 아니라 해로운 돌연변이가 근친교배로 축적되지도 않았다. 연구자들은 “여러 지역에서 사제의 주관 아래 계절적인 단기간의 따오기 농장을 운영했거나, 야생 따오기를 정기적으로 사료를 제공해 번식지로 이끌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대규모 중앙집중식 사육장이 아주 커 높은 유전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었거나, 야생 따오기가 이 사육장에서 번식에 참여해 근친교배를 막았을 가능성은 없을까. 와세프는 ‘가디언’과의 회견에서 “그런 대규모 시설물이 발견되지 않았을뿐더러, 일부 미라의 내용물이 깃털, 둥지 물질, 알껍데기 등 가짜로 이뤄져 따오기를 대규모 증식장에서 쉽게 구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e5.jpg » 아프리카흑따오기. 이집트를 뺀 아프리카 대부분의 지역에 서식한다. 스티브 가비,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아프리카흑따오기는 아프리카 전역에 분포하지만 이집트에서는 1850년 멸종했다. 연구자들은 엄청난 수의 미라 따오기를 야생에서 포획했다면 멸종 이유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Wasef S, Subramanian S, O’Rorke R, Huynen L, El-Marghani S, Curtis C, et al. (2019) Mitogenomic diversity in Sacred Ibis Mummies sheds light on early Egyptian practices. PLoS ONE 14(11): e0223964.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223964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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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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