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의 개, 고양이 털은 훈장입니다”

조홍섭 2018. 01. 22
조회수 51320 추천수 0
인터뷰: 가수 배다해
고속도로 중앙분리대의 동물들
지나치지 못하고 구조하는 그는
가수 되기 전부터 활동가
진짜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

대학 때 개농장 다큐 보고 충격
집에서 ‘준팔이' 등 유기묘 길러
“동물과 사회적 약자 위해 뛰는 
선한 영향력의 힘을 믿어요”


사본_배다혜9-2.jpg » 지난 18일 서울 공덕동 경의선 숲길 공원에서 가수 배다해씨가 퍼스트도그 ‘토리’와 퍼스트캣 ‘찡찡이’ 인형을 안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불후의 명곡’(한국방송) 등에서 빼어난 가창력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배다해는 동물 사랑이 각별한 가수이다. 그는 대학생 때부터 동물보호 활동가였고, 현재도 동물보호단체 일이라면 만사를 제치고 돕는다. 차 트렁크에 동물 구조 장비를 싣고 다니고 유기동물을 집에 데려와 돌보기도 한다. 18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한 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동물을 보호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요?

“연세대 성악과 2학년 때 방송에서 개 도살 장면을 봤어요. 주인이 철창에서 데리고 나오자 좋아라고 앞장서던 개를 매달아… 너무 충격이었어요. 목숨 붙어 있는 무언가가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처음 본 거였습니다. 당장 동물보호협회에 가입해 수업도 빼먹고 공부에 매달렸죠. 우리가 먹던 음식 이면에 도사린 잔인함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집에서 개를 길렀나요?

“강아지를 키운 지 2년쯤 됐을 때였어요. 사실 충격적이었던 게 우리 과 학생들이 모두 개고기를 즐겨 먹었거든요. 몸에 좋다고. 국내외 자료를 다 뒤져보니 개고기가 몸에 좋다는 어떤 의학적 근거도 없는 거예요. 이런 내용을 정리한 유인물을 학교에서 뿌렸지요.”

 ―그때 이미 동물보호 활동가였네요.

 “혼자 외롭게 싸웠죠. 서명운동 하기도 하고.”

 ―뭐든 다 해보는 성격이네요.

 “‘다해’가 한글 이름인데 ‘다 하라’는 뜻에서 지었대요. 제가 활달하고 적극적인 편이에요.”

 ―1980년대 대학생이었다면 영화 ‘1987’처럼 민주화운동에도 나섰겠네요.

 “정의를 위해 이 한 몸 불살랐을 거예요. 어머니가 (그렇지 않아) 참 다행이라고…(웃음)”

사본_배다혜3-1.jpg » 가수 배다해씨(오른쪽)와 조홍섭 기자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배씨는 지난여름 서울광장에서 동물자유연대 등이 주최한 개고기 반대 행사 ‘이제 그만 잡수시개’에서 사회를 보는 등 동물보호운동과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 왔다. 동물복지 국회포럼, 청각장애인을 위한 사랑의 달팽이,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기도 하다.

 ―팬들과 정기적으로 유기견 보호소를 찾아 봉사활동을 한다죠.

 “견사를 청소하고 버려진 개를 씻고 미용해주고 놀아주죠. 저는 배설물만 얼른 치우고 웬만하면 한 마리라도 안아주려고 해요. 잘 모르시는 분은 왜 일 안 하고 노냐고 하지만(웃음). 배설물 치우는 건 내 만족이지만, 이 아이가 원하는 건 사람이거든요. 개들은 사람이 다가오게 하는 특유의 불쌍한,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표정을 지어요.”

 ―버려진 동물을 종종 입양해 기른다고요?

 “고양이와 개 각각 세 마리인데요. 개는 부모님 댁에 보냈는데 지금은 두 마리만 있어요. 그중 하나인 ‘다비’는 가장 애착이 가는 동물이죠. 18살인데 귀가 안 들린 지 몇년 됐고 눈도 차츰 안 보여요. 이별할 날이 얼마 안 남았어요.”

 ―방송을 위해 임시보호하기도 하죠?

 “임시보호도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입양이 안 되면 내가 책임져야 하니까요. 헬렌 켈러처럼 장애가 심한 아이(유기견)를 방송사에서 임시보호해 달라고 했어요. 소속사도 없을 때여서 힘든 상태였는데, 어머니가 ‘포대기, 기저귀 해서 내가 키울 테니 너는 유기견 문제를 알리기만 해라’ 하셨어요. 이미 유기견이 세 마리나 있을 때였죠.”

 ―유기동물을 돌볼 수 있도록 부모님이 뒷배를 보아주셨군요.

 “그렇죠. 어릴 때 비둘기 데려오고 했을 때도 다 받아들이셨어요, 이러다 말겠지 하고. 아버지는 무뚝뚝한 해군 장교 출신인데, 차를 함께 타고 가다가 세우고 뭘 하고 오시는데 아무 말씀도 안 해요. 뒷자리에서 보았더니 더운 날 개집 물통에 물 부어주고 땡볕에 묶여 있는 고양이 옮겨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선한 영향력의 힘을 믿어요. 어느새 제가 그 행동을 똑같이 하고 있더라고요.”

23844911_1565627143528838_3580018552891156804_n.jpg » 배씨가 기르는 유기묘 3마리. 준팔이가 가장 덩치가 크다. 배다해 페이스북
 ―2014년 유기 고양이 ‘준팔이’가 언론의 주목을 받았죠. 버림받아 거식증에 걸린 고양이가 배다해씨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건강을 회복했다는 얘긴데, 방송 뒤에 거짓 입양이라는 오해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준팔이는 잘 있나요?

 “준팔이는 4년째 기르고 있고, 다른 두 마리는 가수 이효리씨가 한창 구조활동 할 때 입양 안 되고 남은 고양이를 데려왔어요. 준팔이는 가장 크고 무거워요.”

 ―준팔이는 어떤 성격이죠?

 “버림받고 거식증 걸릴 만하다고 느껴요. 자기주장 강하고, 좋다 싫다가 분명하죠. 항상 안겨 있어야 하고 온종일 꾹꾹이를 해요.”

 ―연예인인데 옷에 털이 묻어 어떡해요?

 “포기했어요. 털 달린 모습이 나가도 훈장 같은 느낌이에요. 물론 검정 옷은 아예 못 입죠. 얼굴은 물론 기관지로도 털이 들어가긴 해요. 털보다 여기저기 눈 오줌 치우느라 힘들어요.”

 ―집 밖의 길고양이는 안 돌보나요?

 “직업상 일정한 시간에 밥을 줄 수 없어 캣맘은 못 돼요. 하지만 사료는 늘 가지고 다니죠. 차에 사료, 캐리어, 목장갑 등 구조용 장비를 갖추었어요.”

 ―그런 상황이 자주 있나요?

 “너무 많죠. 고속도로 중앙분리대 위에 앉아 있는 새끼 고양이를 다행히 차가 많이 밀려 구한 적도 있어요. 로드킬 당한 동물도 숨이 붙어 있나 살펴보곤 해요.”

 ―음악과 동물보호는 어떤 관계일까요. 노래에 동물이 직접 등장하는 것도 아닌데.

 “신이 노래하는 재능을 줄 테니 선한 목적으로 알리라는 사명을 준 것 같아요. 동물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 소외된 자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음악이나 동물 모두 사람에게 위로와 희망을 줍니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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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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