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여우 복원 3년 프로젝트 '켕켕'
복원지 조사 현장을 가다
오대산·덕유산 등 후보지 선정
먹잇감·경쟁동물 일일이 체크
반달곰·산양 이어 '3번째 도전'

“대륙밭쥐, 등줄쥐, 흰넓적다리붉은쥐…. 여우를 위한 뷔페는 풍성하게 차려져 있네요.”
지난 17일 새벽 오대산 국립공원 동녘골에서 국립공원관리공단 멸종위기종 복원센터의 연구원들이 부지런히 쥐덫을 확인하고 있었다. 야생 여우를 복원했을 때 먹이가 충분한지를 조사하는 것이다.
연구원들은 전날 밤 스테인리스 상자에 비스킷을 미끼로 넣은 덫에 어떤 들쥐가 들었는지 확인한 뒤 놓아주었다. 덫 안에 미끼와 함께 넣은 솜은 신진대사가 빠른 들쥐가 밤새 얼어 죽지 않도록 한 배려이다.
잎갈나무가 조림된 동녘골 조사지는 개울 주변에 나지막한 언덕이 펼쳐진 곳으로 여우가 살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여우의 주식인 들쥐가 얼마나 많이 분포하는지가 조사 포인트다. 여우는 들쥐를 비롯해 멧토끼, 고슴도치 등을 잡아먹으며, 포도, 잣 등 철 따라 나는 열매 등 못 먹는 게 없는 잡식성이다.
여우와 경쟁하는 다른 동물이 무엇인지도 관심거리다. 잣나무숲이 우거진 동녘골의 또 다른 조사지에 설치된 적외선카메라에는 고라니와 삵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너구리와 멧돼지도 이곳에 산다.
조사책임자인 이배근 멸종위기종 복원센터 박사는 “특히 여우와 먹이·서식지가 비슷한 경쟁종인 너구리가 얼마나 많은지 유심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여우가 사라진 뒤 너구리가 늘어났다면, 여우를 복원하면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게 된다. 그러나 원래 있었던 여우가 들어선 새로운 균형은 더 다양하고 건강할 터이다. 이 박사는 “어디까지나 이것은 원론적인 얘기”라며 기초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대산의 서식지 조사는 전설 속에서만 살아남은 토종여우를 되살리려는 첫걸음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여우를 봤다는 주민의 목격담과 지형을 토대로 여우를 풀어놓을 후보지로 오대산, 덕유산, 소백산을 뽑았다. 모두 험한 바위산이 아니라 얕은 구릉이 많은 육산이란 공통점이 있다. 오대산에서는 동녘골, 회사거리, 진고개를 골라 지난 5월부터 다달이 기초 서식지 조사를 하고 있다.
주민들은 한국전쟁 직후까지도 오대산에 여우가 많이 살았다고 증언한다. 주민 최선도(71·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간평리)씨는 “야산에서 무덤에 굴을 판 여우를 흔히 봤다”며 “개보다 몸집이 작지만 아주 빨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오면 오대산에서조차 여우 보기가 쉽지 않게 됐다. 오랫동안 사냥을 해 마을에서 ‘강 포수’라고 불리는 강태운(63)씨는 “‘캥~캥’ 하는 울음소리와 새끼를 데리고 다니던 여우를 어릴 때 봤다”며 “화전민이 살던 조개골에 많았는데 여우는 사람을 끼고 산다”라고 말했다.
여우는 전설과 민담에 자주 등장하고, 골짜기와 고개 이름에 흔히 붙을 정도로 우리에게 가까운 동물이다. 그러나 1978년 지리산과 2004년 강원도 양구에서 죽은 채 발견된 여우가 모습이 확인된 마지막 개체이다.
물론 여우를 봤다는 목격담은 끊이지 않는다. 목격지는 지리산과 양구를 비롯해 경북 평해, 경남 거제, 경북 봉화, 경기 양평, 전남 순천, 충남 공주, 충북 단양, 인천 강화 등 전국에서 40여곳에 이른다. 지난해 비무장지대 생태계 조사에서도 강원도 철원읍 월정리 인근에서 여우로 추정되는 동물의 배설물을 발견하기도 했다. 환경부는 전국적으로 약 100마리가 조각난 서식지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렇다면 해방 이전에는 전국 야산 특히 공동묘지에서 낮에도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 자신있게 얘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연구가 이뤄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세계적으로 여우가 너무 많아 골칫거리인 나라는 있어도 멸종한 사례는 보기 힘들다”며 “복원에 앞서 멸종 원인을 짚어보는 것이 꼭 필요한 절차”라고 지적했다.
현재까지 가장 일반적인 설명은 모피를 위한 남획과 전국적인 쥐약 살포이다. 원창만 국립생물자원관 척추동물연구과 연구관은 “1960년대에 여우 목도리는 거의 집 한 채 값으로 고가였는데, 전국의 여우 모피가 집결하던 동대문 모피상에 들어온 모피가 몇 장 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당시 이미 여우는 드물어진 상태로 보인다”고 말했다.
1960~1970년대에 식량안보를 위해 전국에서 이뤄진 쥐약 놓기는 이미 줄어든 여우 집단에게 치명타를 가했을 것이다. 오대산 주민 강태운씨는 “1960년대엔 ‘원자 쥐약’을 놓았는데 이 쥐약을 먹고 죽은 쥐를 뱀이 먹고 죽고, 이것을 또 너구리가 먹고 죽는 연쇄반응이 일어났다”고 증언했다.
쥐를 많이 잡아먹는 족제비나 너구리는 살아남았는데 왜 여우만 자취를 감췄을까. 전문가들은 인가 근처와 산속 모두에 서식하던 족제비나 너구리와 달리 여우는 인가 근처에 주로 서식했기 때문으로 추론하고 있다.
여우가 복원된다면 반달가슴곰, 산양에 이어 세번째가 된다. 연구팀은 이번엔 외국에 내놔도 손색없는 체계적인 복원을 하자는 분위기이다. 이배근 박사는 “서식환경조사로 복원 장소를 확정하고 동시에 토종여우와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원종을 확보하는 한편 현지적응, 주민과 소통 등을 하려면 적어도 3년은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좀 더 신중한 복원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항 교수는 “오랜 세월 우리의 삶 속에 자리 잡은 문화적 가치를 지키고 여우의 잔존집단을 유지를 위해 복원의 필요성을 인정할 수 있다”면서도 “여우가 광견병과 포충증을 사람에게 옮기는 매개동물이라는 점에서 공중보건 측면의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생태계와 사람에 끼칠 영향 등 기초연구를 위해 10~20년의 장기계획과 함께 육지에서 격리된 섬에서 먼저 복원해 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원창만 박사는 “여우는 사람에 대한 위해요인이 거의 없고 쥐 조절 등 생태계 회복에 도움을 주며 달라진 생태계에서 서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복원을 위해 3년 정도 준비하면 충분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종 복원이 생태계에 좋은 영향만 끼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주민과 생태계에 문제를 덜 일으키도록 조정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평창/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오대산·덕유산 등 후보지 선정
먹잇감·경쟁동물 일일이 체크
반달곰·산양 이어 '3번째 도전'

“대륙밭쥐, 등줄쥐, 흰넓적다리붉은쥐…. 여우를 위한 뷔페는 풍성하게 차려져 있네요.”
지난 17일 새벽 오대산 국립공원 동녘골에서 국립공원관리공단 멸종위기종 복원센터의 연구원들이 부지런히 쥐덫을 확인하고 있었다. 야생 여우를 복원했을 때 먹이가 충분한지를 조사하는 것이다.
연구원들은 전날 밤 스테인리스 상자에 비스킷을 미끼로 넣은 덫에 어떤 들쥐가 들었는지 확인한 뒤 놓아주었다. 덫 안에 미끼와 함께 넣은 솜은 신진대사가 빠른 들쥐가 밤새 얼어 죽지 않도록 한 배려이다.
잎갈나무가 조림된 동녘골 조사지는 개울 주변에 나지막한 언덕이 펼쳐진 곳으로 여우가 살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여우의 주식인 들쥐가 얼마나 많이 분포하는지가 조사 포인트다. 여우는 들쥐를 비롯해 멧토끼, 고슴도치 등을 잡아먹으며, 포도, 잣 등 철 따라 나는 열매 등 못 먹는 게 없는 잡식성이다.
여우와 경쟁하는 다른 동물이 무엇인지도 관심거리다. 잣나무숲이 우거진 동녘골의 또 다른 조사지에 설치된 적외선카메라에는 고라니와 삵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너구리와 멧돼지도 이곳에 산다.
조사책임자인 이배근 멸종위기종 복원센터 박사는 “특히 여우와 먹이·서식지가 비슷한 경쟁종인 너구리가 얼마나 많은지 유심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여우가 사라진 뒤 너구리가 늘어났다면, 여우를 복원하면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게 된다. 그러나 원래 있었던 여우가 들어선 새로운 균형은 더 다양하고 건강할 터이다. 이 박사는 “어디까지나 이것은 원론적인 얘기”라며 기초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대산의 서식지 조사는 전설 속에서만 살아남은 토종여우를 되살리려는 첫걸음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여우를 봤다는 주민의 목격담과 지형을 토대로 여우를 풀어놓을 후보지로 오대산, 덕유산, 소백산을 뽑았다. 모두 험한 바위산이 아니라 얕은 구릉이 많은 육산이란 공통점이 있다. 오대산에서는 동녘골, 회사거리, 진고개를 골라 지난 5월부터 다달이 기초 서식지 조사를 하고 있다.
주민들은 한국전쟁 직후까지도 오대산에 여우가 많이 살았다고 증언한다. 주민 최선도(71·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간평리)씨는 “야산에서 무덤에 굴을 판 여우를 흔히 봤다”며 “개보다 몸집이 작지만 아주 빨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오면 오대산에서조차 여우 보기가 쉽지 않게 됐다. 오랫동안 사냥을 해 마을에서 ‘강 포수’라고 불리는 강태운(63)씨는 “‘캥~캥’ 하는 울음소리와 새끼를 데리고 다니던 여우를 어릴 때 봤다”며 “화전민이 살던 조개골에 많았는데 여우는 사람을 끼고 산다”라고 말했다.
여우는 전설과 민담에 자주 등장하고, 골짜기와 고개 이름에 흔히 붙을 정도로 우리에게 가까운 동물이다. 그러나 1978년 지리산과 2004년 강원도 양구에서 죽은 채 발견된 여우가 모습이 확인된 마지막 개체이다.
물론 여우를 봤다는 목격담은 끊이지 않는다. 목격지는 지리산과 양구를 비롯해 경북 평해, 경남 거제, 경북 봉화, 경기 양평, 전남 순천, 충남 공주, 충북 단양, 인천 강화 등 전국에서 40여곳에 이른다. 지난해 비무장지대 생태계 조사에서도 강원도 철원읍 월정리 인근에서 여우로 추정되는 동물의 배설물을 발견하기도 했다. 환경부는 전국적으로 약 100마리가 조각난 서식지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렇다면 해방 이전에는 전국 야산 특히 공동묘지에서 낮에도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 자신있게 얘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연구가 이뤄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세계적으로 여우가 너무 많아 골칫거리인 나라는 있어도 멸종한 사례는 보기 힘들다”며 “복원에 앞서 멸종 원인을 짚어보는 것이 꼭 필요한 절차”라고 지적했다.
현재까지 가장 일반적인 설명은 모피를 위한 남획과 전국적인 쥐약 살포이다. 원창만 국립생물자원관 척추동물연구과 연구관은 “1960년대에 여우 목도리는 거의 집 한 채 값으로 고가였는데, 전국의 여우 모피가 집결하던 동대문 모피상에 들어온 모피가 몇 장 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당시 이미 여우는 드물어진 상태로 보인다”고 말했다.
1960~1970년대에 식량안보를 위해 전국에서 이뤄진 쥐약 놓기는 이미 줄어든 여우 집단에게 치명타를 가했을 것이다. 오대산 주민 강태운씨는 “1960년대엔 ‘원자 쥐약’을 놓았는데 이 쥐약을 먹고 죽은 쥐를 뱀이 먹고 죽고, 이것을 또 너구리가 먹고 죽는 연쇄반응이 일어났다”고 증언했다.
쥐를 많이 잡아먹는 족제비나 너구리는 살아남았는데 왜 여우만 자취를 감췄을까. 전문가들은 인가 근처와 산속 모두에 서식하던 족제비나 너구리와 달리 여우는 인가 근처에 주로 서식했기 때문으로 추론하고 있다.
여우가 복원된다면 반달가슴곰, 산양에 이어 세번째가 된다. 연구팀은 이번엔 외국에 내놔도 손색없는 체계적인 복원을 하자는 분위기이다. 이배근 박사는 “서식환경조사로 복원 장소를 확정하고 동시에 토종여우와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원종을 확보하는 한편 현지적응, 주민과 소통 등을 하려면 적어도 3년은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좀 더 신중한 복원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항 교수는 “오랜 세월 우리의 삶 속에 자리 잡은 문화적 가치를 지키고 여우의 잔존집단을 유지를 위해 복원의 필요성을 인정할 수 있다”면서도 “여우가 광견병과 포충증을 사람에게 옮기는 매개동물이라는 점에서 공중보건 측면의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생태계와 사람에 끼칠 영향 등 기초연구를 위해 10~20년의 장기계획과 함께 육지에서 격리된 섬에서 먼저 복원해 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원창만 박사는 “여우는 사람에 대한 위해요인이 거의 없고 쥐 조절 등 생태계 회복에 도움을 주며 달라진 생태계에서 서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복원을 위해 3년 정도 준비하면 충분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종 복원이 생태계에 좋은 영향만 끼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주민과 생태계에 문제를 덜 일으키도록 조정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평창/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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