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물닭 새끼가 유독 화려한 이유

조홍섭 2020. 01.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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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태어난 작은 새끼일수록 색깔 선명, 돌봄 ‘몰아주기’

co1.jpg » 새끼 물닭의 밝고 선명한 색깔의 깃털, 부리, 피부 모습. 성 선택이 아닌 부모선택을 위한 장식이다. 브루스 리옹 제공.

공작의 예에서 보듯 수컷 새는 흔히 화려한 깃털로 암컷의 환심을 사려 한다. 습지에서 흔히 보는 물닭은 특이하게 어미보다 새끼가 더 화려하다. 

어미는 검은 몸집에 부리가 흰 단조로운 모습이지만, 갓 태어난 새끼는 붉은빛과 오렌지빛이 어울린 화려한 깃털과 피부·부리 색을 자랑한다. 멋진 수컷은 짝짓기에 성공할 확률이 높다지만, 물닭 새끼는 왜 이런 장식을 하게 됐을까.

브루스 리옹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터크루즈 캠퍼스 생태 및 진화생물학 교수 등은 과학저널 ‘미 국립학술원 회보(PNAS)’ 30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이 오랜 수수께끼를 풀 단서를 제시했다.

리옹 교수팀은 이미 1994년에 물닭 어미가 화려한 새끼를 편애한다는 사실을 과학저널 ‘네이처’에 밝힌 바 있다. 일부 새끼의 깃털을 덜 화려하게 조작한 실험을 통해 화려한 새끼일수록 먹이를 더 많이 받아먹고 더 빨리 자라 새끼를 많이 남긴다는 내용이다.

이번 연구의 목적은 대체 물닭 어미는 왜 화려한 새끼를 선호하게 됐는지 밝히는 것이었다. 이런 행동이 어미에게 득일까 아니면 새끼에게 득일까. 리옹 교수는 “이 문제가 재미있는 게, 어미의 이런 행동이 먹이를 더 얻어먹으려는 새끼의 의도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co2.jpg » 물닭 어미(오른쪽)는 화사한 새끼에 견줘 단조로운 깃털을 지녔다. 브루스 리옹 제공.

물닭 사이에는 종내 탁란이 성행한다. 암컷은 자기 둥지에 알을 낳기 전 기회가 생기면 슬쩍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곤 한다. 둥지의 40%에서 하나 이상 다른 새의 알이 발견된다.

만일 어미의 화려한 색깔 선호가 새끼의 술수라면, 탁란 기생은 그 출발점일 터이다. 남의 어미에게서 제 자식보다 더 많은 먹이를 얻어먹는다면 기생은 완벽히 성공한다. 리옹 교수는 “처음 우리는 탁란한 새끼가 이득을 보기 위해 다른 새끼보다 더 화려할 것으로 예상했다”며 “그러나 결과는 좀 놀라웠는데, 탁란한 새끼가 덜 화려했다”고 말했다. 새끼의 이득이 아니라면 어미는 어떻게 이득을 볼까.

연구자들은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의 습지에서 물닭 새끼 1500마리의 색깔을 정밀측정했는데, 핵심 발견은 물닭 새끼의 색깔이 알을 낳는 순서에 따라 다르며, 나중에 깨어난 새끼일수록 붉은색이 선명하다는 것이다. 리옹 교수는 “새끼는 자기가 언제 태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색깔을 결정하는 주체는 결국 어미”라고 설명했다.

물닭 알의 노른자에는 다량의 카로티노이드 색소가 포함돼 있다. 연구자들은 물닭 어미가 나중에 낳는 알일수록 더 많은 색소를 집어넣는 것으로 추정했다.

그렇다면 어미는 왜 이런 방식으로 새끼를 구분하려 할까. 이를 이해하려면 물닭의 잔인해 보이는 번식 생태를 이해해야 한다.

co3.jpg » 물닭은 많은 수의 알을 낳은 뒤 냉혹하게 강자만 살아남기를 기다려 그 가운데 약한 새끼를 돌보는 특이한 번식전략을 쓴다. 브루스 리옹 제공.

물닭은 비교적 작은 알을 9∼10개나 낳는데, 그 수는 대개 주변에서 먹이를 조달해 키우기 힘들 만큼 많다. 그 결과 새끼의 절반은 굶어 죽는다. 어미로서는 알에 투입하는 에너지가 많지 않기 때문에 새끼의 사망률이 높더라도 최대한의 새끼를 기르려는 전략이다.

새끼들은 알에서 깨어난 뒤 열흘 사이에 주로 사망한다. 이때 어미는 누구든 자기 곁에 먼저 온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데, 당연히 먼저 깨어난 큰 새끼가 먹이를 차지하기 마련이어서 나중에 깨어난 새끼의 사망률이 높다. 어미 물닭은 알을 평균 6일, 최고 11일에 걸쳐 낳기 때문에 순차적으로 새끼가 깨어난다. 

마지막 알이 깨어난 지 10일이 지나면 어미 물닭의 새끼 돌보는 행동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먹이를 곁에 먼저 다가온 새끼가 아니라 자기가 선호하는, 더 선명한 붉은 깃털이 난 새끼에게 주기 시작한다. 가장 나중에 태어나서 몸집은 작지만 가장 화려한 새끼가 돌봄을 독차지한다. 

먼저 태어난 덩치 크고 덜 선명한 새끼는 먹이를 조르다가 구박을 당하기도 한다. 물닭 부부는 각자 새끼 무리를 절반씩 돌보는데, 저마다 가장 아끼는 새끼가 따로 있어 먹이의 80%를 몰아준다.

co4.jpg » 새끼에게 다정하게 작은 먹이를 건네주는 물닭 어미. 브루스 리옹 제공.

리옹 교수는 “새끼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출발하고, 거기서 (나중 태어난 새끼들의) 떼죽음이 벌어진다. 하지만 그 일이 끝나면 어미가 개입해 운동장의 기울기를 바로잡는다”며 “새끼의 화려한 깃털은 어떤 새끼가 가장 도움이 필요한지 알려주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Bruce E. Lyon and Daizaburo Shizuka, Extreme offspring ornamentation in American coots is favored by selection within families, not benefits to conspecific brood parasites, PNAS (2019) DOI: 10.1073/pnas.1913615117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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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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