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감축 5년마다 검증…'저탄소 경제' 전환 서둘러야
지구온도 '1.5도 상승으로 제한', 금세기말까지 '탄소 중립' 문구 들어가
실천 따르지 않으면 말잔치 불과, 우리나라 "화력발전 증설 재검토해야"
»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 195개 협약 당사국은 12일(현지시간) 파리 인근 르부르제 전시장에서 열린 총회 본회의에서 2020년 이후 새로운 기후변화 체제 수립을 위한 최종 합의문을 채택했다. 사진은 이날 총회 참석자들이 역사적인 파리 기후협정 합의 발표에 일제히 박수를 치는 모습. 사진=르부르제 / AFP 연합뉴스
12일(현지시각) 채택된 파리협정은 선진국과 후진국 구분 없이 모든 나라가 온실가스 감축에 참여하기로 한 첫 포괄적 협약이라는 점에서 지구촌 기후변화 대응의 새로운 역사를 연 것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현재의 교토의정서 체제는 선진국들에만 감축 의무를 부여하는 바람에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전세계 주요 온실가스 배출 대국들이 대부분 빠진 기형적 체제로 굳어졌다.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제2차 공약 기간에 참여하는 나라는 195개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가운데 37개에 불과해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5%에만 적용되고 있는 상태다.
내용 면에서 보면, 파리협정은 지구가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는 저탄소 사회로 본격적으로 들어가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협정문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2℃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되, 온도 상승을 1.5℃ 이하로 제한하기 위한 노력을 추구해야 한다”는 장기목표를 제시했다.
또 파리협정은 이번 세기 후반에 인위적인 온실가스 배출과 흡수 사이에 균형을 이룬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금세기 말까지 지구에 새로 추가되는 탄소가 제로가 되는 ‘탄소 중립’을 이룬다는 얘기다. 이런 목표 달성은 결국 석탄과 같은 화석에너지를 재생가능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이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시민·환경단체 60여곳으로 구성된 ‘기후행동2015’는 파리협정 타결 뒤 성명에서 “파리협정이 자발적 기여에 기초하는 협상의 한계 속에서도 ‘탈탄소경제’로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는 명확한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 프랑수아 올랑드(오른쪽부터) 프랑스 대통령, 로랑 파비위스 프랑스 외무장관 겸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1) 의장,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이 12일 파리 르부르제에서 폐막된 유엔기후변화협약 총회 마지막 회의 뒤 서로 손을 잡아 올리며 협정 타결을 축하하고 있다. 사진=파리/AP 연합뉴스
협정문에서 제시된 장기목표 달성은 쉽지 않은 과제다. 이미 지구 평균기온은 1도가량 올라가 있는 상태여서, 각 나라들이 지금까지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모두 이행해도 1.7도 이상 추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번 파리협정에 대해 결국 말잔치에 불과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장기목표에 접근하기 위해 파리회의에 참가한 나라들은 앞으로 5년 단위로 점점 강화된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내놓기로 했다. 파리협정은 모든 협정당사국에 장기 저탄소 개발 전략도 마련해 2020년까지 제출하도록 노력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이 내놓을 감축 계획 이행을 국제법적으로 구속하는 장치는 마련되지 않았지만 이행을 게을리하기는 쉽지 않다. 투명한 검증 과정을 거쳐 국제사회에 공개하기로 해 이행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에 한 약속을 어기는 ‘불량국가’라는 손가락질을 감수해야만 한다.
이번 회의는 처음부터 새 기후체제 타결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가운데 시작됐다. 무엇보다 중국과 미국 등 두 온실가스 배출 대국이 2014년 이후 협상 타결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온 것이 그런 기대감을 높였다.
늘 회의 폐막일을 넘겼던 과거 전례는 이번에도 되풀이됐으나, 격앙된 목소리와 비난 성명, 협약 탈퇴 협박 등이 난무했던 과거 총회와는 크게 달랐다. “논쟁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평화롭게 진행된 협상도 처음이었던 같다”는 것이 회의장 주변에 있었던 이들의 이야기다.
» 파리 합의문이 타결된 12월12일, 4만 명의 시민과 활동가들이 파리 시내에서 위치태그(geotagging) 기법을 활용해 ‘기후정의와 평화’의 메시지를 만들었다. 사진=지구의 벗
이번 합의문 도출 과정에서도 개도국들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선진국들의 온난화에 대한 역사적 책임론을 적극 제기했고, 개도국들은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재원 마련에 대한 중국 등 선진 개도국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강조했다. 사흘간 새벽까지 이어진 협상에서 선진국들은 새 기후변화 체제 출범을 위해 개도국에 상당한 정도의 유연성을 허용하기로 양보했다.
개도국의 다양한 여건을 고려해 감축계획 제출, 보고, 검증 등에서 개도국들에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기후변화로 가장 직접적인 위협을 받고 있는 군소 도서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개도국들은 끝까지 고집했던 구체적인 기후재원 목표 제시 요구를 접었다.
이번 회의를 참관한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은 “협약은 시작일 수 있다. 이제 방향에 합의한 것이고 그 내용을 채워가는 과정에서 각 나라 사이의 이해관계가 출동할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하지만 어떤 나라도 이번에 형성된 이 물줄기를 거스르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 소장은 “그동안 우리는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해 거꾸로 간 측면이 많다. 협정을 지키겠다면 석탄발전소를 새로 짓거나 증설하려는 시도는 더 이상 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이번 파리협정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면 당장 석탄화력발전소 증설 계획이 대거 포함된 전력수급계획부터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한국, 탄소배출 감축 로드맵 작성이 급선무감축 목표 세분화, 기존 배출권 거래제 조정 불가피
‘파리협정’으로 대표적인 에너지 다소비 사회인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큰 도전 앞에 놓이게 됐다.
파리협정은 가입 당사국들에 5년마다 점점 높은 수준의 감축 계획을 내놓도록 요구하는 한편, 협정 이행 상황을 매 5년 단위로 점검해 공개하기로 돼 있다. 새 기후변화 체제에 참여하기로 한 국가들이 파리 기후회의 전까지 유엔에 제출한 ‘기여 계획’을 모두 달성하더라도 파리협정에서 정한 기후변화 억제 장기목표 달성은 불가능하다는 진단이 내려진 상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한국은 국제사회로부터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온실가스 감축 압력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한국은 화석연료 사용 과정에서 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7위(2012년 기준)의 온실가스 배출 대국이기 때문이다. 결국 파리협정 체제에서 한국이 저탄소 사회로 전환하는 것은 떠밀려서 하느냐, 주도적으로 하느냐의 문제인 셈이다.
파리회의에서 돌아온 정부는 협정문에 대한 비준 절차를 밟는 한편 현재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 시행령’에 2020년까지 배출량 전망치 대비 30%를 줄이도록 규정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유엔에 제출한 기여계획에 맞춰 수정하는 작업을 진행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후속 대책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이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 이른바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한 ‘로드맵’을 만드는 것이다. 이 로드맵에는 목표 달성을 위한 연도별 감축 목표, 산업·건물·수송·에너지 등 부문별로 세분화된 감축 목표와 업종별 감축 목표가 포함된다. 이 로드맵 작성 과정에서 부문별로, 또 업종별로 감축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 지기 위한 갈등과 진통이 예상된다.
기존 감축 목표에 맞춰 짜인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도의 조정 역시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전경련을 중심으로 한 재계는 올해 시행되고 있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에서 배출권이 과소 할당돼 기업활동을 제약하고 있다며 배출권 추가 할당을 요구해왔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수정을 계기로 배출권 추가 할당을 요구하는 재계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질 가능성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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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온실가스 감축은 결국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리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신재생에너지 확산 정책은 고유가 시대에 잠깐 조명을 받았지만, 이후로는 우리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최근 정부는 신기후체제 출범을 계기로 ‘2030 에너지 신산업 확산 전략’을 내놨지만, 관련 산업 육성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은 빠져 있다. 앞서 지난 7월 확정된 ‘제7차 전력 수급 기본계획’에서도 정부는 구체적인 방안 없이 2029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을 20%로 높이겠다고만 발표했다.
김정수 이순혁 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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