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불의 미소와 천탑의 기원엔 억겁의 내력 녹아 있다

조홍섭 2015.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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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지질공원 생성의 비밀] <1-2> 무등산권-운주사


    와불이 누워있는 까닭은 뭘까

    불상들 눈 코 귀는 왜 닳았을까

 

    화산으로 생긴 응회암에 비밀이 있다

 

    폭발적 분출과 조용한 분출이

    오랜 시간 동안 섞바뀌면서

    차곡차곡 쌓인 화산재가 압력과 온도로

    층층이 색깔과 구성물 다른 층상응회암으로


    같은 지역 화산활동으로 생겨났지만

    무등산 것은 단단하고 운주사 것은 물러

 

    쉽게 떨어지는 응회암층을 떼어내

    그대로 불상을 새겨

    하나같이 응회암층처럼 길쭉하고 얇아


    불상 들어 응회암층 빈틈에 집어넣으면

    고스란히 들어갈 듯


    탑에 손 대고 귀 기울이면

    8300만년 전 과거가 말을 걸어와

    지질학과 문화가 대화를 한다


    미륵의 꿈은 이렇다

    하룻밤에 천불천탑 세우면 온다던 미륵세상

    마지막 1개의 와불 끝내 일으켜 세우지 못하고

    새벽 닭이 울어 꿈은 물거품으로


un2_곽.jpg » 운주사 천불천탑의 마지막 불상으로 알려지는 와불. 사진=화순 / 곽윤섭선임기자kwak1027@hani.co.kr


수많은 불상과 탑으로 ‘천불천탑’(千佛千塔)의 사찰로 알려진 운주사에서 화산폭발과 함께 쏟아져 내리는 뜨거운 화산재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불타는 내면의 번뇌를 차갑게 식히고 은은히 미소를 띠며 서 있는 불상은 그런 억겁의 내력을 다 아는 것처럼 보인다.
 
전남 화순군 도암면 용강리의 운주사에는 돌로 만든 불상과 탑이 많다. 황석영은 여기에 착안해 미륵세상을 꿈꾸는 노비들의 이야기를 지었다.

 

un2.jpg » 천 개의 불상이 있다는 운주사. 황석영은 소설 <장길산>에서 이를 미륵세상을 향한 천민들의 꿈으로 풀었다.
 
소설 <장길산>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운주사 천불천탑과 와불 이야기는 이렇다. 반란을 일으킨 노비들이 월출산을 근거지로 삼아 관군과 싸우다 패해 잔당이 천불산 계곡에 숨어든다. 이곳에는 “골짜기에 천불천탑을 하룻밤 사이에 세우면 수도가 이곳으로 옮겨 온다.”라는 말이 전해진다.
 
노비들은 자신이 나라의 중심이 되는 세상이 이뤄진다는 말에 힘을 얻어 정신없이 돌을 쪼아 불상을 세운다. 그런데 999개의 불상을 세운 뒤 마지막으로 언덕 위에 누워있는 거대한 바위에 불상을 새겨 일으켜 세우느라 애를 쓰던 도중 “닭이 울었다.”라는 헛소문 탓에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un3.jpg » 허민 전남대 교수가 화산재에 돌 조각이 섞인 운주사 9층석탑의 재질을 설명하고 있다.
 
도선국사가 미륵불의 도래를 이루기 위해서였든, 노비들이 주인이 되는 혁명을 위해서였든 운주사에는 불상이 많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따로 있다.
 
“탑에 손을 대고 가까이 들여다 보십시오. 8300만년 전 과거와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지난 7일 허민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가 운주사 들머리에 있는 구층석탑을 만지면서 말했다. 짙은 회색 암석에는 구멍이 숭숭 뚫렸고 작은 암석 조각이 많이 들어 있었다. 화산재가 굳은 응회암이다.
 
중생대 백악기 때 무등산 일대는 거대한 화산지대였다. 화구에서 뿜어나온 화산재는 응회암이나 유문암 등 이미 화산재나 용암이 굳은 돌조각을 품은 채 화산 밑으로 쏟아져 내렸다.

 

수백도의 고온인 화쇄난류는 음속보다 빨리 계곡을 흘러내렸다. 베수비오 화산이 마을 주민들을 순식간에 화석으로 만든 것도 이것이었다. 격렬한 분출 뒤에는 평온하게 재를 뿌리는 분출이 이어졌다.

 

un5.jpg » 시기별로 다른 구성물질의 화산재가 쌓여 형성된 층상응회암과 그 한 층을 떼어내 만든 가는 불상.

 
폭발적인 분출과 조용한 분출이 교대하면서 화산활동은 장기간 계속됐다. 화산 주변에 차곡차곡 쌓인 화산재는 압력과 온도를 받아 응회암이란 암석이 됐다. 시기마다 조성이 다른 재가 쌓이면서 색깔과 구성물질이 서로 달라 층이 선명하게 구분되는 층상응회암이 형성됐다.
 
운주사 들머리에는 이런 층상응회암이 절벽에 고스란히 드러난 노두가 있다. 그 앞에는 불상들이 나란히 서 있다.

 

un4.jpg » 운주사 들머리에 있는 응회암 절벽과 불상들.
 
“불상은 응회암의 한 층을 고스란히 떼어낸 것처럼 크기와 입자가 비슷합니다.”라고 허민 교수가 응회암을 가리켰다. 실제로 운주사의 불상은 하나같이 응회암 층처럼 길쭉하고 얇다.
 
쉽게 떨어지는 응회암 층을 떼어내 그대로 불상을 새긴 것이다. 실제로 층상응회암이 드러난 절벽에는 한 층의 석재를 떼어낸 흔적도 있다. 불상을 들어 응회암 층의 빈틈에 집어넣으면 고스란히 들어갈 것 같다.

 

un6.jpg » 응회암은 재질이 무르고 가공이 쉬워 마춤한 불상 재료가 됐다. 응회암에 쐐기를 박아 암석을 한 층 떼어내려 한 흔적.
 
운주사와 무등산의 암석은 모두 같은 지역 화산활동에서 나온 화산재로 형성된 것이지만 암석의 재질은 많이 다르다. 무등산 응회암이 단단하고 재질이 촘촘하다면 운주사의 것은 훨씬 물러 보인다.
 
이창열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무등산의 응회암은 재와 재 사이 입자가 고온 고압에 녹아서 엉겨붙은 용결응회암이어서 단순히 재가 굳은 운주사의 응회암보다 훨씬 단단하다.”라고 설명했다.

 

무등산의 주상절리는 지표에 나온지 10만년이 넘었지만 매끈하게 단단한 표면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운주사의 미륵불은 불상이 된 지 1000년도 되지 않았는데도 눈·코·귀가 풍화돼 윤곽이 부드러운 이유이다.

 

un1.jpg
 
우리나라의 불상은 대부분 화강암으로 만든다. 화강암은 단단해 큰 불상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응회암은 약해 암반에서 떼어내기는 쉬워도 크게 만들기는 힘들다. 운주사에서 가장 큰 불상이 일어서지 못하고 와불로 누워있는 것도 이 때문인지 모른다.
 
운주사의 불상은 크지 않고 훌쭉하며 풍화가 많이 돼 표정이 인자하다. 이런 서민적인 모습이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선다. 지질학과 문화가 대화를 시작한다.
 
화순/ 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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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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