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 실종 먹황새는 언제나 돌아오나
언론 조명 받은 음성 황새와 달리 1968년 사진 한 장 남긴 채 사라져
험한 절벽에 둥지 트는 검은빛 큰 새, 예산에 황새는 오늘 복원됐는데…
» 둥지에 내려앉은 어미 먹황새가 토해놓은 먹이를 새끼들이 몰려들어 먹고 있다. 1960년대까지 우리나라에서도 드물지만 볼 수 있던 모습이다. 밝은 점들은 모기와 쇠파리 떼이다.
국내에서 번식하던 황새(천연기념물 제199호) 부부는 1971년 충북 음성 감나무 위 둥지에서 마지막 모습을 보였다. 그해 밀렵꾼이 쏜 총에 짝을 잃은 암컷을 끝으로 국내서 서식하는 황새는 사라졌다.
같은 황새과의 먹황새(천연기념물 제200호)는 수컷 황새가 총에 맞기 3년 전인 1968년까지도 경북 안동의 낙동강 상류 절벽에서 번식했다는 기록이 있다. 안동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던 윤종호씨가 1964년 7월 경북 안동 도산면 가송리 학소대 절벽 둥지에서 찍은 사진도 남아 있다.
음성의 황새가 언론이 주목하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땅에서 사라졌다면 낙동강 학소대의 먹황새는 사진만 한 장 후세에 남기고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난 셈이다.
» 먹황새는 몸 대부분이 녹색 광택을 띤 검은색이어서 눈에 쉽게 띈다.
먹황새는 키가 95~100㎝로 아주 크지만 경계심이 강한 새다. 가슴과 배의 흰 부분과 몸 대부분의 녹색 광택을 띠는 검은색 덕분에 자연에서 쉽게 눈에 띄는 외모이지만 국내에서 보기가 쉽지 않았다.
전남 함평 대동저수지, 화순 동복댐 상류, 경북 내성천에 아주 적은 개체가 드물게 월동하고 좀체 사람을 곁을 두지 않으려 했다.
지난 7월 러시아 알타이 지역의 맹금류를 찾아 나선 탐조 여행에서 작별 없이 떠났던 먹황새 가족을 만났다. 러시아 연방에 속하는 알타이공화국은 해발고도 4000m에 이르는 알타이산맥에 둘러싸여 있고 남동쪽으로 몽골과 중국, 남쪽으로 카자흐스탄과 접한 남한 크기의 땅이다.
험한 길 3800㎞를 24일 동안 달렸다. 이번 탐조엔 알타이와 시베리아 남부 지역의 맹금류 연구와 보호 활동을 하고 있는 러시아 맹금류 전문가들과 함께 했다.
» 자작나무와 소나무 가지가 울창한 숲 속 먹황새 둥지. 아름드리 소나무 가지에 지은 둥지 높이는 20여m 정도다.
먹황새 둥지를 찾은 러시아 알타이주의 코시하 마을은 인적이 드물었다. 하늘로 쭉쭉 뻗은 시베리아의 자작나무와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마을 옆 하천은 맑고 수심이 얕았다. 어른 허리만큼 자라 우거진 풀 한가운데 자란 소나무 위에 둥지가 있었다.
어린 새는 모두 네 마리. 머리와 멱, 날개 끝에 이제 막 거뭇거뭇한 깃털이 나기 시작해 제법 ‘먹’황새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지름이 1.5m도 넘는 둥지 위에서 어린 새들은 특유의 길고 커다란 부리를 벌리며 어미 새를 기다리고 있었다.
» 어미 새의 움직임을 따라 어린 새 네 마리가 일제히 고개를 돌리고 있다. 경계심이 강한 어미 새는 먹이를 갖고 둥지 주변에 와도 쉽게 새끼에게 오지 않는다.
» 시베리아의 여름은 모기와 쇠파리도 제철이다. 사람처럼 둥지 위 어린 새도 날아드는 벌레가 귀찮은 모양이다.
현지 전문가들은 먹황새 외모가 나무가 우거진 숲에서도 쉽게 눈에 띄지만, 큰 덩치와 길고 튼튼한 부리 덕분에 포식자들로부터 스스로 안전을 지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몸집 큰 어미 먹황새의 비행 기술도 놀라웠다. 양 날개를 펼치면 길이가 150㎝가 넘는 대형 조류이지만 숲속 나무 사이를 능숙하게 날아다녔다.
사람들이 어미 새를 기다리며 둥지 옆에 위장막을 설치하자, 불청객에 놀란 어미 새는 자신의 모습은 짙은 나무 그림자 뒤에 감추면서 숲속을 기민하게 움직이며 둥지를 지켜보았다.
» 자작나무와 소나무 숲속의 먹황새 둥지. 새의 크기가 큰 만큼 둥지도 거대하다.
시베리아의 여름이 짧지만 쇠파리와 모기는 제철을 만난 듯했다. 위장막에 숨어 있으면서 얼마를 시달렸을까?
해질 무렵 경계를 하던 수컷과 반대편 숲에 있던 암컷이 둥지에 앉으며 커다란 날개를 접었다. 어미 새의 입 안에는 주변 하천서 사냥한 먹이가 가득 차 있었다.
» 어미가 둥지에 내려앉기도 전에 어린 새들이 경쟁적으로 이미 어미가 먹이를 토해낼 곳으로 모여들고 있다.
둥지에 앉은 어미는 입을 벌리고 둥지 바닥에 반쯤 소화된 먹이를 게우듯 쏟아냈다. 급히 새끼를 먹인 어미는 잠시 둥지 위에서 주변을 둘러보고는 다시 숲 속으로 날아가 사라졌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어미는 굶주린 새를 먹이고 둥지와 어린 새의 안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나서 둥지를 떠났다.
다음날 정오 무렵까지 다시 어미 새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더는 새끼에게 날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여행 중 초원과 습지를 자유롭게 오가며 사냥을 하는 먹황새의 모습은 여러 번 더 눈에 띄었다.
국내서 안타깝게 사라진 황새가 21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3일 충남 예산 황새공원에서 한국교원대 황새복원연구센터가 복원한 황새 어른 새 6마리와 어린 새 2마리 등 모두 8마리를 방사했다.
» 3일 충남 예산에서 자연의 품으로 날아가는 황새복원센터의 황새들. 사진=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jpg
이 일을 시작으로 국내에서 텃새로서의 황새 복원을 위한 희망적인 작업이 진행된다. 하지만 소문 없이 우리 곁을 떠난 먹황새의 처지는 다르다.
먹황새는 황새와 달리 험준한 절벽이나 깊은 숲을 좋아해 눈에 쉽게 뜨이지 않는다. 서식지가 파괴되어 이 땅을 떠났지만, 사람들은 한동안 이들이 떠난 줄도 모르고 있었다.
황새의 야생 복귀로 떠들썩할 올 가을, 영주댐이 담수를 시작하면 국내에 먹황새의 몇 개 남지 않은 월동지 내성천과 모래도 조용히 물에 잠기게 될 것이다.
알타이(러시아)/ 글·사진 김진수 <한겨레21>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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