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각만 있는 비양나무, 처녀 맺어주기 애달아

조홍섭 2010. 09. 29
조회수 33599 추천수 0
<8> 여미지식물원
일본서 종자 표본 들여왔으나 발아 안돼 발동동
제주도 멸종위기종 자생지 복원 등 보전 지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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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난대부터 아고산 식물까지 우리나라의 모든 식물 분포대가 나타나는 ‘식물의 보고’이다. 열대식물이 자라는가 하면 한라산 고산초원에는 백두산에도 없는 툰드라 식물인 암매가 자생하는 등 2000여 종의 식물이 산다.
 
특히, 효돈천이 흐르는 서귀포시 상효동의 돈내코계곡에는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보존이 잘 돼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상록활엽수림이 있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64종 중 29종이 자생
 
제주도에는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식물 64종 가운데 절반 가까운 29종이 자생한다. 생물다양성이 풍부하다는 증거이지만, 동시에 많은 희귀식물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는 얘기다.
 
2003년 환경부로부터 솔잎란 등 12종의 증식과 복원을 맡을 서식지 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된 여미지식물원은 한라수목원과 함께 제주도의 멸종위기 식물을 지키는 첨병이다.

지난 16일 여미지식물원 식물팀과 함께 돈내코계곡을 찾았다. 지난 4월 이 식물원에서 증식한 멸종위기종 죽절초 500본을  복원한 곳이다.

구실잣밤나무, 동백나무, 굴거리나무 등 상록활엽수로 뒤덮인 숲은 어둑했다. 축축한 바닥엔 버섯과 수정난풀이 돋아있었다. 반짝이는 초록 잎새와 구슬 같은 열매가 하늘을 바라보는 식물이 눈에 띄었다. 줄기에 난 마디가 대나무 같은 죽절초였다. 복원한 죽절초가 열매를 매달아 스스로 증식할 채비를 갖춘 것이다.
 
동행한 강창훈(식물팀 사원)씨는 “1989년 돈내코 계곡 자생지에서 수집한 죽절초에서 씨앗을 받아 대량 증식한 것을 심었다”고 설명했다.
홀아비꽃대 과의 상록 관목인 죽절초는 10월에 붉게 익은 열매가 겨우내 달려 있어 관상가치가 큰 식물이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무분별한 채취로 자생지에서 보기 힘들게 됐다. 대표적인 남방계 식물인 죽절초는 대만, 일본, 인도, 말레이시아 등에도 분포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서귀포가 유일한 자생지이며, 이 식물의 북쪽 끄트머리 분포지라는 학술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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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섬 비양도 분화구 안에 사는 비운의 나무

 
제주도 서쪽의 화산섬 비양도의 분화구 안에는 자손을 남기지 못하고 늙어 죽을 기구한 팔자를 지닌 희귀한 나무가 산다. 쐐기풀과의 낙엽관목인 비양나무가 그 주인공이다. 일본에도 일부 분포하지만 우리나라에선 비양도가 유일한 자생지이다.
 
여미지식물원은 지난해 꺾꽂이로 증식한 비양나무 300여 그루를 비양도에 심었다. 비양나무의 자생지가 300㎡에 불과해 자연재해 등으로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처지였다.

그런데 복원사업 뒤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자생지는 물론 복원한 모든 비양나무가 한 개체의 복제물(클론)이며 수 나무라는 사실이 김문홍 제주대 생물학과 교수에 의해 드러난 것이다.

1980년대 말 이 나무를 발견한 김 교수는 “복원사업을 계기로 조사해 본 결과 모두 같은 유전자를 지닌 수 나무임이 드러났다”며 “자연증식은 불가능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 비양나무를 ‘장가 보내기’로 결심한 김 교수는 자생지가 있는 일본 나가사키 대학에 부탁해 어렵사리 종자가 달린 표본을 구해 여미지식물원에 증식을 부탁했다. 하지만 싹을 틔우는 데는 실패했다. 식물원 강창훈씨는 “발아 방법을 아직 못 찾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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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비양나무 씨앗이 철새의 배설물에 섞여 비양도로 옮겨졌는데 공교롭게 수 나무 하나만 싹터 불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일본인 학자 나카이가 1912년 이 섬을 조사했을 때 비양나무를 기록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 시기는 100년 전 이내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여미지식물원은 2008년에는 자생지에 10여 개체만 있는 1급 멸종위기종인 죽백란 500여 본을 서귀포시 하례동 일대에 복원한 것을 비롯해 황근, 삼백초, 갯취 등의 멸종위기종을 자생지에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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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1만2천여㎡ 면적의 ‘동양 최대’ 온실
 음악도 흐르고 진취적 설치예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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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중문관광단지 안에 자리잡은 여미지식물원은 1989년 동남아 열대식물을 보여주는 관광식물원으로 출발했다. 식물원 중앙에 자리잡은 1만2천여㎡ 면적의 “동양 최대 온실”은 그런 목적을 충실하게 따른 시설이다. 온실 안에는 다양한 식물을 위한 각종 정원과 함께 전시회와 음악회를 열 수 있는 공간과 매점까지 들어서 있다. 그런데도 키 큰 열대식물에는 온실이 비좁아 보였다.

온실 안에는 잎의 지름이 1.5m에 이르는 빅토리아 수련 등 50여 종의 수련으로 조성한 물의 정원과 바나나, 망고, 커피나무 등 낯익은 열대 과일을 심어놓은 과수원도 있다. 중앙엔 마라도와 가파도가 보이는 전망대도 마련돼 있다. 지난해 방문객은 73만 명으로 하루 2000명꼴이다.

남상규 여미지식물원장은 “관광지의 입지를 살려 예술적 전시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며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식물원인 시싱허스트 캐슬 정원이 모델”이라고 말했다.

여미지식물원은 지난해부터 식물원 안에 국내외의 진취적인 설치예술가들의 작품을 설치하는 ‘여미지 아트 프로젝트’를 격년제로 열고 있다.

그러나 식물원의 고유기능인 식물 보전과 교육을 외면할 수는 없다. 다음달엔 멸종위기식물 정원을 새로 만들 예정이다. 여미지식물원이 자리잡은 곳은 관광지이지만 동시에 생물다양성의 보고이기도 하다. 이 식물원은 제주도에서도 가장 다양한 무려 500여 종의 식물이 자생하는 천제연폭포와 붙어 있다.

사무실 건물 옆 나무 밑에는 멸종위기종 2급인 솔잎란이 저절로 자라고 있었다. 잎과 뿌리가 없고 줄기와 헛뿌리만 있는 원시식물인 솔잎란은, 실제로는 난초가 아니라 양치식물이다. 주 자생지는 천제연폭포의 암벽 틈인데, 포자가 날아와 식물원에 자리잡은 것이다.

조홍섭  기자 
※ 이 기획은 복권기금(산림청 녹색사업단 녹색자금)의 지원으로 마련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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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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