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각만 있는 비양나무, 처녀 맺어주기 애달아
<8> 여미지식물원
일본서 종자 표본 들여왔으나 발아 안돼 발동동
제주도 멸종위기종 자생지 복원 등 보전 지킴이

제주도는 난대부터 아고산 식물까지 우리나라의 모든 식물 분포대가 나타나는 ‘식물의 보고’이다. 열대식물이 자라는가 하면 한라산 고산초원에는 백두산에도 없는 툰드라 식물인 암매가 자생하는 등 2000여 종의 식물이 산다.
특히, 효돈천이 흐르는 서귀포시 상효동의 돈내코계곡에는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보존이 잘 돼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상록활엽수림이 있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64종 중 29종이 자생
제주도에는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식물 64종 가운데 절반 가까운 29종이 자생한다. 생물다양성이 풍부하다는 증거이지만, 동시에 많은 희귀식물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는 얘기다.
2003년 환경부로부터 솔잎란 등 12종의 증식과 복원을 맡을 서식지 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된 여미지식물원은 한라수목원과 함께 제주도의 멸종위기 식물을 지키는 첨병이다.
지난 16일 여미지식물원 식물팀과 함께 돈내코계곡을 찾았다. 지난 4월 이 식물원에서 증식한 멸종위기종 죽절초 500본을 복원한 곳이다.
구실잣밤나무, 동백나무, 굴거리나무 등 상록활엽수로 뒤덮인 숲은 어둑했다. 축축한 바닥엔 버섯과 수정난풀이 돋아있었다. 반짝이는 초록 잎새와 구슬 같은 열매가 하늘을 바라보는 식물이 눈에 띄었다. 줄기에 난 마디가 대나무 같은 죽절초였다. 복원한 죽절초가 열매를 매달아 스스로 증식할 채비를 갖춘 것이다.
동행한 강창훈(식물팀 사원)씨는 “1989년 돈내코 계곡 자생지에서 수집한 죽절초에서 씨앗을 받아 대량 증식한 것을 심었다”고 설명했다.
홀아비꽃대 과의 상록 관목인 죽절초는 10월에 붉게 익은 열매가 겨우내 달려 있어 관상가치가 큰 식물이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무분별한 채취로 자생지에서 보기 힘들게 됐다. 대표적인 남방계 식물인 죽절초는 대만, 일본, 인도, 말레이시아 등에도 분포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서귀포가 유일한 자생지이며, 이 식물의 북쪽 끄트머리 분포지라는 학술 가치를 지닌다.

화산섬 비양도 분화구 안에 사는 비운의 나무
제주도 서쪽의 화산섬 비양도의 분화구 안에는 자손을 남기지 못하고 늙어 죽을 기구한 팔자를 지닌 희귀한 나무가 산다. 쐐기풀과의 낙엽관목인 비양나무가 그 주인공이다. 일본에도 일부 분포하지만 우리나라에선 비양도가 유일한 자생지이다.
여미지식물원은 지난해 꺾꽂이로 증식한 비양나무 300여 그루를 비양도에 심었다. 비양나무의 자생지가 300㎡에 불과해 자연재해 등으로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처지였다.
그런데 복원사업 뒤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자생지는 물론 복원한 모든 비양나무가 한 개체의 복제물(클론)이며 수 나무라는 사실이 김문홍 제주대 생물학과 교수에 의해 드러난 것이다.
1980년대 말 이 나무를 발견한 김 교수는 “복원사업을 계기로 조사해 본 결과 모두 같은 유전자를 지닌 수 나무임이 드러났다”며 “자연증식은 불가능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 비양나무를 ‘장가 보내기’로 결심한 김 교수는 자생지가 있는 일본 나가사키 대학에 부탁해 어렵사리 종자가 달린 표본을 구해 여미지식물원에 증식을 부탁했다. 하지만 싹을 틔우는 데는 실패했다. 식물원 강창훈씨는 “발아 방법을 아직 못 찾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비양나무 씨앗이 철새의 배설물에 섞여 비양도로 옮겨졌는데 공교롭게 수 나무 하나만 싹터 불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일본인 학자 나카이가 1912년 이 섬을 조사했을 때 비양나무를 기록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 시기는 100년 전 이내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여미지식물원은 2008년에는 자생지에 10여 개체만 있는 1급 멸종위기종인 죽백란 500여 본을 서귀포시 하례동 일대에 복원한 것을 비롯해 황근, 삼백초, 갯취 등의 멸종위기종을 자생지에 복원했다.

서귀포/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일본서 종자 표본 들여왔으나 발아 안돼 발동동
제주도 멸종위기종 자생지 복원 등 보전 지킴이

제주도는 난대부터 아고산 식물까지 우리나라의 모든 식물 분포대가 나타나는 ‘식물의 보고’이다. 열대식물이 자라는가 하면 한라산 고산초원에는 백두산에도 없는 툰드라 식물인 암매가 자생하는 등 2000여 종의 식물이 산다.
특히, 효돈천이 흐르는 서귀포시 상효동의 돈내코계곡에는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보존이 잘 돼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상록활엽수림이 있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64종 중 29종이 자생
제주도에는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식물 64종 가운데 절반 가까운 29종이 자생한다. 생물다양성이 풍부하다는 증거이지만, 동시에 많은 희귀식물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는 얘기다.
2003년 환경부로부터 솔잎란 등 12종의 증식과 복원을 맡을 서식지 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된 여미지식물원은 한라수목원과 함께 제주도의 멸종위기 식물을 지키는 첨병이다.
지난 16일 여미지식물원 식물팀과 함께 돈내코계곡을 찾았다. 지난 4월 이 식물원에서 증식한 멸종위기종 죽절초 500본을 복원한 곳이다.
구실잣밤나무, 동백나무, 굴거리나무 등 상록활엽수로 뒤덮인 숲은 어둑했다. 축축한 바닥엔 버섯과 수정난풀이 돋아있었다. 반짝이는 초록 잎새와 구슬 같은 열매가 하늘을 바라보는 식물이 눈에 띄었다. 줄기에 난 마디가 대나무 같은 죽절초였다. 복원한 죽절초가 열매를 매달아 스스로 증식할 채비를 갖춘 것이다.
동행한 강창훈(식물팀 사원)씨는 “1989년 돈내코 계곡 자생지에서 수집한 죽절초에서 씨앗을 받아 대량 증식한 것을 심었다”고 설명했다.
홀아비꽃대 과의 상록 관목인 죽절초는 10월에 붉게 익은 열매가 겨우내 달려 있어 관상가치가 큰 식물이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무분별한 채취로 자생지에서 보기 힘들게 됐다. 대표적인 남방계 식물인 죽절초는 대만, 일본, 인도, 말레이시아 등에도 분포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서귀포가 유일한 자생지이며, 이 식물의 북쪽 끄트머리 분포지라는 학술 가치를 지닌다.

화산섬 비양도 분화구 안에 사는 비운의 나무
제주도 서쪽의 화산섬 비양도의 분화구 안에는 자손을 남기지 못하고 늙어 죽을 기구한 팔자를 지닌 희귀한 나무가 산다. 쐐기풀과의 낙엽관목인 비양나무가 그 주인공이다. 일본에도 일부 분포하지만 우리나라에선 비양도가 유일한 자생지이다.
여미지식물원은 지난해 꺾꽂이로 증식한 비양나무 300여 그루를 비양도에 심었다. 비양나무의 자생지가 300㎡에 불과해 자연재해 등으로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처지였다.
그런데 복원사업 뒤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자생지는 물론 복원한 모든 비양나무가 한 개체의 복제물(클론)이며 수 나무라는 사실이 김문홍 제주대 생물학과 교수에 의해 드러난 것이다.
1980년대 말 이 나무를 발견한 김 교수는 “복원사업을 계기로 조사해 본 결과 모두 같은 유전자를 지닌 수 나무임이 드러났다”며 “자연증식은 불가능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 비양나무를 ‘장가 보내기’로 결심한 김 교수는 자생지가 있는 일본 나가사키 대학에 부탁해 어렵사리 종자가 달린 표본을 구해 여미지식물원에 증식을 부탁했다. 하지만 싹을 틔우는 데는 실패했다. 식물원 강창훈씨는 “발아 방법을 아직 못 찾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비양나무 씨앗이 철새의 배설물에 섞여 비양도로 옮겨졌는데 공교롭게 수 나무 하나만 싹터 불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일본인 학자 나카이가 1912년 이 섬을 조사했을 때 비양나무를 기록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 시기는 100년 전 이내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여미지식물원은 2008년에는 자생지에 10여 개체만 있는 1급 멸종위기종인 죽백란 500여 본을 서귀포시 하례동 일대에 복원한 것을 비롯해 황근, 삼백초, 갯취 등의 멸종위기종을 자생지에 복원했다.


서귀포/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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