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2월 3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탈핵에너지교수모임이 연 탈핵과 윤리 세미나에서 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가 한 기조강연 '핵 에너지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강의록이다.

 

 

                       핵에너지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장 회 익 (서울대 명예교수)

 

우리는 지금 핵물질 곧 방사능을 지닌 물질이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위험성은 인간의 본능이나 감각기관을 통해 전혀 감지되지 않습니다. 색깔도 없고 냄새도 없습니다. 소리도 들리지 않고 피부에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물론 맛도 없지요. 왜 그럴까요? 핵은 인류와 함께해온 우리 환경의 일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더 엄격히 말하면 환경의 일부일 수가 없었습니다.


아프리카의 어느 지역에는 핵물질의 연쇄반응이 자연스럽게 일어났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인류와 함께해 온 흔적은 아닙니다. 만일 그곳에 잘못 들어간 인류의 선조가 있었더라면 그들은 즉석에서 모두 전멸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것을 전혀 모르고 살았을 겁니다. 이는 곧 인간과 핵 연쇄반응은 전혀 공존할 수 없고 공존하려해도 안 되는 이질적인 것임을 말해줍니다.
 

이유는 너무도 간단합니다. 핵반응이 방출하는 단위 입자의 에너지는 너무도 큰 것이어서 이것과 마주치면 생명을 구성하는 모든 것은 그대로 분쇄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인간과 핵물질은 서로가 서로를 배제하는 이른바 ‘상극’이라는 말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의 진화론적인 경험 속에는 이것이 전혀 담길 수 있는 존재였고, 따라서 인간은 어떤 본능이 나 감각기관을 통해서도 감지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인간은 가장 비극적인 방식으로 이것을 직접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의 방식으로, 그리고 스리마일 아일랜드, 체르노빌, 후쿠시마의 원전 사고의 방식으로 그것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후쿠시마의 원전사고는 아직 진행 중이며 그 끝이 어디로 갈지 알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적어도 수 천만 명의 일본인이 방사능에 피폭되었고 이 가운데 사망 또는 암 등의 불치병으로 고생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아직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을 포함해 인구밀집 지역인 도교에 이르기까지 그 방사능의 오염 정도가 어디까지 이르게 될 지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류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이러한 비극은 우리가 막으려 해도 막기 어려운 외부 침입자의 소행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내었고, 그것도 엄청난 노력을 들여 매우 어렵게 만들어내고 있는 위험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것을 만들어내고 있는 건가요? 그 동기 또한 무척 불순합니다. 핵무기는 더 큰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동기에서 나온 것이고, 원전 또한 더 많은 에너지를 얻어 자연 생태계를 더 크게 제압하려는 욕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무척 어리석은 짓입니다. 우리는 이미 핵무기로 상대를 제압할 수 없는 시대에 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사용한다면 자신도 함께 공멸하는 것이지요. 이 점을 여기서 길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원전 또한 만들어서 안 된다는 것이 너무도 명확합니다. 이미 일어난 몇 번의 사고가 말해주듯 사고는 반드시 일어나며, 설혹 사고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사고가 일어나는 것 못지않은 비극을 초래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점에 대해 아직 사람들이 잘 이해를 못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점에 대해 조금 새로운 각도에서 몇 말씀 드려볼까 합니다.
 

첫째로 사고가 반드시 일어난다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일어난 사고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것을 만든 사람들 그리고 이를 관리해온 사람들이 사고가 일어나도 좋다고 생각하며 일으켰겠습니까? 만일 그랬다면 그 당사자들을 모두 극형에 처했어야했겠지요. 그들 나름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고가 났습니다. 바로 이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른바 원전이라는 것은 생명과 핵연쇄반응이라고 하는 이 극단적 상극의 세계를 완벽히 차단하면서도 그 사이에 연결통로를 내어 에너지를 빼내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을 현실화해야 하는 장치입니다. 그리고 모든 장치는 핵 앞에는 붕괴되게 되는 것이므로 완벽한 차단 자체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일단 이에 접촉된 물질 또한 핵 위험을 지니는 존재로 변모하는 성격을 가집니다. 그러니까 완벽한 안전이란 원론적으로 불가능한 장치를 현실적으로 운영하겠다고 하는 모순적인 시도입니다. 이 상황에서 완벽한 안전에 접근한다는 것은 무한대의 비용과 노력을 요하는 것이고, 따라서 현실적 장치와 관리는 어느 선에선가 이 위험에 대한 절충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원전의 관리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에게는 지적 한계와 함께 심적 한계도 있습니다. 인간은 무제한의 시간동안 무제한의 경계를 지속시킬 심적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원전의 사용은 바로 이것을 요구합니다. 잘 알다시피 이것은 원자로의 폐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방사능 효력이 끝날 때까지 수 천 혹은 수 만 년 간 관리를 지속해야 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능력으로 불가능한 일이며, 따라서 반드시 사고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백 년간 사고가 나지 않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반드시 경계가 느슨해질 것이고, 이에 따라 그 다음 백 년 사이에는 사고가 난다는 것입니다.
 

설혹 용케도 앞으로 백 년이 아니라, 만 년 간 사고를 일으키지 않고 관리를 했다고 해봅시다. 그렇다면 그 만 년 동안 우리의 후손들이 이 긴장상태를 유지하며 불침번을 서야했던 수난의 대가를 어떻게 계산할 수 있을까요? 그 사람들에게는 아마도 천형과도 같은 일일 겁니다. 백만 년 전, 우리 선조 어느 한 세대가 자신들의 사치스런 생활을 위해 수 백, 수 천 세대로 이어지는 우리들에게 이런 무서운 흉물을 물려주었다고 한다면, 그 원망이 어떠할까요?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할 생태계의 손상은 또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요?
 

저는 이 생각을 하면서 성경에 나오는 한 가지 유명한 사건을 머리에 떠올리게 됩니다. 바로 창세기의 아담이 저지르고 있는 이른바 ‘원죄’에 관한 것입니다. 아담은 절대로 가까이 하면 안 된다는 하느님의 명령 한 가지를 어겼습니다. 선악과라고 하는 금기사항이었지요. 왜 그것은 가까이 하지 말라고 했을까? 그것을 먹으면 죽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것을 따먹고 벌을 받지요. 지금 우리 자연계에, 바로 하느님이 마련해주신 정원 안에, 절대로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것, 가까이 하면 반드시 죽는 것, 바로 그런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핵물질의 연쇄반응입니다. 그런데 이 나무에는 매혹적인 열매가 달립니다. ‘에너지’라고 하는 열매지요. 우리가 지금 이것을 따고 있습니다. 이것이 죽음의 열매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먹고도 죽지 않는다면, 이것이 ‘원죄’로 남아 우리 수 백, 수 천 세대의 후손들에게 그 죄 값이 넘어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는 특히 기독교적 입장에서 핵에너지와 윤리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아담의 ‘원죄’가 왜 그렇게도 크다고 했는지 잘 납득이 가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놓인 이 상황을 보고는 정말로 그렇게도 큰 죄악이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저지르고 있는 행위를 놓고 그 해악의 정도를 다른 어떤 수식어로도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이런 큰 정도의 잘못을 규정하는 별도의 카테고리가 필요했겠고, 그것이 바로 ‘원죄’라고 하는 특정의 개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을 죄악으로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핵에너지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게 그들의 논리입니다. 현재로서 다른 대안이 없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당신은 지금 에너지를 쓰고 있지 않느냐고 그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다시 묻고 싶습니다. 그들이 과연 가능한 대안을 제대로 다 살펴보았느냐는 물음입니다. 정말로 이런 엄청난 결정을 하기 전에 우리는 모두 가능한 대안을 진지하게 강구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엄청난 공부를 해야 할 것이고, 최소한 그러한 공부의 결과들이라도 빠짐없이 성의껏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살펴보면 이미 믿을만한 대안이 나와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한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유엔 산하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 과학자 집단인 IPCC (International Panel on Climate Change)가 지난 해 5월에 제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태양에너지를 위주로 하는 재생 가능 에너지만으로 전 세계의 동력 수요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http://www.commondreams.org/headline/2011/05/09-6] 우리가 지금 세계 GDP의 1%에 해당하는 비용만 재생 가능 에너지 기술개발에 지불한다면 앞으로 40년 이내에 세계 에너지 수요의 80%를 감당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 날로 악화되는 지구 온난화 문제를 이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는 물론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이 뒤따라야 하는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대안을 적극적으로 강구하려하지 않고 그 무서운 핵에너지에 목을 매려는 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의 상황입니다.
 

다시 ‘원죄’의 문제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담의 잘못이 무엇이었을까요? 선악과를 먹지 않고도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먹으면 죽는다’고 하는 그 무서운 것에 손을 대었다는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그에게는 그것이 ‘먹으면 죽을 것’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먹음직스럽게 보였지요. 그래서 하느님은 ‘엄한 명령’으로 그것을 금한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차원을 달리하는 큰 위험은 우리에게 위험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접할 수 있었던 위험은 우리의 오관 또는 육관 속에 각인되어 이를 느낄 수 있게 됩니다. 무서운 소리나 나쁜 냄새가 나고 따갑고 아프지요. 그런데 차원을 달리하는 위험은 우리에게 각인될 기회조차 없었기에 오히려 ‘깨끗한’ 외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직 엄한 명령으로만 이를 금하고 있지요. 지금 우리에게 내려진 엄한 명령은 무엇일까요? 체르노빌과 후쿠시마가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사건의 참 의미를 새겨보면, 그 안에서 하느님의 명령을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상황에서 하느님의 이 명령을 거역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윤리적으로 범할 수 있는 가장 큰 범죄가 아닐지, 저는 일단 이러한 의문을 오늘의 토론 과제로 던져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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