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제비 노정기

조회수 17166 추천수 0 2012.03.29 01:36:22

(제비 노정기)

 

내 친구이자 성실하기로 소문난 어부님 엄 씨네 벽돌집 슬래브 밑에다 제비가 집을 지을 초기부터 줄곧 지켜봐온 덕분에 서로 낮이 익어도 되레 난처한 점이 있습니다. 하루 하나씩 알이 깨이고 식구가 늘수록 함께 늘어나는 먹성도 장난이 아닙니다. 아무리 막무가내 먹이조달에 정신이 없을지언정 근처에 누군들 없으면 어미 중 한 마리는 꼭 집을 지키고 있으나, 막상 나만 나타나면 기다렸다는 듯 부부 둘 다 자리를 한참씩 비워버리기 일쑵니다. 집과 예뻐 죽겠다며 물고 떠는 새끼들까지 한걸음 밖에서 지켜보는 내게 아예 통째로 떠맡기고 동반외출을 나가버리는 겁니다. 물론 천적들의 접근을 허용치 않는 이 같은 인간 신뢰성을 상정해 제비가 인가에 바짝 붙여 둥지를 짓는다는 사실을 모를 리야 없지만, 그러니 어쩝니까? 생각사록 한심한 일이지 막상 요하는 사진은 둘째 치고 졸지에 떠맡겨진 집과 새끼들을 대신 지켜줄 밖에요. 하긴 비 오신다고 한참 자라는 새끼들이 먹자 싸자를 마다할리 없을 테니 어미들은 도무지 쉴 틈이 없습디다. 그 같은 우여곡절 끝에 어렵사리 얻어진 천연덕스런 가족사진 일장입니다.

 

제비01.jpg 

 

부부 제비의 막중한 수고 끝에 잘만 성장한 새끼들과 자랑스러운 첫나들입니다. 이제 놀라운 비행실력으로 머나먼 강남으로 돌아갈 가을날까지 이곳 강마을의 공중을 신나게 폼나게 장악할 것입니다.

 

제비02.jpg

 

소식 들었습니다. 친근하기 짝이 없는 우리네 만년 벗 제비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수도 있다는 소식 말입니다. 좋기는커녕 안타깝기 짝이 없는 소식이려니 이곳은 아직 제비가 수월케 찾아오는 곳이기에 바깥에 남의 일인 듯 여기다가도 곧 이웃이 하나씩 사라져가는 이름뿐인 금수강산을 떠올리면 서글프기까지 합니다.

이토록 친근하고 정겨운 모습이 우리 대에서 그치는 마지막 장면이 되지 않기를 마음으로 빌고 현실에서 방안을 적극 궁구해야하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하지 않으면 소용되지 않는 헛수고일 줄은 압니다. 하매 호소합니다. 도의와 상식, 공존과 공영이 당연히 앞장서는 금수강산으로 더 늦기 전에 돌아가자고요.

원천의 본연가치완 상관없이 속진의 세상에서 말하는 귀함이란 당연한 존재들이 드물어질 때를 뜻함입니다. 그럼으로써 순수한 존재가치 외에 희귀도란 독점적 가치를 제멋대로 추가시킴입니다.

 

이제의 사진처럼 어디건 흔한 존재들이 하필 한 곳에 모였습니다. 것도 ‘까’씨들 셋이 함께 말입니다. 함으로써 당연한 존재들이 졸지에 희귀한 장관을 이루게 되었으니, 이른바 ‘까’씨 삼총사 또는 ‘까’씨 종친회가 되었습니다.

초록은 동색? 우리 모두 알다시피 까치와 까마귀는 사이가 좋은 편입니다. 심지어 어른 까치가 어려도 저보다 덩치가 배는 더 큰 이웃집 어린까마귀에게 먹이를 서슴없이 물어다 먹여줄 정도로 보모 역할도 자청한다니까요. 하지만 산 꿩 암컷인 까투리는 여간해서 나무 위에 오르는 일이 드뭅니다. 함에도 지금은 모두 한 나뭇가지 위에 나란히 올라서 있습니다. 덕분에 존재가 귀해서가 아니라 자연계에서 이 같은 입지란 생각하기 어려운 경우이다 보니 특별히 희귀한 사진 한 장이 되어졌습니다.

 

 

                  (까치)                                  (까투리)              (까마귀) 

제비03.jpg 

 

특별히 희귀한 한 장면임은 분명하지만 난 이를 인간탐심과 무지몽매 고발용으로 활용할지언정 맘 놓고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의 추이를 봐할 때 언제 이들도 제비처럼 천연기념물 또는 보호종이란 불명예스러운 명찰 운운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학도 보내고 따오기도 그렇게 사라진 것처럼, 국조 까치를 많이 죽일수록 보상금을 더해 준다지 않나……, 장담하거니와 이름뿐인 금수강산에서 이들과 배달민족은 분명코 같은 운명의 길을 걸을 것입니다. 하매 위험해진 오늘의 제비를 위시로 더 늦기 전에 ‘까’씨 삼총사 이들을 자랑은커녕 불편하고 욕된 이름 천연기념물로부터 자유로이 놓여나도록 지켜주자고요, 아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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