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다람쥐 구하기

조회수 12444 추천수 0 2012.06.06 05:25:42

(다람쥐 구하기)

 

손가락을 살짝 대보면 아직 여물진 않았어도 작은 손바닥만 하던 영지버섯 한 쌍이 산골 촌 새아씨의 달덩이 같은 얼굴만큼 자라났다. 어떤 이유인진 모르겠으나 이제껏 내가 봐 온 야생의 영지는 하나가 외롭게 자라는 걸 본적이 없다. 큰 것 아래 작은 것이 우산처럼 매달려 사이도 좋게 서로 부추기며 몸집을 키워가는 것이다.

원시형 포자식물이므로 암수가 따로 있을 번식 생태도 아니기에 지독히 외로운 산 속 생활을 저처럼 상호 의지해 가며 생육코자 하는 것이라고 이해해도 아무 상관없을 것이다.

산책길을 살짝 벗어나 이따금씩 살펴볼 때마다 검은 무늬 윤기 반지르르한 딱정벌레들이 두어 마리씩은 꼭 붙어있다. 오늘은 무의식중에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 녀석들을 떼어내려다 아차! 순순히 손을 거두고 말았다. 콩알보다 작은 딱정벌레 녀석들이 먹어야 얼마나 먹을 것이며, 어떤 종류의 버섯들은 이 같은 딱정벌레들 도움을 빌어서 제 식구 수 늘리길 한단 기억이 얼핏 되살아났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여기 이 영지버섯도 저 미물에 불과한 딱정벌레가 힘들이고 공들여 짓는 농사일지도 모를 일, 따라서 본래 영지버섯 주인이 녀석들일 것이란 의구심에 생각이 불쑥 미쳤다. 지능이 월등하고 기운이 조금 세다 해서 저처럼 수고를 아끼지 않는 딱정벌레 녀석들의 소유권을 함부로 강탈할 순 없는 일 아닌가. 처음부터 몰랐다면 몰라도 야생의 천연 영지가 아무리 귀하단 들 언필칭 선비의 양심과 바꿔가며 욕심을 낼 간곡한 물건은 차마 못되지 않는가. 겉은 가난해도 심중엔 우주를 품고 있는데 미물의 사소함과 범 우주를 값싸게 바꿀 순 없는 일 아닌가. 잔잔하나 다행스런 웃음이 돈다. 미소 그의 이면엔 식자우환(識字憂患)이란 말이 웃음 끝을 비켜서 머리를 스쳐간다. 이 경우 역시 내 입장이 먼저일 순 없었다. 끝까지 기다려 얄미운 딱정벌레 녀석들에게 우선권을 준 다음 나머지 처분을 지켜봄이 옳고도 떳떳할 것이다.

기다린다고 내 것이 될 수 있을까? 란 의문엔 이처럼 분명한 선행적 이유가 감춰져 있었던 것이니, 어쨌든 매끈하던 영지버섯 테두리도 제법 울퉁불퉁하니 굵은 주름이 잡혀가고, 해묵은 밤나무 둥치는 영지에게 나머지 양분을 모두 물려주고 빠르게 제 땅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난 불교신도도 아니고 산사의 수행 스님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자연이 절대 주체인 이곳 산마을에 들어와선 불필요한 살생은 극력 피하며 살아오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 정도 각오이고 정성이어야만 거짓 아닌 진솔한 생명력을 가진 살아있는 글도 될 것이며, 양보란 욕심내지 않으면, 뭔들 하지 않으면 그만이기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님이다.

꼭 필요하달 경우 더덕도 캐 먹고 고사리도 꺾어다 먹고 쑥 국도 끓여 먹긴 하지만, 살생을 피하는 덴 식물이건 동물이건 굳이 가릴 일도 없더라, 버릇되면 그도 아주 자연스럽게 몸에 배니 일상의 흐름 안으로 쉽게 소화되더라, 오히려 극단의 계절이오면 어려워하는 자연의 이웃들에게 구휼(救恤)을 베풀어주기도 하니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일말의 도리에도 아주 무심한 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 녀석, 얄미운 들쥐 녀석에게만은 자선을 베풀기가 힘들다.

담백 정갈한 산마을 들쥐라서 도시형 시궁쥐와는 행색부터가 다르긴 하다. 그래도 쥐는 역시 쥐, 약삭빠른 습성과 능글맞은 태도는 어디서나 다를 바 없다.

전혀 반갑지 않은 들쥐 녀석이라도 내게 직접적인 피해가 없다면 보고도 모른 척 해줄 요량은 있었으나, 날이 갈수록 뻔뻔해지다 못해 내가 먹는 음식에도 본격적으로 손을 대기 시작할 즈음, 참으면 안 될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봉지도 함부로 쏠아놓지, 싱크대 물파이프도 잘라놓지, 멀쩡한 하수구 뚜껑도 뚫어놓지, 피해 정도가 참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확산되어갔다. 두 달 가량을 끈끈이 덧을 놔 퇴치하려 했지만 영악한 녀석은 날 마냥 비웃는 듯했다. 들쥐뿐만 아니라 이 같은 난처함과 번잡함을 생각해 창문은 활짝 열어두더라도 바깥의 방충망만은 굳게 닫아두고 있는데, 녀석의 치밀함은 나보다 한걸음은 윗길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잔인하게 쥐약만은 절대로 놓지 않으리라 먹은 맘이 서서히 약해질 무렵 웬일인지 어느 날인가 스스로 사라져 줬다. 설마하니 영악하고 얄미운 들쥐 녀석이 날 생각해서 그 정도로 봐준 게 아니었다. 무심코 밤에 외출했다가 그만 족제비에게 덜컥 당하고만 것이다. 아침 산책길에 바로 현관 앞에서 발견한 녀석의 몸이 무참하게 두 동강 나 있었으니까.

내가 살육자를 족제비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만일 족제비가 아닌 부엉이나 올빼미였었다면 들쥐 정도는 한꺼번에 통째로 삼켜버리기 때문에 그처럼 몸의 일부를 남겨 두진 않았을 것이었다. 아울러 당장에 먹을거리가 아니면 부엉이처럼 맹금류는 불필요한 사냥을 하지 않으나, 족제비는 쥐가 눈에 띄기만 하면 먹지 않더라도 무조건 잡아놓고 보는 잔혹성이 숨어있기 때문이었다.

족제비 또한 겨울 한철을 내게 의탁하던 누렁이 황모 바로 그 녀석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내 거실은 모처럼 고요와 안정을 되찾았고 며칠 동안은 그간의 과정을 잊고 지냈다.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상책이었으니까, 따라서 이미 깊은 곳에 설치한 끈끈이 덧조차도 까맣게 잊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안정과 고요는 며칠 가지 않았다. 거실이 이전보다 더 소란스러워졌던 것이다. 전엔 밤중에만 그랬었지 이젠 밤낮이 없었다. 헌데 이처럼 소란스러운 양상이 전과 같지는 않았다. 조심스럽게 확인해 본 결과 얼씨구! 쥐는 쥐인데 미운 들쥐가 아닌 토종 얼룩 다람쥐였던 것이다. 그것도 한 주먹 크기도 안 되는 아직 어린것이…….

21-1(다람쥐).JPG

들쥐는 워낙 영악해서 부스럭거림 이외엔 함부로 소리를 내는 편이 아니지만, 같은 설치류임에도 다람쥐는 그저 순진해서 목소리도 함부로 내고 퉁탕거림도 훨씬 심한 편이다. 아울러 일반 쥐의 목소리는 비교적 저음이고 긴 편이나, 다람쥐는 짧고도 매우 높은 고조파 음역인 것이다. 심지어 사람의 귀엔 들리지 않을 정도로 높은 초음파 영역까지 쉽게 올라간다. 이같이 짧고도 간결한 음성 간격과 횟수를 이용해 저들 상호간 대화도 나눈단다. 사람을 겁내지 않는 정도도 다람쥔 들쥐와 비교할 바가 안될 만큼 친근하다. 때론 친근함의 표현을 넘어 얄미울 정도로 능청스럽기까지 하다.

아직 어린 다람쥐라 처음 당하는 기나긴 춘궁기를 견디기가 쉽지 않았던지 들어와선 안 될 이곳까지 찾아들어온 모양이었다. 사방을 샅샅이 뒤져 결국 의외의 곳에서 녀석의 출입구를 발견하긴 했지만 얼른 막을 수가 없었으니, 출입구는 다름 아닌 방충망 한쪽 귀퉁이였다. 가느다란 철사 방충망을 전번 들쥐란 놈이 뚫어 놓고 혼자 숨어 다녔으며, 나도 모르는 그 은밀한 비밀통로를 더 작은 어린 다람쥐가 발견하고 얼씨구나! 함께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철사 구멍 둘레엔 가느다란 다람쥐 솜털도 듬성듬성 달려있었으니 의심할 여지란 없었다.

토종 얼룩 다람쥐를 쫓아낼 방법이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불청객이되 일단 내 집에 들어온 손님, 안으로 못된 행패를 늘여가던 들쥐 녀석처럼 푸대접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이를 두고 똑같은 생명체에 대한 편파적인 자세, 불공평한 처사라고 날 나무래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마침 떨어진 커피를 사러 아랫마을에 내려가는 김에 녀석이 좋아할 만한 달콤 고소한 땅콩 과자를 한 봉지 더 사와야 했다. 이래서 산짐승 이웃 구휼 기간은 겨울 한철이 아니라 이후 여름까지 연장되고 말았다.

이틀이 지나도록 편안한 곳에 놔둔 땅콩과자가 한 알도 사라지지 않았다. 시끄럽고 부산한 녀석의 자취는 방안에 앉아있어도 훤히 알 만한데 말이다. 원인은 곧 밝혀졌으니 부끄러운 내 소견 협소함이 곧장 드러나고야 말았다. 조금이라도 먹기에 편하라고 제법 신중하게 골라서 땅콩과자를 놔준 포장박스 위가 오후 한나절엔 하필 직사광선이 쨍쨍 내리쬐는 지점이었고, 과자 표면에 넉넉히 입혀진 조청이 6월 햇볕의 화끈한 열기에 녹아내려 눅진하게 풀어져 있었던 것이다.

 크기변환_다람쥐 아침.JPG

기실 토종다람쥐의 손은 입과 더듬이 못지않게 예민해서 거의 모든 먹거리에 대한 정보를 먼저 손으로 상세히 만져보고 파악한단 사실을 아차! 간과했던 것이다. 그토록 예민하고 중요한 감각도구인 손을 찐득찐득한 조청으로 도배를 해선 절대로 안 되는 일이었다. 물을 지독스레 싫어하는 서생원 일속인지라 냇물에 손 씻을 생각은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불쑥 들었다.

처음부터 아예 시작을 하지 않았더라면 모를 일, 나름대로 깊이 생각해서 값도 더 비싼 복합 영양 땅콩과자로 배려한단 지극히 인간적인 심사가 된통 한방 먹는 순간이었다.

내 입에 달면 남의 입에도 당연히 달겠지 하는 나 편한 맘은 아니었을까, 본심이야 전혀 그럴 린 없겠으나 어린 다람쥐를 심대하게 괴롭히고 놀려먹은 격이 되고 말았으니 끝까지 상황의 책임을 감당치 않으면 무지를 스스로 용납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두 번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즉시 아랫마을 가게로 다시 달려가 짭짜름한 싸구려 건 과자 한 봉지를 또 마련해야했다. 소금기가 약간 들어있는 먹거릴 산짐승들이 무척 좋아하고 또 필요로 한단 정도는 미리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역시 값비싼 땅콩과자는 풀어진 채 바닥 포장재 상자 위에 딱 눌러 붙어 여전해도, 싸구려 건 과자는 바로 곁에 놔주는 대로 곧바로 없어졌다.

햇살에 뭐가 찐득찐득함이 어떻고 손의 감각기관이 어떻고 등을 시시콜콜히 따지고 드는 것보다, 비단 뭘 모르는 아기 다람쥐만이 아니라 무릇 근동에 얼룩 다람쥐란 족속들은 모두가 저같이 착하고 겸손해서 좋다고 예쁘게 봐주면 그만이려니…….

 

과자를 녀석 출입구 바깥에다 놔줬다.

거실이 다시 조용해 졌다.

창문을 닫았다.

 

기왕에 내친걸음, 건과자가 남은 만큼은 얼룩 다람쥐들 먹거린 계속 조달될 것이다. 요령부득의 어린 다람쥐는 하도 다급한 나머지 내게 생존함의 의지를 타진했겠지만, 덕분에 난 깨달음 일장과 함께 이처럼 참한 글 한 편을 또 하나 얻었으니까.

만사가 평온해진 지금 방충망 쥐구멍은 합판으로 먼저 막았고, 잊고 있었던 끈끈이 쥐 덧도 서둘러 치웠고, 나머지 땅콩과자는 불가분 내가 다 먹어치웠다.

 

* 졸저 환경자연수상록 <한 스푼>에서 전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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