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달 똥은 영역 표시, 많다고 많은 게 아니다

최현명 2014. 12. 12
조회수 23798 추천수 0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⑨ 수달

물길 9~15㎞ 영역에 배설물과 발자국 남겨, 생각보다 드물어

동아시아서 한반도에 가장 많이 남아, 멸종 막으려면 "있을 때 잘해"

 

ott0.jpg » 수달은 하천의 최상위 포식자로서 수달이 산다면 그곳 생태계가 건강하고 다양함을 보여준다.

 

면이 아닌 선에 사는 동물
 
오래전, 무작정 동물을 찾아다닐 때다. 그때는 준비 과정도 계획 답사라는 개념도 없이 감으로 이곳저곳 다니던 시기였다. 주로 경북 북부의 낙동강 상류와 강원도 북부 북한강 지류를 다녔다. 낮에 수달을 본다는 건 복권 당첨 수준의 행운이 따라야 하기에 애초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단지 수달의 똥이나 발자국을 실컷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당시 느낀 점은 우리나라에 수달의 수가 많다는 것이었다. 봉화군 운곡천이나 양구군의 서천에 가 보면 모래 위에는 늘 수달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계곡의 물 위로 드러난 바위, 다리 아래의 돌 위, 관개용 수중보에는 어김없이 수달 똥이 보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경험이 쌓이자 수달이 많다는 그때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o2.jpg » 수달은 주로 어두운 시간대에 먹이를 찾아 다닌다. 그러나 여름에는 해가 길기 떄문에 밝은 시간대에도 자주 눈에 띈다.

 

o3.jpg » 사람을 발견하고 급격히 방향을 바꾸는 수달. 우리나라 수달에게 자연의 천적은 없다. 사람이 유일한 천적이라 할 수 있는데, 사람을 무척 두려워 한다.

 
20년 전 처음 수달 서식지를 답사한 그때나 지금이나 눈에 띄는 건 수달 똥이지 수달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수달은 바닷물이든 민물이든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그렇다고 돌고래나 물범처럼 먼바다로 나가 머물 수도 없다.
 
바다에 사는 수달도 돌고래나 물범처럼 먼바다로 나가 머물 수 없다. 바다에 사는 수달도 해안선 가까운 곳에서만 살 수 있다. 이는 파로호나 충주호와 같은 육지의 댐에서도 마찬가지다. 민물에서 사는 수달은 강이나 계곡을 따라 긴 띠를 이루며 선(線)적으로 산다. 그만큼 생활 기반이 좁을 수밖에 없다.
 
이는 산에 살며 수달과 비슷한 크기의 오소리와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오소리를 비롯한 대개 네발짐승(포유류)은 면(面)적으로 산다. 그만큼 공간 선택의 폭이 넓고 이동과 확산이 자유롭다.

 

o11.jpg » 수달의 똥. 흔히 강의 돌출된 바위 위에 똥을 싼다. 여름에는 비가 자주 내리기 때문에 무더기 똥 자리가 드물다.

 

o12.jpg » 겨울에는 비가 적고 기온이 낮아 수달 똥이 오랫동안 쌓여 있는 걸 볼 수 있다. 수달 똥은 영역 표시 기능과 함께 자신만의 냄새가 담겨 있고, 암컷의 경우 짝짓기 시기 등의 정보도 담겨 있다.  
 
수달은 자신의 존재와 영역권 주장을 ‘똥’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똥을 물속에다 누게 되면 물길을 따라 흘러가기 때문에 제 존재의 수단이 사라진다. 따라서 반드시 물 바깥에다 똥을 싸야 한다.
 
강은 수량 변화가 심하고 비로 인해 똥이 자주 씻겨 내려간다.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똥을 나눠 바위 위에 발라야 하는 것이다. 과거 내가 수달이 많다고 느낀 것도 그곳에 수달 똥이 흔했기 때문이다.
 
수컷 수달은 강을 따라 9~15㎞의 거리를 차지해 제 영역으로 삼는다. 물론 그 범위 내에 한 마리만 사는 건 아니다. 새끼 2마리를 거느린 암컷 1~3마리가 함께 살기도 한다.
 
15㎞라는 긴 거리(쉬지 않고 걸어도 4시간이 걸린다)에 어른 수달이 고작 2~4마리에 불과하다. 이것조차 수달이 고정적으로 머물러 사는 곳에만 해당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 수달은 전국의 강과 바닷가 또는 육지와 가까운 섬에 넓게 퍼져 살지만 그 숫자는 적다고 할 수 있다. 즉 분포 범위는 넓지만 서식 수는 적다는 뜻이다.
 
백담사 계곡보다 금호강을 좋아하는 이유

 

o4.jpg » 수달 서식지인 강원도 평창군 금당 계곡. 사진으로는 깨끗한 강 같지만 마을에서 흘러 나오는 생활 폐수로 인해 부유물이 많은 곳이다.

 

o5.jpg » 수달이 살고 있는 경북 봉화군 운곡천. 수달은 작은 수중보에 영역 표시를 잘 한다. 수중보 바닥의 콘크리트에 구멍이 나 틈이 생기면 그 곳에 은신처를 마련하기도 한다.

 

o6.jpg » 수달 서식지인 강원도 양구군 수입천. 수달은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하지만 먹이가 많은 곳이라면, 대도시 주변에도 나타난다. 그런 곳에서는 주로 어두운 시간내에 활동한다.   

 
수달은 주로 물고기를 먹고살지만 개구리와 가재도 좋아한다. 그 밖에 물닭이나 청둥오리같이 수변에 사는 새와 그 새끼도 잘 잡는다.
 
바다에 사는 수달은 생선 못지않게 게나 문어 등 갑각류와 연체동물도 좋아한다. 수달은 한반도 민물 생태계에서 ‘육지 호랑이’와 같은 위치에 있다. 즉 민물 생태계 먹이 사슬에서 최정점에 위치한 동물인 것이다.
 
만약 어느 강에 수달이 살고 있다면 그 강은 생물 다양성이 높고 생태계가 안정된 곳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수달은 물에서 물고기를 잡아먹고 사는 동물이다. 씨알이 굵고 잡기 쉬운 물고기는 어디에 많을까? 설악산 백담계곡과 같이 바로 마실 수 있는 맑은 물에는 버들치 같은 작은 물고기가 산다. 그조차 적은 수가 살 뿐이다.
 
수달이 좋아하는 메기나 잉어같이 크고 행동이 느린 물고기는 유기물이 많은 탁한 물에 많다. 흔히 2급수, 3급수로 불리는 강이나 호수에 사는 것이다.
 
수달의 입장에서 보면 한 번 사냥에 최대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물고기를 좋아하기 마련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수달은 대도시 주변의 강(이를테면 대구의 금호강)이나 지방의 중·소 도시를 우회해 흐르는 이른바 ‘더러운 강’에서 더 쉽게 눈에 띄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생활폐수가 섞여 각종 유기물이 축척된 곳에 큰 물고기가 많기 때문이다.
 
물 흐름이 느리고 뿌연 물빛의 유기물이 풍부한 강 하류나 습지는 원시시대에도 존재했다. 문제는 산업화 이후 오늘날까지 우리의 강은 산업 폐기물과 농약 등에서 나오는 중금속이 축적되어 있다는 것이다.
 
수달은 단순히 먹이가 많은 곳을 찾아 왔을 뿐, 그곳의 물고기가 중금속 범벅이란 사실을 모른다. 따라서 그 물고기를 먹은 수달의 몸에는 물고기보다 수백 배 많은 중금속이 축적되는 것이다. 이는 머지않아 수달에게 번식력 상실이나 기형적 수달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이다.
 
야생동물의 서식 조건에는 3대 필수 요소가 있다. 물과 먹이 그리고 은신처(숨을 곳)가 그것이다. 물과 먹이는 너무나 당연시되는데 반해 은신처는 무시되기 일쑤다.
 
사실 은신처가 없어도 동물의 생존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 그러나 은신처가 없는 곳에서 동물이 번식할 수는 없다. 은신처란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숨기고 휴식하며, 새끼를 낳고 기르는 곳을 말한다.
 
4대강 사업으로 대표되는 하천 정비 사업은 다양한 물고기와 새들의 삶터를 없애는 것은 물론 수달의 은신처도 사라짐을 뜻한다. 수중보에 수달의 똥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는 수달이 그곳에 잠시 머물렀다는 의미이지, 그곳을 보금자리로 삼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수달은 강변을 콘크리트로 도배질한 곳에서는 결코 정착하지 않으며 새끼를 낳아 기르지도 않는다.
 
멸종되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수달, “있을 때 잘해!”

 

o7.jpg » 수달이 사는 경북 울진군 왕피천. 강이나 계곡에 사는 수달에게 강변은 아주 중요한 공간이다. 잠을 자거나 새끼를 숨겨 놓을 공간이 충분해야 한다.

 

o8.jpg » 수달 서식지인 충남 청양군 지천. 수달은 갈대밭 안이나 물과 뭍이 만나는 곳의 관목림에서 쉰다.  
 
1992년 일본의 수달은 멸종했다. 일본 수달은 1965년 ‘특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지만 멸종으로 질주하는 수레바퀴를 멈출 수는 없었다. 일본 수달이 멸종된 이유는 메이지 유신 이후 군용 모피를 충당하기 위해 짧은 시간 동안 무차별사냥을 한 탓이다.
 
중국 동북지방의 지린 성과 헤이룽장 성을 합치면 남한의 6.5배 또는 한반도 3배의 넓이가 된다. 지난 2000년 발표된 보고에 의하면 이 넓은 지역에 수달이 고작 130여 마리가 생존할 뿐이라 한다. 지린 성과 헤이룽장 성 역시 고급 모피로 알려진 ‘수달피’를 얻기 위해 마구잡이식 사냥이 실시되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연해주를 제외하면 동북 아시아에서 그나마 수달의 명맥을 유지하는 곳은 우리나라뿐이다. 북한의 수달도 천연기념물(대흥수달-55호, 법동수달-249호, 신양수달-331호)로 지정되어 있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을 뿐 정확한 실태는 알 수 없다.
 
이제 한반도에는 호랑이, 표범, 늑대, 승냥이, 독도의 바다사자 등 카리스마 넘치는 대형 포식자는 모두 사라졌다. 스라소니, 불곰, 꽃사슴, 사향노루도 극소수만 남아 있으며 어쩌면 곧 그 뒤를 따를 것이다. 시골 뒷산에서 흔히 보여야 할 여우조차 종적을 감춘 지 오래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수달이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o9.jpg » 양구군 수입천 모래 밭의 수달 발자국. 수달이 자주 이용하는 곳에서는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는 걸 볼 수 있다.

 

o10.jpg » 수달 발자국. 다섯개의 발가락이 찍힌다. 양구군 수입천에서 찍었다.  
 
“있을 때 잘해”, 이 말은 우리나라 수달에게도 해당한다. 지금처럼 수달이 드물지 않게 보일 때 잘해야 한다. 한번 감소의 미끄럼틀을 타면 걷잡을 수 없으며,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그 어떤 조치도 효과를 볼 수 없다.
 
앞으로 통일이 되면 멀리 러시아에서 호랑이와 꽃사슴이 백두대간을 타고 지리산까지 내려올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북상시킬 동물은 없을까? 있다. 그게 바로 수달이다. 지금의 두 배, 세 배, 열 배 수달이 증가한다면 수달은 자연히 북상할 것이고 압록강을 넘어 만주 송화강까지 이주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 우리도 야생에서 직접 보는 수달 똥과 발자국, 귀여운 모습을 그리워하게 될 날이 오면 어쩌나? 그때 가면 늦을 것이다. 지금, 멸종위기에 처한 수달을 지켜야 한다.
  
글·사진 최현명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최현명
우리나라 포유류의 생태와 흔적을 담은 ‘야생동물 흔적도감’의 공저자. 특별한 계기나 이유 없이, 그냥 어릴 적부터 동물이 마음속에 각인되었다. 동북아시아 이곳저곳을 헤매며 한국에서 더는 찾아보기 힘든 야생동물 관련 자료를 수집해 왔다. 지금은 사라져가는 야생동물 생태 기행에 관한 책을 구상하고 있다.
이메일 : chonyol@naver.com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흑두루미의 겨울나기, 사람이 가장 큰 위협흑두루미의 겨울나기, 사람이 가장 큰 위협

    차인환 | 2014. 12. 29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⑩ 흑두루미 전 세계 1만4천마리 중 일 이즈미 1만2천, 한반도 1천마리 찾아 볏짚 싹쓸이에 밀렵, 4대강 사업, 사진가 극성으로 휴식처 빼앗아     “뚜룩! 뚜룩!” 여명이 밝아오는 하늘에서 큰 소리가 들린...

  • 당신이 거니는 해변, 표범장지뱀에겐 하나뿐인 집당신이 거니는 해변, 표범장지뱀에겐 하나뿐인 집

    김자경 | 2014. 11. 13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⑧ 표범장지뱀 서식지인 해안사구가 개발에 사라지고 남은 서식지도 발길에 위협 `징그러운데 왜 보호하나' 파충류에 대한 편견 없애는 것도 시급      표범장지뱀과 함께한 웃고 울었던 날들 바닷가에 놀러 ...

  • 세계적 ’연산호 정원’ 강정바다 위태세계적 ’연산호 정원’ 강정바다 위태

    윤상훈 | 2014. 10. 06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⑦ 연산호제주 남해안 세계적 가치 연산호 군락, 보호는커녕 각종 공사와 관광으로 훼손 가속 산호는 수많은 동물의 복합체, 물고기와 해양무척추 동물의 중요한 서식지 구실도    이렇게 아름다운 연산호의 ...

  • 멸종위기 물범, 왜 백령도로 올까멸종위기 물범, 왜 백령도로 올까

    박태건 | 2014. 09. 02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⑥ 점박이물범 인천AG 마스코트 동물, 백령도가 고향인 대표적 해양포유류 해양오염과 서식지 파괴, 그물에 걸리기 등이 위협, 500여마리 남아   얼음을 타고 내려오는 물범의 모습, 보신 적이 있나요? 우리나라 바...

  • 고흥·여수 좀수수치, 세상에서 둘도 없다고흥·여수 좀수수치, 세상에서 둘도 없다

    전형배 | 2014. 07. 25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④ 좀수수치 전남 작은 하천 서식 멸종위기종, 고흥반도 중심 동·서에 유전적 분리 소하천 정비사업으로 위기 놓여, "수백만년 진화한 청정 개울 좀 놔두세요"    저는 물고기를 연구하는 생물학도입니다. 오늘은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