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나무’ 소나무에 ‘철갑’…28년째 재선충과 전투

김정수 2016. 03.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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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호 ‘재선충 박사’ 문일성 임업진흥원 모니터링센터장
2006년 이후 확산 멈칫, 경계 늦춘 게 화근…동남부 국지전에서 전국 전면전으로
올 들어 5곳 더 늘어, 107개 지자체로…지자체 뛰어넘는 감염은 인간 매개 탓 


sol3.jpg » 2일 출범하는 한국임업진흥원 소나무재선충병 모니터링센터의 문일성 센터장이 29일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대쌍령리 재선충 피해 지역에서 <한겨레> 기자에게 재선충 방제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문 센터장 앞과 뒤에 보이는 녹색 비닐천막들 속에는 지난해 베어낸 뒤 토막내 훈증소독중인 재선충 피해목들이 들어 있다. 사진=김정수 선임기자

 

이 땅의 조상들은 소나무로 서까래를 얹은 집에서 태어났다. 솔가리로 불을 지펴 먹을 것을 익혔고, 송진향 그윽한 관솔불로 어둠을 쫓았다. 그러다 명이 다하면 소나무 칠성판 위에 누워 흙으로 돌아갔다. 


이처럼 늘 소나무와 함께해온 유전자 탓일까. 한국 사람들의 소나무 사랑은 유별나다. 몇 년 전 산림청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좋아하는 나무를 물었더니 무려 67.7%가 소나무를 꼽았다. 두 번째로 선호하는 나무인 은행나무를 선택한 응답자의 열두 배다. 


2일 문을 여는 한국임업진흥원 소나무재선충병 모니터링센터 문일성(55) 센터장이 30년 전 재선충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도 소나무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바탕이 됐다. 


“1986년 경북대 농생물학과 석사 과정에 들어갔을 때 지도교수님께서 ‘재선충병이 우리 주변 나라들에서 확산되고 있어 우리나라에도 들어올 가능성이 크니 연구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라고 하시더군요.” 다른 어느 나무보다 좋아하는 소나무를 지키는 일인데다 지도교수의 권유까지 더해졌으니 다른 연구 주제는 돌아볼 이유가 없었다. 


소나무재선충병은 크기 1㎜ 안팎의 실 같은 재선충이 솔수염하늘소나 북방수염하늘소 같은 매개충 몸 안에 살다가 매개충이 소나무 새순을 갉아먹을 때 소나무 속에 들어간 뒤 급속히 증식하면서 수분과 양분의 이동로를 막아 나무를 말려 죽이는 병이다. 일단 감염목이 마르기 시작하면 살리는 것이 불가능한 고사율 100%의 치명적 수목병이다. 

 

일본은 만연, 중국·대만 급속 확산

 

sol1.jpg » 솔수염하늘소 성충이 소나무 새순을 갉아먹고 있는 모습. 사진=국립산림과학원
 

그가 석사 공부를 시작할 당시 동북아에서는 한국만 재선충 청정국가였다. 일본에선 1905년부터 재선충병이 발생해 중요한 보호림을 제외하고는 거의 방제를 포기했을 정도로 크게 번져 있었다. 


중국과 대만에는 각각 1983년과 1985년 재선충병이 처음 발생해 급속히 확산되는 중이었다. 어쩌면 국내에 이미 들어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그를 사로잡았다. 제주도부터 시작해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죽은 소나무를 찾아 재선충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연구에 나섰다.


1988년 10월 마침내 부산 동래구 금정산에서 재선충병에 걸려 죽은 첫 소나무가 발견됐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전신인 임업연구원이 재선충병 연구자를 수소문하다 그를 찾았다. 당시 국내 대학원에서 식물 기생성 선충을 연구하던 사람은 그가 유일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석사 과정을 마치지 않은 학생인 탓에 인턴 신분으로 경남 진주의 임업연구원 남부임업시험장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소나무재선충의 분포 조사와 병원성 시험이 그의 과제였다. 그 연구 결과를 담아 그가 1990년 쓴 석사학위 논문은 석•박사 학위 논문을 통틀어 국내에서 나온 첫 재선충 연구 논문이다. 그는 1996년 ‘우리나라 수목 기생성 선충의 종류 및 소나무재선충 방제법’ 연구로 국내 1호 ‘재선충 박사’가 됐다.

 

sol4.jpg » 소나무재선충으로 고사한 피해목 제거 작업을 벌이는 작업 반원. 사진=김정수 선임기자
 

29일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의 재선충 방제 현장에서 만난 문 센터장은 “1991년 석사를 마치고 정식 발령을 받은 뒤 25년을 재선충 덕분에 먹고산 셈”이라고 웃었다. 이날까지 문 센터장의 공식 직책은 국립산림과학원 방제전략연구실을 책임진 연구관이었다. 


그는 이날 근무를 마지막으로 한국임업진흥원으로 옮겨 소나무재선충병 모니터링센터 초대 센터장을 맡았다. 재선충뿐 아니라 모든 산림 병해충의 방제전략을 연구하던 데서 그의 전공인 재선충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는 “모니터링센터는 재선충병 감염을 판별하는 1차 진단 기관으로서 지난해 개정된 소나무재선충병 방제특별법에 따라서 재선충병 피해 고사목의 조기 발견, 방제사업의 품질 관리, 방제 인력에 대한 교육 훈련 등을 전담하며 방제 정책을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 센터장과 산림청 산림병해충과 안의섭 사무관의 안내로 돌아본 광주시 재선충병 피해 지역들은 2월 말 현재 전국 90개 시•군•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선충과의 싸움 가운데 중부권에서 가장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이다. 광주시는 2006년 경기도에서 처음으로 재선충병 피해목이 발견된 뒤 10년째 주변 확산의 근거가 돼 온 곳이다. 주로 잣나무인 광주시의 재선충 피해목 수는 지난해 3만 그루나 됐고, 올해는 줄었지만 여전히 2만 그루에 이른다는 게 산림청의 집계다. 

 

토막 내 훈증하거나 잘게 부숴 제거

 

지난해 말부터 전국의 재선충 피해 현장에서 벌어지는 피해목 제거 작업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재선충으로 죽은 나무 속에 들어있는 솔수염하늘소와 북방수염하늘소 애벌레는 4월이면 날개가 나와 다른 나무로 날아가 재선충을 옮긴다. 

 

sol2.jpg » 소나무재선충 피해목에서 솔수염하늘소 애벌레가 성충으로 자라 빠져나온 구멍. 애벌레가 구멍에서 빠져나오기 전에 방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주변의 건강한 나무들로 재선충이 확산되는 것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매개충이 감염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 작업은 나무를 토막 내 쌓고 비닐로 덮은 뒤 약제를 투입하는 훈증 제거와, 나무에 열을 가하거나 분쇄기에 넣어 잘게 부숴 제거하는 방식 등으로 이뤄진다. 

 

 

올해 28년째 접어든 재선충과의 싸움에서 그는 일본 등 먼저 재선충이 발생한 지역의 매개충과 우리나라 매개충의 생태적 차이점을 찾아내 방제 방법을 개선하고, 연막방제 등 새로운 방제 방법을 개발하고, 값싸면서 새로운 약제를 찾아내고, 지역별 재선충 발생 현황을 분석해 산림청의 지역별 맞춤형 방제전략 수립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왔다.

 

더 구체적인 성과에 대해서 그는 “팀을 이뤄 한 일이어서 특별히 자랑할 게 없다”고 말을 아끼면서도 “우리가 제시한 방제 기술과 전략이 현장에서 잘 수용돼 강원도 동해, 전남 목포•신안•영암, 경남 함양•산청 등 재선충 발생지역이 2~3년 안에 청정지역으로 바뀐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sol5.jpg » 솔수염하늘소의 매개로 소나무 속에 침투해 나무를 죽게 만드는 재선충 확대 사진.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재선충과의 싸움에서 인간은 패퇴를 거듭했다. 1996년까지 9년 동안 부산을 벗어나지 못하던 재선충은 첫 발견 10년 째인 1997년 경남 함안으로 진출하더니, 1998년엔 경남 진주, 1999년엔 경남 통영으로 번졌다. 2000년까지 부산 경남권 14개 기초지자체 안에 머물던 재선충은 2001년 전남 목포와 경북 구미에 교두보를 확보하고, 2004년엔 제주도, 이듬해엔 강원도까지 번져나갔다. 

 

2005년에 무려 15개 기초지자체에서 재선충 피해가 발생하면서 재선충 피해를 입은 기초지자체 수는 51곳으로 늘었다. 첫 해 72㏊였던 피해면적은 100배가 넘는 7811㏊까지 확대됐다. 재선충과의 싸움이 동남부 지역에서 펼쳐지던 국지전 단계를 넘어 전국 곳곳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전면전이 된 것이다. 

 

급속한 확산에 놀라 2005년 제정한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특별법’을 무기로 산림청과 지방자치단체들은 2006년 재선충 신규 발생지역을 경기도 광주 단 1개 지자체로 묶는 데 성공했다. 2007년 신규 발생지역이 8개 지자체로 늘기는 했으나, 2008~2012년 5년 동안은 새로 재선충병이 발생하는 지자체가 매년 3곳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 선방했다. 

 

병 잡은 청정지역도 재발생 잇달아

 

이처럼 재선충 확산 속도가 더뎌지자 경계심을 늦춘 것은 산림청 관계자들도 뼈아파하는 중대한 실수였다. 잠시 소강상태를 유지하던 재선충은 2013~2014년 경기도 지역을 중심으로 크게 확산되더니 지난해에는 서울 남산까지 파고들었다. 

 

2014년과 2015년에는 특히 부산 남구, 경북 영천시, 강원도 원주시, 대구 달서구, 강원도 강릉시, 충북 단양군 등 재선충병이 나타났으나 신속한 방제조처 뒤 더 이상 피해목이 발견되지 않아 청정지역으로 선포됐던 지역들에서 재선충병 재발생이 잇따랐다.

 

산림청 재선충 피해목 집계 자료를 보면, 재선충병으로 말라죽은 나무 수는 2013~2014년 218만 그루였다가, 2014~2015년 174만 그루로 전년 대비 20% 줄었다. 2015~2016년 피해목 수는 애초 예상한 110만 그루보다는 다소 늘어날 가능성이 있지만 그래도 120만 그루를 넘지는 않을 것이란 것이 산림청의 예상이다. 하지만 재선충 신규 발생지역이 여전히 추가되고 있다는 점은 우려할 대목이다. 

 

문 센터장은 “어떤 지역에서 피해목이 급증하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신규 발생지역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관리가 안 돼 다음엔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올 들어서는 2월 말 현재 세종시, 충북 청주 충북 제천, 충남 금산, 강원 횡성 등 5개 시군이 추가되면서 재선충병 피해 지역은 107개(청정지역 17개 포함) 지자체로 늘었다. 기존 피해지역 대부분에서 피해목 수가 전년 대비 감소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지만, 경북 안동과 구미 등 지난해보다 피해목 수가 크게 늘어난 곳도 있어 산림청이 대책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 지난해 7700여 그루에서 올해 3만 그루 수준으로 피해목 수가 급증한 안동의 피해 지역은 한반도의 핵심 생태축 백두대간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경북 봉화군 코 앞까지 다가가 있다. 

  

연 10만그루 이하면 ‘완전방제’

01058591_R_0.JPG » 소나무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를 벌채한 뒤 헐벗은 경북 포항시의 한 야산 모습. 2005년도 상황이다. 사진=류우종 기자  

산림청은 지난해부터 재선충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 재선충 피해목 주변을 일정 폭으로 모두 베어내는 방제 방법까지 동원하고 있다.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예방을 위한 가축 살처분과 흡사한 강도 높은 방제 조처다. 이를 바탕으로 2017년까지 ‘완전방제’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2017년은 채 2년도 채 남지 않았다. 완전방제 목표 달성이 가능할까? “선충도 지구상에 나타난 하나의 생물종인 만큼, 생물종 하나를 완전히 없애는 개념의 완전방제는 있을 수 없다. 다만 연간 재선충 피해목을, 재선충 피해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고 우리가 통제할 수 있다고 보는 수준인 10만 그루 이하로 유지한다는 의미의 완전방제는 정부와 지자체의 의지에 따라 가능하다”는 것이 문 센터장의 진단이다. 

 

그는 “매개충의 이동에 의해 재선충이 확산되는 거리는 연간 150~200m 정도이기 때문에, 지자체를 뛰어넘는 장거리 확산은 대부분 인간이 매개한 것으로 보면 된다. 재선충 피해목 이동 제한에 협조해주고, 등산하다가 또는 도로를 지나다 주변에서 말라 죽어가는 소나무를 보면 관련 기관에 신고해주는 국민들의 참여가 재선충과의 싸움에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광주/글·사진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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