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로 치고 새끼 유괴하고…고라니의 잔인한 봄

조홍섭 2016. 05. 06
조회수 42431 추천수 0

IUCN 취약종 지정, 체계적 조사 없이 우리는 매년 15만마리 죽여

세계서 중국과 한국이 자생지, 중국은 멸종위기에 복원 움직임

 

go1.jpg » 도로변이 주 서식지인 고라니는 차량과의 충돌 사고가 주요 사인이다. 이맘때 대부분의 암컷은 뱃속에 곧 출산할 새끼를 가지고 있다. 홍천/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야생동물을 맞히는 퀴즈. 수컷의 입에는 기다란 송곳니가 삐져나와 “흡혈귀 사슴”이란 별명이 붙어 있다. 가장 원시적인 사슴의 하나로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취약종으로 지정한 세계적 보호종이다. 한반도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가 분포하며 해마다 사람이 죽이는 수가 15만 마리에 이른다.

 

정답은 고라니다. 이런 설명이 낯설다면 몇 가지 더 들어보자. 한 살이 채 안 된 나이에 독립해 홀로서기 하는 꿋꿋한 동물, 물가를 좋아해 영어 이름이 ‘물 사슴’인 동물, 아무나 잡거나 죽여도 되는 것으로 잘못 알려진 동물, 그리고 한반도에서 가장 흔하게 보는 포유류이지만 자칫하다가는 한순간에 사라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동물….

 

최근 김백준 국립생태원 박사 등이 펴낸 <한국 고라니>란 책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김 박사는 “전 세계에서 오로지 중국과 한국의 토착종인데 중국에서는 멸종위기이고 한국에서는 갑자기 늘어났지만 과학적인 연구도 체계적인 관리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에서 책을 내게 됐다.”라고 말했다. 고라니란 동물을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 출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05044306_R_0.jpg » 긴 어금니가 특징인 수컷 고라니가 들판을 달리고 있다. 요즘은 새끼가 태어나고 털갈이를 시작하는 때이다. 사진=안성/사진공동취재단


야생동물은 대부분 야행성이어서 직접 보기는 매우 힘들다. 연구자라도 발자국과 배설물을 주로 찾아다닌다. 고라니는 예외다. 하천변 습지나 호젓한 등산로에서 화들짝 놀라 달아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산 고라니보다는 도로에서 차량에 치여 숨진(로드킬) 죽은 고라니를 보게 될 확률이 더 높다. 고라니가 좋아하는 물가엔 도로가 있다.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 고라니가 사는지 정확한 통계는 없다. 얼마나 죽는지도 잘 모르긴 마찬가지다. 김 박사는 합법적으로 유해 조수 구제 허가를 받아 연간 6만~10만 마리가 사냥을 당하고, 로드킬로 적어도 연간 6만여 마리가 죽는 것으로 추정했다. 밀렵을 빼고도 해마다 인위적으로 죽는 고라니만 줄잡아 10만~15만 마리에 이르는 것이다.

 

자연적인 요인도 있다. 고라니 새끼는 삵, 담비, 너구리, 유기견, 수리부엉이 등의 먹이가 된다. 어린 고라니는 우기에 저체온증으로 잘 죽어 1년을 넘기는 개체는 4마리에 한 마리꼴이다. 봄에 태어난 암컷이 겨울에 첫 배 새끼를 낳는 번식력이 있다지만 이렇게 많이 죽으면서 무리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기적처럼 보인다.


05001597_R_0.JPG » 담비가 사냥해 잡아먹은 고라니 주검. 사진=국립생태원


그렇다면 고라니는 왜 이렇게 늘었을까. 고라니 서식 밀도가 1982년 ㎢당 1.8마리에서 2011년 7.3마리로 지난 30년 사이 4배로 불었다. 고라니는 현재 전국에 강변부터 도시 주변과 고산지대에까지 두루 산다. 그러나 과거에는 남서부 저지대에만 분포했다. 호랑이, 표범, 늑대, 여우 같은 포식자와 대륙사슴 같은 경쟁자가 사라진 공간에서 고라니가 폭발적으로 불어난 것이다.

 

지금 상태는 생태적으로 건강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김 박사는 “개체수는 많지만 죽는 수도 많고 늘어나는 추세”라며 “고라니가 어떤 상태인지 모르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라고 말했다. 도도새처럼 아무리 많아도 없어지는 건 한순간이다. 김 박사의 설명을 들어보자.

 

무엇보다 고라니가 교란종인지 또는 조절자인지 생태계 안에서 하는 역할이 규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개체수가 너무 많은 곳에서는 산에서 내려와 농작물에 피해와 교통사고를 일으킵니다. 대륙사슴이나 노루는 나무까지 갉아먹지만 고라니는 주로 잎을 먹기 때문에 이런 피해를 일으키지는 않습니다. 고라니는 반대로 삵, 담비, 수리부엉이 등 포식자의 먹이여서 고라니가 사라지면 생태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생태계에서 하는 역할을 제대로 알아야 고라니를 어느 정도로 관리할지를 정할 수 있는데, 지금은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이 주먹구구로 유해 조수를 없앤다며 개체수를 조절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고라니의 유전다양성이 높지 않은 것도 불안하다. 2014년 과학저널 <유전자 및 유전 시스템>에 실린 김 박사 등의 논문을 보면 한국 고라니의 유전적 다양성이 중국 고라니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온다. 한국의 고라니 개체수가 중국(약 1만 마리)보다 적어도 10배 이상 많다는 사실에 비추어 뜻밖이다.

 

William Warby_800px-Hydropotes_inermis_inermis_Whipsnade_Zoo_(crop).jpg » 중국 고라니. 영국 동물원에서 사육중인 개체다. 사진=William Warby, 위키미디어 코먼스


여기서 중국과 한국의 고라니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세계 학계에 처음 보고된 것은 중국 고라니였다. 나중에 한국에도 고라니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한국 것이 털 빛깔이 더 진하고 붉은빛이 돌아 중국 고라니와 한국 고라니는 다른 아종으로 분류돼 왔다.

 

그러나 최근 유전적 연구가 이뤄지면서 한국과 중국 고라니는 아종으로 갈리기에는 유전적 차이가 너무 작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김 박사는 “한국과 중국의 고라니는 사실상 같은 종일 가능성이 크지만 확실한 결론을 얻기 위해서는 두 나라의 공동연구 등 추가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어금니가 튀어나온 고라니는 사향노루와 닮았다. 뿔보다 어금니가 두드러지는 종들은 사슴 무리에서 가장 일찍 가지 쳐 나온 무리다. 고라니가 사슴이나 노루보다 원시적인 종으로 보는 이유이다.

 

현재 고라니는 한국과 중국에 자생하고, 중국 고라니를 영국과 프랑스에서 도입해 풀어놓은 개체가 있다. 그렇다면 고라니는 애초 왜 한국과 중국에서만 서식하게 됐을까.

 

빙하기와 간빙기가 교대로 나타나던 신생대에 출현한 고라니의 조상은 동아시아가 고향이었다. 간빙기 때 고위도까지 서식지를 넓히던 고라니는 빙하기가 오자 따뜻한 곳에 피난해 살아남았다.

 

분자 계통유전학 연구는 고라니에 두 계통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둘 사이에 고립으로 인한 약간의 유전적 차이가 있다. 김 박사는 이런 분리가 약 160만년 전 빙하기 때 고라니가 중국과 한국의 피난처에 각각 대피하면서 격리됐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마지막 빙하기인 약 2만년 전 서해는 육지여서 중국과 한반도는 육지로 연결돼 있었다. 서해는 수많은 강의 지류와 호수가 있어 고라니가 좋아하는 물가가 많았을 것이다. 


이상헌_2010.jpg » 약 2만년 전 마지막 빙하기 때의 해수면 분포. 서해는 육지였고 중국과 한국의 주요 하천이 흘러 드는 습지는 고라니의 주 서식지였을 것이다. 사진=이상헌

 

간빙기와 함께 해수위가 높아지면서 고라니는 중국 동부와 한반도 서부로 이동했을 것이다. 중국에는 한반도보다 커다란 서식지가 있었을 것이다. 과학저널 <생화학 유전학> 2006년 4월호에 실린 후 지에 중국 저장대 동물학자 등의 논문을 보면, 중국의 고라니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해마다 수천 마리가 포획됐을 정도로 개체수가 많았다. 

 

그러나 이후 서식지 파괴와 밀렵, 한약재로 남용 등이 겹쳐 급격히 줄어 최대 서식지인 저장성의 주샨 섬에 1500마리, 양쯔강 하류 본토인 장수성과 장시성에 각 1000마리가 사는 서식지가 남게 됐다. 고라니의 두 가지 계통이 한반도에는 모두 있지만 중국에는 하나만 남았다. 중국은 현재 상해에서 고라니를 증식해 복원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개체수가 급감했어도 과거 넓은 서식지가 있었기 때문에 중국의 고라니가 한국보다 유전적 다양성이 클 가능성이 있다. 한국의 고라니는 주 분포지였던 남서부 저지대가 농업개발이 집중되고 인구가 밀집되면서 큰 타격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 애초 한반도의 피난처에 소수의 창시자 무리가 이주했기 때문에 나중에 개체수가 불어나도 유전다양성이 작았을 가능성도 있다.

 

한반도 고라니가 유전적 다양성은 떨어져도 중국에 없는 계통이 있고, 개체수도 월등히 많기 때문에 세계 고라니 분포지로서 중국 못지않게 중요한 곳이 됐다. 


04314743_R_0.jpg » 차량과 충돌한 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응급 시술을 받는 고라니 모습. 사진=강재훈 기자


04314744_R_0.jpg » 위 고라니의 엑스선 사진. 태아가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강재훈 기자

 

5월은 고라니가 새끼를 낳기 시작하는 철이다.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야생동물 구조센터의 직원들도 바빠진다. 이들이 구조하는 포유동물의 70% 이상이 고라니다. 김봉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는 “요즘 교통사고를 당하는 암컷 고라니의 뱃속에는 대부분 출산이 임박한 새끼들이 들어있다.”라고 말했다.

 

동물구조센터에는 주로 밤에 차에 치여 척추나 다리에 골절을 당한 고라니가 들어온다. 그러나 무사히 치료와 재활을 마치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는 고라니는 드물다. 김씨는 “고라니는 너무 예민하고 겁이 많아 아주 경미하거나 일시적 충격을 받은 개체만 자연으로 돌아갈 뿐 대부분 폐사하거나 안락사 된다.”라고 말했다.

 

사슴류는 갑작스런 변화에 맞닥뜨리면 잠시 주춤하면서 상황을 판단하려 하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길을 건너려다 갑자기 자동차가 접근하면 불빛에 일시적으로 눈이 머는 상태에서 주춤거리다 차에 치이기 쉽다.


DSC08405.JPG »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 구조돼 풀을 먹고 있는 새끼 고라니들. 미아가 된 것으로 오인한 이들이 데려오는 일이 흔하다. 사진=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행락철의 로드킬이 끝나면 ‘유괴’가 시작된다. 고라니는 새끼 혼자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 주변에 어미가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홀로 있는 새끼를 데려오면 아무리 좋은 뜻이라 해도 결국 유괴하는 결과가 빚어진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구조한 고라니 641마리의 가운데 52%가 차량 충돌이 원인이었고 이어 납치가 23.1%로 뒤를 이었다. 눈에 띄는 것은 농수로 추락이 7.6%로 주요한 이유였는지, 콘크리트 상자 형태의 농수로에 빠진 뒤 탈출하느라 발굽이 다 닳도록 헤매다 죽거나 구조되는 일이 잦다.

 

김백준 박사는 “고라니가 농업에 일정 부분 피해를 주는 것은 맞지만 유해동물 취급을 받을 정도는 아니다.”라며 “피해를 사전에 막고 합리적인 보상을 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03670392_R_0.jpg » 고라니의 평화는 언제나 올까.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비무장지대 개울에서 한가롭게 물풀을 뜯는 고라니. 사진=육군본부

 

고라니는 너무 많다거나 해롭다는 편견에 시달리는 동물이다. 생태적 지위도 불안정하고 진화적 가치가 큰데도 제대로 평가하려는 노력은 부족해 보인다. 

 

한국의 자연을 대표할 만한, 생태관광의 주역이 될 수 있는 야생동물인데도 말이다. 야외에서 고라니를 만나자. 살아있는 상태로.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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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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