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라 다행이다, 미리 알려줘 고맙다

김찬국 2017. 03. 15
조회수 6898 추천수 0
영화로 환경읽기 18. <판도라>
후쿠시마 사고 6돌, 판도라의 희망은 핵 없는 사회로 갈 기회 잡는 것
돈보다 사람과 안전 우선 세상 돼야, 40년 쓰자고 10만년 부담 남겨서야

이 글은 2016년 12월 개봉해 약 450만 명(누적 관객수, 영화진흥위원회)이 관람한 영화 <판도라>의 등장인물과 줄거리에 관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아직 보지 않은 독자라면 온라인 상영관 등을 통해 영화를 본 후 이 글을 읽어도 좋을 것이다.  


판.jpg » 지진에 이은 원전 대폭발을 그린 영화 <판도라>의 포스터.


프로메테우스의 불과 판도라의 상자

영화 <판도라>에서 구체적으로 소개하지는 않지만, 판도라 이야기는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한 프로메테우스와 최초의 여인 판도라를 소개한 그리스 신화로 거슬러 간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달라는 자신의 요청을 제우스가 거절하자 천상의 불을 훔쳐 인간들에게 전한다. 제우스는 자신을 속인 인간에 대한 분노로 판도라라는 여인을 만들고 상자 하나를 건네 인간 세상에 오게 한다. 그녀는 행복하게 살면서도 제우스가 준 상자 안에 대한 호기심으로 늘 괴로워한다. 어느 날 호기심에 열어본 상자 안에서는 인간에게 해가 되는 온갖 것이 봉인을 풀고 흘러나왔다. 죽음과 질병, 질투와 증오, 복수와 전쟁 등이 나와 인간 세상에 흩어지게 된 것이다. 이 상자 안에 마지막에 단 하나 남은 것은 ‘희망’이었다.

Jules Joseph Lefebvre_Pandora.jpg » 제우스가 준 상자를 열어보려 하는 그리스 신화 속의 판도라. Jules Joseph Lefebvre (1882). 위키미디어 코먼스

핵발전소: 큰 사고가 나면 위험하다고? 그렇지 않다.
-영화 <판도라>에 등장하지 않는 이들

영화 <판도라>의 서사 구조는 사고가 난 핵발전소에 새로운 냉각시설을 확보하기 위해 죽게 되는 ‘재혁’(김남길 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는 어머니 ‘석 여사’(김영애 분)의 둘째 아들이다. 석 여사의 남편과 가슴에 묻은 첫 아들은 핵발전소에서 일하다가 죽었다. 우리는 흔히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와 같이 심각한 핵발전소 사고가 나야 재난영화 <판도라>와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핵발전소에서는 늘 누군가가 다치거나 죽는다. 다만 이 영화에서와 같이 시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을 뿐이다. 또한 “남편하고 자식새끼(큰아들) 잡아먹은 발전소”에서 둘째 아들(재혁)이 일하는 것을 말리지 못하는(않는) 상황이 있을 뿐이다. 석 여사는 “참말로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하지만 핵발전을 잘 이해하는 책임 있는 이들에게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을까? 
  
영화에서 ‘재혁’의 꿈은 핵발전소에서 일하는 걸 그만두고 원양어선을 타는 것이다. 아니 그의 진정한 꿈은 배타고 돈 벌어 여자 친구 ‘연주’(김주현 분)와 소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핵발전소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최후를 맞게 된다. 그의 아버지와 형과 차이가 있다면 (이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는) 작은(?) 사고로 인한 것인지, 재앙에 가까운 큰 사고로 인한 것인지 정도이다. 

[이미지02] mosaCiNpyB.jpg » 석 여사가 운영하는 월촌식당 앞에서 찍은 가족사진. 왼쪽부터 석 여사의 둘째 아들 ‘재혁’과 여자친구 ‘연주’, 석 여사, 큰 며느리 ‘정혜’와 손자. 이 가족사진에서 석 여사의 남편과 큰 아들은 왜 빠졌을까? 영화 판도라 공식사이트

영화의 무대인 월촌리에서는 핵발전소의 가동의 중단과 폐쇄를 둘러싼 주장이 늘 팽팽하다. “니들은 전기 안 쓰고 사나?”라는 주장과 이러다가 “우리 다 디진다(죽는다)”는 주장이 공존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를 확보하기 위해 죽은 이가 이 영화 속의 ‘재혁’뿐만이 아니다. 평소에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은 주로 석 여사의 남편과 큰 아들과 같이 평범하고 때로는 약한 우리 이웃이 감당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도 그들은 이 지역에서 살다가 핵발전소 하청업체에 고용된 직원들이었다.  

차마 맘 편하게 보기 어려운 장면들
- 누구의 책임인가?

영화 <판도라>는 450만 명이 본 재난 영화이다. 핵발전의 현실과 위험을 잘 보여주고 있어 1000만 명 이상이 관람하고 함께 목소리를 내었다면 우리나라 핵발전 정책이 다소나마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의미 있는 영화이다. 하지만 글쓴이도 이 영화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보다 정확하게는 너무 속상한 현실을 담고 있어 차마 맘 편하게 보기 어려운 장면들이 많다는 의미이다. 
  
특히 영화 <판도라>의 후반부는 다소 신파적이고 울분과 슬픔을 주체하기 힘들게 만든다. 평소에도 감성이 풍부하고 감정이입을 잘하는 글쓴이의 아들은 영화의 뒷부분을 눈물로 채웠다. 지진으로 고장난 핵발전소의 냉각장치를 복구하는 일에 우리나라 존립의 마지막 희망이 걸려있을 때, 정작 책임을 져야하는 이들은 어디에 있었나? 많은 이들이 핵발전의 위험을 알릴 때 숨기기에 급급했던 “이 거지 개떡같은 나라를 위해”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스스로 묻고 답한 이들은 결국 노후한 한별1호기의 위험을 알리다 좌천된 박평섭 소장(정진영 분)과 핵발전소가 무서워 늘 도망가길 원했던 ‘재혁’, 하청업체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재혁의 친구들과 돌아가신 재혁 아버지의 친구들이었다. 
  
핵발전소의 2차 폭발 이후 마지막까지 지켜내야만 했던 것은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하는 저장수조(물탱크)였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핵발전에 사용한 폐연료봉은 핵발전소에 함께 보관되어 있다. 짧게는 수백 년 길게는 10만 년 동안 안전하게 보관해야 하는 이 폐연료봉을 우리는 아직 어디에서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한 저장수조에서 물이 새게 되었고, 이를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을 때 ‘재혁’은 자신의 죽음과 함께 기존의 수조 벽을 폭파하고 새로운 냉각시설을 확보한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최악의 파국을 막은 재혁을 영웅으로 만들며 “강재혁, 꼭 기억하겠습니다.”라고 하는 장면에서는 국민학교(초등학교) 때부터 배워 몸 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이놈의) 애국심이 나도 모르게 발동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사실 재혁 스스로는 자신을 용감한 사람이라고도 애국자라고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평소 왜 핵발전소를 싫어하느냐는 질문에 “싫어하는 게 아니라 무서워하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게다가 사고가 난 핵발전소에 다시 들어가는 상황도 “억울하고 택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죽으러 가는 게 아니라 (내 가족을) 살리러 간다”는 생각에 그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사용후.jpg »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 오노프리(San Onofre) 핵발전소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 (2014년). 영화 <판도라>의 한빛발전소나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와 같이 사용후핵연료봉은 핵발전소 내에 위치한 저장수조에 보관된다. 지진 등으로 이 수조의 물이 유지되지 못하면, 고준위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는 일이 생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책무감은 아버지와 형을 이미 잃은 미혼의 노동자보다는 우리 사회의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기대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또한 늘 제기되는 위험을 묵살하던 이들이 정작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 역시 기억해야 한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어떤 편리와 욕심은 누군가의 위험을 담보로 가능하다는 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 남겨진 ‘희망’은 무엇일까?
- 아들과 딸에게 핵 대신 좋은 세상 물려주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의 상자에는 마지막으로 ‘희망’이 남겨져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이제 핵발전에 대해 잘 모른다고 눈 감지 말고 “판도라 상자” 안에 마지막으로 남은 ‘희망’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래야 지금 핵발전소 근처에 살고 있는 내 누이와 당신의 노모가 살 수 있고, 영화 <판도라>와 같은 사고가 생겨나면 꼼짝없을 나와 당신이 살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 아들과 딸이 이 땅에서 이런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된다. 
  
6년 전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150만 명 이상이 삶의 터전을 잃었고, 현재도 다수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일본 전역을 떠돌고 있다. 영화 <판도라>를 보고나면, “영화라서 정말 다행이다”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미리 알려줘서 정말 고맙다는 생각도 든다. 되돌리기 어려운 재앙이 ‘아직은’ 발생하지 않았고, 그런 일이 생기기 전에 핵발전소 없는 사회로 갈 수 있는 다소의 시간을 갖게 된 것이 그 ‘희망’ 중 하나일 것이다. 얼마나 짧은 시간에 그런 사회를 이루어낼 수 있을지, 아니면 우리 아들과 딸에게 핵의 위험을 안고 있는 사회를 물려줄 것인지는 나와 독자들이 해낼 몫이다. 

‘희망’이 현실로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때로는 “저 밥솥(핵발전소) 때문에 호강하고 산다”고 믿고 싶다. 사실 우리 생활에서 사용하는 전기 중 상당부분이 핵발전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상자를 열면 큰 일 난다”는 걱정 또한 갖고 있다. 이 영화 속의 장면이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과 우리에게 약간의 시간이 있다는 것이 정말 유일한 ‘희망’일까? 아니 그 ‘희망’이 막연한 기대에 그치지 않고 현실로 이루기 위해 필요한 전제 조건은 없을까? 
  
영화 <판도라>는 한별1호기가 위치한 한반도 동남권에 규모 6.1의 지진이 발생한다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지진이 나기 전에는 핵발전소의 안전에 대해 “지진 아니라 지진 할배가 와도 끄떡없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도 이러한 절대적인 믿음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핵발전소 곳곳에 엉터리 부품이 사용되고 위험에 대한 인식이 턱없이 부족한 이들이 관리자로 있는 어느 나라에서라면 더욱 요원한 일이 된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있다. 아무리 이론적, 기술적으로 개선된 핵발전 방식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그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기 때문에 상상하기도 힘든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안전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 핵발전소 부품 비리가 언론에 수시로 등장한다면 (<서울경제> 2016.9.29. ‘원전 비리 수사 중에도 엉터리 부품 공급한 강심장들’) 
- 전력 공급 상실, 폐연료봉 추락, 냉각시스템 고장 등의 심각한 사고가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면 (노컷뉴스2012.03.14. ‘전원상실 사고 은폐 고리 1호기 폐쇄 여론 거세져’) 
- 크고 작은 사고를 계속 숨긴다면 (부산일보 2012.04.03. ‘부산 고리 원전 정전사고 은폐의 위험’) 
- 뻔히 알고 있는 활성 단층대 위에 방폐장과 새로운 핵발전소를 짓는다면 
  (SBS 2016.9.13. ‘양산단층에 빼곡한 원전·방폐장...안전한가?’) 
- 지하수가 새는 곳에 방폐장을 짓는다면 (JTBC 2014.08.26. ‘방폐장에 매일 1300톤 지하수 콸콸...방사능 오염 우려’)

이 영화에서는 핵발전소에서 발생할 “사고 가능성이 영에 가깝다”고 말한다.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이후 일본의 핵마피아들이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대한민국의 핵발전 옹호론자들 역시 이렇게 말하곤 했다. 설령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영에 가까울 수는 있어도 영일 수는 없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건 우리가 걱정한 일은 예외 없이 찾아오더란 것이다. 마치 머피의 법칙처럼 말이다.  
  
글쓴이가 생각하기에 판도라 상자 안에 남아있는 단 하나의 ‘희망’이 현실로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돈보다 사람과 안전이 우선되는 세상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원자로 하나가 얼마인지” 따져 물으며 사고로 폭발 직전의 핵발전소를 바닷물로 냉각하지 못하게 막는 상황이 우리 현실에 더 가깝다면 희망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내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싶은 우리 사회의 가장 첫 번째 모습이다. 
  
또한 “사람 맹키로 기계도 다 수명이 있다. 그라다 골로 간다(사람처럼 기계도 수명이 있다. 그러다가 큰일 난다)”라는 영화 속의 대사를 우리 사회가 빨리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핵발전은 겨우 40년(아주 길면 50년)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길게는 10만년 동안 사용후핵연료를 관리하는 부담을 미래 세대에 안겨주는 방식이다. 핵발전이 갖는 시간적 의미와 형평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자각이 희망을 위한 두 번째 전제조건일 수 있다.   

프로메테우스의 천상의 불을 다시 찾아서

[이미지04] Jan_Cossiers_-_Prometeo_trayendo_el_fuego,_1637.jpg » 불을 가져오는 프로메테우스. 벨기에 화가 Jan Cossiers (1600–1671)의 1937년 작품. 현 프라도 미술관 소재.위키미디어 코먼스

다시 돌아가 그리스 신화에서 여인 ‘판도라’ 이야기는 프로메테우스가 천상의 불을 훔쳐 인간에 전해주는 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판도라 상자를 통해 인간의 ‘죽음’과 ‘희망’을 신화적으로 풀어낸다. 그런데 프로메테우스가 그 불을 아폴로의 ‘태양 마차’에서 훔쳤다는 점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원래 인간에게 허용된 불은 ‘태양’에서 온 것이다. 지금까지 역사상의 인류가 사용한 에너지원들은 나무, 석탄, 석유를 비롯하여 모두 태양에서 온 에너지를 축적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에너지 역시 핵이 아니라 태양에서 온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5.jpg » 아폴로의 태양 전차로부터 불을 훔치는 프로메테우스: 이탈리아 화가 Giuseppe Collignon (1778 – 1863) 작품.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전해준 천상의 불은 ‘태양’에서 온 것이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김찬국/ 환경과교육연구소 책임연구원, 한국교원대학교 환경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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