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최대 포식자는 거미, 연간 곤충 등 8억톤 먹어

조홍섭 2017. 03. 17
조회수 11195 추천수 1
사람이 먹는 고기와 수산물 합친 양과 맞먹어
포식의 대부분은 숲과 초지에서, ㎡당 1000마리까지 살아

David E. Hill, Peckham Society, Simpsonville, South Carolina.jpg » 타고난 사냥꾼인 거미는 개체수도 많아 생태계에서 우리가 아는 것보다 큰 일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David E. Hill, Peckham Society, Simpsonville, South Carolina

거미가 지구상에 처음 출현한 것은 고생대 데본기인 약 4억 년 전이다. 현재 4만5000종 이상의 거미가 극지방부터 사막까지 지구 표면에 넓게 분포한다.

다리가 여덟 개 달린 이 포식자는 잘 발달한 감각체계와 극단적 환경에서도 견디는 생존력, 그리고 거미줄을 이용해 하루 30㎞까지 날아가는 확산력을 이용해 서식지를 넓혀 왔다(■ 관련 기사: 공중확산 거미, 항해도 능숙…다리는 돛, 거미줄은 닻). 실제로 거미의 수는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많아, 다양한 초지 생태계에서 ㎡당 152개체가 발견되기도 했고 최고 ㎡당 1000마리의 밀도를 보이기도 했다.

Rothamsted Research_060712_erigone_spiders_02.jpg » 나뭇가지 끄트머리에서 비행을 막 시작하려는 거미(오른쪽). 들어올린 배에서 가는 거미줄을 뿜어낸 모습을 볼 수 있다. Rothamsted Research

주로 곤충과 소형 토양 동물인 톡토기 등 절지동물을 잡아먹는 포식자인 거미는 생태계에서 큰 구실을 한다. 거미로부터 피하기 위해 형태와 행동이 바뀐 곤충이 많은 것은 거미로 인한 진화 압력이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 예를 들어 나방의 몸과 날개에서 비늘이 쉽게 떨어져 나오는 이유는 거미줄에 걸렸을 때 탈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지구에서 개체수와 생물량 면에서 가장 비중이 큰 포식자인 거미가 지구 차원에서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정량적으로 평가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마틴 니펠러 스위스 바젤대 생물학자 등은 과학저널 <사이언스 오브 네이처> 14일치에 실린 논문에서 거미가 지구 전체에서 해마다 죽이는 먹이의 양은 4억~8억t에 이른다고 밝혔다.

Lucarelli_Argiope_bruennichi_Cornacchiaia_1.jpg » 먹이를 거미줄로 감싸는 호랑거미의 일종. Lucarelli, 위키미디어 코먼스

연구자들은 65개 기존 연구의 데이터를 분석해 세계에 분포하는 거미의 양은 2500만t에 이르는 것으로 계산했다. 육상 절지동물 가운데 이보다 풍부한 포식자는 없다. 개미가 2800만t으로 생물량은 거미보다 많지만 잡식성이다.

연구자들은 거미가 생존하기 위해 얼마나 먹어야 하는지, 다양한 생물 군계마다 거미가 얼마나 많이 사는지, 야외에서 직접 관찰한 거미의 밀도와 포식 행동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계산한 결과 거미가 잡아먹는 먹이의 양이 연간 4억~8억t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JJ Harrison_Clynotis_severus,_AF_2.jpg » 여러개의 눈이 있는 깡총거미의 일종. 매우 예리한 시력을 지닌다. JJ Harrison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것이 얼마나 많은 양인지는 사람이 해마다 먹는 고기와 수산물의 양을 합치면 4억t이라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전 세계의 고래가 잡아먹는 물고기 등 해양생물의 양은 2억8000만t~5억t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크기는 작지만 거미는 사람이나 고래만큼 먹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거미는 포식자이면서 동시에 주요한 먹이이기도 하다. 거미만 먹고 사는 포식자나 기생생물이 8000~1만종에 이른다. 또 거미는 새 3000~5000종에게 주요한 먹이가 된다. 다른 거미의 밥이 되는 거미도 적지 않다.

Gnissah-Araneus_diadematus_web_1.jpg » 강력한 포식자는 곤충의 진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나방은 거미줄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몸과 날개의 비늘이 쉽게 떨어지도록 진화했다. Gnissah,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번 연구에서 거미의 포식 가운데 95% 이상이 숲과 초지, 사바나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지역은 지구 육지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로 넓은데다 농지와 도시 등 인간의 간섭이 상대적으로 적은 곳이다.

나머지 경작지, 도시, 사막, 극지 등에서는 거미의 포식이 미미한 비중을 차지했다. 거미가 살 공간과 시간이 한정된 경작지에서 거미의 포식은 전체의 2% 이하였다. 그러나 농약을 안 쓰거나 덜 쓰는 쌀, 밀, 목화 재배지에서 거미는 해충을 억제할 만큼 큰 구실을 한다.

주 저자인 니퍼러는 “경제적으로 중요한 병원체와 질병 매개동물이 숲과 초지 생물 군계에서 번식하기 때문에 거미의 포식이 자연 및 반자연 서식지에서 매우 중요한 일을 한다”며 “이번 추정으로 드러난 거미의 중요성이 널리 알려져 육상 먹이그물에서 거미가 차지하는 역할이 제대로 평가되길 바란다”라고 학회지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조홍섭/ 언론인·자연작가 ecothink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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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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