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 베도라치, 큰 송곳니로 모르핀 독물 주입

조홍섭 2017. 03. 31
조회수 14388 추천수 0

상대에 고통 주는 대신 몽롱하게 만들어 도망쳐

독니 홈이 독샘과 연결, 포식자 삼켰다가도 게워내


p1_Bryan Fry.jpg » 송곳니 베도라치의 아래턱에 숨겨져 있는 두 개의 긴 송곳니. 여기서 아편 성분의 독물을 분비한다. Bryan Fry


독을 분비하는 동물이 독거미나 독사 등 일부에 국한된다고 믿으면 오산이다. 독을 분비하는 물고기도 세계에 2천 종이 넘는다.


어릴 때 개울에서 퉁가리나 동자개를 잡다가 등지느러미에 찔려 아팠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들 물고기는 등뼈와 연결된 등지느러미 가시 끝에서 독물을 분비한다.


'독 물고기‘는 거의 대부분 등지느러미 가시로 독을 상대에 주입한다. 그렇지만 독사처럼 이를 이용해 독을 주입하는 물고기도 있다.


Bryan Fry2.jpg » 독니를 감추고 있는 송곳니 베도라치의 일종인 줄무늬독니베도라치. 서태평양과 인도양 산호초에 서식한다. Bryan Fry


동남아의 열대 산호초에는 작고 아름다운 무늬의 청베도라치과 물고기가 산다. 관상어로도 널리 사랑받는 이 열대어 가운데 ‘송곳니 베도라치’ 무리는 아래턱에 두 개의 긴 송곳니를 감추고 있다.


그러나 송곳니 베도라치 5개 속 가운데 실제로 독니를 지닌 것은 메이아칸투스(Meiacanthus) 속 하나이고 나머지는 이 독니 베도라치의 색깔과 행동을 흉내 낸다. 


p3_Richard Smith_OceanRealmImages.jpg » 송곳니로 독물을 주입하는 메이아칸투스 속 베도라치의 일종. 홍해에 서식한다. Richard Smith, OceanRealmImages


최근 국제 연구자들은 송곳니 베도라치 무리의 유전자를 분석해 이들의 유전적 계보를 알아내고 독니의 해부학적 구조와 독의 화학 성분을 밝혔다.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 30일치에 실린 이들의 논문을 보면,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독 물고기’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이 포함돼 있다.


먼저 메이아칸투스 속 베도라치의 독물을 분석한 결과 아편상 펩티드가 들어있음이 드러났다. 이 물질은 모르핀 수용체와 결합해 모르핀(헤로인) 같은 작용을 한다.


모르핀은 강력한 진통 효과를 낸다. 보통 독 물고기 가시는 찌르는 통증을 불러일으키지만, 이 물고기에 물리면 오히려 통증이 사라진다. 또 혈압을 갑자기 떨어뜨린다는 사실이 쥐를 이용한 실험에서 드러났다.


p2_Meiacanthus_grammistes_permission_Anthony_O'Toole.jpg » 줄무늬독니베도라치의 입을 억지로 벌린 모습. 아래턱의 독니가 보인다. Anthony O'Toole


논문 교신저자인 브라이언 프라이 오스트레일리아 퀸스랜드대 교수는 “독니 베도라치에 물린 물고기는 동작이 굼떠지고 어지러워져 그 틈을 타 도망칠 수 있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독니 베도라치는 독을 방어용으로만 쓴다. 큰 포식자가 이들을 삼켰다가도 “머리를 빠르게 흔들고 입을 크게 벌리며 고통스러워하다 뱉어 낸다”는 다른 연구자들의 보고가 나와 있다. 물론 이 포식자는 다시는 독니 베도라치를 삼키려 하지 않았고, 베도라치로부터 독니를 제거하자 냉큼 잡아먹었다는 관찰 결과도 있다.


어쨌든 기다란 송곳니를 갖춘 이 작은 열대어는 행동도 특이해, 커다란 포식자에게도 겁 없이 덤비고 비슷한 크기의 경쟁자들과 영역 싸움도 격렬하게 벌인다.


흥미로운 건 긴 송곳니를 갖추었지만 정작 독물은 분비하지 않는 종들이 진짜 독 물고기 행세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독니의 홈을 통해 독샘과 연결되는 해부구조를 지니지 않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단지 포식자가 회피하는 이점을 누리는 데 그치지 않고 포식자 곁에 당당하게 접근한 뒤 비늘이나 지느러미, 점막 등을 떼어먹는 또 다른 포식자가 된 종도 있다.


JennyHuang-Plagiotremus_rhinorhynchos.jpg » 플라지오트레무스 속 베도라치 일종. 송곳니가 있지만 독물을 분비하지 못한다. 청소물고기 흉내를 내 큰물고기에 접근한 뒤 비늘 등을 떼어먹는 습성이 있다. JennyHuang, 위키미디어 코먼스


그렇다면 독과 독니 가운데 어느 쪽이 먼저 진화했을까. 독사의 경우, 독을 분비하는 능력이 먼저 출현한 뒤 정교한 독물 전달 장치가 나타났다. 독이 독니보다 먼저 개발된 것이다.


그러나 이 연구에서 놀랍게도 독니 베도라치는 송곳니가 독보다 먼저 출현한 것으로 밝혀졌다. 등지느러미가 부실한 이 물고기에서 긴 송곳니를 지닌 개체가 진화해 나왔고, 나중에 이들 가운데 일부가 그 송곳니에서 독을 분비하는 구조를 갖추게 됐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긴 송곳니는 다른 물고기의 비늘이나 지느러미를 공격하는데 큰 효과를 발휘했고, 독물이 나타난 이후에는 독이 있는 척 의태를 통해 이득을 얻는 새로운 종이 진화했다. 연구자들은 “이번 연구를 통해 독성의 진화가 새로운 유형의 의태 행동이 진화하도록 촉진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프라이 교수는 "이 연구는 왜 우리가 자연을 보호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송곳니 베도라지 서식지인)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를 잃는다면 우리는 송곳니 베도라치와 그 독특한 독물도 함께 잃을 것이다. 그 독물은 장차 엄청난 진통제의 원료가 될지 모르는데 말이다."라고 말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Casewell et al., The Evolution of Fangs, Venom, and Mimicry Systems in Blenny Fishes, Current Biology (2017),

http://dx.doi.org/10.1016/j.cub.2017.02.067


조홍섭/ 언론인, 자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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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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