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건져 올린 인문학

조홍섭 2017. 0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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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게는 조개보다 척추동물에 가까워…바지락 해감은 놀라서 삼킨 것

도루묵 이름 유래에 식자 오만, 어민은 오래전부터 '은어' '도루묵'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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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비린내

-해양생물학자가 우리 바다에서 길어 올린 풍미 가득한 인문학 성찬

황선도 지음/서해문집·1만5000원

 

인류 역사의 90% 이상을 차지했던 수렵 채취 시대 동안 인류를 먹여 살린 것은 열매와 뿌리였지만 꼭 필요한 단백질은 물고기, 조개, 개구리처럼 작고 쉽게 잡을 수 있는 동물로 보충했다. 흔히 짐작하는 것과 달리 크고 멋진 동물을 사냥하는 일은 드물었고, 그 동물은 음식보다는 이야깃거리로 요긴했다.

 

생태학자들은 산악국가인 한반도가 높은 인구밀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로 가뭄이나 홍수로 들판의 농사가 결딴나도 긴 해안의 물고기와 갯것, 그리고 산나물을 먹고 견딜 수 있었다는 점을 꼽는다.

 

1.jpg » 자연상태의 멍게 모습. 서민의 삶과 밀접한 바다 생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해양생물을 하찮게 보는 경향이 있다. 어류생태학자인 황선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박사는 당장 ‘물고기’란 호칭부터 문제 삼는다. 지구상에는 3만 2000여 종의 물고기가 살아 사람을 포함한 척추동물 가운데 가장 종이 다양한 집단인데, 싸잡아서 ‘물에 사는 고기’ 취급을 받아서야 되겠냐는 것이다.

 

우리에게 낯익은 해산물의 생태와 보전부터 이름의 유래와 요리까지 다뤄 “과학과 인문학, 맛과 멋이 어우러진 쫄깃한 이야기”(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란 평을 들은 <우리가 사랑한 비린내>는 상당 부분을 해양생물에 대한 우리의 무디고 잘못된 지식을 바로잡는 데 할애한다.

 

open%20cage_800_17542.jpg » 고급 생선의 대명사인 다금바리. 제 이름은 자바리이다. 남획으로 보기 힘들어졌다. 오픈 케이지

 

4.jpg » 진짜 다름바리. 같은 바릿과 물고기이며 제주 바다에서 드물게 잡힌다.

 

제주에서 나는 최고급 어종의 대명사인 다금바리의 제 이름은 자바리이고, 진짜 다금바리는 따로 있다. 어쨌든 ‘바리바리’ 많아서 ‘바리’란 이름이 붙은 바릿과 물고기는 남획으로 구경하기 힘들게 됐다.

 

바지락을 요리하기 전에 해감을 하는데, 이 펄은 애초 조개의 몸속에 들어있던 게 아니라 잡힐 때 놀라서 흡입한 것이다. 소금물에 담가두면 이물질을 곧 뱉어내는 깨끗한 동물이다.

 

해삼, 개불과 함께 주요리의 곁들이 취급을 받는 멍게는 어엿한 척추동물의 족보를 갖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중에게 친숙한 멍게라는 이름은 '우렁쉥이'란 점잖은 이름이 있는데도 포경을 뜻하는 '우멍거지'에서 따온 멍게가 대중의 사랑을 받으면서 표준말로 등극했다. 

 

2.jpg » 고급멸치로 팔리는 제주 비양도의 꽃멸치. 멸치가 아니라 청어의 일종이다.

 

비린내 나는 갯것은 백성의 음식이었다. 요즘 한창 잡히는 제주 비양도 꽃멸치는 멸치와는 거리가 먼 청어과의 샛줄멸이다. 하지만 어쩌랴. 오랜 세월 백성은 이 물고기를 멸치로 알고 회나 젓으로 담가 먹었는데. 지은이는 이처럼 오랜 우리의 먹거리이면서도 언제 어디서 자라고 번식하는지 등 생태학적 연구가 거의 되지 않은 물고기가 너무 많다는 점을 아쉬워한다.

 

선조가 피난길에 먹고 감탄하며 ‘은어’란 멋진 이름을 내렸다가 환궁 후 맛이 형편없다며 ‘도로 묵이라 불러라’고 했다는 도루묵의 이름 내력에서 지은이는 식자의 오만을 본다. 문헌을 뒤져도 도루묵이 나는 동해안으로 피난 간 왕은 없었다. 오히려 서유구의 <난호어목지>에는 배가 흰 이 물고기를 현지 사람들은 은어라고 부른다는 내용이 나온다. 백성은 이 물고기를 은어 또는 돌묵어에서 변한 도루묵이라고 일찍부터 불렀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3.jpg » 갯녹음으로 해조류가 사라지면서 개체수가 늘어난 도루묵이 알 낳을 곳을 잃자 여기저기 낳은 알이 바닷가에 밀려드는 사태가 동해안에서 벌어졌다.

 

도루묵은 최근 동해안 해변을 알로 뒤덮어 눈길을 끌었다. 갯녹음 현상으로 알 낳을 해조류가 사라져 생긴 일이었다. ‘백성의 물고기’를 지키려면 시민이 나서 바닷속에 숲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자연과학 교양서를 찾는 수요는 부쩍 늘었지만 아직 우리나라에는 이에 응답할 과학자 필자가 많지 않다. 더구나 과학만을 쉽게 푸는데 그치지 않고 인문학의 영역까지 넓혀 폭넓은 시야를 제공하는 필자는 드물 수밖에 없다.

 

푸근한 서민의 시각에서, 어류생태학이란 전문가의 엄밀함을 놓치지 않고 맛갈난 글쓰기를 하는 작가가 다른 분야에서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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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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