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에 말 거는 것처럼 지구를 대하라

김희경 2017. 0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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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환경 읽기 20. <컨택트>

영화는 모르는 것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묻는다

모르면서 하는 과감한 행동은 누군가의 의도에 놀아나는 것

  

05715612_P_0.JPG » 영화 <컨택트>는 자연과 환경에 대한 소통을 이야기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컨택트>(외래어 표기법으로는 ’콘택트’라고 해야 옳다)는 2016년에 제작되어 우리나라에 2017년 초 선보인 미스터리, 공상과학 장르의 영화이다.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땐 1997년 조디 포스터의 멋진 영화 <콘택트>를 떠올리고 재개봉하는가 했는데, 이번 영화의 원제는 <어라이벌(Arrival)>이라고 하니 괜히 우리나라 사람들만 헷갈린 셈이다. 그래도 새 영화 <컨택트>는 옛 영화 <콘택트>만큼이나 신비롭고, 세련되고,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영화는 시간과 기억에 대한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영화를 두 번째 보고서야 이 내레이션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알았다면 수수께끼 같은 영화의 구성을 좇는 재미도 반감됐을 것이다). 그리고 루이스와 그녀의 딸 이야기가 프롤로그처럼 등장한다. 


co1.jpg » 영화 <컨택트> 포스터.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은 외계에서 지구에 찾아온 12개의 거대한 물체에서 비롯된다. 전 세계 곳곳에 떠 있는 의문의 물체에 대해 사람들은 궁금해하고, 두려워한다. 이들의 정체를 밝히고 지구에 온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각 나라에서는 각자의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시도한다. 미국 당국은 언어학자 루이스와 물리학자 이안을 투입해 이들과의 소통을 시작한다. 


외계 생명체와의 소통이라는 소재, 비선형적인 시간 배치의 구성, 그리고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시각적 연출 덕분에 관객은 116분 동안 매우 독특하고, 긴장감 넘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해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주인공과 함께 느끼다가 마지막에 다다르면 한꺼번에 눈이 밝아지는 경험도 하게 된다. 인터넷에는 수많은 관객이 올린 나름의 소감과 해석과 설명이 줄을 잇는다. 그만큼 <컨택트>는 관객이 뭔가를 생각하게 하고, 해석하게 하는 영화인가 보다.

  

co2.jpg »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시각적 연출 덕분에 관객은 매우 독특하고 긴장감 넘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는 모르는 존재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모름은 두려움을 불러온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알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물체는 무엇인가, 왜 왔는가, 무엇을 원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결국 그들이 알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이들은 적인가 친구인가. 친구라면 받아들이지만, 적이라면 바로 파괴해야 한다. 하지만 열두 개의 물체에서 보내는 메시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불안하다. 


인간은 생각할 수 있는 틀 속의 방법으로 대화를 시도한다. 중국은 마작을 이용하고, 미국 당국은 소리를 녹음한다. 맥락이 무시된 ‘웨폰(weapon)’ 이라는 단어는 그대로 ‘무기’로 이해되어 버린다. 한쪽이 이익을 얻으면 다른 쪽은 손실을 본다는 제로섬 게임의 틀이 상식인 세상에서는 승패를 겨루는 것이 중요하다. 협력을 통해 양쪽에게 유리한 결과를 낼 수 있는 논 제로섬 게임(non zero sum game)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까지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해 온 렌즈로 세상을 본다. 그 렌즈를 준거 틀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알지 못하는데 안다고 생각하는 것, 알지 못하는데 자기의 준거 틀로 해석하는 것은 오해와 폭력을 빚는다. 영화에선 그것이 총을 들라는 요구, 전투를 벌이려는 시도로 그려진다. 사실 그러한 요구와 시도는 의도를 포함할 수도 있다. 안다고 생각해서라기보다 모르는 상황을 이용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성취하는 것처럼 말이다. 반면 주인공 루이스는 다른 시도를 통해서 그들과 대화한다. 내 준거 틀로 당신이 누구냐고 묻기 전에, 내가 누군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언어를 깨달음으로써 세상을 보는 새로운 렌즈를 선물로 받는다.

  

co3.jpg » 주인공 루이스는 당신이 누구냐고 묻기 전에, 내가 누군지를 보여준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처럼 우리는 외계의 언어를 모른다. 사실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지구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이 수없이 많다. 지구에 사는 생물 종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고, 사용 가능한 화석연료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유전자변형생물체(GMO)가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르고, 방사성 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모르는데도 안다고 생각하거나 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준거 틀로만 세상을 이해하거나, 또는 모르는 상황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태도의 결과일 수 있다. 


우리는 자연을 잘 모른다. 복잡한 요소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영향을 주고받는 환경 또는 생태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것은 외계 언어보다 더 복잡하고 심층적이며 난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만큼 조심스러워야 한다. 모른다는 사실, 내 렌즈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흐르는 강물을 막고, 가습기 물통에 가습기 살균제를 부으라고 하고, 방사성 폐기물을 활성 단층에 묻는 일은 없어야 한다. 


모르면서 하는 과감한 행동은 몰지각하거나 무책임하거나 누군가의 이익을 위한 의도적인 행동이라고 오해받기 십상이다(나오미 클라인의 저서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에는 특정한 목표를 의도한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의 행태들이 적잖이 등장한다). 더욱이 그 행동의 결과가 시간적, 공간적으로 일정 규모를 넘어설 때는 더욱 보수적일 필요가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JPG » 자연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안다고 주장하는 것은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4대강 준설공사 모습.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한편 영화 속 루이스는 외계 생명체의 언어를 알고 나서 그들이 세계를 보는 방식도 습득한다.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준거 틀은 깨지고 새로운 틀에 따라 행동을 선택한다. 고통의 미래를 볼 수 있음에도 그 미래를 선택하는 것은 결과보다는 과정에 더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일 수 있다. 


자연과 환경을 안다면 우리도 세계를 보는 시각을 바꿀 수 있을까? 자연과 진정으로 소통한다면 우리의 행동을 바꿀 수 있을까? 루이스와 같이 눈이 밝아지는 경험은 전환을 가져올 가능성을 높인다. 눈이 밝아지는 것은 자연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수준이 높아지는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과 나와의 관계, 지구 상에서의 나의 존재, 그에 대한 깨달음을 포함하며, 이는 가치관 및 세계관의 변화를 기대하게 한다(실제 교육학에서는 삶에서 큰 경험을 한 뒤 기존의 사고방식에 의문을 품고 반성을 통해 관점을 변화시킨다는 내용의 전환학습 이론이 존재한다). 


하지만 눈이 밝아지는 경험, 전환의 경험이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루이스가 외계 생명체를 만난 경험을 우리가 할 수 있을 가능성은 현재로선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생각해볼 수 있는 가능성은 루이스의 경험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이미 시각을 바꾼 루이스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그것은 루이스가 영화 속에서 ‘우주의 언어’라는 책을 쓰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행동과 유사하다. 그녀는 외계 생명체의 언어를 확산시킴으로써 관점을 전환하고 외계 생명체와의 논 제로섬 게임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다. 자연과 환경을 알고 관점을 전환하는 사람이 많아지기 위해서는 루이스와 같은 전달자가 필요하다. 환경적으로 깨어 있는 시민, 그래서 설득하는 행동을 하는 시민 그리고 교육자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김희경 (환경과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 경기도환경교육센터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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