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원으로 베트남 유치원 11곳 안전한 물 마셔

윤순진 2017. 06. 01
조회수 3089 추천수 0
개도국 기후변화 적응 지원은 기후정의이자 기업의 사회적 책임 실현하는 길
’국경 없는 과학기술자회’, 타이응우옌에 적정기술 바탕으로 식수 공급장치 설치
  
v2.jpg » 국내 기업이 베트남 유치원에 설치해 준 적정기술을 이용한 안전한 식수 공급장치.

2013년에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5차 기후변화 평가보고서를 보면, 대기 중에 배출된 이산화탄소의 15% 이상은 무려 1000년 이상 대기 중에 머무르면서 지속해서 온실효과를 일으킨다고 한다. 지금 당장 우리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하더라도 이미 배출된 온실기체로 인해 앞으로 상당한 기간 기후변화 영향은 지속할 것이다. 따라서 피할 수 없는 기후변화 위험에 어떻게 적응하는가의 문제는 기후변화를 완화하기 위한 정책 못지않게 중요한 정책의제이다.
  
기후변화 영향은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후에 얼마나 노출되느냐와 기후변화 영향에 얼마나 잘 대응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의 정도는 해수면이 낮은 지역이나 농·어촌과 같은 지역 특성에 따라, 혹은 저소득층, 여성, 아동, 노인과 같은 개인의 생물학적 특성이나 사회 경제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따라서 기후변화에 취약한 집단을 구분해 내고 그들의 적응 역량을 향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JPG » 쪽방에서 무더위를 견디는 빈민. 사회적 육체적 약자가 기후변화 피해를 가장 먼저 본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
 
기후변화 취약집단의 적응력 향상을 위해서는 풍수해와 같은 자연재해에 대한 취약성을 개선하면서 물, 전기, 연료 등 생활을 위해 필수적인 자원에 대한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사회경제적 취약집단일수록 지급능력이 없어서 홍수나 폭우로 피해를 보기 쉬운 지역이나 가옥에 거주하거나, 더위나 추위에 더 취약한 주거환경에서 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들은 에너지 소비가 상대적으로 적어 기후변화를 일으킨 책임은 작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들에는 훨씬 더 많이 노출되고 심각하게 영향을 받는다. 게다가 이들은 문제가 발생할 때 대응할 수 있는 적응 역량 또한 상대적으로나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러한 기후 부정의를 조금이라도 교정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vul.jpg »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의 정도를 표시한 지도. 붉은 쪽으로 갈수록 위험이 높은 지역을 가리킨다. 기후변화 책임이 덜한 개도국의 위험이 높음을 알 수 있다. 메이플크로프트
 
그렇다면 기후변화 취약집단의 기후변화 적응 대책은 누가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 걸까. 물론 정부가 상당한 역할을 해야 하지만 기업 또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기업의 온실기체 배출이 세계 온실기체 배출량의 3분의 1이 넘기에 기업은 온실기체 배출 저감에 관심을 가져야 할 뿐만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관점에서 기후재난으로 인해 고통받는 자들의 기후변화 적응에도 관심을 가져야 마땅하다. 
  
이러한 경영 활동이 이루어질 때 해당 기업의 경영 또한 지속가능해질 수 있다. 국내 주요 기업을 중심으로 지속가능 경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발간하는 기업의 수가 2003년 3곳에서 2016년 119곳으로 늘어났다는 사실은 그것을 뒷받침한다. 
  
최근에는 지속가능 경영에서 기후변화 대응 활동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에너지 소비를 바꾸어 온실기체 배출을 감축해서 기후변화 완화에 기여해야 할 뿐 아니라 변화되는 기후에 기업 스스로 적응해 나가야 한다. 기업 스스로 기후변화 저감을 위해 생겨나고 강화되는 각종 규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로 야기되는 물리적, 경제적, 사회적 환경에서 기업의 경쟁력을 유지, 강화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응책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하지만 기업의 기후변화 대응이 기업 자체의 적응 역량을 높이는 데만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기업의 울타리를 넘어 기후변화 취약집단이 기후변화 위험에 적응할 수 있는 역량 구축을 지원하는 것은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는 의미 있는 활동이 될 수 있다. 기업 활동이 기후변화를 야기하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이는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3년 전이었다. 어느 기업에서 “온실가스 감축 전망과 기업”이라는 주제로 강연하게 되었다. 해당 기업은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이자 글로벌 기업으로 제품의 생산과 유통과정에서 상당한 에너지를 소비하며, 그 결과 기후변화 원인물질인 온실기체 배출 또한 상당히 많기 때문에 기업의 기후변화 책임을 강조하였다. 기업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기후변화문제, 특히 기후변화 적응에 관심을 가질 것을 주문하였다. 또한 해당 기업이 기후변화 적응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 책임을 실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결과를 제시하였다.
  
그 연구를 통해 해당 기업이 기후변화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실현할 수 있는 세 가지 방안을 제안했는데, 그 방안 중 하나가 바로 해당 기업의 해외사업장이 있는 베트남에 물 공급 시설을 설치하는 사업이었다. 
  
01737153_P_0.JPG » 2007년 큰 홍수피해를 입은 닌빈 지역의 모습. 기후변화로 홍수는 더욱 잦고 커졌다. 에이피 연합

베트남은 기후변화 취약국가 가운데 하나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해 최근에는 건기가 길어지고 우기가 짧아지면서 강수량이 줄어들었다. 그 결과, 물의 탁도와 오염도가 높아지는 양상을 보인다. 특히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지역의 물에는 비소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 그대로 마시기엔 부적절하다. 우기가 줄어들어 강수량이 줄어들게 되면 물 공급이 그만큼 어려워지고 물 공급 총량이 줄어들면 그만큼 오염물질이 희석되는 효과가 작아 물의 오염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필자는 지난번 칼럼에서도 적었듯이 개발도상국에서는 자본 집약적인 거대기술보다는 소규모 저비용의 적정기술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캄보디아 농촌에 웃음꽃 피우는 적정기술). 그래서 해당 기업이 이 사업을 추진할 때 ’국경 없는 과학기술자회’와 서울대학교 ’아시아 에너지환경 지속가능발전 연구소’의 적정기술센터를 통해 적정기술을 기반으로 한 물 공급 시설을 설치할 것을 제안하였다. 
  
3년 전에 내가 제안했던 사업이 진행되어 마침내 지난 5월 10일 베트남 현지 타이응우옌에서 식수 공급장치 설치 준공식이 열리게 되었다. 사업비는 1억원 규모로, 국경 없는 과학기술자회를 통해 박닌 성과 타 이응우 웬 성 등 베트남 현지공장 인근 지역의 유치원 11곳에 식수 공급장치를 설치하였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먼저 깨끗하고 안전한 물을 마시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가장 먼저 유치원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였다. 필자가 방문한 곳은 타이응우옌의 한 국립 유치원이었다. 올망졸망한 어린이들이 이 사업 덕택에 앞으로 깨끗하고 안전한 물을 지속해서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하니 사업 제안자로서 감개가 무량했다. 
  
ㅍ1.jpg » 베트남 유치원에 설치한 정수시설. 오른쪽이 겉모습이고 손잡이를 열면 왼쪽 사진에서 보듯이 정화장치가 나타난다.

준공식 첫 순서는 유치원생들의 재롱잔치였다. 어린이들의 율동이 너무나 깜찍했다. 이 아이들이 안전하게 마실 깨끗한 물을 큰 비용 들이지 않고 계속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참으로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ㅍ2.jpg » 정수시설 완공을 축하하는 유치원생들의 환영 공연 모습.
  
필자는 축사에서 이 사업이 추진된 배경과 경과를 이야기하면서 사업 제안자로서 상당히 기쁘다고 했더니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학부모들도 참가했는데 그 누구보다 학부모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학부모 중 일부는 해당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었다. 
  
ㅍ3.jpg » 축사하는 필자(좌)와 테이프 자르기 행사.
  
어린이들은 필자를 비롯한 방문객들에게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아이들은 참석한 외국인인 우리에게 준공식이 끝나자 서로 악수를 하겠다고 몰려오기도 했다. 물 공급처리 시설 하나가 이렇게 사람들 간의 거리를 좁혀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흐뭇한 일이었다. 
  
ㅍ4.jpg » 악수를 하며 즐거워하는 유치원생들과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베트남에서 진행된 이 기업의 기후변화 적응 지원활동으로서 물 공급 시설 설치사업은 사실 큰 사업이 아니다. 총 1억원 규모의 사업에 불과하지만 이로 인해 11개 유치원의 어린이들이 깨끗하고 안전한 물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글로벌 기업에게는 너무나 미미한 비용의 사업인데도 지역방송국까지 필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할 정도로 지역에서는 큰 민원이 해소되는 사업이었다. 
  
기업의 이런 작은 활동이 기후변화 유발에 대한 책임을 상쇄시키거나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근거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기후변화의 진행으로 인해 영향받는 당사자들이 일상적인 삶에서 느끼는 고통의 크기가 조금씩 커지는 상황에서 기후변화 취약집단의 기후변화 적응 노력을 지원하는 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차원에서 맨 먼저 시작되고 앞으로 더욱 확대될 필요가 있다. 앞으로 더 많은 기업이 기후변화 완화를 넘어 기후변화 적응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적 책임의 관점에서 보다 다양한 사업을 진행해 가기를 기대한다. 

글·사진 윤순진/ 환경과 공해연구회 운영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최근기사 목록

  • 신고리 5·6호기, 전문가에 결정 맡길 수 없는 이유신고리 5·6호기, 전문가에 결정 맡길 수 없는 이유

    이수경 | 2017. 08. 16

    정책당국자와 전문가의 누적된 실패가 이번 공론화 불러전문가 객관적이지 않고, 과학기술은 사안의 극히 일부분신고리 5·6호기 공사중단 공론화를 둘러싸고 말이 참 많다. 청와대와 공론화위원회(공론화위)는 건설중지 결정을 누가 내리는지를 두고 우...

  • 2082년 수명 신고리 5·6호기, 미래 세대에 물어봤나2082년 수명 신고리 5·6호기, 미래 세대에 물어봤나

    윤순진 | 2017. 08. 09

    설계 수명 60년, 40살 이상은 끝도 못보고 핵폐기물만 남길 시설전문가, 후쿠시마서도 책임 안져…위험과 비용 감당 시민이 결정해야탈원전 정책, 그 뜨거운 출발탈원전 정책을 둘러싼 논쟁과 공방이 뜨거운 여름만큼이나 우리 사회를 달구고 있다. ...

  • 70억톤 플라스틱 쓰레기, 건강피해 현실로70억톤 플라스틱 쓰레기, 건강피해 현실로

    김정욱 | 2017. 07. 26

    일회용품 사용자 환경호르몬 급증, 정자 수 감소, 암 환자 증가태우거나 잘게 쪼개지면 피해 커져…불법 소각 막고 규제 강화해야최근 미국 캘리포니아대와 조지아대 연구자들이 추산한 결과 인류가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생산한 플라스틱은 모두 8...

  • 주고받는 중국발 미세먼지 피해, 3만 죽고 4만 죽이고주고받는 중국발 미세먼지 피해, 3만 죽고 4만 죽이고

    이동수 | 2017. 07. 10

    세계화 경제에서 일방적 가해·피해 없어, 값싼 소비 누리는 동안 생산국 약자 피해해마다 수천∼수만명 서로 죽여, 미세먼지의 해결 위해 국제적인 공동노력 불가피  이제 미세먼지는 모두가 체감하는 심각한 문제이다. 새 정부에서도 미...

  • 해상풍력, 왜 제주에선 되고 다른 지역에선 안 됐나해상풍력, 왜 제주에선 되고 다른 지역에선 안 됐나

    육근형 | 2017. 06. 30

    전북·부산서 어민·지역민 반대로 주춤, 제주선 상업발전 돌입바다 공공성 인정, 영향권 주민에 의사결정과 이익배분 참여 보장  탈원전과 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 증가지난주 고리원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