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컷 배 밀봉, 붉은점모시나비의 이기적 사랑

이강운 2017. 06. 05
조회수 3847 추천수 1
생물학자 이강운의 24절기 생물 노트 <11> 망종
배끝에 수태낭 만들어 다른 수컷과 짝짓기 차단
'날개 달린 꽃' 붉은점모시나비의 화려한 변신

ma1.jpg » 알을 낳을 기린초 꽃 위에서 짝짓기를 하는 붉은점모시나비.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으로 지정된 법정 보호종이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봄날은 가고, 오늘은 차고 넘치는 망종(芒種). 30도를 오르내리는 때 이른 더위로 계절 구분이 모호해진 봄과 여름 경계에서 가뭄 끝에 살짝 비 내리자 메마른 땅에서 축 처져있던 무수한 풀들이 쑥 올라와 주변이 온통 풀밭이다. 6월 뜨거운 열기가 발산하는 에너지를 받아 열매를 맺고, 여무는 여름이 시작한다. ‘벌써’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숲이 시퍼렇고 바람이 시원하다. 

천지를 화사함으로 뒤덮은 봄 ‘꽃철’이 지나면 나무들은 열매를 맺고, 풀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봄의 진달래, 가을의 국화와 더불어 우리와 가장 가까운 꽃 함박꽃(작약)이 뜨거운 불꽃으로 불타고 있다. 초여름을 눈부시게 수놓는 함박꽃은 함지박처럼 큰 꽃과 화려한 이미지로 함박웃음을 지으며 연구소를 밝게 빛낸다. 
  
ma2.jpg » 함박꽃(작약)이 함지박만 한 꽃을 터뜨렸다.

낮이 길어지면서 보랏빛 꿀풀도 햇빛 가득한 둔덕에 무리 지어 지천으로 피어있고, 연못 주변으로는 보랏빛 붓꽃도 한창이다. 꽃이라면 모든 곤충이 좋아하고 꿀 때문에 유인될 것 같지만 함박꽃이나 꿀풀, 붓꽃이나 애기똥풀에는 가끔 들르는 양봉 꿀벌 이외에 나비류나 딱정벌레 같은 곤충이 와락 덤비지는 않는다. 특히 꿀풀은 꽃 속에 들어있는 많은 양의 꿀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이름에 걸맞지 않게 외로워 보인다. 입술처럼 생긴 꿀풀의 꽃이 달곰해서 따 먹던 사람에게만 해당하지 곤충은 별 관심이 없다. 
 
ma3.jpg » 꿀풀은 꿀이 많지만 양봉 이외의 곤충에게는 큰 인기가 없다.

ma4.jpg » 꽃봉오리가 붓을 닮은 붓꽃.
 
이미 꽃을 피웠던 엉겅퀴는 씨앗을 맺어 솜털처럼 가벼운 열매를 바람에 실려 보내고 뒤늦게 핀 때죽나무 꽃에서 먹이와 짝을 찾던 긴꼬리제비나비가 열심히 꿀을 빨고 있다. 티끌 한 점 없이 깨끗한 신록이 반짝거리고 풍요로운 6월의 숲에 여름이 무르익는다. 

 ma5.jpg » 씨앗을 퍼뜨리는 엉겅퀴.
  
숲으로 가면 지금도 어린아이처럼 기대 가득 설렌다. 이때쯤 숲 속에서 볼 수 있는 곤충의 안부를 묻는다. 
  
별것 아닌 것들이라는 벌레지만 본능적으로 끌리는 색채의 아름다움이나 현란함은 별(別)것이다. 악티아스 아르테미스(Actias artemis)라는 학명으로 불리는 긴꼬리산누에나방은 에메랄드 옥빛의 아름다운 색깔과 아래 날개의 긴 돌기가 특징이며, 흔히 동화 <피터>에 등장하는 요정 팅커벨이라고 불린다. 나방이라 하면 보통 징그러운 벌레로 오인당하는데, 긴꼬리산누에나방은 아르테미스 즉 달의 여신이란 이름으로 최고의 찬사를 받고 있다. 1998년 7월 50년 만에 뉴욕 센트럴파크에 방사되면서 재도입된, 나비보다 더 아름다운 나방이다. 4번째 껍질을 벗은 긴꼬리산누에나방 애벌레가 오리나무를 열심히 먹으며 잘 자라고 있다.

ma7.jpg » 긴꼬리산누에나방 어른벌레. 큰 옥색 몸집에 기다란 꼬리가 달린 멋진 나방이다.

ma8.jpg » 긴꼬리산누에나방의 애벌레.

회양목명나방 애벌레가 여러 장의 잎을 실로 묶어 거미줄처럼 만들고 그 실에 똥과 먹다 만 찌꺼기를 붙여놓아 회양목이 지저분해 보인다. 그러나 회양목 윗면에는 큰광대노린재 (Poecilocoris splendidulus)가 금속 광택을 뽐내며 주변을 환하게 한다. 종명인 ‘스플렌디둘루스’가 이미 찬란히 빛나는 외양을 설명하고 있다. 금빛 나는 녹색 바탕에 보랏빛을 띤 붉은색 무늬로 치장한 매우 아름다운 곤충으로, 오랜 기간 덕을 많이 쌓아야만 만날 수 있다는 큰광대노린재가 회양목 군락지에서 짝을 짓고 알을 낳는다. 5년간에 걸친 번식 작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ma9.jpg » 배설물과 찌꺼기로 둥지를 위장하는 회양목 명나방 애벌레.
 
ma10.jpg » 회양목에서 번식하는 큰광대노린재 어른벌레.

ma11.jpg » 큰광대노린재의 알.
 
붉은점모시나비 번데기 밖 세상은 기린초와 지느러미엉겅퀴의 향긋한 꿀 냄새가 은은하다. 이제 번데기를 벗어 던지고 날개돋이를 해 새로운 우주를 만들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물처럼 대충 얼기설기 엉성하게 엮은 고치를 뚫고 붉은점모시나비가 엉금엉금 기어 주변 나무로 올라간다. 깊게 숨을 들여 마시고 배에 힘을 주어 몸 앞쪽으로 혈압을 높이고 피를 돌린다. 쭈글쭈글 말린 몸에 펌프질하며 날개에 고루 퍼져 있는 가느다란 실모양의 시맥(翅脈)으로 피를 보내 앞뒤 날개를 편다. 2시간 여. 날개 달린 꽃, 붉은점모시나비가 다시 아름다운 한 송이 꽃으로 환하게 화려한 변신을 한다. 

ma13.jpg » 붉은점모시나비의 날개돋이. 2017년 6월4일 촬영했다.
  
아무도 활동하지 않는 추운 겨울부터 열심히 먹어대며 몸집을 불려온 여섯 달간의 긴 애벌레 시절을 거쳐 고치를 만들고 그 안에 번데기를 만든 지 보름. 느리고 길었던 350일을 준비해서 맑은 하늘에 태양처럼 피어 화려하게 난다. 극도의 추위와 더위를 반복적으로 견뎌내, 몇억 년을 죽지 않고 살아서 드디어 오늘 날개를 달았다. 

햇빛이 온 세상을 채웠다 싶을 정도로 빛이 밝아 눈부신 6월 4일 오후. 짝짓기에는 맞춤한 날. 짝짓기 한 수컷은 분비물을 내어 암컷의 배 끝에 ‘수태낭’이라는 주머니를 만들어 다른 수컷과 짝짓기할 수 없도록 만든다. 내 씨만 전달하려는 이기적이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사랑하는 암컷을 지키고 싶은 수컷의 열정적인 사랑도 숨어 있다. 

ma14.jpg » 수컷의 분비물로 암컷의 생식기를 봉쇄한 수태낭의 모습. 왼쪽이 모시나비, 오른쪽이 붉은점모시나비이다.
  
붉은점모시나비는 극지에서나 있을법한, 오랜 기간 영하의 특수한 환경에서 생존하고 진화해 왔다.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는 극한의 환경에 적응하며 특정 유전자를 가지게 되었고 그러한 독특한 생체물질은 틀림없이 새로운 신물질의 원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존경을 뜻하는 붉은색의 붉은점모시나비. 수만 년 동안 들락날락하는 기후 변덕을 극복하고 진화적으로 놀라운 성공을 거둔 훌륭한 존재로 멸종위기종이면서 쓸모가 많을 것이다. 
 
ma12.jpg »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의 먹이인 기린초.
 
6월5일은 ‘하나뿐인 지구’라는 슬로건을 채택하고 유엔이 정한 세계 환경의 날이다. ‘4대강 보를 열라’ 하고, 미세먼지 대책을 발표하고, ‘탈원전’ ‘탈 석탄’ 정책은 많은 사람에게 희망의 무지개를 보여주고 있다.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과거 지향적인 낡은 에너지체제를 안전하며 영구적인 환경친화적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녹조로 엉망이 된 강을 되살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획 하면 짠’하고 실현되는 마법이나 만병통치약은 없고, 기득권자의 저항도 강력할 것이고. 국민이 동참하여 파수꾼이 되어줄 것이다. 
  
그러나 나라를 운영할 철학과 실천할 과제를 논의하는 ‘국정자문기획위원회’에 환경위원회가 빠져 다른 생명에게 대한 배려가 없어 아쉽다. 이름조차 낯설고 생김새는 더욱 낯설지만 우리가 지켜주어야 할 멸종위기종과 고유종. 장차 나라의 가장 큰 재산이 될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는 일은 시대정신이다. 비록 작은 불씨이지만 우리는 소중하게 쥐고 있다. 
  
보존에 대한 이해는 제대로 하고 있는지? 생물 다양성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 ‘환경의 날’에 아프게 물어본다. 

글·사진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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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한국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 국립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겸임교수. 저서로는 <한국의 나방 애벌레 도감(Caterpillars of Moths in Korea)>(2015.11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캐터필러>(2016.11 도서출판 홀로세)가 있다.
이메일 : holoce@hecri.re.kr      
블로그 : http://m.blog.naver.com/holoce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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