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적분지에 새겨진 곤충화석 '작은 것들의 역사'

오철우 2017. 0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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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곤충학 박사 1호’ 남기수 교사  


더듬이 몸통 꼬리 2㎝ 애벌레 또렷

낚시꾼이 손맛에 빠지듯 탐사 몰두

 

대전과학고 다산관 7층 작은 실험실

한국 곤충 화석 가장 많아

 

국내외 학술지에 10여 편 논문 발표

매미 거미 등 신종도 발견

 

중·신생대 원시곤충 지금 모습 그대로

날개맥은 종 추적해 식별하는 ‘지문‘

 

딱정벌레, 바퀴벌레 화석 가장 많아

잠자리 메뚜기 벌 모기 등 다양

 

고생대 곤충 화석은 아직 못 찾아

나비 화석 등 숙제 여전히 많아


s1.jpg » 고곤충학 연구자인 남기수 교사는 수집한 돌을 학교 실험실에서 정교하게 자르고 쪼개고 갈아, 보기 좋게 화석 표본을 만드는 작업을 한다. 오른쪽 맨위는 야외에서 화석 탐사 활동을 하는 모습, 가운데는 작업용 망치로 두들겨 암석을 결대로 뜯어내는 작업을 하는 모습. 맨아래는 수천 개 표본들을 상자에 담아 쌓아놓은 모습. 오철우 기자, 남기수 교사 제공


기를 나누던 그가 갑작스런 교무실 호출을 받자 잠시 다른 교실을 혼자 둘러보고 있으라며 연신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사라졌다. 혼자 남겨진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곤충 화석이 가장 많이 모여 있다는 곳, 박물관 아닌 대전과학고 다산관 7층의 작은 실험실이다. 곤충, 어류, 식물 같은 각양각색 화석 표본들이 100개 남짓 상자에 담겨 연구자의 지난한 분류 작업을 기다리고 있다. 옆방엔 셰일(진흙) 암석을 다듬어 모양 좋은 표본을 만드는 절단기, 연마기 같은 도구들이 놓여 이곳이 먼지 날리는 작업실임을 알려주었다. 신생대부터 공룡이 살던 중생대까지, 그때 그 파란 하늘 아래 숲속을 날았을 곤충들이 부드러운 퇴적암에 흔적으로 새겨져 있다.


남기수 대전과학고 교사(지구과학)는 국내에서 곤충 화석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고곤충학 박사 1호’다. 그는 “국내에선 화석 곤충을 연구한다는 게 낯선 일이지만 퇴적분지인 보령(아미산층), 진주(진주층), 포항(두호층) 등지에서 2000여 점 곤충 화석을 수집하면서 이젠 한반도 고곤충의 생활사나 먼 과거의 자연사를 종합해 그려보고 싶다는 욕심도 생긴다”고 말했다. 곤충 화석 외에 거미, 어류, 식물 화석들은 보령과 진주의 중생대, 그리고 포항의 신생대를 보여주는 머나먼 단서들이다.


s2.jpg » 한반도에서 발견된 주요한 곤충과 거미 화석. 맨위부터, 섬세한 날개 무늬가 살아 있는 중생대의 전기 백악기인 약 1억년 전 잠자리 날개 화석, 2억년 전 중생대 지층에서 날개맥이 또렷한 형태로 발견된 매미 날개 화석, 그리고 그동안 개미 화석이 국내에선 발견되지 않다가 처음 발견된 날개 달린 여왕개미 화석. 맨아래는 중생대의 진주 지층에서 발견된 1억년 전 거미 화석. 남기수 교사 제공


보령 진주 포항 등지에서 2천여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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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무렵 화석 수집에 재미를 붙여 야외 탐사를 시작했던 그가 곤충 화석에 빠져든 계기는 강도래 애벌레 화석의 우연한 발견이었다. 그는 “더듬이, 몸통, 꼬리까지 2㎝가량 형체가 너무 또렷해 한눈에 알아볼 정도였다”며 “지금 생각해도 놀라울 정도로 예뻤다”고 회상했다. 낚시꾼이 손맛을 알면서 낚시에 빠져들듯이 “작고 귀여운” 화석 곤충의 발견은 이후에 계속돼 국내외 학술지에 10여 편 논문으로 발표됐다.


지난 1월엔 국제저널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충남 보령 중생대 아미산층에서 또렷한 날개맥을 지녀 돋보이는 2억년 된 매미 날개 화석을 보고했다. 길이 4.6㎝ 날개의 주인은 우리 신화 ‘할락궁이’의 이름을 따 ‘할락궁이스 아미사누스’라는 신종으로 명명됐다(scienceon.hani.co.kr/481936). 경남 진주의 전기 백악기 진주층에선 잠자리의 날개, 애벌레, 몸통 화석을 여럿 찾아내 1억년 전 한반도에 번성했을 잠자리의 모습을 복원해 국내 <지질학회지>에 지난 4월 발표했다.


그의 발굴 목록엔 지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친숙한 곤충들이 많다. “딱정벌레, 바퀴벌레 화석을 가장 많이 찾아냈죠. 그밖에 잠자리, 메뚜기, 매미, 벌, 모기, 파리, 집게벌레 등으로, 다양한 종을 볼 수 있다는 게 곤충 화석의 재미입니다. 모기는 종종 무더기로 발견되고 바퀴벌레가 날개맥이 또렷한 상태로 운좋게 발견되기도 했지요.”


곤충은 아니지만 절지동물 거미의 귀한 화석도 발견돼 2012년 국제학술지 <고생물학 저널>의 표지논문에 실리기도 했다. 1억 년 된, 길이 2㎝의 화석 거미는 국외 학자의 도움을 받아 ‘코레아라크네 진주’라는 신종으로 명명됐다(scienceon.hani.co.kr/32521).


요즘엔 여왕개미 화석에 관심을 두고 있다. 전에 수집한 화석 곤충이 뒤늦게 여왕개미임이 확인되면서 속과 종을 식별하는 작업에 나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개미 박사’로 불리는 대학생 동민수(20·강원대 2년)씨가 공동 연구자다. “어떤 곤충인지 몰랐는데 날개가 있고 허리가 잘록한 특징에 주목하면서 여왕개미인 걸 알게 됐죠. 지금까지 발표된 모든 개미 화석들과 비교해 공통점과 차이점을 평가해야 하고, 그런 뒤에 전문가 검증을 받아 정식 발표할 계획입니다.”



그 긴 시간 동안 별 변화 없이 적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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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 화석 연구자들이 가장 눈여겨보는 곳은 날개 무늬다. 남 교사는 “날개맥은 화석 곤충의 종을 식별해주는 열쇠”라고 말했다. 굵은 주맥과 가느다란 세맥이 어떤 패턴으로 뻗어 있는지가 종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파리의 날개는 상당히 단순한 무늬를 지니고 벌의 날개는 주맥과 횡맥이 구분되지 않은 채 마치 방 구조처럼 이뤄진 무늬를 보여준다. 날개맥은 곤충 종을 추적하며 식별하게 해주는 일종의 ‘지문’인 셈이다.


그가 찾아낸 다양한 화석 곤충들 중에 기이한 것도 있을까? 고생대 화석에선 날개가 무려 70~80㎝나 되고 몸통도 30~40㎝나 되는 거대 곤충들이 발굴되기에, 그의 표본들에서도 신기한 곤충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은근히 기대가 생겨난다.


그의 설명은 그런 기대를 앗아갔지만 다른 놀라움을 전해주었다. “글쎄요. 거대하고 기이하게 생긴 곤충들은 고생대 화석에서 출토되는데, 고생대 말에 ‘생물 대멸종’이 있었지요. 이후 시대의 곤충 화석들은 지금 곤충과 생김새가 비슷해요. 금세 알아볼 정도니까요. 국내에도 강원 태백에 고생대 지층이 있지만 아직 고생대 곤충 화석은 찾지 못했고요.” 그가 보여주는 파리, 모기, 바퀴벌레, 벌 화석의 모습은 영락없이 지금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데 중생대와 신생대, 그러니까 1억년, 2억년 전이나 수천만년 전의 곤충이 지금 곤충과 비슷한 모습을 지녔다는 것은 사실 신기한 일이기도 했다. 얼마 전 현생 인류의 30만년 전 유골이 발굴돼 떠들썩한 뉴스가 됐는데 이런 인류의 30만년 역사와 비교하면, 길게는 수억년에 달하는 긴 시간 동안 곤충의 모습에 이토록 변화가 적었음은 이례적으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연환경이 달라져도 작은 곤충들은 별 변화 없이 그대로 적응해 살아왔다는 걸 생각하면 놀랍고 신기한 일”이라고 풀이했다.


s3.jpg » 왼쪽부터 진주층에서 수집한 파리 화석, 모기 화석, 벌 화석, 그리고 바퀴벌레 화석. 날개 맥은 곤충 화석을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파리의 날개는 한 쌍뿐이며 날개 맥이 매우 단순한 편이다. 벌은 주맥과 횡맥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이며 여러 방들로 구성된 듯한 패턴을 띤다. 바퀴벌레 날개 맥을 보는 건 쉽지 않은데, 이 화석에선 고생대부터 큰 변화 없이 길쭉한 맥들이 많은 것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남기수 교사 제공


그 당시 육상 생태계 이해 지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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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야외 탐사에 나가서 “어떤 땐 허탕을 치지만 운좋은 날엔 40~50점씩” 곤충, 식물, 어류 등 갖가지 화석을 수집해왔지만, 그는 자신의 화석 정보만으로 당시 환경을 상상하기엔 섣부르다고 말한다. 땅은 넓고 그가 탐사한 곳은 일부다. 그래서 풀어야 할 물음은 여전히 많다.


고생대 지층은 한반도에도 있는데 왜 고생대 곤충 화석만은 발견되지 않았을까? 고생대 지층이 있는 강원 태백 지역은 그에게 새롭게 도전할 개척지인 셈이다. 그는 “그동안 본 화석 곤충들과 아주 다른 새로운 고생대 곤충 화석을 언젠가 찾고 싶다”고 말했다.


귀하다는 나비 화석이 국내에서 발견될지도 관심사다. 원시 곤충을 품은 호박 화석을 찾는 것도 그에겐 숙제다. 포항 지역은 호박 발견의 후보지다. “포항의 신생대 지층엔 고식물이 무성했으며 화산 활동도 잦았다고 알려지는데 그 덕분에 이곳엔 곤충과 송진이 많았을 것이고 송진이 화산재에 묻혀 보존될 가능성도 높기에, 호박 화석이 발견된다면 포항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국내에도 소수의 화석 곤충 연구자들이 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 나방 화석을 연구했고 지금은 국내에서 중생대 화석 곤충 연구를 하고 있는 손재천 목포대 연구교수는 “최근 고생물학의 흐름이 ‘어떤 생물이 존재했는가’보다는 ‘어떻게 살았는가’에 쏠리고 있다”며 “생물량이나 다양성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곤충의 화석 연구는 고생물 시대의 육상 생태계를 이해하는 데 빠질 수 없는 주제”라고 말했다. 

[대전/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손재천 목포대 연구전임교수, 사이언스온 필진 [☞ 연재 '자연사로 둘러보는 우리 세상']SJC.jpg 


곤충 번성하게 한 날개 진화 수수께끼





대략 500만 종이 넘는 곤충은 지구 생태계에서 가장 번성한 동물이다. 곤충의 엄청난 다양성을 보노라면 자연스럽게 그 성공 요인이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많은 학자들은 곤충의 성공 요인으로 날개의 진화를 꼽는다. 곤충은 날갯짓을 통해 비행하는 몇 안 되는 동물 중 하나이고 날개 덕분에 지구 구석구석에서 발견된다.


곤충은 언제 어떻게 날개를 가지게 되었을까? 생물 구조의 진화를 이해하는 데 화석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곤충 날개의 기원을 알려줄 결정적인 화석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거나 화석으로 남은 곤충의 해부학적 구조를 비교해 추론할 수밖에 없다.


곤충 날개의 기원을 설명하는 가설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먼저 측엽 기원설이다. 곤충의 가슴등판이 양옆으로 뻗어 판이 형성되었고 이 판이 날개로 변했다는 가설이다. 고생대 석탄기의 원시 유시곤충(날개 있는 곤충) 화석에 나타나는 특징이 그 증거로 제시된다. 화석에선 앞가슴등판이 양옆으로 뻗어 있는데 그것이 날개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측엽 기원설에 맞서는 가설로 아가미 기원설이 있다. 수서곤충인 하루살이 애벌레의 배에는 홰를 치며 물 흐름을 만들 수 있는 아가미가 있다. 이런 아가미 같은 구조가 훗날 날개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아가미 기원설은 최근 부속지(부속다리) 기원설로 이어지고 있다. 원시 절지동물에는 다리와 더불어 부속지라는 구조가 있는데, 이것이 갑각류에선 아가미로, 곤충에선 날개로 진화했다는 가설이다. 최근 초파리 개체가 발생할 때 날개 형성 과정에 다리 형성을 관장하는 유전자가 관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속지 기원설이 주목을 받고 있다. 가장 최근엔 부속지가 측엽의 확장에서 비롯했다는 ‘선 측엽 후 부속지’ 가설이 제기되어 측엽과 부속지가 모두 곤충 날개의 기원을 설명하는 가설로 인정받는 추세다.


형태 기원과 더불어 최초의 곤충 날개가 어떤 기능을 했는지는 또다른 과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주제다. 화석 기록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거기에서 일련의 진화 과정을 다 들여다볼 수는 없다. 곤충 날개의 기원은 지구상에 불현듯 나타난 진화적 사건의 좋은 예다. 타임머신을 타고 이런 자연의 경이를 직접 볼 수 있다면 곤충 날개 진화의 수수께끼가 속시원하게 풀리겠지만 현재로선 결정적 단서를 제공해줄 만한 화석의 발견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진화 기록의 저장소인 화석 한점 한점이 소중한 이유다. [손재천]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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