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사 초식동물이 세렝게티 강 살찌워

조홍섭 2017. 06. 20
조회수 12276 추천수 0
케냐 마라 강에 해마다 6200마리 누 익사, 대왕고래 10마리가 빠져 죽는 셈
물고기, 독수리, 악어 말고도 강 유역 생태계 광범한 영향…지구 마지막 ‘익사 생태계’

dr3_Amanda Subalusky.jpg » 케냐 마라 강에서 이동 과정에서 떼죽음한 누. 연어처럼 생태계 먹이순환에 중요한 구실을 하는 사실이 밝혀졌다. Amanda Subalusky

아프리카 케냐의 세렝게티 평원은 야생동물의 천국이다. 이곳을 다룬 자연 다큐멘터리의 백미 가운데 하나는 연례행사로 벌어지는 누(윌더비스트, 소과의 대형 초식동물)의 대이동이다.

해마다 120만 마리의 누가 세렝게티 평원을 흐르는 마라 강을 가로질러 풀이 풍부한 곳으로 이동한다. 7∼9월 절정을 이루는 이 대이동 과정에서 수천 마리의 누가 좁은 지형에서 밀려든 무리에 밀려 익사한다. 마라 강에는 이런 곳이 적어도 4곳 있으며 거의 해마다 대규모 익사 사태가 벌어진다.

dr2_Chris Dutton.jpg » 가파른 강둑을 기어오르는 누 무리. 이 과정에서 다수가 압사 또는 익사한다. Chris Dutton

자연 다큐멘터리는 주로 강물 속에서 기다리던 대형 나일악어의 사냥장면이나 무리에 떠밀려 압사 또는 익사하는 누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누의 떼죽음은 화면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크고 길게 세렝게티-마라 강 생태계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어맨다 수바루스키 미국 케리 생태계 연구소 박사 등 연구자들은 지난 5년 동안 마라 강에서 익사하는 누 무리를 현지조사했다. 지난 10년 동안의 역사자료와 함께 이를 분석해 마라 강에서 누 무리가 대량 익사하는 생태적 영향을 정량적으로 밝혀냈다. 

dr4_Chris Dutton2.jpg » 마라 강의 누 사체 연구진 모습. 왼쪽이 주 저자인 아맨다 수바루스키이다. Chris Dutton

<미 국립학술원 회보(PNAS)> 20일 치에 실린 이들의 논문을 보면, 해마다 마라 강에서 익사 또는 압사하는 누는 평균 6250마리로 생물량으로 치면 1100t에 이른다. 중형 강인 마라 강에 해마다 대왕고래 10마리가 빠져 죽는 셈이다.

이런 막대한 누의 사체 가운데 나일악어가 먹어치우는 양은 전체의 2%에 지나지 않았다. 주검은 2∼10주 동안 분해되는데, 전체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뼈를 제외한 부드러운 조직은 독수리와 황새 같은 청소동물과 물고기 차지였다.

조사 결과 익사 시기 마라 강 어류의 먹이 가운데 누의 사체는 34∼50%를 차지했다. 독수리와 황새 등 청소동물은 주검의 부드러운 조직 가운데 7∼24%를 먹어치웠다.

주검의 나머지 절반인 뼈는 분해하는 데는 7년이 걸렸다. 뼈의 주성분인 인은 서서히 물에 분해돼 조류가 번성하거나 곤충, 물고기의 먹이가 됐다. 

dr1.jpg » 누의 사체에서 영양분이 마라 강 생태계로 운반되는 경로. 아매나 수바루스키 외(2017)

누의 사체는 청소동물에 의해 내륙으로, 뼈의 분해를 통해 하류로 퍼져나가는 것으로 밝혀졌다. 다시 말해, 연례행사로 벌어지는 누의 비극은 세렝게티-마라 강 생태계를 살찌우는 구실을 한다. 연구자들은 “누의 사체는 미국 태평양 연안 연어가 바다의 영양분을 육지로 옮기는 것보다 4배 가까이 많은 영양분을 이동시킨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누와 함께 얼룩말도 해마다 평균 17만5000마리가 마라 강을 건너지만 익사하는 개체는 거의 없다. 연구자들은 5년 동안의 조사에서 물에서 죽은 얼룩말은 5마리도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논문 저자의 하나인 데이비드 포스트 미국 예일대 수생태학자는 “마라 강은 지구에서 대형 이동성 동물의 익사가 수생태계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연구할 수 있는 마지막 장소이다. 큰 무리를 지어 이동하던 들소, 콰가, 스프링복 등은 모두 멸종위기에 몰려있거나 그저 명맥을 유지할 뿐”이라고 케리 생태계 연구소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미국 서부에서도 18세기 말∼19세기 초까지 해마다 수십만 마리의 들소가 익사했다고 논문은 밝혔다. 대형 초식동물의 규칙적이고 비극적 죽음으로 영양분을 보충하던 강은 이제 거의 보기 힘들어졌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Amanda L. Subalusky et al, Annual mass drownings of the Serengeti wildebeest migration influence nutrient cycling and storage in the Mara River, PNAS Early Edition, www.pnas.org/cgi/doi/10.1073/pnas.1614778114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독 가시도 모자랐나, 잭나이프 무장 물고기독 가시도 모자랐나, 잭나이프 무장 물고기

    조홍섭 | 2018. 04. 24

    쏨뱅이류에서 발견, 뺨에 숨겨두었다 유사시 펼쳐어른도 죽일 독가시에 추가, 동남아선 식용으로 인기포식자가 들끓는 바다에서 살아남는 길은 최고의 방어수단을 확보하는 것이다. 오랜 진화과정에서 바닷물고기들은 기발한 방어 무기를 잇달아 발명했...

  • 자기 배 터뜨리고 죽는 ‘자폭 개미’가 있다자기 배 터뜨리고 죽는 ‘자폭 개미’가 있다

    조홍섭 | 2018. 04. 23

    일개미는 배 수축한 뒤 독물 뿜어 적 물리치고병정개미는 마개 모양 머리로 바리케이드 친다동남아 보르네오의 열대림에는 높이가 60m에 이르는 큰 나무가 서로 이어져 수관 생태계를 이룬다. 나뭇잎으로 이뤄진 이 공중 생태계의 지배자는 개미이다...

  • ‘작은 거인’ 새우 떼가 바다 뒤섞어 생태계 살려‘작은 거인’ 새우 떼가 바다 뒤섞어 생태계 살려

    조홍섭 | 2018. 04. 20

    깊은 바다 양분 끌어올려, 바람·조류와 함께 바다생태계 유지밤에 표면 상승 때 강력한 하방 제트류와 주변 소용돌이 생겨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대양은 사막과 같다. 유기물이 모두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영양 부족 상태에 빠진다. 그런데도 대양...

  • ‘초록 머리칼’ 거북은 생식기로 숨 쉰다‘초록 머리칼’ 거북은 생식기로 숨 쉰다

    조홍섭 | 2018. 04. 18

    총배설강에 아가미 기능, 3일까지 잠수호주 마리강 서식, 지구 136마리 생존오스트레일리아 동북부 퀸즐랜드 마리 강의 여울에는 특별한 거북이 산다. 길이 32∼42㎝의 제법 큰 이 민물 거북은 강변에 둥지를 틀고 급류가 흐르는 강에서 주로 사냥...

  • 북극서 빙하 밑 소금호수 발견, 외계 생명 찾기 단서북극서 빙하 밑 소금호수 발견, 외계 생명 찾기 단서

    조홍섭 | 2018. 04. 13

    얼음 밑 740m, 바닷물 5배 짠 물, 천지 크기12만년 고립돼 독특한 미생물 진화했을 듯빙하가 수백∼수천m 두께로 덮인 차고 캄캄한 얼음 밑에도 호수가 있다. 남극에선 빙상 밑에서 보스토크호를 비롯해 400여개의 얼음 밑 호수가 발견됐고(▶남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