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2년 수명 신고리 5·6호기, 미래 세대에 물어봤나

윤순진 2017. 08. 09
조회수 4211 추천수 0
설계 수명 60년, 40살 이상은 끝도 못보고 핵폐기물만 남길 시설
전문가, 후쿠시마서도 책임 안져…위험과 비용 감당 시민이 결정해야

05806345_P_0.JPG » 7월 2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안전한 세상을 위한 신고리 5, 6호기 백지화 시민행동 발족식''에서 참석자들이 원전없는 미래를 요구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탈원전 정책, 그 뜨거운 출발

탈원전 정책을 둘러싼 논쟁과 공방이 뜨거운 여름만큼이나 우리 사회를 달구고 있다. 유력 대선 후보 다섯 중 네 명이 탈원전 정책을 내걸었고, 그때부터 탈원전 정책은 논란의 중심으로 진입해 왔다. 우리나라 대선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정치적 성향이 다름에도 문재인,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등 네 후보는 탈원전 방향에 동의하면서 속도는 조금씩 다르지만 신규 원전 건설 중단, 노후 원전 수명 연장 반대와 폐로, 원전의 단계적 축소 등에서 방향을 함께 했다. 대안으로는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와 에너지 수요관리 강화를 내걸어 큰 방향성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 탈원전 일정 내지 속도와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에 대한 입장에 다소간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원자력 계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난 3월 29일 대선 기간 중 한국원자력학회가 학회 이름으로 성명을 발표하였다. 대선주자들이 “충분한 검토 없이 정치 논리로 탈핵을 결정”하였는데, 이러한 “대안 없는 탈핵 주장”은 “무책임”하다는 취지였다. 

또 6월 1일에는 원자핵공학과를 비롯한 에너지 분야를 전공하는 대학교수 230여 명이 문재인 정부의 원자력정책이 “소수의 비전문가가 속전 속결하는 제왕적 조치”로 “일방통행식”이라고 비판하면서 “거대 원전산업의 궤도 수정은 무엇보다 국민 공론화와 관련 전문가의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같은 날 한국수력원자력 노조도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노조위원장이 1인 시위에 나섰다. 

05801568_P_0.JPG » 7월 15일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원전 사거리에서 한수원 노조가 집회를 열고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에 반대하고 있다. <연합뉴스>

6월 29일 문재인 대통령은 공론화위원회와 시민배심원단, 공론조사 방식을 통해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다시 7월 5일 “대통령의 선언 하나로 탈원전 계획을 기정사실로 하는 것은 제왕적 조치”로 “전문가들의 의견도 경청하라”며 ‘책임성 있는 에너지정책 수립을 촉구하는 교수 일동’(교수들) 명의로 60개 대학 417명의 교수들이 정부의 원전정책 비판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제껏 국민 의견에 귀 기울인 적 없는 이들이 국민 의견에 귀를 기울이란 주장을 하다니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다. 또한 이제껏 전문가들의 의견을 앞세워 정책을 결정해 왔고 그 정책이 지금 국민 의견 청취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다시 전문가 의견을 경청하라고 주장하니 그 또한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보수신문과 경제지 등의 언론매체에서는 공론화위원회와 시민배심원단, 공론조사 방식의 의의와 제대로 된 운영을 위한 제안 등이 논의되기보다 이런 접근의 문제점을 나열하면서 정당성을 훼손하려는 듯한 시도가 노골적으로 이루어졌다.

드디어 7월 24일 9인으로 구성된 공론화위원회가 출범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탈원전 정책의 적절성 여부와 함께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 또한 의사결정 방식과 절차에 대해 다양한 논란과 논쟁이 진행 중이다. 

사실 원래 이래야 마땅한 것이었다. 오히려 이제껏 원전정책은 전문가 주의를 내세우며 별다른 사회적 대화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됐고, 바로 그런 믿어 붙이기가 다양한 사회갈등을 낳아 왔다. 이제 새롭게 열린 공론장에서 더욱 다양한 목소리가 메아리치면서 사회적인 대화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 이제까지 국민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공론장이 만들어지지 못한 상황에서 원전 홍보 일색의 선전광고가 원전 담론을 지배했는데 이제 일반시민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장이 열린 것이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문제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중단 여부가 중요한 논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고리지역의 특수성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 전 세계에서 한 지역에 원자로 10기를 집중적으로 자리 잡게 한 사례는 이제껏 전무하다. 현재까지 한 지역에 가장 많은 원자로가 입지한 사례는 캐나다의 브루스로 8기가 입지해 있다. 

시설용량으로 가장 큰 규모로 원전이 들어선 지역은 일본의 가시와자키 가리와이다. 총 7기가 입지해 있는데 총 시설용량이 1만707㎿(㎿는 메가와트, 100만W)에 달한다. 하지만 신고리 5,6호기가 건설되면 연접해 있는 고리와 신고리에 모두 10기, 총 1만150㎿가 입지하게 된다(<그림 1> 참조). 지난 6월에 영구정지된 고리1호기 용량인 587㎿를 포함하면 1만737㎿로 가시와자키 가리와보다 발전용량이 더 크다. 

<그림 1> 국내 원전 운영 및 건설 현황(2017년 7월 현재)

n1.jpg
출처: <시사인>, “원전 가동 멈추면 전기요금 오른다고?” 2017/07/06 재구성

한 지역에 원자로가 집중적으로 들어서면 동일한 자연재난에 함께 노출되어 연쇄 사고의 가능성이 커진다. 또한 시설용량이 크면 사고 발생 시 누출될 수 있는 방사성 물질의 양이 그만큼 많아진다. 게다가 고리 원전 30㎞ 이내에 340만 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 치명적이다. 

그런데도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 때 다수 호기 동시 사고에 대한 아무런 고려도 하지 않았다.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 이후에야 한수원은 자체적으로 다수 호기 확률론적 안전성 평가 방법론 연구라는 용역을 발주했을 뿐이다. 

게다가 원전 사고 시 방사성 물질이 어떻게 퍼지는지 시뮬레이션도 없고 이런 시뮬레이션에 근거한 대피 시나리오도 당연히 없다. 이런 원전밀집, 인구밀집 지역에서 말이다. 원자력 학계가 이런 연구를 수행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게다가 신고리 5·6호기는 인구밀집 지역으로부터 최소 32~43㎞ 떨어져 입지해야 하나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는 이격 거리를 4㎞로 정했다. 이는 원자로 시설의 위치제한규정 위반이다. 

무엇보다 탈원전 정책, 더 직접적으로는 현재 공론화의 대상이 된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결정할 때 사실을 왜곡해서는 곤란하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중단하면 가까운 시일 안에 전력 공급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거나 전력요금이 급격히 오른다는 식의 이야기들이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지금도 전력 공급은 오히려 남아돌고 계획대로 신고리 5·6호기가 건설되면, <그림 2>에서 보는 것처럼 전력 수요가 연평균 2.1%씩 늘어난다는 가정에 따라도 2021년에는 26.8%, 2022년에는 27.7%가 남아돌게 된다. 두 기가 건설되지 않더라도 설비예비율은 23%가 넘는다. 정부가 말한 최소예비율 15%는 물론 적정예비율로 잡은 22%도 넘어선다. 

게다가 신규 건설의 근거가 되는 전력 수요 증가 전망이 성립하지 않는다면? 최근 여러 해 동안 우리 사회의 전력 수요는 상당히 둔화한 상태로 대체로 2.1%를 밑돌았다. 지난해 2.7%로 다소 높았을 뿐 2013년 1.7%, 2014년 0.6%, 2015년 1.2%로 증가율이 낮았다. 

<그림 2> 제7차 전력수급계획 상 연도별 설비용량과 설비예비율(2015~2029년)

n2.jpg
자료: 산업통상자원부, 2015, 제7차 전력수급 기본계획

제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 수요 전망 워킹 그룹 발표에 따르면 제7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의 전력 수요 전망은 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림 3>의 제7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보면, 2030년 전력 수요는 113.2GW(GW는 기가 와트, 10억W)였으나 제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 수요 전망에서는 11.3GW나 낮은 101.0GW로 나타났다. 

두 계획에서 사용한 모델이 기본적으로 동일했기 때문에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위한 논거를 마련하기 위해 수요를 축소한 게 아니냐는 문제 제기는 성립하기 어렵다. 두 계획의 예측치가 달라진 가장 큰 이유는 경제성장률에 있었다. 

그러니 과도한 전력 수요 전망을 기초로 그 수요를 맞추기 위해 전력 공급계획을 세워 추진해온 것이기에 신고리 5·6호기가 지어지지 않는다 해서 전력이 모자라는 일도, 그래서 전력 공급 부족으로 요금이 인상되는 일도 일어나기 어렵다.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이나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늘어나서 전력요금이 오를 수도 있지만, 그것은 미래의 일이며 앞서 기술한 신재생에너지 발전단가 하락 전망이 맞는다면 전력요금이 심각하게 오를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림 3> 제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의 최대전력 수요전망

n3.jpg
출처: <한겨레>, 2017/07/18(제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 수요 전망)

탈원전 정책 때문에 전기요금이 상승하는 게 아니라, 사실 전력요금 인상은 탈원전과 별도로 지속해서 논의됐다. 이제까지 석탄이나 원자력발전이 야기한 사회갈등 비용과 환경비용이 요금에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일반시민들이 ‘전기세’라고 부르는 전기요금엔 정작 세금이 별로 붙지 않는다. 모든 상품이나 서비스에 부과하는 부가가치세와 준조세인 전력산업기반기금이 부과될 뿐인데, 가정용 전력요금의 경우 8.8% 남짓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경제개발협력국(OECD)에서 가정용 전력요금의 세금 비중이 30%가 넘고 독일이나 덴마크에서 50%가 넘는 것과 견주면 미미한 수준이다. 우리 전력요금은 오이시디 평균의 63.8%에 불과하다. 전력 생산과 송배전에 따른 환경비용이나 사회갈등 비용이 반영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전력이 생산지와 소비지가 달라서 원거리 송전이 필요하고 지역에 따라 송전 거리가 엄연히 다른데도 전국 단일 요금이다. 수요가 높은 시간이나 낮은 시간이나 요금이 동일하다. 자원배분의 효율성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이제 바꿔야 한다. 

발전연료에 매기는 세금의 경우 연료별로 차등 부과하고 있는데, 환경영향이나 사회영향을 고려하면 상당히 부적절하다. 유연탄은 지난해부터야 발전 연료세를 부과하고 있다. 5000㎉/g 이상은 ㎏당 24원, 그 미만은 22원이 부과되었다가 올 4월부터 ㎏당 30원을 부과하고 있다. 엘엔지는 ㎏당 60원이 부과되고 있다. 우라늄에는 한 푼도 부과되고 있지 않다. 그래서 탈원전에 대한 논의가 정부 차원에서 나오기 이전부터 발전 연료세를 개편해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비례해서 부과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제안이 다수였다. 

따라서 전기요금이 인상된다면, 그것은 탈원전 때문이 아니라 세금 부과의 비정상이 정상화된 결과다. 그리고 신고리 5·6호기가 지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몇 년 안에 세금 부과 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탈원전 한다고 전기요금은 오르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도 전력 공급이 남아돌고 있고 올해와 내년, 내후년 3년동안 해마다 1400㎿인 신고리 4호기와 신한울 1호기, 신한울 2호기가 연달아 가동되기 때문에 오히려 전력 공급이 너무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이 재생가능에너지 발전단가는 더욱더 떨어질 것이다.

탈원전 정책으로 전기요금이 급격히 오를 것처럼, 그것도 지금 당장 전기요금이 인상될 것처럼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원자력의 발전단가가 오히려 지속해서 상승하고 있고, 재생가능에너지 비용은 지속해서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발표된 에너지경제연구원의 발전단가 계산만 하더라도 현재의 신재생에너지 발전단가를 미래에도 그대로 적용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분석에서는 신재생에너지 발전단가를 보수적으로 추정했음에도 2016년 ㎾h당 186원에서 2030년 137원으로 하락할 것으로 계상하였다. 

그 결과 탈원전을 하더라도 소위 말하는 “전기요금 폭탄”은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였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수요관리다. 수요관리를 통해 전력 소비량 자체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며, 전력 소비가 줄어든다면 전기요금 인상으로 인해 전기요금 부담이 크게 늘지 않을 수 있다. 

<그림4> 에너지정책 전환에 따른 월평균 추가 비용

n4.jpg
출처: <경향신문>, ‘탈원전’해도 전기요금 폭탄 없다, 2017/07/18

지금 중단 여부를 결정해야 할 신고리 5・6호기는 APR 1400 기종으로 설계 수명이 무려 60년이다. 건설 계획을 보면 각각 2021년과 2022년에 가동을 시작할 예정으로 되어 있다. 그 두 기가 수명을 다하게 되는 해는 2081년과 2082년이다. 현재 40세 이상인 사람들은 살아 있을지 의문인 시점이다. 

자신들이 끝을 보지 못할 시설, 그 뒤로도 10만 년 이상 안전하게 보관해야 할 핵폐기물을 남기는 시설을 지금 지어야 한다고 말할 권리가 있을까? 우리가 쓰고 버린 이 핵폐기물을 누가 관리해야 할까? 혜택을 하나도 보지 않은 미래 세대에게 우리는 감당하지 못할 핵폐기물을 남기는 것이다. 이것은 윤리적으로 너무나 부당하고 무책임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공론화위원회의 출범과 시민참여의 역사적 의의

05804750_P_0.JPG » 7월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 1차 회의에서 김지형 위원장(전 대법관,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공론화위원회는 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인문사회 분야 위원 김정인 수원대 법행정학과 조교수, 류방란 한국교육개발연구원 부원장, 과학기술 분야 유태경 경희대 화학공학과 부교수, 이성재 고등과학원 교수, 조사통계 분야 김영원 숙명여대 통계학과 교수, 이윤석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 갈등관리 분야 김원동 강원대 사회학과 교수, 이희진 한국갈등해결센터 사무총장 총 9명으로 구성됐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7월 24일 공론화위원회가 출범하였다. 공론화위원회는 시민배심원단의 선출 방법과 공론조사에서 확인해야 할 쟁점들을 결정할 것이다. 또한 쟁점별 내용을 발표할 전문가를 선정할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공정하게 객관적으로 진행될 수 있기 바라며 이번 기회에 그간 닫혀 있던 공론장이 열려 시민배심원단을 넘어 모든 국민이 이 사안에 관심을 갖고 자신의 입장을 활발히 개진할 것을 기대해본다. 

우리는 흔히 여론조사란 말을 많이 들어왔다. 그런데 여론조사는 조사대상이 되는 쟁점에 대해 찬반 양쪽 의견이 있을 때 그 두 의견을 균형 잡힌 방식으로, 또 정보를 충분하게 제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응답자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양도 다르고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또는 한 쪽의 정보만 일방적으로 전달받아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있게 되기 때문에, 조사결과가 타당하거나 신뢰할 만하지 않다. 

공론조사는 찬반 양쪽의 견해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균형 잡힌 방식으로 공정하게 제공하고 시민들이 나름대로 숙고하고 판단할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한 후 의견을 묻는 조사 방식을 말한다. 공론조사는 1988년에 미국 스탠퍼드 대학 제임스 파시킨 교수가 고안한 방법인데, 대표성 있는 시민이 탈핵과 같은 특정 이슈를 둘러싼 상반된 시각과 주장을 균형 있게 학습한 뒤 서로 토론을 통해 형성한 공론을 확인하는 조사 방식이다. 

시민배심원단이 아무런 학습 없이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 토론회를 통해 전문가들로부터 전문적인 지식을 학습하고 대화하며 소통하고 상호토론한 뒤 나름의 판단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절차로 일반시민이 결정을 내리는 데 대해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언론을 통해 퍼지고 있다. 만약 이런 절차가 부당하다거나 부적절하다면 누가 결정해야 할까? 전문가들이 결정해야 할까? 

05786067_P_0.JPG » 6월 9일 일본 후쿠시마현 후쿠시마제1원전에서 도쿄전력 관계자가 2011년 후쿠시마원전 사고 때 수소폭발로 지붕이 날아간 원자로 1호기를 취재진에게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후쿠시마공동취재단

지금 일본을 보라. 후쿠시마 사고에 대해 전문가들이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지. 아무런 책임을 지고 있지 않다. 사후복구비용이나 보상금, 누가 부담하고 있는가? 모두 국민 세금으로 지원하거나 도쿄전력의 전기를 쓰는 소비자들이 부담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30㎞ 이내 거주자들 10만 명 이상이 아직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로 인해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식품을 섭취하지나 않을까, 바람이나 비에 방사성 물질이 섞여 있어 건강에 해가 되지나 않을까 누가 노심초사했나? 모두 일반시민이다. 위험을 감내하거나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사람, 모두 일반시민이다. 그러니 일반시민이 결정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될까?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것이 민주공화국의 기초이다. 시민은, 국민은 이 중대한 사안을 결정할 권리가 있고 또 그래야 할 책임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참여민주주의적 방법이다. 전문가들은 정책을 결정하는 주체가 아니다.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그들이 감당해야 할 역할이다. 이 부분을 착각하면 안 된다. 

또 한편으로는 대의민주주의를 택한 만큼 국회가 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마도 결국은 국회가 법을 제정하거나 개정하는 주체이니 결과적으로는 국회의 결정이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참여 민주적이고 직접민주적인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 더욱 민주주의 정신에 부합한다. 만약 시민의 정책참여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비민주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공론화위원회에 에너지 전문가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비판이나 이러한 공론화 과정에서 전문가가 배제된다는 비판도 있는데, 이는 온당하지 않다. 공론화위원회의 목적은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여부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아니다. 

이 기구는 시민배심원단을 선정하고 공론조사를 설계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할 기구이기에 오히려 그런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중립적이고 공정한 인사로 구성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래서 찬원전, 탈원전 진영 모두가 동의하는 인문사회, 과학기술, 조사통계, 갈등관리 분야 전문가들로 위원을 선발했다. 

에너지 전문가들, 특히 찬원전에서 강조하는 원자핵공학자들의 참여는 배제되기는커녕 공론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탈원전 측과 함께 찬원전 측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정보가 공론조사와 시민배심원단의 판단에 주요한 기초자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05799291_P_0.JPG » 7월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안전한 세상을 위한 신고리 5, 6호기 백지화 시민행동 발족식''에서 참석자들이 원전없는 미래를 요구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공론화위원회의 활동에 대해 벌써 사회 일각에서는 우려와 함께 신뢰 무너뜨리기, 흔들기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공론화위원회 출범 첫날, 예전에 노무현 정부가 시도했던 사패산 터널이나 천성산 터널 공론화 시도의 실패사례를 꺼내 들며 이번 공론화 또한 실패할 가능성이 큼을 예단하는 기사들도 있었다. 

하지만 예전의 공론화 방식과 지금은 결이 다르다. 예전의 시도에선 찬반 양쪽 전문가들이 동수로 위원회에 참가하였을 뿐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한 공론화를 시도한 것은 아니었다. 전문가들이 논의의 과정에서 자신의 주장을 굽히거나 철회하는 일은 거의 없으니 그런 접근은 성공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으며 일반시민의 참여와 숙의가 주요한 요소로 작용한 것도 아니다. 지금의 시도와 같지 않기 때문에 비교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운데도 그렇게 비교하는 것은 왜곡과 호도일 수 있다. 

이제까지 우리 사회에선 원전정책과 관련해서 공정한 게임의 법칙이 작동하지 않았다. 찬핵과 탈핵 두 진영의 전문가들이 일반시민 앞에서 투명하게 자기주장의 논거를 공개하며 자기 입장을 전할 동등한 기회를 갖지 못했다. 사실 찬핵 진영 목소리만 일방적으로 넘쳐났을 뿐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이나 원자력문화재단이 막대한 홍보비로 언론매체를 통해, 또 다양한 연구센터의 지원을 통해 광고작업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민배심원과 공론조사 방식에서는 양측 전문가들이 시민들을 대상으로 의견이 맞서는 쟁점에 대해 근거를 분명히 제시하면서 자기주장을 자세하게 발표하고 설득할 기회를 공정하게 갖게 된다. 배심원들은 양측의 주장을 모두 듣고 학습하면서 상식과 통찰에 근거해서 숙의를 거쳐 판단을 내리게 된다. 

우리는 지금 에너지 정책 사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의 에너지정책은 소수의 전문가와 관료, 국회의원들이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어 왔다. 일반시민은 물론 지방정부조차 에너지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이런 일방통행식 에너지정책의 추진으로 많은 사회갈등이 빚어졌다. 

에너지는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재화이자 서비스이다. 하지만 다양한 형태의 비용을 요구한다. 우리나라 에너지정책이 그간 공급안정성과 신뢰하기 어려운 불확실한 단기적 경제성에 기초해서 결정됐는데,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관련된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환경친화성과 형평성, 민주성, 미래 세대에 대한 배려를 포함한 윤리성 등의 가치를 기반으로 공론화 과정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결정되어 나가야 한다. 이것이 우리 역사의 발전이며 우리에게 이 땅을 빌려준 미래 세대의 권리를 온전하게 보장하는 것이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환경과 공해연구회 운영위원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최근기사 목록

최근글

환경사진

인기글

최근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