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 아이스크림과 민주주의, 벌링턴 시를 가다

김찬국 2017. 09. 05
조회수 3264 추천수 1
풀뿌리 민주주의와 재생에너지의 만남, 미국 버몬트 주 벌링턴 시
시민 참여와 상향식 의견수렴 없는 MB식 환경정책은 엉터리

bj6-876.jpg » 재생에너지만을 사용하는 벤앤제리 아이스크림 공장은 풀뿌리 민주주의와 기업이 결합한 좋은 사례이다. 태양광 패널과 전기차가 있는 매대의 모습. 솔라드라이브

버니 샌더스와 어느 아이스크림 가게의 태양광 발전 

그 도시의 한복판에는 지역 소상공인들과 시민들이 힘을 모아 협동조합으로 운영하는 시티 마켓이 있다. 이런 지역 중심의 경제 정책에 힘입어 인구 4만 여명의 작은 도시에서 출발하여 미국 전역으로 퍼진 커피, 핫도그,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 이 도시에서 사용하는 전력은 미국 최초로 100% 재생에너지로부터 생산된다. 이 도시의 유명 아이스크림 공장에는 커다란 태양광 설비와 함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담긴 표현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 버몬트(Vermont) 주의 벌링턴(Burlington) 시에서 만날 수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미국 동부의 버몬트 주나 그 안에 있는 벌링턴 시를 소개하려면, 아무래도 2016년 미국 대선에 민주당 후보 경선에 참여하며 진보적 정책으로 돌풍을 일으킨 버나드 ‘버니’ 샌더스(Bernard ‘Bernie’ Sanders, 1941~)를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정치 이력은 벌링턴 시장(1981~1989)에서 출발하였고, 버몬트 주를 대표하는 연방 하원의원(1991~2007)을 거쳐 현재 연방 상원의원(2007~)으로 활동하고 있다. 
     
b1.jpg » 2016년 미국 대선 당시의 버니 샌더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벌링턴 시의 지역 소상공인 중심의 경제 정책 

인구 4만 여명의 작은 도시인 벌링턴 시가 우리나라에 몇 차례 소개되는 적이 있는데, 주로 지역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시티 마켓을 통해서이다(2016.6.10. KBS <명견만리-660만 골목 사장님의 미래>편 등). 대형마트의 확산으로 지역 골목 상권이 위축되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지역 소 상 공업이 활발해지는 방식이 무엇인지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벌링턴 시는 2002년 대형마트의 도심 진입을 허용하는 대신, 지역 내 소상공인과 시민들로 구성된 협동조합이 시티 마켓을 운영하게 하였다. 2016년 기준 1만1671명의 회원의 참여하는 시티 마켓은 연 매출 4100만 달러(약 470억 원)에 달하여 미국 내 협동조합 단일매장 중 가장 큰 규모이다. 무엇보다 전체 매출에서 지역 생산물이 39%를 차지하여 지역 경제에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이 크다. 

b2.jpg » 오니 언 강 협동조합(Onion River Co-op)이 운영하는 벌링턴 시내의 시티 마켓(City Market) 전경.

b3.jpg » 시티 마켓 내부 모습.

벌링턴 시는 시티 마켓 외에도 다양한 중소상공인 지원 정책을 운용하고 있다. 그래서 이 작은 도시에서 시작하여 미국 전역에 이름을 알린 브랜드가 커피(그린 마운틴 커피), 핫도그, 베이글, 아이스크림 등 적지 않다.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지역 경제 정책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래 소개할 벤앤제리 아이스크림 역시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벤앤제리 아이스크림의 태양광 발전 

미국을 대표하는 아이스크림 브랜드 중 하나인 벤앤제리(Ben & Jerry’s)는 벤과 제리 두 청년이 1978년 벌링턴에서 시작한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로 출발하였다. 벤앤제리는 지역 내 농장에서 생산된 원유와 유전자변형생물체(GMO)를 사용하지 않는 원료를 공정거래 방식으로 구매하여 사용한다. 또한 수익 중 일부를 지역 사회와 환경, 평화를 위한 활동에 환원하는 경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factory-tour-entrance-779x400.png » 벤앤제리 아이스크림 공장 모습. 벤앤제리

벌링턴 교외에 있는 이 아이스크림 공장에 들어서면 먼저 태양광 발전 설비가 넓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재생에너지인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력을 사용하는 것은 이 기업의 경영 원칙에도 부합한다. 이 브랜드의 많은 아이스크림 중 ‘아메리칸 드림’(Americone Dream)의 수익 일부는 상이군인 등을 지원하는 데 사용되고, 물고기 모양의 쿠키가 들어간 ‘피쉬 푸드’(Phish Food) 아이스크림의 수익은 인근 샴플레인 호수의 생태계 보호에 쓰인다. 물론 버몬트 주민인 두 청년 창업자가 가진 훌륭한 기업가 정신에도 박수를 보내야겠지만, 중소상공인이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든 지역 주민과 지역 정치인들의 중요한 역할에도 주목해야겠다. 
     
b4.jpg » 벌링턴 교외에 있는 벤앤제리 아이스크림 공장의 태양광 발전 설비.

이 아이스크림 공장 내부에는 자신들이 아이스크림을 만드는데 적용하는 경영 원칙과 함께 민주주의를 향한 신념을 드러내는 문구를 구석구석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민주주의는 모든 이들을 위해 일할 때만 제대로 작동한다(DEMOCRACY only works when it works for EVERYONE).” “돈이 권력을 가질 수는 있지만 투표는 할 수는 없다(MONEY may talk but it can’t VOTE).” 아이스크림 회사와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 아이스크림과 투표. 우리에게 얼마나 생소하고 연결하기 어려운 조합인가. 하지만 이 지역에서 시작한 기업으로서는 경영 활동의 원천이자 지향이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었을 것이다. 

b5.jpg » 벤앤제리 아이스크림 공장의 내부 모습.

b6.jpg »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를 나타내는 문구(DEMOCRACY only works when it works for EVERYONE).

벌링턴 시, 미국 최초의 100% 재생에너지 도시 

벌링턴 시에 공급되는 전력은 모두 재생에너지로 생산된다. 반경 100㎞ 이내에서 나오는 폐목재 칩 1800t(2016년 기준)으로 맥닐 화력발전소를 가동하고, 위누스키 강의 수력발전과 조지아 산에 있는 네 기의 풍력 터빈, 공항 등에 있는 대규모 태양광 발전을 통해 미국에서 재생에너지원으로 생산된 전력만을 공급하는 첫 번째 도시가 되었다. 지역의 환경적 요건을 잘 활용하여 지난 8년간 전력비용의 상승도 전혀 없었다. 

물론 버몬트 주에 있는 벌링턴 시는 우리가 사는 곳보다는 재생에너지를 활용하기 좋은 여건임이 틀림없다. 버몬트라는 이름 자체가 녹색 산(green mountain)이라는 의미를 갖는 만큼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풍력과 수력발전에 유리하다. 목재 생산과정의 부산물인 나무 칩도 풍부한데, 그냥 두어 자연에서 분해되어도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에 화력발전에 사용하기에도 좋은 여건이다. 

그렇다고 벌링톤 시가 이룬 성과가 거저 주어진 것은 아니다. 버몬트 주는 1972년부터 양키 핵발전소(Yankee nuclear power station)가 비교적 최근인 2014년까지 운영되다가 2015년부터 영구 폐로된 곳이다. 또한 버니 샌더스가 시장으로 있을 당시, 맥닐 화력발전소를 가동하는 대신 기존의 석탄 화력발전소를 폐쇄하는 결정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벌링턴의 시장을 지낸 샌더스를 비롯한 한두 명의 의식 있는 정치인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을 지지한 상식을 갖춘 시민들의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벌링턴의 전력 생산은 지역 주민이 주도하는 풀뿌리 민주주의 방식인 벌링턴 전력 커미션(Burlington Electric Commission)에서 자체적으로 결정하여 시장의 임기와 무관하게 추진한다. 공급 차원의 변화와 함께 에너지 소비를 줄이려는 시민들의 노력 역시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왜 ‘환경’은 (풀뿌리) 민주주의와 연결되어야 하나? 

04092215_P_0.JPG » 2010년 11월 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 12차 녹색성장위원회 보고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신재생 에너지 정책보고를 듣는 중 생각에 잠겨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녹색성장’을 이루려고 한 정책 시도가 사실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이명박 정부에서 시도한 핵발전소 증설과 수출, 4대강 사업, 태양광 단지 등에 ‘환경’을 고려한다는 명분이 늘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지역에 어떤 방식의 에너지 생산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나 주민 참여가 빠진 채로 숲을 베어내고 들어선 대규모 태양광 단지(‘산’으로 가는 태양광 단지, 빛바랜 ‘녹색’), 영향을 받게 될 주민을 배제한 의사결정을 통해 추진되는 풍력발전은 결코 민주적이지 않을뿐더러 많은 경우 환경적이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해상풍력, 왜 제주에선 되고 다른 지역에선 안 됐나). 

우리나라도 풀뿌리 민주주의에 관해서는 벌링턴 시에 못지않은 저력과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일찍이 무위당 장일순 선생(1928∼1994)을 비롯하여 생활협동조합의 오랜 전통이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으며, 시민들의 출자금으로 소규모 태양광발전소를 세워 지역에 적용 가능한 에너지 대안 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2011년 과도한 재정 부담을 이유로 발전차액지원제도(Feed In Tariff, FIT)를 폐지하고, 이듬해 신재생 공급의무화제도(RPS)로 변경하면서 이러한 소규모 태양광발전소가 많은 어려움을 겪은 것 또한 사실이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의견 수렴이 결핍된 하향식 시도들은 환경을 고려한다는 허울 좋은 이름을 붙이더라도 충분하지 않을 때가 많다. 적어도 이 점에 대해서는 우리가 지난 기간 동안 충분히 경험하였다. 결국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과 민주적 논의 과정이 빠진다면 진정한 환경에 대한 고려로 충분한지 반문해보아야 한다. 

‘환경상식 톺아보기’를 통해 하려던 이야기 

05819459_P_0.JPG » 28일 오후 울산 KTX울산역 역사 회의실에서 신고리5,6호기 백지화 울산시민운동본부 회원들과 신고리5,6호기 공론화위 위원들이 간담회를 열어 김지형 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울산/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 2014년 겨울 이후 ‘환경상식 톺아보기’를 통해 환경에 대한 상식적인 생각을 나눈 지 벌써 3년이 되어간다. 지금까지 여기서 나눈 주제는 삼성-허베이스피릿호 기름유출 사고 , 가습기 살균제 사태, 발암물질 배출, 핵발전소 , 4대강 사업 등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았던 것이 있다면,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고려와 우리 사회에 대한 깨어있는 관심이 환경에 관한 논의의 밑바탕에 항상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라는 버니 샌더스를 유력 정치인으로 키워낸 벌링턴 시민, 버몬트 주민만큼이나 우리나라의 풀뿌리 민주주의가 성숙해지는 시기라고 믿고 싶다. 마침 새로운 헌법이 만들어지게 된다면, 지방자치 정신이 강화되고 환경권이 더욱 잘 드러난다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내가 사는 지역의 대표(국회의원, 시장, 시도의원 등)들이 환경과 사회에 어떤 견해를 가졌는지 연락하여 묻고, 방문하여 듣는 시민의 노력이 필요할 수 있다.

물론 사람, 지역, 경제, 환경에 대한 책임을 지는 정치인이나 기업이 늘 눈에 띄는 건 아닐 수 있다. 오죽하면 세금을 제대로 내고 갑질하지 않고 노동자들을 제대로 대우하는 기업을 청와대에 초청하려다 기업 순위 200위를 벗어난 회사를 찾아야 했을까 생각해 본다. 마찬가지로 사람과 환경,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따져보고 괜찮은 정치인과 기업을 어떻게든 찾아내어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 주변을 둘러봐도 정 없다면 어떻게든 만들어내어야만 우리 사회의 미래가 조금씩 밝아지지 않겠는가?

글·사진 김찬국/한국교원대학교 교수, 환경과공해연구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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