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해진 애벌레, ‘쉭쉭’ 공기 뿜고 몸 뒤틀어

이강운 2018. 07. 07
조회수 1984 추천수 0
소서에 겨울나기 준비 대왕박각시 애벌레
10㎝ 넘는 덩치 큰 애벌레의 경고에 ‘깜짝’

4-1.jpg » 대왕박각시 애벌레는 본격적인 여름 들머리인 소서에 땅속에서 애벌레로 겨울을 날 준비에 들어갔다.

바람이 불어 산을 뒤흔든다. 미처 따먹지 못해 까맣게 달려있던 오디가 바람에 흔들려 툭툭 떨어져 발에 밟히고, 진한 향을 내던 밤나무 꽃이 길에 수북이 쌓였다. 맛 좋았던 오디도 예뻤던 밤나무 꽃도 떨어지고 나니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됐다. 오늘은 ‘작은 더위’라 불리는 소서지만 장마 뒤끝이라 푹푹 찐다. 본격적으로 더워질 것이다. 

봄과 함께 깨어나 발육을 시작했던 산왕결물결나방 애벌레와 대왕박각시 애벌레가 어느새 겨울나기 준비를 하고 있다. 알에서 깨어나 머리와 배 끝부분에 필라멘트처럼 생긴 꼬불꼬불한 긴 돌기를 붙이고 몸집을 커 보이게 하더니 마지막 애벌레 시기가 되자 이제 다 컸다고 돌기를 벗어버린다. 대왕박각시 애벌레도 땅속으로 들어가기 직전, 마지막 단계에는 땅 색깔과 어울리는 진한 갈색으로 체색을 바꾸고 더욱 날카로워진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10㎝가 넘는 거대한 몸을 격렬하게 뒤틀고 쉭쉭 공기 내뿜는 소리로 깜짝 놀라게 한다. 산왕결물결나방 애벌레와 대왕박각시 애벌레가 네 번의 껍질을 벗고 번데기를 틀었다. 

1.jpg » 어린 산왕물결나방 애벌레의 머리와 배끝에는 커 보이게 하는 돌기가 나 있다.

2.jpg » 돌기를 벗어버리고 번데기 준비를 하는 산왕물결나방 애벌레.

3.jpg » 산왕물결나방 번데기.

참나무산누에나방, 긴꼬리산누에나방도 2막으로 넘어간다. 엄청나게 과식을 하더니 며칠간은 먹는 양이 급격히 줄고 움직임이 적어지면서 나뭇잎 여러 개를 이어 붙여 포대기 싸듯 자신의 몸을 감싸 동그란 형태의 고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약 스무 시간 이상 고치를 만들어야 하므로 에너지도, 시간도 많이 들지만 튼튼한 집을 지어 그 속에서 번데기가 되면 생존 확률이 훨씬 높기 때문에 수고를 마다치 않는다. 그동안 큼지막하여 무지막지하게 먹어대던 애벌레들의 먹이가 되느라 여기저기 몸 일부를 잘라주던 복숭아나무와 쥐똥나무 그리고 참나무와 오리나무도 조금 편해졌다. 

5.jpg » 참나무산누에나방 애벌레.
 
6.jpg » 참나무산누에나방 고치.
 
7.jpg » 긴꼬리산누에나방 애벌레.
 
8.jpg » 긴꼬리산누에나방 고치.

5월 27일부터 6월 18일까지 약 20일간 붉은점모시나비가 산란을 마쳤다. 일주일의 불같은 삶이었지만 강하고 탄탄한 알을 낳고 번식을 끝냈다. 여기저기 낳은 알을 모두 수거해 소독한 나뭇잎에 한 알 한 알 정성스럽게 붙인다. 몇 해 전인가 겨울에 연구소에 방문했던 환경부 차관의 말이 떠오른다. “참 기가 막히네요! 암컷 나비가 어떻게 알고 이렇게 순서대로 차곡차곡 열 맞춰 알을 낳았을까?” 농담인 줄 알았는데 눈치를 보니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 얼른 “알 수준에서 전체 개체수와 부화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알을 하나하나 우리 연구원들이 모두 붙인 것이다”라는 대답을 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9.jpg » 낙엽에 붙인 붉은점모시나비 알. 나비가 아니라 연구원이 여기저기 낳은 알을 가지런히 모아 놓은 것이다.

며칠째 내리퍼붓던 장맛비와 후텁지근한 날씨 덕분에 불쑥 올라온 발그레한 연꽃 꽃봉오리 끝에 중간밀잠자리가 무심히 앉아 졸고 있다. 흔들리는 넓은 연잎 푸른 물결 사이로 헤엄치는 물고기와 올챙이를 잡아먹으려 왜가리가 외다리로 서서 노려보고 있다. 멈춘 듯 조용히 서 있는 그림이 사실은 먹고 도망가는 치열한 삶터이지만 풍경은 한가롭다. 

10.jpg » 연꽃봉오리에 앉아있는 중간밀잠자리.
 
11.jpg » 왜가리.

6월 10일 물장군이 짝짓기와 산란을 시작했다. 낳은 알이 22일 부화했으니 붉은점모시나비가 산란을 마친 후 딱 사흘의 쉴 틈을 주었다. 멸종위기종인 붉은점모시나비와 물장군이 동시에 살려달라 했으면 우리가 멸종했을 텐데 시차를 두고 봐 주는 게 기특하다. 

물장군이 잔뜩 낳아준 알에서 깨알 같은 애벌레들이 먹성을 자랑하며 한창 커가는 때라 먹이인 올챙이나 아주 작은 물고기를 보충해주고, 죽은 물고기 시체와 배설물을 치워주고, 수질 악화를 막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 바닥 모래까지 바꿔 줘야 하는 강행군이 또 시작된다. 그나마 올해부터는 물장군 먹이를 공급할 수 있는 수련원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 줄 수 있어 다행이다. 

12.jpg » 물장군 알.

13.jpg » 올챙이를 잡아먹는 물장군 2령 애벌레.

연구소 맨 끝자락에 있는 수련원은 자체로 물이 나는 둠벙 지역이라 큰 웅덩이를 만들었을 뿐인데 딱 1년 만에 이렇게 다양해질 수 있는지 놀랍다. 무릎까지 오는 얕은 수심에 여름의 뜨거운 햇볕을 그대로 받아, 높은 수온을 유지하고 밑으로는 자체적으로 용솟음치는 물로 서늘하다. 물살이 빠르지는 않지만 늘 흐르며 깨끗하다. 반나절 담가두었던 통발에 들어온 생물들을 하나하나 펼쳐보니 생물 다양성이 놀랍다. 

물고기와 물고기를 잡아먹는 송장헤엄치게, 송장헤엄치게를 잡아먹는 물방개 애벌레와 장수잠자리, 왕잠자리 애벌레, 좀잠자리 애벌레 참 종류도 많다. 조그만 웅덩이도 이처럼 그냥 흐르는 대로 놔두면 안정된 생태계를 유지하며 수자원의 역할을 충분히 하는데. 물길을 막아서는 될 일이 없다. 

14.jpg » 물고기를 잡아먹는 송장헤엄치개.
 
15.jpg » 송장헤엄치개를 잡아먹는 물방개 애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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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jpg » 우화 중인 장수잠자리.

17.jpg » 왕잠자리 애벌레.

18.jpg » 좀잠자리 애벌레.

엊그제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 결과가 나왔다. 죽지도 않은 강을 굳이 살리겠다고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촘촘한 먹이사슬을 인간의 간섭으로 끊어놓은, 한마디로 재앙이었다는 결론이다. 애초에 거짓 근거와 속임수를 써서 강행했으니 당연한 귀결이지만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검증을 했다고 근거를 제시한 가짜 과학자, 엉터리 전문가를 그냥 넘겨서는 안 될 일이다. ‘확실하다, 옳다’라고 주장했던 근거를 다시 우리에게 설명하라 하고 그 근거를 들어야 한다. 최소한 전 국토를 재앙으로 몰아넣은 이유는 들어봐야겠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생물다양성의 보고가 된 수련원이 쏟아붓던 며칠 동안의 폭우로 제방이 많이 유실됐다. 떨어져 나간 제방을 수리하다 경운기가 7m 아래 벼랑으로 떨어지는 큰 사고가 났다. 천행으로 아무도 다치지 않았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하다. 

19.jpg » 수련원에 빠진 경운기.
 
20.jpg » 반딧불이 군무.

어젯밤 반딧불이가 허공을 가로지르며 떼 지어 하늘을 날았다. 

글·사진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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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한국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 국립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겸임교수. 저서로는 <한국의 나방 애벌레 도감(Caterpillars of Moths in Korea)>(2015.11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캐터필러>(2016.11 도서출판 홀로세)가 있다.
이메일 : holoce@hecri.re.kr      
블로그 : http://m.blog.naver.com/holoce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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