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사체가 굶주린 북극곰을 구할까

조홍섭 2019. 02.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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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로 먹이 사냥 힘들어져, 고래 사체는 중요한 대체식량이지만…

07.jpg » 2014년 7월 2일 스발바르 제도에서 다 자란 북극곰이 흰부리돌고래 사체를 먹고 있다. 이 돌고래는 4월 목격된 북극곰이 먹던 돌고래와 한 무리에 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뮤엘 블랑크, ‘극지 연구’ 제공.
 
북극에는 왜 북극곰만 살고 남극에는 펭귄만 있을까. 얼음에 덮인 비슷한 환경과 기후이면서 북극에는 펭귄이 없고 남극에는 ‘남극곰’이 살지 않는다. 

찰스 다윈 같은 자연주의자의 머리를 아프게 하던 생물지리학의 유명한 질문이다. 물론 창조론이 득세하던 당시에나 난제였지, 요즘엔 진화론으로 설명한다. 

북극에 펭귄이 진화하지 못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유라시아 대륙에 북극곰, 북극여우, 늑대, 밍크 등 육상 포식자가 득실거린다는 사실이다. 날지 못하는 새와 그 알은 만만한 먹잇감일 것이다. 

반대로 남극 주변에는 육상 포식자가 거의 없다. 이런 가설을 증명하는 사건이 실제로 있었다. 19세기 유럽인들이 북극에 펭귄을 풀어놓은 적이 있다. 펭귄은 북극의 날씨는 좋아했겠지만 모두 포식자에 잡아먹혀 사라졌다.

피난 못 간 불곰이 북극곰 돼

그렇다면 북극곰은 어디서 왔을까. 지금까지 정설은 불곰의 조상이 북극곰의 조상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불곰은 잡식성이다. 동면에서 깨어나 극지방의 여름에 풀과 열매를 뜯어먹고 가을이면 산란하러 올라오는 연어로 배를 채운다. 어쩌다 걸려드는 순록 같은 대형 동물을 사냥하기도 하지만 죽은 동물의 사체를 먹는 일이 더 많다. 

반대로 북극곰은 완전한 육식성이다. 식단의 대부분은 북극해에 사는 물범이다. 작은 고래를 사냥하기도 하지만 죽은 고래를 더 좋아한다.

01.jpg » 북극곰이 고리무늬물범을 사냥해 먹고 있다. 물범은 겨울 동안 북극곰의 주요 식량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불곰은 어떻게 북극곰이 됐을까. 2014년 과학저널 ‘셀’에 실린 중국, 덴마크, 미국 등 국제연구진의 논문을 보면, 34만~48만 년 전 두 종의 조상이 갈라져 나와 별개의 종으로 진화했다. 불곰과 북극곰의 유전자에 그런 진화의 기록이 남아있다. 

그것이 가능했던 건 250만 년 전부터 북반구가 4만~10만 년 간격으로 빙기와 간빙기가 번갈아 찾아오는 대빙하 시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날씨가 따뜻한 간빙기 동안에는 그린란드 남서부가 숲으로 덮이기도 했다. 그린란드 얼음을 시추했더니 그 시기의 얼음에서 전나무 꽃가루가 나온 것이 그 증거이다. 

이런 기후 덕분에 불곰은 북극 근처까지 삶터를 넓혔다. 그런데 불곰의 시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다시 빙하기가 찾아오자 남쪽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가 일단의 불곰 무리가 퇴각하지 못하고 갇혀 장기간 다른 불곰으로부터 고립됐다. 다행히 이들 가운데 일부는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국제연구진은 불과 수십만 년이란 진화론적으로 아주 짧은 기간 동안 불곰은 전혀 다른 종인 북극곰으로 진화했다고 밝혔다.

02.jpg » 북극곰과 유전적으로 매우 가까운 알래스카 불곰.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불곰과 북극곰은 외모와 습성, 행동이 전혀 다르지만 유전자는 짧은 진화과정을 반영해 그리 다르지 않다. 북극곰의 유전자 2만개 가운데 불과 20개만 특별했다. 

이 가운데 9개가 사람의 심장질환과 관련된 유전자였다. 이들 유전자는 열매와 뿌리 등 ‘건강식’만 먹던 불곰이 지방 덩어리인 식사를 하면서 선택된 것이다. 

북극곰은 몸무게의 절반이 지방이다. 새끼에게 먹이는 젖의 지방 함량은 27%에 이른다. 북극곰은 먹이 지방의 97%를 소화하는 능력이 있다. 이처럼 지방 중심의 식사를 하면서 북극곰이 높은 콜레스테롤 농도와 동맥경화로 목숨을 잃지 않는 비결은 혈액에서 지방을 걸러내 세포로 보내는 유전자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폭식과 단식 되풀이하는 삶

북극곰이 이처럼 지방 의존 동물이 된 데는 북극의 환경이 작용했다. 불곰은 먹을 게 없는 겨울 동안 잠을 자지만 북극곰은 북극 바다가 얼어붙어 있어야 사냥이 가능하다. 

3~6월 동안은 가장 왕성하게 먹이를 찾는 시기이다. 바다가 얼면 물범은 그 위에 올라와 새끼를 낳는다. 물범은 바다에 뚫어놓은 숨구멍을 통해 물고기를 잡아먹으면서 눈 더미에 숨겨놓은 새끼를 기른다. 북극곰은 숨구멍 옆에서 잠복하거나 새끼를 찾아내 사냥한다. 

이 시기에 지방을 비축해 놓지 않으면 삶이 위태로울 수 있다. 북극곰은 장기간의 폭식과 단식이 이어지는 험난한 삶을 산다. 얼음이 녹으면 재빠른 물범을 잡을 길이 없다. 다시 얼음이 얼기까지 7~10월은 쫄쫄 굶는 기간이다.

03.jpg » 스발바르 제도에서 발견된 비쩍 마른 북극곰. 기후변화로 인한 먹이 감소 등이 원인으로 추정된다. 안드레아스 웨이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북극곰은 기후변화로 더워지는 지구의 생태계 위기를 상징한다. 이 카리스마 넘치는 동물이 살지 못한다면 지구가 어떻게 생명이 넘치는 행성이 될 수 있을까. 

북극은 지구의 다른 곳에 견줘 온난화 속도가 2배 빠르다. 이대로라면 2040년이면 북극해의 얼음은 여름 동안 모두 사라진다는 예측도 있다. 

갈수록 줄어드는 해빙 탓에 물범을 사냥하느라 장거리를 걷고 헤엄치면서 에너지를 모조리 소모해 비쩍 마른 상태로 익사한 북극곰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그 동물의 사인이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질병이나 동료와의 다툼 등 기후변화 말고 죽음에 이른 다른 이유를 대라면 수백 가지는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논란을 불식시킨 연구결과를 미국 지질조사국 연구자들이 내놓았다. 이들은 2014~2016년 동안 알래스카 북극 해안인 보퍼트 해 얼음 위에서 암컷 북극곰 9마리를 포획해 혈액을 채취하는 한편 위치와 활동을 추적하고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목걸이를 달았다. 열흘 뒤 이들을 다시 붙잡아 분석했다.

북극곰의 목걸이에 달린 캠코더로 촬영한 물범 사냥 모습. 미국 지질조사국 제공

2018년 2월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이들의 논문을 보면, 물범 사냥이 절정에 이르는 4월이었는데도 북극곰 9마리 가운데 5마리는 체중이 불기는커녕 10% 이상 줄었다. 한 마리는 체지방은 물론 근육까지 줄었는데, 이 기간에 아무것도 먹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나머지 북극곰은 닷새에 한 마리꼴로 물범 성체를 사냥했다. 2마리는 고래 사체로 배를 채웠다. 기후변화는 북극곰을 ‘에너지 적자’ 상태로 만들고 있음이 실증적으로 드러났다. 이제 북극곰의 몰락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관련 기사: 사냥철 북극곰 절반 이상이 열흘에 체중 10% 감소).

고래 사체 하나가 물범 1300마리꼴

그러나 북극곰에게 한 가지 구원의 길이 있다. 바로 고래이다. 북극의 얼음이 녹아 사냥 거리가 사라졌을 때 고래가 온다. 북극해의 찬물에는 영양물질이 풍부하고 먹이그물을 따라 플랑크톤과 물고기가 많기 때문에 고래들이 지방을 축적하려고 몰려든다. 

북극곰은 틈나는 대로 고래를 사냥한다. 노르웨이 북극연구소 연구원들은 2014년 4월 스발바르 제도에서 북극곰 한 마리가 죽은 흰부리돌고래를 뜯어먹는 모습을 발견했다. 당시 바다는 언 상태였는데 사체 옆에는 고래가 이용한 것으로 보이는 숨구멍이 있었다. 

연구원들이 과학저널 ‘극지 연구’에 보고한 논문을 보면, 3월까지 얼지 않은 이 바다에 돌고래가 찾아왔다가 4월 17일 갑자기 불어닥친 폭풍에 유빙이 몰려와 해역이 얼음으로 뒤덮였다. 돌고래들은 탈출구를 찾으면서 얼음이 얼지 않도록 숨구멍을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돌고래 2마리는 얼음 위에서 북극곰에 먹힌 상태로 발견됐고 여름에는 익사한 돌고래 7마리가 추가로 확인됐다(▶관련 기사: 기후변화 쫓긴 북극곰의 새 먹이, 길 잃은 돌고래). 

연구자들은 북극곰이 고래를 숨구멍 옆에서 사냥했거나 질식사한 고래 사체를 끄집어내 먹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런 우발적인 먹이로 많은 북극곰이 살아남기는 힘들다. 그런데 고래 사체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북극곰의 생존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04.jpg » 2009년 스발바르 제도에서 대형고래의 사체에 몰려든 북극곰. 벌써 2달째 잔치가 계속되고 있다. 크리스턴 레이더 외 (2018) ‘생태학과 환경 최전선’ 제공.

크리스틴 레이더 미국 워싱턴대 극지과학센터 연구원 등 국제연구진은 과학저널 ‘생태학과 환경 최전선’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대형고래가 북극곰의 생존에 끼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연구자들은 북극곰이 잡아먹거나 사체를 청소하는 흰고래, 외뿔고래 등 소형고래 등은 소수 개체의 며칠 식량에 그쳐 북극곰 전체에 끼치는 영향이 적다고 보았다. 

이에 견줘 대형고래인 북극고래의 사체에는 2만2000㎏의 지방과 고기가 있는데, 이는 다 자란 고리물범 1300마리에 해당한다. 혹등고래 한 마리가 죽어 해변에 밀려오면 물범 420마리 분량의 식량이 된다. 실제로 2017년 러시아 축치해에 있는 랭글 섬에 북극고래 한 마리가 죽은 채 떠밀려 왔는데, 무려 180마리의 북극곰이 몰려들어 식사를 즐겼다.

05.jpg » 러시아 축치 해 랭글 섬에 떠밀려온 북극고래 사체에 180마리의 북극곰이 먹기 위해 몰려들었다. 크리스턴 레이더 외 (2018) ‘생태학과 환경 최전선’ 제공.

연구자들은 현재 북극해에 약 2만5000 마리의 북극고래와 2만 마리의 혹등고래가 산다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해마다 얼마나 많은 죽은 고래가 북극곰의 먹이가 될 수 있는지 추정했다. 죽은 고래는 대부분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는다. 그러나 약 10%는 뱃속에 가스가 차 떠오르며 파도에 떠밀려 해안에 닿게 된다. 고래의 사망률과 해안에 밀려올 확률을 고려해 계산하면 연간 대형고래 67마리가 북극 해안에서 북극곰의 먹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인간 활동이 출현하기 전 간빙기 때도 대형고래의 사체는 여름철 북극곰의 주요 먹이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포경 이전 북극해에는 수십만~100만 마리의 대형고래가 몰렸을 것이다. 가장 긴 간빙기였던 12만 년 전 살았던 북극곰의 어금니를 분석한 결과 육상이 아닌 전적으로 바다에서 먹이를 찾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06.jpg » 미래 세대도 이런 북극곰 모자를 볼 수 있을까. 아니면 대형 포유류 가운데 기후변화의 첫 희생자가 될까.

그렇다면 고래는 기후변화 시대의 북극곰을 구할까. 연구자들은 부정적이다. 이들의 결론은 이렇다. “과거 간빙기 때 대형고래의 사체는 물범을 사냥하기 힘들 때 북극곰의 생존을 도와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극에 얼음이 줄어드는 미래에도 고래 사체가 북극곰에게 영양분의 피난처를 제공해 줄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남획으로 고래의 개체수가 현저히 줄었고, 고래 사체를 모든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얼음의 감소 속도가 북극곰이 여태껏 겪었던 어떤 시기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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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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