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에게 사진가는 접근하는 ‘포식자’

조홍섭 2019. 0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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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오는 사람보다 웅크리고 살금살금 다가오는 사진가 더 경계 밝혀져

512.jpg » 지난해 7월 대전의 한 호반새 번식지에서 느티나무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우는 호반새를 촬영하기 위해 200여 명의 사진가가 대형 망원렌즈를 장착한 사진기를 설치한 모습. 익명의 독자 제공

누구보다 새를 사랑하는 새 사진가는 드물고 멋진 새를 촬영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의 조심스러운 발걸음이 새들에게는 조용히 접근하는 포식자로 간주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케이틀린 슬레이터 오스트레일리아 디킨대 생태학자 등 오스트레일리아와 중국 연구자들은 최근 인기 있는 자연 여가활동으로 급속히 늘고 있는 새 사진촬영이 새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조사했다. 연구자들은 조류보호단체인 ‘버드라이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활동하는 새 사진가 639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하는 한편, 호주와 중국의 다양한 새 서식지에서 현장 실험을 했다.

조사 대상인 새 사진가들은 은퇴한 남성으로 고학력인 사람이 많았다. 이들은 고가의 촬영장비를 사고 종종 장거리 여행을 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도 있었다.

512 (1).jpg » 몽골에서의 탐조 활동. 소득 수준이 늘어나면서 자연 속에서 취미 활동을 새를 관찰하는 사람이 많다. 한겨레 자료 사진

조류보호단체 소속인 만큼 이들은 자신들의 활동이 새 보전에 기여한다고 굳게 믿었다. 희귀하거나 지금까지 촬영하지 못했던 특별한 새를 촬영하러 나서는 경우가 많았고, 촬영한 사진을 공유하면서 성취감·자부심·명성을 얻었다.

연구자들은 새 사진가들이 새의 보전과 복지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도 “사진촬영이 새에게 끼치는 교란은 사소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사진가들은 새의 교란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새들이 눈에는 사진가들이 어떻게 보일까. 연구자들은 우선 새 사진가들이 새에 접근하는 전략에 주목했다. 이른바 ‘사진가 지혜’이다.

탐조가들은 쌍안경이나 스포팅 스코프로 멀리서 새들을 관찰하며 종을 구분한다. 그러나 사진가들의 카메라는 고성능 렌즈를 장착해도 이보다 배율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새에게 가까이 접근할 수밖에 없다.

512 (2).jpg » 탐조는 비교적 많은 사람이 멀리서 새의 종류를 구분하고 기록하지만 새 사진가는 홀로 또는 적은 수의 사람이 새에 근접하는 행태를 보인다. 한겨레 자료 사진

이때 사진가들이 동원하는 전략이 바로 ‘사진가 지혜’이다. 새의 눈에 띄지 않도록 웅크리거나 엎드려 천천히 다가가고, 정면이 아닌 비스듬한 경로로 접근하며, 새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 것 등이 그 내용이다. 

그러나 현장 실험 결과 이런 지혜는 새들에게 거의 먹히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부분의 새는 사진가가 이런 식으로 웅크려 접근하면 카메라를 들지 않고 그냥 서서 접근하는 경우보다 훨씬 일찍 날아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사진가들은 표적을 향해 더 가까이, 더 집요하게 살금살금 접근하기 때문에 새들이 탐조가보다 더 포식자(사냥꾼)처럼 받아들인다”고 설명했다. 사냥총처럼 생긴 카메라 등 촬영장비와 접근하다가 종종 정지해 내는 셔터 소리도 공포를 부추긴다.

512 (3).jpg »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한 작은 마을에 낯선 검은등찌르레기를 보기 위해 외국에서까지 탐조객이 몰려들어 2억4000만원의 경제효과를 냈다. 제프리 고든 제공

연구자들은 “새 사진촬영, 탐조, 에코투어 등 새를 주제로 한 여가는 경제와 새 보전에 기여한다”며 “이렇게 생긴 수익 가운데 세계적으로 한 해에 1300억 달러가 보전 활동에 흘러들어 간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 새 관련 활동 가운데 새 사진촬영은 새에게 가장 큰 교란을 일으키는 형태”라고 지적했다.

새 사진촬영이 집중되는 시기가 새가 가장 민감한 번식기와 이동 시기이며, 희귀종과 멋진 종을 집중 부각해 교란을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

512 (4).jpg » 서해 연평도 인근의 한 무인도에서 번식한 저어새. 중국에서는 번식지의 저어새가 사진가의 교란을 받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평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무엇보다 새가 날아가기 전 촬영하려는 사진가의 행동은, 포획물이 사진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사냥꾼과 흡사해 새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중국에서는 저어새 번식지에서 가장 흔한 교란 요인이 새 사진가로 전체의 39%를 차지한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또 뉴질랜드에서는 사진가처럼 웅크린 채 천천히 움직이는 사람을 본 노란눈펭귄의 심장 박동수가 같은 거리에 서 있는 사람을 보았을 때보다 훨씬 빨리 뛴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연구자들은 “새 사진가들은 경제와 새 보전에 기여한다”며 “이들이 새들에게 끼치는 교란이 사소하지 않다는 것을 알리는 행동 지침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관련 기사: 자연 사진가의 예의-기다림과 배려). 이 연구는 과학저널 ‘생물학적 보전’ 최근호에 실렸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Caitlin Slater et al, Camera shy? Motivations, attitudes and beliefs of bird photographers and species-specific avian responses to their activities, Biological Conservation, https://doi.org/10.1016/j.biocon.2019.07.016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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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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