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영벌 ‘붕붕’ 진동이 블루베리 꽃밥 열어

조홍섭 2020. 09.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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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브 속 숨긴 꽃가루 열려면 강력한 진동 필요…감자, 토마토, 철쭉 등 2만 종 수분 이렇게

b1.jpg » 진동 가루받이를 하는 야생 벌. 꽃밥을 입으로 물고 몸을 수술 쪽으로 굽힌 뒤 전속력을 날개를 쳐 진동을 낸다. 꽃가루가 흩어져 튀어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보브 피터슨,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벌들은 날 때만 붕붕 소리를 내지 않는다. 꽃에서 꽃가루를 딸 때 더욱 큰 소리를 낸다. 진동의 힘으로 꽃밥 속 꽃가루를 떼어내는 동작이다.

벌들의 ‘진동 가루받이’ 비밀이 밝혀지고 있다. 꽃밥에 매달린 호박벌은 전투기 조종사가 경험하는 것보다 5배나 큰 힘을 내는 것으로 밝혀졌다.

널리 알려진 매개곤충인 꿀벌은 가루받이를 위해 진동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진동 가루받이를 하는 벌은 호박벌 등 뒤영벌을 포함해 전체 벌 종 수의 58%에 이른다. 작물의 가루받이에 야생 벌이 중요한 이유이다.

이들이 매개하는 식물은 2만 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는 토마토, 감자, 가지 등 가짓과 식물을 포함해 블루베리, 철쭉, 진달래 등 중요한 원예종이 다수 포함돼 있다.

b2.jpg » 뒤영벌이 토마토의 원뿔형 꽃밥에 앉아 진동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 스털링대 제공.

꽃가루는 단백질이 풍부해 벌이 애벌레를 기르는 소중한 먹이이다. 벌은 이 꽃 저 꽃에서 꽃가루를 모으는 과정에서 가루받이도 해준다. 그러나 식물로서도 꽃가루는 가루받이에 쓸 소중한 존재여서 먹이로 모두 빼앗겨서는 안 된다.

이 때문에 진동 가루받이를 하는 식물의 꽃밥은 독특한 구조로 진화했다. 튜브 모양의 꽃밥에 작은 구멍 하나와 길쭉한 틈이 하나 있을 뿐이다. 꽃가루도 단단히 붙어있다. 곤충이 안으로 들어와 꽃가루를 꺼내 가지 못하는 구조이다.

b3.jpg » 진동 가루받이를 하는 식물의 꽃밥에는 위의 작은 구멍과 옆의 가는 틈밖에 없어 꽃가루를 꺼내려면 후춧병을 흔들 듯 진동을 줘야 한다. 베아트리스 모아세,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여기서 꽃가루를 꺼내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꽃밥에 강력한 진동을 주어야 마치 후춧병을 적당히 흔들 때 후춧가루가 쏟아져 나오듯 꽃가루가 나온다. 뒤영벌 등은 주둥이로 꽃밥을 꼭 물고 몸을 꽃밥 쪽으로 활처럼 굽힌 뒤 사람 귀에 들릴 정도로 주파수가 높은 진동을 몇 번이고 낸다.

마리오 바예호-마린 영국 스털링대 교수팀은 벌이 비행과 방어를 위해서도 진동을 내지만 꽃가루를 확보하기 위한 진동이 이보다 훨씬 강하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밝혔다. 연구자들은 ‘실험생물학 저널’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진동 가루받이 때 벌이 내는 힘은 전투기 조종사가 겪는 중력가속도의 5배인 50G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들은 정밀한 레이저 진동측정계로 진동을 일으키는 벌의 가슴과 근육 진동을 쟀는데, 비행 때보다는 방어 때가, 방어보다는 꽃가루를 얻기 위한 진동이 강했다.

b4.jpg » 진동 가루받이를 하는 철쭉에 앉은 야생 벌. 베아트리스 모아세,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진동 가루받이 행동은 45차례나 독립적으로 진화했을 정도로 벌에게 중요하다. 그러나 왜 꿀벌에서는 이런 행동이 진화하지 않았는지 등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많다.

중요한 작물 생산에 꼭 필요하지만, 진동 가루받이는 농약에 취약하다. 바예호-마린 교수팀은 농토에 일상적으로 쓰이는 농도의 네오니코티노이드 살충제에 노출된 벌이 진동 가루받이로 획득하는 꽃가루 양이 살충제에 노출되지 않은 벌의 절반에 그친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2017년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실린 논문에서 “살충제에 노출되지 않은 벌들은 경험이 쌓이면서 꽃에 진동을 줘 더 많은 꽃가루를 얻는 방법을 습득했다. 그러나 살충제에 노출된 벌은 그런 학습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꽃가루 확보량은 비노출 벌의 47∼56%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b5.jpg » 블루베리의 진동 가루받이를 하는 뒤영벌. 이런 방식의 가루받이는 블루베리 생산의 양과 질 모두를 향상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반대로, 미국에선 진동 가루받이를 하는 야생 벌이 블루베리 생산량과 품질을 크게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버몬트대 연구자들은 2018년 과학저널 ‘농업, 생태계 및 환경’에 실린 논문에서 전동 칫솔로 뒤영벌의 진동 가루받이를 흉내 내 블루베리의 꽃가루를 확보해 일일이 솔로 가루받이를 한 결과 그렇지 않은 농장에 견줘 수확량이 12% 늘었을뿐더러 열매 크기도 12% 커졌고 열매 크기의 고르기도 11% 향상됐으며 수확 시기도 2.5일 일러졌다고 밝혔다.

인용 저널: Journal of Experimental Biology, DOI: 10.1242/jeb.220541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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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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