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물범은 동물플랑크톤을 하나씩 먹는다

조홍섭 2020. 11. 17
조회수 3363 추천수 0
매일 옆새우 4천여 마리 하나씩 잡아먹어…가장 맑은 호수서 물범 10만 마리 사는 비결

b1.jpg » 옆새우의 일종인 동물플랑크톤 ‘마크로헥토푸스 브라니키이’(오른쪽)가 바이칼물범의 주요 먹이로 밝혀졌다. 둘 다 이 호수의 고유종이다. 와타나베 유키 제공.

시베리아 중남부에 있는 바이칼 호는 세계에서 가장 깊고 담수량도 많은 경상도만 한 민물 호수이다. 2500만년 전 형성된 이 호수는 2500종에 이르는 동물의 절반이 지구에서 이곳에만 살 정도로 생태계가 독특하다(▶물범은 돌아왔지만…깊어지는 바이칼 호의 고민).

바이칼물범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민물에 사는 물범으로 이 호수의 최상위 포식자이지만 무얼 잡아먹는지 등 생태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이제까지 가장 유력한 설명은 이 호수에 가장 흔한 고유종 물고기인 골로먄카를 먹고 산다는 것이었다.

b2.jpg » 바이칼 호는 길이 636㎞, 너비 79㎞, 면적 3만㎢인 오랜 호수로 최고 수심은 1642m, 평균 수심 744m로 세계에서 담수 보유량이 가장 많은 호수이기도 하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그러나 일본 연구자들이 물범에 가속도 측정계와 비디오카메라를 부착해 연구한 결과 뜻밖의 사실이 밝혀졌다. 이들의 주요 먹이가 동물플랑크톤이며 물범은 호수에 잠수해 이들을 한 마리씩 쉬지 않고 잡아먹는다. 또 동물플랑크톤을 걸러 먹기 편하도록 물범의 어금니가 톱니 형태로 적응한 사실도 드러났다.

최상위 포식자가 먹이그물의 밑바닥에 있는 동물플랑크톤을 직접 잡아먹는 일은 매우 드물다. 또 대왕고래가 한 번에 수백t의 물과 함께 크릴 떼를 흡입해 수염으로 걸러 먹지만 바이칼물범은 크릴보다 작은 동물플랑크톤을 한 마리씩 쉬지 않고 잡아먹는다.

와타나베 유키 일본 국립극지연구소 교수 등은 17일 과학저널 ‘미 국립학술원 회보(PNAS)’에 실린 논문에서 “이번 연구결과는 고대 호수에서 포유류와 단각류가 이루는 독특한 생태적 관계를 보여준다”며 “환경 여건과 포식자의 적응으로 빠른 속도로 먹이를 잡아먹을 수 있다면 크릴보다 작은 생물도 수생 포유류의 중요한 먹이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b2-4.jpg » 이제까지 알려진 바이칼 호의 먹이그물. 물범의 주식이 골로먄카로 알려졌지만 옆새우류도 상당히 많이 사냥한다는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
 
물범의 먹이로 밝혀진 동물플랑크톤은 옆새우와 유사한 단각류 절지동물로 길이 2.3㎝, 무게 0.1g이다. 이들은 큰 무리를 지어 낮에는 깊은 호수 바닥에 머물다 밤에 호수 표층으로 나오는데 물범은 이때를 노려 사냥에 나선다.

연구자들이 측정한 한 물범은 특히 놀라운 속도로 사냥해 390초 동안 잠수하면서 2.5초에 한 마리꼴로 모두 154마리의 옆새우를 포식했다. 평균적으로는 한 번 잠수에 57마리 하루 평균 4300마리를 포획했다.

이빨고래나 다른 물범 가운데 동물플랑크톤을 한 마리씩 잡아먹는 사례는 드문 이유는 포획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얻는 것보다 훨씬 작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이칼 호의 물범은 왜 플랑크톤을 사냥하게 됐을까.

b3.jpg » 수십 미터 아래 호수 바닥까지 투명하게 보이는 바이칼 호는 유입되는 영양물질이 적어 대형 포식자를 많이 먹여 살리기에 충분한 에너지를 생산하지 못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바이칼 호가 유입되는 영양물질이 극히 적어 극단적으로 맑은 빈영양호라는 데 주목했다. 빈영양호는 에너지가 많이 드는 최상위 포식자를 지탱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런데도 바이칼 호에는 최상위 포식자인 물범이 8만2500∼1만5000마리의 큰 무리를 형성하며 살아간다. 연구자들은 그 비결이 “바이칼물범은 플랑크톤을 잡아먹는 물고기뿐 아니라 직접 11만t에 이르는 막대한 생물량을 보유한 동물플랑크톤을 직접 잡아먹음으로써 이런 한계를 극복한다”고 밝혔다.

b4.jpg » 바이칼물범은 다른 물범보다 작아 몸무게가 50㎏ 미만이다. 이는 호수의 빈영향 환경에 적응한 결과이다. 와타나베 유키 제공.

플랑크톤부터 시작해 여러 단계의 물고기를 거쳐 최상위 포식자에 이르는 먹이그물의 경로를 단축해 에너지 전달 효율을 끌어올렸다는 설명이다. 바이칼물범이 다른 물범에 견줘 가장 덩치가 작은 것도 이런 빈영양 환경에 적응한 결과라고 연구자들은 보았다.

물속에 잠수해 수많은 작은 먹이를 먹는 것은 보통 힘든 게 아니다. 무엇보다 옆새우를 삼킬 때마다 물을 함께 삼키는 문제가 심각하다. 바이칼물범은 이 문제를 어금니 형태를 톱니 형태로 바꿔 해결했다. 물범은 먹이를 사냥한 뒤 어금니의 톱니 사이로 물을 빼낸 뒤 삼킨다.

b5.jpg » 바이칼물범의 어금니는 톱니처럼 변형돼 플랑크톤을 사냥한 뒤 입을 다문 채 물을 빼낼 수 있는 구조다. 일본 국립극지연구소 제공.

연구자들은 물범이 플랑크톤뿐 아니라 기회가 닿으면 물고기 사냥도 하는 것을 확인했다. 실제로 낮 동안 물범은 수심 200m 가까이 잠수해 호수 바닥에 사는 물고기를 잡는다. 연구자들은 물범이 필요한 에너지의 약 20%를 플랑크톤에서 충당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인용 논문: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meny of Sciences, DOI: 10.1073/pnas.2014021117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야생 호랑이도 백신이 필요해, 개홍역 유일 대책야생 호랑이도 백신이 필요해, 개홍역 유일 대책

    조홍섭 | 2020. 11. 27

    개보다 너구리 등 야생동물이 바이러스 ‘저수지’…정기 포획 조사 때 접종하면 효과아무르호랑이(시베리아호랑이, 한국호랑이)의 주요 멸종위협으로 떠오른 개홍역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서는 개가 아닌 야생 호랑이에게 직접 백신을 접종하는 대책이 ...

  • 2천년 채취한 진귀 한약재, ‘칙칙한’ 애들만 살아남아2천년 채취한 진귀 한약재, ‘칙칙한’ 애들만 살아남아

    조홍섭 | 2020. 11. 26

    티베트 고산식물 천패모, 채집 심한 곳일수록 눈에 안 띄는 위장 색 진화사람의 자연 이용은 진화의 방향도 바꾼다. 큰 개체 위주로 남획하자 참조기는 살아남기 위해 점점 잘아지고 상아 채취가 계속되자 상아가 없는 코끼리가 늘어난 것은 그런...

  • 악어도 도마뱀처럼 잘린 꼬리가 다시 자란다악어도 도마뱀처럼 잘린 꼬리가 다시 자란다

    조홍섭 | 2020. 11. 25

    미시시피악어 23㎝까지 복원 확인…연골과 혈관, 신경도 되살려사람 등 포유류나 새들은 사지의 끄트머리가 잘려나가도 새로 자라지 않지만 도롱뇽이나 일부 물고기는 완전하게 원상 복구하기도 한다. 도마뱀은 그 중간으로 원래 형태와 기능은 아니지...

  • 태평양 심해저 산맥서 최대 규모 장어 서식지 발견태평양 심해저 산맥서 최대 규모 장어 서식지 발견

    조홍섭 | 2020. 11. 24

    3천m 해산에 ㎢당 수만 마리 서식 추정…최대 심해저 광산, 생태계 보전 과제로태평양 한가운데 심해저에 솟은 산꼭대기에서 심해 장어가 ㎢당 수만 마리의 고밀도로 서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사실은 지구 해저의 75%를 차지하는 심해저 생...

  • ‘마당을 나온 암탉’은 박새의 도움이 필요해‘마당을 나온 암탉’은 박새의 도움이 필요해

    조홍섭 | 2020. 11. 23

    가축인 닭도 다른 야생동물 경계신호 엿들어…첫 실험 결과장편동화와 애니메이션 영화로 인기를 끈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은 양계장을 탈출한 암탉 ‘잎싹’이 족제비와 용감하게 싸우며 아기 오리를 기르는 과정을 감명 깊게 그렸다.&nbs...

최근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