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자리잡은 참매, 적응 비결은 ‘비둘기 반찬’
베를린 등 먹이 65%가 비둘기…치명적 기생충 감염 원인이기도

동화 속 시골 쥐는 맛난 먹이가 많다는 서울 쥐의 초대를 받아들였지만 초라한 먹이라도 마음 편한 시골이 낫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렇다면 도시와 농촌 매의 삶은 어떤 대조를 이룰까.
독일의 도시는 이런 비교를 할 최적의 장소다. 은밀한 사냥 습성으로 ‘숲의 유령’이란 별명을 지닌 참매이지만 최근 유럽에선 도시에 활발히 진출해 번식하고 있다. 특히 독일 도시에서는 1980∼1990년대에 참매가 급증해 세계 최고 밀도를 기록한다.
마누엘라 메를링 드 차파 독일 라이프니츠 동물원 및 야생동물 연구소 연구원 등 국제 연구진은 독일의 베를린, 쾰른, 함부르크 등 대도시 3곳과 농촌 4곳을 대상으로 광범한 현장연구를 통해 도시와 농촌 참매의 삶을 비교했다.
과학저널 ‘왕립학회 공개 과학’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참매가 여러 도시에서 잘 적응해 번성하고 있음을 확인했다”며 “숲의 유령이 성공적인 시민이 됐다”고 밝혔다.

‘서울 매’의 자랑 비둘기
매가 도시 삶에 적응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서울 쥐가 자랑한 것처럼 풍부한 먹이였다. 도시의 비둘기는 가장 중요한 먹이였다.
조사 결과 도시 참매의 먹이에서 비둘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65%에 이르렀다. 농촌 매의 식단에서 비둘기는 35%에 불과했다.
도시의 참매는 농촌에서보다 한배 새끼 수가 많았는데 새끼 수가 많을수록 먹이 가운데 비둘기의 비중도 커졌다. 참매는 기회주의적 포식자로 가장 흔하고 붙잡기 좋은 동물을 먹이로 삼는다.
참매에 도시의 비둘기는 새로운 기회인 셈이다. 도시의 참매가 농촌보다 2주일 일찍 산란하는 것도 풍부한 먹이와 관련 있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도시 매는 농촌 동료보다 성격도 훨씬 대담했다. 연구자들은 해마다 참매 둥지 196개를 조사했는데 나무를 타고 새끼가 있는 둥지로 올라 조사할 때 도시의 참매는 농촌에서보다 훨씬 공격적으로 반응했고 심지어 사람을 공격하기도 했다.
연구자들은 “높은 공격성과 스트레스에 잘 견디는 능력 덕분에 사람의 교란에 견디며 도시에서 번성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대담하고 형질이 뛰어난 참매가 좋은 먹이와 여건을 누리며 더 일찍 많은 새끼를 낳아 번성하게 됐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도시생활이 모두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번 연구에서 도시 참매 사망 원인의 3분의 1은 유리창 충돌이었다. 농촌보다 3배나 높은 비율이었다. 특히 번식기에 암컷과 새끼를 위한 먹이를 분주하게 나르는 수컷의 충돌 사고가 잦았다.
비둘기는 풍부한 먹이원이자 치명적 기생충 감염원으로 나타났다. 원생동물이 옮기는 조류 트리코모나스증은 새들에게 흔한데 비둘기도 예외가 아니다. 이 병에 걸리면 3주 안에 사망한다.
특히 참매 새끼가 이 질병에 취약한데 새끼의 감염률은 도시에서 55.4%로 농촌의 25.9%보다 곱절 이상 높았다. 트리코모나스증은 유리창 충돌에 이어 참매의 2번째 중요한 사망 원인이었다. 그로 인한 사망률 14.6%는 농촌보다 5배나 높은 수치다.
도시의 참매는 인공물이 아닌 공원이나 묘지의 큰 나무에 둥지를 틀었다. 도시에 녹지가 늘고 자연을 아끼는 분위기가 참매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한 셈이다.
그렇다면 풍부한 먹이와 좋은 환경이 주는 혜택과 충돌 및 감염 위험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클까. 서울 쥐와 달리 “도시에서 위험보다 혜택이 더 큰 것 같다”고 연구자들은 보았다. 도시가 생태적 덫으로 작용해 죽어 나가는 참매 자리를 외부에서 유입된 개체가 메우는 것이 아니라 자체 번식을 통해 집단을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참매는 유라시아와 아메리카 등에 널리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매우 드문 새로 국내에서 번식하기도 한다(▶‘바람 타는 새’ 참매 육아, 85일 관찰기).

말매미 좋아하는 황조롱이
한편, 우리나라에서 맹금류 서식지로서 도시와 농촌을 비교한 연구는 없지만 최근 황조롱이가 도시 아파트 베란다의 빈 화분 등에서 번식하는 사례가 자주 보고된다. 이들은 쥐와 작은 새를 잡아먹지만 비둘기가 먹이에 포함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강승구 국립생물자원관 박사 등이 2012년 ‘한국조류학회지’에 밝힌 조사결과를 보면 부산시 외곽에 서식하는 황조롱이는 여름과 가을에는 말매미 등 곤충을 주로 잡아먹고 겨울과 봄에는 쥐 등 작은 포유류와 장지뱀 등을 많이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용 논문: Royal Society Open Science, DOI: 10.1098/rsos.201356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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