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 방문해도 새로울 자연사 표본과 화석의 보고

지구와 생명 공존 느끼고 배우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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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기 후기 일본 근해에 살았던 익수룡의 모식 표본. 1968년 스즈키라는 고등학생이 발견했.

  
지난 1월 20일 금요일에 연구실에서 조촐한 파티가 열렸다. 석사 졸업 예정생들이 졸업 논문을 무사히 제출했던 것이다. 나도 주말에 도쿄로의 휴가도 있고 해서 동료들과 기분 좋게 술을 마셨다.

 

도쿄로 여행을 떠난다고 하자, 양주에 취해 평소보다 들떠 보였던 히가시가 “하나상, 도쿄라면 국립과학박물관은 가 봐야 돼. 완추야, 완추.”라고 말했다.

 

별 다른 여행 계획도 없고 해서 “그래? 그럼 가 보지 뭐.” 하고 대답하며 그 자리에서 박물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가는 길을 프린트로 뽑았다.

 

이틀 뒤인 일요일 오전에 박물관에 들렀다. 무엇이 전시되어 있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난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이 곳을 찾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연과학 정보의 대홍수 속으로 고무 튜브 하나 달랑 허리에 끼고 다이빙을 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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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 있는 일본 국립과학박물관의 전경.

  

일본 국립과학박물관은 도쿄의 제이아르(JR) 우에노 역 우에노 공원 출구로 나와 약 5분 정도 걸으면 닿는다. 금요일을 제외하고 평일은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관한다.

 

1877년에 설립된 국립의 유일한 종합과학박물관으로 자연사와 과학기술연구사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400만점이 넘는 귀중한 컬렉션을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박물관은 크게 일본관과 지구관으로 나뉘어 있다. 입장하는 동시에 발을 디디게 되는 일본관에는 지하 일층에 기획전과 시어터가 있다. 1층에서 3층까지는 일본 열도의 자연과 성립 과정, 본토 생물들의 진화, 일본인의 형성 과정과 자연과의 관계에 관한 전시물이 있다.

 

지구관은 일본관을 직선으로 통과하여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입장할 수 있다. 이 곳은 지하 3층부터 지상 3층에 걸쳐서 지구 생명사와 인간에 대한 전반, 즉 우주, 물질, 법칙, 지구 환경의 변동, 생물의 진화, 지구의 다양한 생물들, 과학 기술의 진보, 대지 위의 생명들을 포괄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식물을 연구하고 있는지라, 내 눈에는 전시품들이 아무래도 자본주의 논리와 조금은 역행하는 연구자들의 집념이 낳은 결과로 보였다. 박물관에서 특히 관심이 갔던 부분도 박물관 소속 연구관들의 연구 활동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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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관 지하 1층에서 열렸던 기획전 '바이오로깅'전. 동물 행동학 연구의 한 분야이다.

 

일본관에서 열리고 있었던 바이오로깅 기획전이 기억에 남는 것도 이 때문인 듯하다. 바이오로깅이란 바다에 사는 동물들이 소형 장치를 달고, 스스로의 행동을 기록하게 하고, 촬영된 영상, 소리 등을 바탕으로 연구를 하는 생물 연구의 한 분야이다.

 

웨델바다표범, 붉은거북, 향유고래 등이 머리나 등에 소형 카메라와 녹음기를 달고 있는 사진이 군데 군데 붙어 있었다. 전시관 한쪽 구석에는 동물들의 울음 소리를 맞추는 퀴즈도 있었다. 난 첫 번째 문제부터 꽝이었는데, 튀김 소리라고 확신하며 누른 소리가 바닷 속에 사는 딱총 새우가 내는 소리란다.

  

이 기획전은 현재, 일본의 연구관들이, 어느 지역에서,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 포스터를 통해 생생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초등학생들도 할 법한 질문들로 시작하여 (“왜 웨델바다표범의 어미는 얕은 수심에 먹이가 없음에도 열심히 얕은 수심을 헤엄칠까요?”) 실제 바이오로깅 연구를 통해 궁금증을 해소하는 (“연구를 해 보니, 자식에게 헤엄치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서 더군요”) 일련의 연구 과정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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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로깅 연구자들의 포스터. 

  

연구자의 활동과 그 내용을 대중들에게 업데이트하여 보급하려는 박물관의 노력은 지구관에서 열린 “디스커버리 토크”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의 11시 강좌는 미세 화석을 연구하고 있는 사이토 메구미가 진행했다.

 

메구미는 나무가 일년이 지날 때마다 나이테를 늘려가듯, 미생물들도 일정한 주기로 바다 속에 쌓여 지층을 이루어 왔다고 설명했다. 이것을 분석하면 일본 열도 주변의 과거 식생이나 지진과 같은 지각 변동의 주기를 추측할 수 있다고 한다.

 

나도 화석 마니아로 보이는 할아버지들 틈에 끼어 화석을 이리 저리 만지작대면서,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모양이 둥글지, 삼각형일지, 말발굽 모양일지 상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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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화석 연구자인 사이토 메구미의 설명을 들으며 미세 화석을 만지는 관람자들.

 
솔직히 말하자면 박물관을 반나절 만에 다 돌아 보기에는 그 정보의 양이 너무 방대했기에 나는 관람하고 싶은 코스를 제한할 수 밖에 없었다. 일본관을 자세히 관찰하느라 3시간을 보냈던 나는 지구관에 이동했을 때쯤 이미 지쳐 있었다.

 

카페에서 따뜻한 코코아와 공룡 모양의 쿠키 두 조각을 먹어 치우고 나니 다시 구경할 기운이 생기긴 했지만.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그 곳에서 관찰했던 것들을 나열해 보라면 끝도 없이 풀어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공룡뼈, 상어 이빨, 노란 조개, 박제되어 동공 풀린 사슴, 망원경, 에도 시대의 해시계 등등…. 만물이 뒤죽박죽 떠오른다. 일본의 디즈니랜드처럼 10번을 방문해도 관람하기에 벅찬 이곳을 사전 정보 없이 방문해서 조금 헤맨 것이 매우 아쉽다.


그렇지만 이곳을 한번이라도 방문했다면 누구나 얻어갈 것이 확실히 있는 것 같다. “와, 지구에는 정말, 정말, 정말 다양한 생명체들이 살고 있구나. 색깔도. 생김새도. 숨쉬고 살아가는 방식도.그리고 인간도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구나.” 라는 깨달음 말이다.

 

이 깨달음은 일본 및 전세계에서 수집해 온 가지 각색의 표본들과 화석들, 그리고 그것들이 다채로운 조명 속에서 관람객들의 시각과 청각을 끊임없이 자극했기에 얻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팸플릿을 보니 이렇게 씌여 있다. "국립과학박물관은 지금, 살아있는 것들이 머무는 지구의 환경을 보존하고, 자연과 인류가 공존 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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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에서 발견되는 산호들. 모양과 크기가 가지 각색으로 전시된 모습이 아름답다.

  

보아하니 박물관의 테마는 공존인 것 같다. 난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이 어렷을 적 보았던 애니매이션 장면의 단편들처럼 향수에 젖은 얼굴로 드문 드문 떠올랐다. 내 아이가 노인이 되었을 즈음 지구상에서 사라져 있을 동식물은 과거의 공룡처럼 박물관에 박제된 채 갖히게 될 것이다.

 

나들이 나온 엄마가 호기심 넘치는 다섯살 난 딸에게 박제된 치타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겠지.

 

여기를 보렴. 치타의 뼈는 이렇게 생겼단다. 이 동물은 아프리카의 초원에서 살았는데, 지금은 멸종해 버렸어. 치타의 모습이 상상이 안 간다구? 뼈만 보면 치타고 사자고 얼룩말이고 다 똑같아 보인다고? 눈을 감고 떠올려 보렴. 기름기 흐르는 베이지색 짧은 털이 온 몸을 뒤덮고 있고, 그 위에는 짙은 고동색의 무늬가 점점이 박혀 있어. 가늘고 긴 앞 뒷다리 덕분에 지구 상에서 가장 빠르게 달릴 수 있었단다. 그래서 그런지 먹이를 노리며 달리는 모습은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아. 일단 사냥에 들어가면, 앞다리와 뒷다리가 빠르게 교차하면서 무서운 속도로 먹이를 향해 달려 나가는데, 그 모습은 마치 총구에서 빠져나간 총알 같단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먹잇감은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이 느껴지지. 하지만 무엇보다도 난 너에게 치타의 눈빛, 아니 치타를 포함한 맹수의 눈빛을 알려주고 싶구나. 평소에는 모든 것을 관조하는 듯한 눈빛이지만, 허기로 가득차는 순간 불타오르기 시작한단다. 뭐? 살아 있는 치타의 눈빛을 한번이라도 마주 보고 싶다구? 아쉽구나, 얘야.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


상상만 해도 마음이 조금 저려 온다. 그리고 상상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기에 마음이 많이 아프다.

 

추천 : 도쿄 국립과학박물관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홈페이지를 미리 들러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사전에 루트를 정해서 자기가 관심있는 전시관을 꼼꼼히 둘러 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지만, 주요 전시물을 전체적으로 둘러보고 싶다면, 큐레이터나 녹음된 가이드를 이용하면 된다. 360도의 영상을 볼 수 있는 시어터 360은 전 세계에서 이곳에만 있는 영상관이니 반드시 체험해 보시길. 뮤지엄 숍도 볼거리이다. 난 여기에서 친구에게 줄 화석을 샀다. 진짜냐고 물어 봤다가 창피만 당했다.

 

참고 문헌 및 사이트 : http://www.kahaku.go.jp/

 

오하나/ 일본 교토대 인간 환경학 연구과 석사 과정. 벌노랑이의 환경 적응과 진화에 관해 연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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