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와 뱁새는 오늘도 ‘진화의 군비경쟁’ 중

조홍섭 2013. 0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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뱁새는 위조지폐 방지하듯 색깔·무늬·크기 변경, 뻐꾸기는 새매 위장

알 크기 소형화와 색깔 변화로 일단 뱁새 우위, 그러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01148342_P_0.jpg » 경기도 안산 갈대 습지공원에서 붉은머리오목눈이(뱁새, 오른쪽) 어미가 탁란한 뻐꾸기 새끼에게 먹이를 먹이고 있다. 이렇게 큰 새끼를 가려내지 못하는 건 아직도 뱁새가 진화의 군비경쟁에서 완전히 이기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사진=김진수 기자

 

숲에서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리면 이제 봄이 가고 여름이 시작됐구나, 하고 실감하게 된다. 아동문학가 윤석중은 동요 <뻐꾸기>의 노랫말을 이렇게 적었다. 

 

뻐꾹뻐꾹 봄이가네 뻐꾸기 소리 잘가란 인사 복사꽃이 떨어지네

뻐꾹뻐꾹 여름오네 뻐꾸기 소리 첫여름 인사 잎이 새로 돋아나네"

 

하지만 갈대밭이나 덤불에 둥지를 튼 붉은머리오목눈이(뱁새)에게 이 소리는 “첫여름 인사”가 아니라 전쟁 선포처럼 끔찍하게 들릴 것이다. 뻐꾸기는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기생 행동인 탁란을 하는 유명한 새다.
 

탁란은 그저 남의 새끼 하나 더 기르는 부담을 넘어선다. 뱁새는 시간과 힘이 남아서 새끼를 낳아 기르는 게 아니다. 알을 낳은 뒤 비바람 가려 정성껏 품어 부화시킨 뒤 부리가 닳고 깃털이 다 망가지도록 헌신해 새끼를 길러 날려 보내는 것은, 생물로서 뱁새에겐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는 지상 최대의 과제이다. 그러니 제 새끼 대신 남의 새끼, 그것도 자신의 천적을 기르느라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건 이중의 타격이 된다.
 

뻐꾸기가 높은 나뭇가지에서 알을 맡길 숙주를 고른다. 만만한 상대는 개개비, 붉은머리오목눈이, 휘파람새, 산솔새 같은 작은 새들이다. 사실 뻐꾸기는 몸길이가 33㎝에 이르는 제법 큰 새이다. 게다가 회색빛 깃털에 가슴에는 줄무늬가 선명해 매처럼 보인다.

 

00232102_P_0.jpg » 탁란을 하기 위해 파란 알이 있는 뱁새의 둥지에 침입한 뻐꾸기. 사진=한겨레 사진 디비

 

작은 새들의 동태를 면밀히 관찰하던 뻐꾸기는 목표가 된 새가 알을 낳고 잠깐 자리를 비운 틈을 놓치지 않는다. 둥지에 들이닥친 뻐꾸기가 먼저 하는 일은 뱁새의 알 하나를 부리로 밀어 둥지 밖으로 밀어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래야 개개비가 의심을 하지 않을 것이다.

 

곧바로 둥지에 앉아 자기 알을 낳는다. 알 크기는 2.2⨉1.6㎝ 길이에 무게 3.2g으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작다. 중요한 건 얼마나 숙주 새의 알과 비슷한가, 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뻐꾸기 알의 모양과 무늬는 뱁새의 알과 색깔과 모양이 놀랍게 비슷하다. 뻐꾸기가 둥지에 들어와 알을 하나 없애고 제 알로 채워 넣기까지는 채 10초도 걸리지 않는다.
 

뒤에 설명하겠지만, 신기하게도 뻐꾸기가 뒤늦게 낳은 알은 숙주의 알보다 일찍 깨어난다. 알에서 깬 뻐꾸기 새끼가 처음으로 하는 일은 살생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마치 등짐을 지듯이 뱁새의 알을 등에 얹어 둥지 밖으로 밀어 떨어뜨린다.

 

01420222_P_0.jpg » 미리 낳은 파란색 뱁새 알보다 먼저 깨어난 뻐꾸기 새끼. 사진=조용철, 환경부

 

만일 어미 뻐꾸기가 알 낳는 시기를 놓쳐 뱁새의 알이 이미 깨어난 상태라고 알과 같은 운명을 피하지 못한다. 둥지를 점령한 뻐꾸기 새끼는 엄청난 속도로 자라 알에서 깬 뒤 두 주일쯤 지나면 벌써 뱁새 어미보다 3배나 커진다. 자기 새끼와 너무나 다른 모습인데도 무슨 이유에선지 뱁새는 열심히 이 이상하게 큰 ‘새끼’에게 먹이를 주어 키운다.
 

01420228_P_0.jpg » 뱁새의 알을 등으로 밀어 둥지 밖으로 떨어뜨리는 갓 태어난 뻐꾸기 새끼. 사진=조용철, 환경부

 

뻐꾸기의 이런 행동을 최초로 기록한 이는 아리스토텔레스로 기원전 4세기에 이미 '뻐꾸기는 둥지를 틀지도 알을 까지도 않지만 새끼를 길러 낸다. 어린 새가 태어나면 함께 살던 새끼들을 둥지 밖으로 내던진다.'라고 썼다.

 

하지만 관찰이 반드시 바른 해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18세기 유럽의 박물학자들도 뻐꾸기를 상세히 관찰했지만 '암컷 뻐꾸기가 자기 둥지에 찾아오자 주인은 기쁨에 겨워 어쩔 줄 몰랐다. 자신의 둥지를 알 낳는 곳으로 선택해 준 것을 영광스럽게 여기는 듯했다' 운운하며 엉뚱한 해석을 하기도 했다.

 

마침내 찰스 다윈은 1859년 <종의 기원>에서 뻐꾸기의 기생 행동이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한 행동이라고 명쾌하게 설명했다. 이후 수많은 생물학자들이 뻐꾸기를 연구했지만 탁란의 행동학적, 진화생태학적 의미가 제대로 밝혀진 것은 1980년대 말이었다.
 

탁란은 같은 종 또는 다른 종의 개체에게 자기 알의 부화와 새끼 양육을 맡기는 기생 행동을 가리킨다. 새 가운데는 뻐꾸기 종류 말고도 미국 물닭, 미국찌르레기 등 7종이 이런 행동을 한다.

 

tak.jpg » 큰 바위 아래에 알을 낳아놓고 지키는 꺽지 주변을 감돌고기가 탁란 기회를 노리며 맴돌고 있다. 사진=전북대 생물다양성연구소

 

물고기 가운데는 아프리카 탕가니카 호수에 사는 메기의 일종이 알을 입속에 넣어 부화시키는 시클리드에 탁란한다. 또 우리나라의 돌고기는 꺽저기의 산란장에 침입해 자신의 알을 낳고 도망치며, 감돌고기는 꺽지의 산란장에 탁란하는 사실이 밝혀져 있다. 곤충 가운데는 다른 벌통에 자기 알을 낳는 ‘뻐꾸기 꿀벌’과 ‘뻐꾸기 말벌’이 있다.
 

뻐꾸기에게 탁란은 새끼 기르는 노력을 면제받을뿐더러 여기 저기 알을 분산시킴으로써 둥지를 틀었다 사고로 모조리 잃는 위험을 줄이는 이점이 있다. 따라서 기회만 있으면 탁란을 하기 때문에 뻐꾸기가 많은 곳에서는 작은 새 둥지에 뻐꾸기 알이 4개까지 발견되기도 한다. 알을 몰래 맡기려는 자와 이를 피하려는 쪽의 싸움이 치열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뻐꾸기가 나타나면 뱁새, 개개비 등 숙주 새들은 몸집은 작아도 무리를 지어 기생자를 공격한다. 둥지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쫓아내는 것이다. 뻐꾸기의 깃털 색깔과 무늬가 이런 작은 새들의 치명적 천적인 새매와 빼닮은 것도 이런 밀어내기에 대한 진화적 반격이다. 뱁새가 새매에게 덤벼드는 건 호랑이 입에 얼굴을 들이미는 꼴이 된다.


뱁새는 둥지에서 뻐꾸기의 알을 발견하면 가차 없이 내버린다. 뻐꾸기는 이를 흉내 내고, 개개비는 다시 새로운 무늬와 색깔의 알을 만들어 내는 공방이 벌어진다. 탁란을 피하려고 마치 화폐에 정교한 무늬를 넣어 위조지폐를 가려내려는 수법을 쓴다.

 

뱁새의 알과 비슷한 뻐꾸기의 알일수록 생존 확률이 높아지고, 뻐꾸기의 알과 차별이 되는 알을 낳는 뱁새일수록 기생을 당할 가능성이 적다. 당대에선 알의 크기와 무늬를 바꿀 수 없으니, 그야말로 진화의 군비경쟁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뱁새에게 중요한 건 가짜를 잘 가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자칫 실수로 자기 알을 뻐꾸기 알로 잘못 알고 없앤다면 안 하느니만 못 한 결과를 빚는다. 이런 값비싼 방어 비용 때문에 어떤 뱁새는 뻐꾸기가 탁란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면 깨끗하게 둥지를 포기하고 새로 시작하기도 한다.
 

최근 팀 버크헤드 영국 쉐필드대 교수 등 연구진은 <런던 왕립학회보 비>에 실린 논문에서 탁란한 뻐꾸기 알이 늦제 낳는데도 늘 개개비의 알보다 일찍 깨어나는 비밀을 밝혔다. 뻐꾸기 알은 둥지에 낳기 전부터 어미 뱃속에서 이미 부화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다른 알은 낳고 나서 어미가 36도 체온으로 품어야 발생을 시작하지만, 뻐꾸기의 알은 어미 뱃속의 40도 체온에서 산란 18~24시간 전부터 발생을 시작한다. 따라서 개개비와 동시에 낳은 알도 31시간 일찍 깨어나 동료 살해를 시작하는 것이다.
 

뱁새는 뻐꾸기와의 군비경쟁에서 일단 두 가지 주요한 승리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김동원씨는 2006년 경희대에 제출한 석사학위 논문에서 경기도 시화호 인공습지에서 뻐꾸기와 뱁새 사이의 탁란을 둘러싼 진화 경쟁을 조사했다.

 

그 결과 뱁새는 먼저 뻐꾸기가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알의 크기를 작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물론 이런 일이 당대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큰 알을 낳는 형질은 도태되고 작은 알을 낳는 형질이 선택받는 오랜 진화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또 하나는 일부 뱁새가 흰색 알을 낳기 시작한 것이다. 뱁새와 뻐꾸기는 모두 푸른 색 알을 낳는다. 뱁새의 80% 가까이는 아직도 푸른 알을 낳아 뻐꾸기 알과 구분이 쉽지 않다. 진화의 군비경쟁에서 뱁새는 일단 뻐꾸기를 앞선 것 같지만 아직 전쟁이 끝난 건 아니다.

 

01420230_P_0.jpg » 자기 몸보다 큰 뻐꾸기 새끼에게 먹이를 먹이는 뱁새. 사진=조용철, 환경부

 

01420232_P_0.jpg » 먹이를 먹은 뻐꾸기 새끼의 배설물을 치우는 뱁새. 천적을 보살피느라 부리와 깃털이 닳도록 힘을 들인다. 사진=조용철, 환경부  

 

터무니없이 큰 뻐꾸기 새끼를 작은 숙주 새가 먹이를 주어 기르는 행동은 최대의 수수께끼이다. 뻐꾸기 새끼가 집요하게 먹이를 조르기 때문에 본능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먹이를 먹인다는 설명은 실험으로 설득력이 없음이 드러났다.

 

과학자들은 ‘진화 전쟁’이 아직 새끼 기르기 단계에 이르지 않았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계속 변해가는 남의 새끼를 가려내는 일은 남의 알을 찾아내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울 수 있다. 또 새끼에 이르기까지 들인 노력을 고려한다면 실수로 자기 새끼를 잘못 버릴 때의 부담도 너무 크다.

 

이런 이유 때문에 새끼 거부의 진화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일부 숙주 새는 기른 뻐꾸기를 방치해 굶겨 죽이거나 둥지 밖으로 밀어내는 식으로 거부하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탁란은 피해가 치명적인 만큼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 제비가 인가로 찾아와 실내에 둥지를 틀게 된 것도 뻐꾸기의 탁란을 피해서라는 연구결과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탁란은 진화가 낳은 행동일 뿐, 도덕적으로 비난할 일은 아니다. 제 자식을 제 손으로 길러 보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쫓겨 다니면서 남의 둥지를 넘보는 뻐꾸기의 처지도, 우리가 보기엔 안쓰러울 뿐이다. 그래서일까, 뻐꾸기의 울음은 그 사촌뻘로 마찬가지로 탁란을 하는 두견이의 울음처럼 어딘가 처량하게 들린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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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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