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콧구멍만한 물고기에 당했다

조홍섭 2015. 11. 26
조회수 56216 추천수 0

네덜란드 해안서 참거두고래 2마리 잇달아 질식사 상태로 발견
넓적한 생선 서대가 숨구멍 막아, 소음에 쫓겨나 낯선 먹이에 사고

wh0-2.jpg » 고래의 서대의 비극적 만남은 고래의 잇단 질식사를 낳았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지난해 11월18일 영국 템즈강 하구에는 난데없는 고래 떼가 나타나 큰 관심을 불러모았다. 커다란 수컷과 새끼 각 3마리를 포함한 20~40마리의 참거두고래 무리가 천천히 헤엄을 치고 물 밖으로 머리를 내어 주변을 둘러보는 행동을 했다. 강 상류로 거슬러 오르는 고래가 좌초할 것을 우려한 자원봉사자들이 보트를 타고 접근해 이들을 바다로 돌려보내느라 애를 먹었다.

 

Barney Moss_1024px-Pilot_whale_spyhop.jpg » 물 밖으로 머리를 빼꼼히 내밀어 주위를 살피는 참거두고래. 사진=Barney Moss, 위키미디어 코먼스
 

한 달 뒤 네덜란드 해안에서 반쯤 부패한 참거두고래 수컷 한 마리가 발견됐다. 길이 3.85m 무게 410㎏로 근육이 잘 발달한 건장한 어린 개체였다. 올해 1월에는 부근 해안에서 길이 4m, 무게 약 600㎏인 성체 암컷이 또 죽은 채 발견됐다.
 

놀랍게도 두 마리 고래의 콧구멍(비강) 속에는 모두 가자미과의 물고기인 서대가 들어가 구멍을 막고 있었다. 고래들은 물고기 때문에 질식사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 수의학자들과 영국, 벨기에 연구자들은 온라인 과학저널 <플러스원> 18일치에 실린 논문에서 이들 고래의 사인을 분석했다.

 

Bill Thompson_USFWS6892801246_ee6ed2dfdb_z.jpg » 참거두고래는 북대서양의 깊고 찬 바다에서 무리지어 산다. 사진=Bill Thompson/ USFW, 위키미디어 코먼스
 

질식사한 참거두고래는 북대서양의 깊고 찬 바다에서 대륙붕 가장자리를 따라 주로 서식한다. 먹이는 대부분 문어와 오징어 등 두족류이고 일부 바다표면에 사는 물고기도 잡아먹는다. 그런데 북해의 북쪽에 분포하던 이 고래가 무슨 이유에선가 남쪽으로 내려왔고 템즈강에서 목격되기도 한 것이다.
 

연구자들이 수컷의 비강에서 발견한 서대는, 머리를 고래가 숨을 내뿜는 분수공 쪽으로, 꼬리는 식도 쪽으로 향한 채 걸려 있었다. 서대의 몸에서는 고래의 위 내용물이 묻어 있어 고래가 죽기 전에 토했음을 보여줬다.
 

암컷은 임신 초기였는데 역시 비강에 서대가 걸려있었다. 이 물고기는 꼬리 부위 3㎝가 분수공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wh1.jpg » 암컷 고래의 분기공에 돌출해 있는 서대의 꼬리(붉은 화살표). 아래 사진은 분기공 부분을 절개한 모습이다. 사진=이이셀디이크 외 <플로스 원>
 

두 고래의 비강에서 발견된 서대는 길이가 약 30㎝였으며, 위 속에는 다른 서대도 들어있어 이 물고기를 고래가 먹이로 섭취했음을 가리켰다.
 

이 넓적한 물고기는 어떻게 고래를 질식사시켰을까. 먼저, 연구자들은 고래의 주검을 병리학, 조직학적으로 조사한 결과 특별한 감염이나 조직손상이 없어 질식사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참거두고래 무리는 왜 서식지를 떠나 남쪽 바다로 내려와 평소에 좀처럼 먹지 않던 서대를 먹다 변을 당했을까. 연구자들은 참거두고래가 “사회성이 강해 아프거나 부상당한 동료를 돌보는” 습성에 주목했다.

 

이 무리 가운데는 병든 고래가 들어있었고, 지난해 11월20일 영국 에섹스의 강에서 2.18m 길이의 암컷이 죽은 채 발견됐다. 몸은 극심하게 여위었고 뇌와 뇌막에서 염증이 있었다.

 

Elizabeth Zwamborn_canada_Whale-Watching_Cape_Breton.JPG » 캐나다 고래관광선이 참거두고래 무리에 접근했다. 그러나 해상소음은 이 고래에게 치명적 영향을 끼친다. 사진=Elizabeth Zwamborn, 위키미디어 코먼스
 

또 다른 가능성은 소음공해다. 연구책임자인 이이셀디이크는 “해상 풍력발전기나 해군의 탄성파 탐사로 인한 소음이 이 무리를 원래 서식지에서 쫓아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주간과학지 <뉴사이언티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렇다면, 아무리 낯선 먹이라도 서대가 어떻게 고래의 질식사를 불렀을까. 바다 바닥에 사는 서대는 가자미과의 물고기 가운데 비교적 몸이 좁은 편이라 고래가 삼키기에 수월하다. 그러나 이런 몸매는 동시에 이 물고기가 물과 함께 삼켜진 위장에서 후두로 거슬러 오르기도 쉽게 한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기도와 식도가 교차하는 건 모든 포유류가 숙명처럼 안고 있는 ‘설계 결함’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종종 음식을 먹다가 기도가 막혀 질식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서대는 몸이 유연하고 재빨라 좁은 틈이라도 잘 비집고 들어간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실제로 독일에선 상괭이가 주로 서대를 잡아먹는데, 이 물고기가 숨구멍을 막아 질식사한 사례가 6건 보고돼 있다.
 

상괭이는참거두고래에 견줘 몸집이 아주 작다. 네덜란드에선 1581년 참거두고래가 연어 때문에 질식사한 기록이 남아 있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Killed_pilot_wales_in_hvalba,_faroe_islands.jpg » 파로아제도에서 포경한 참거두고래.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물론 다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연구자들은 고래가 기도에 걸린 서대를 기침이나 재채기를 하듯 제거하려다 숨구멍을 막았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또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죽은 고래의 분기공을 통해 서대가 후두로 들어갔을 수도 있다.
 

어쨌든 고래는 자기보다 몸무게가 1000분의 1밖에 안 되는 서대라는 생선 한 마리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인간의 영향이 어른거린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IJsseldijk LL, Leopold MF, Bravo Rebolledo EL, Deaville R, Haelters J, IJzer J, et al. (2015) Fatal Asphyxiation in Two Long-Finned Pilot Whales(Globicephala melas) Caused by Common Soles(Solea solea). PLoS ONE 10(11): e0141951. doi:10.1371/journal.pone.0141951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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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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