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등고래는 왜 범고래에 쫓기는 바다표범 구해주나

조홍섭 2016. 0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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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등고래, 새끼 잡아먹는 천적인 범고래 사냥 현장마다 출동해 방해

구하는 대상은 대부분 다른 종, 미스터리 행동의 원인은 '포식자 괴롭히기' 


John Durban_s_NOAA.jpg » 유빙으로 대피한 바다표범을 사냥하려는 범고래(위)와 이를 방해하려는 혹등고래. John Durban, NOAA


웨델바다표범은 운명이 다 한 것처럼 보였다. 작은 유빙 위에 올라 겁에 질린 바다표범 주위를 범고래 무리가 돌고 있었다. 늘 그랬듯이 범고래는 대열을 이뤄 유빙을 향해 다가서다 갑자기 방향을 틀 것이다. 일어난 물살에 쓸려 물에 빠진 바다표범을 범고래들이 사냥할 것이다. 


그러나 2009년 남극해에서 범고래의 사냥 행동을 조사하던 로버트 피트먼 미 국립해양어업국 박사 등 연구자들은 색다른 모습을 보았다. 물살에 휩쓸려 유빙에서 떨어진 바다표범은 근처에 있던 한 쌍의 혹등고래를 향해 필사적으로 헤엄쳤다.


Robert Pitman_s_NOAA.jpg » 범고래에 쫓긴 바다표범이 몸을 뒤집은 혹등고래의 가슴에 안긴 듯이 대피했다. Robert Pitman, NOAA


바다표범이 다가가자 혹등고래가 특이한 행동을 했다. 몸을 뒤집어 거대한 가슴지느러미 사이의 가슴에 바다표범이 올라오도록 했다. 범고래가 다가서자 혹등고래는 몸을 굽혀 바다표범이 물 밖으로 나가도록 했고 물에 떨어지지 않도록 자세를 고치기도 다. 결국 바다표범은 범고래를 피해 다른 안전한 유빙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그는 <자연사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혹등고래들은 바다표범을 보호하려 애쓰는 것 같았다”라고 적었다.


혹등고래는 왜 바다표범을 구한 것일까. 종은 다르지만 불행에 처한 동물이 가엾어 도와준 걸까? 범고래는 혹등고래의 새끼나 어린 개체를 주로 잡아먹는 포식자이긴 하지만, 왜 당장 아무런 이득도 없고 오히려 위험과 손해가 분명해 보이는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


피트먼 박사는 이런 질문의 답을 구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혹등고래와 범고래가 조우한 115건의 사례를 분석했다. 그 결과를 담은 논문이 과학저널 <해양 포유류학> 최근호에 실렸다.


1280px-Orcinus_orca_NOAA_Photo_Library.jpg »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인 범고래. 무리 지어 사냥한다. NOAA, 위키미디어 코먼스


범고래는 혹등고래의 천적이다. 덩치는 혹등고래가 훨씬 크지만 범고래는 무리를 지어 어린 혹등고래나 새끼를 어미로부터 떼어낸 뒤 잡아먹는다. 혹등고래는 따뜻한 바다에서 새끼를 낳고 먹이가 풍부한 남극이나 북극해로 이동하는데, 주로 이때 길목을 지키는 범고래의 공격을 받는다. 


이를 피하기 위해 혹등고래는 범고래의 습격이 잦은 구간을 피해 먼 거리를 우회하거나 해안에 바싹 붙어 이동하기도 한다. 새끼 혹등고래의 탄생 첫해 사망률이 18%에 이른다는 조사도 있다.


그런데 사례를 조사한 결과, 놀랍게도 두 고래 사이의 부닥침은 혹등고래 주도로 빚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충돌의 57%가 혹등고래가 일으킨 것이었다. 일방적으로 습격을 받고 도망을 치는 관계가 아니었다.


혹등고래는 일부러 범고래 무리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때로는 2㎞ 이상 먼 곳에 있는 범고래 무리를 향해 가기도 했다. 연구자들은 범고래 무리가 내는 소리를 단서로 삼는 것으로 추정했다. 


범고래는 은밀하게 먹이에 접근하지만 공격할 때는 무리의 소통을 위해 소리를 낸다. 다시 말해, 범고래가 누군가를 공격하는 소리가 들리면 혹등고래는 만사 제쳐놓고 그 현장으로 달려간다.


Cornelia Oedekoven.jpg » 범고래의 사냥현장에 도착한 혹등고래는 마치 번식기의 수컷처럼 큰 소리로 울부짖고 가슴과 꼬리 지느러미로 바다 표면을 치는 등 격렬하게 움직인다. Cornelia Oedekoven, 위키미디어 코먼스


범고래의 사냥 현장에 도착하면 혹등고래는 흥분해 쩌렁쩌렁 소리를 지르고 거대한 가슴지느러미와 꼬리를 마구 흔들고 물 표면을 때린다. 대부분의 경우 범고래는 자리를 피한다.


비록 어린 개체가 종종 먹잇감이 되지만 다 자란 혹등고래는 애초 범고래의 상대가 아니다. 특히 가슴지느러미는 몸길이의 3분의 1에 해당하며 길이 5m, 무게 1t에 이르는데 유연하게 휘두를 수 있기 때문에 가공할 무기가 된다. 게다가 지느러미 가장자리에는 따개비 등 날카로운 껍질을 지닌 고착동물이 우둘투둘 붙어있어 여기에 맞으면 살이 찢겨나가기에 십상이다.


혹등고래 행동의 미스터리는 범고래의 사냥을 가로막기 위해 ‘출동’하는 구조 대상의 대부분이 다른 종이라는 사실이다. 다른 혹등고래는 11%밖에 되지 않았다. 그밖에는 바다표범, 다른 고래, 물고기 등이었다.


wh1.jpg » 범고래의 사냥을 방해하는 혹등고래의 다양한 사례. A, C, D는 바다표범, B는 귀신고래를 사냥하는 현장이다. Robert Pitman(2016), <Marine Mammal Science>


혹등고래는 공격을 받는 피식자의 소리가 아닌 포식자인 범고래의 소리를 듣고 나서기 때문에 현장에 도착해서야 피식자가 누구인지 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혹등고래의 행동은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혹등고래는 먹이 찾기, 짝짓기, 휴식 등 일상활동을 포기하고 몇 ㎞ 떨어진 곳까지 찾아가 보통 1시간, 길게는 7시간 동안 격렬하고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데는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런 혹등고래의 행동을 ‘피식자의 포식자 괴롭히기’ 행동의 일종으로 설명했다. 이런 행동은 까치가 독수리를 괴롭히고 쫓아내는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새, 곤충, 물고기, 포유류에서 흔하다.


약자가 강자를 괴롭히는 이런 행동은 언뜻 이해되지 않고 무모해 보이기도 하지만 거기엔 이유가 있다. 먼저, 포식자에게 들켰음을 경고하고 동료에게 포식자가 왔음을 알려 힘을 합쳐 쫓아내는 효과가 있다. 어린 개체들은 포식자에 관해 배우는 좋은 기회가 된다.


이런 괴롭히기 행동은 작고 빠른 약자가 크고 느린 포식자를 상대로 벌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 반대도 있다. 아프리카코끼리는 아프리카에서 최강자이지만 새끼를 종종 사자에게 잡아먹힌다. 이 때문에 아프리카코끼리도 사자를 괴롭히는 행동을 한다. 혹등고래는 이런 예에 속한다고 연구자들은 보았다.


Whale_tail_flip.jpg » 혹등고래가 꼬리로 바다표면을 내리치고 있다. 큰 덩치로 충격량이 크기 때문에 접근하는 범고래에는 큰 위협이 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연구자들은 이런 행동의 이점을 혈연선택, 호혜, 이타주의 등 3가지로 요약했다. 혹등고래는 태어난 뒤 1년 동안 어미와 함께 생활한다. 젖을 뗀 뒤에도 태어난 곳과 먹이터를 기억하고 찾아간다. 


따라서 도와주는 다른 혹등고래는 자신의 친척일 수 있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는 데 기여한다(혈연선택). 새끼와 함께 이동하는 암컷 혹등고래는 종종 수컷 혹등고래가 호위한다. 이 혹등고래가 범고래의 습격을 물리치면 나중에 이 암컷 혹등고래의 짝짓기 상대가 되는 대가를 얻을 수 있다(호혜).


wh2.jpg » 새끼를 데리고 이동하는 혹등고래 암컷. 범고래 공격에 가장 취약한 때이다. M. Lynn, NOAA


그렇다면 전체 사례의 90% 가까이 차지하는 다른 종을 도와주는 행동에는 무슨 이득이 있을까. 연구자들은 “혹등고래가 심각한 상처를 입을 위험은 거의 없지만 쓴 시간과 에너지에 견줘 명백하게 얻는 것은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범고래 괴롭히기가 혈연선택과 호혜 효과를 통해 전체적으로 득이 된다면 이런 행동은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말하자면, 다른 종을 돕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부수적인 효과라는 것이다. 혹시 지적인 동물인 혹등고래가 약한 피식자가 잡아먹히는 것에 공감해 돕는 ‘맹목적 이타주의’가 작동하는 것은 아닐까.


wh5_J. Totterdell_s.jpg » 습격을 받아 죽은 혹등고래 새끼를 범고래들이 뜯어먹고 있다. J. Totterdell, 피트먼(2015)


피트먼 박사는 이런 주장에 회의적이다. 그는 <사이언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혹등고래는 훨씬 간단한 규칙으로 행동한다고 봅니다. ‘범고래의 공격 신호가 들리면 가서 깬다’는 식이죠. 이런 개입은 범고래에게 혹등고래 공격을 재고하도록 만들 것입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Robert Pitman et. al., Humpback whales interfering when mammal-eating killer whales attack other species: Mobbing behavior and

interspecific altruism? Marine Mammal Science, DOI: 10.1111/mms.12343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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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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