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방으로 ‘죽음 뒤 환생’하는 애벌레, 신물질·미래식량 보물

조홍섭 2016. 12. 28
조회수 13152 추천수 1
한국에선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만
유일하게 채집하고 키우고 연구
 
이강운 소장이 사비 털어 20년 운영
신종·미기록종 발견 수두룩
 
올해 1천종 가까이 길러
최근 국내 미소개 153종 도감 펴내
 
변신 전의 미성숙한 생물일 뿐?
둘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나방이 1주일 산다면 애벌레 삶은 한달
나름의 생존전략으로 독자적 행동
 
영양가 풍부해 생태계 포식자 주 표적
숨고 속이고 겁주는 등 ‘생존의 달인’ 


c1_멧누에나방.jpg » 애벌레는 성체가 되기 전의 미숙한 생물이 아니라 다양한 전략으로 자신을 방어한다. 가짜 눈이 달린 머리를 곧추세운 멧누에나방은 영락없이 독사 같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저명한 자연저술가인 베른트 하인리히는 <생명에서 생명으로>란 책에서 애벌레가 나비나 나방으로 변신하는 것을 ‘죽음 후의 환생’이라고 표현했다. 우리가 곤충의 변태 과정을 익히 알아 그 연속성을 이해하지만, 두 생명체는 너무 달라서 한 생물이 죽은 뒤 그 자리에서 전혀 다른 생물이 태어나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애벌레는 나비·나방과 몸의 형태는 물론이고 먹는 것, 사는 곳 등 삶의 방식 자체가 다르다. 나름의 생존전략으로 무장해 독립된 종처럼 행동한다. 애벌레를 그저 화려한 어른벌레로 변신하기 전의 미성숙한 단계, 또는 식물에 해를 끼치는 징그러운 벌레 정도로 보는 통념과는 많이 다르다.

c12.jpg » 추운 곳에 적응한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영하의 날씨에도 활동한다. 조홍섭 기자

실제로 애벌레 단계는 나비목 동물의 생애 대부분을 차지한다. 날아다니며 짝짓기와 산란을 하는 어른벌레가 1주일을 산다면 애벌레 상태로는 한달을 산다. 극단적인 예이지만 붉은점모시나비는 11월 초부터 5월까지 195일을 애벌레 상태로 겨울을 난다. 우리는 화사한 붉은점모시나비를 주로 기억하지만 이 동물의 생애는 절반 이상이 애벌레이다.
 
뭇 동물의 먹이인 애벌레의 생태적 기능도 무시하지 못한다. 딱딱한 껍질이 없는 단백질 덩어리인 애벌레는 새, 파충류, 포유류 등의 주요 먹이이다. 어미 새가 둥지로 나르는 먹이의 90%는 애벌레가 대부분인 곤충이다. 충남 태안의 신두리 사구 표범장지뱀의 주요 먹이도 애벌레였다. 새가 번식기를 애벌레가 알에서 깨어 나오는 시기에 맞추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치지 않으면 이렇게 못 키워”
 
c0.jpg » 나비목 애벌레를 20년째 기르며 생활사와 생태를 연구하고 있는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이처럼 중요한 애벌레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이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사람도, 기관도 따로 없다. 오로지 민간 연구소인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소장 이강운)가 애벌레를 채집해 기르면서 종을 가리고 생태를 연구해왔을 뿐이다. 

c5.jpg » 국내에 소개 안 된 나방 애벌레 153종을 모아 최근 펴낸 도감 <캐터필러Ⅰ>.연구소는 지난해 국립생물자원관 프로젝트의 결과로 한반도에 자생하는 나방 500종의 애벌레를 담은 도감을 출간한 데 이어, 최근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나방 애벌레 153종을 소개하는 도감 <캐터필러Ⅰ>을 펴냈다.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에 있는 나비목 애벌레의 연구 현장을 6일 찾았다.
 애벌레 사육장에는 아직 월동에 들어가지 않은 늦깎이 애벌레들이 사육 상자 10여개 안에서 꼬물거렸다. 트리케라톱스 공룡처럼 머리에 큰 돌기가 난 갈고리재주나방 애벌레는 칡 이파리를 갉아먹느라 바빴다. 사육 상자 뚜껑에는 지난 10월27일 연구소 근처에서 채집했으며 올해 들어 42번째 채집해 기르는 재주나방과 애벌레라고 기록돼 있다.

이강운 소장(농학박사)이 올 한해 채집해 사육한 애벌레를 과별로 기록한 상황판을 가리켰다. 3월26일부터 11월3일까지 986종의 애벌레를 길렀다. “미치지 않으면 이렇게 못 키운다”고 그는 말한다. “1천종 가까운 애벌레 가운데 무사히 성체까지 자란 것은 100종도 안 됩니다. 폐사율이 높습니다. 곰팡이에, 천적에, 먹이 식물을 몰라 굶겨 죽이기도 하고….” 

그가 올해 이곳에서 기른 명나방과 애벌레는 168종인데 국내에 기록된 명나방과 나방은 130종이다. 수십종이 국내 미기록종이란 얘기다. 이 소장은 지난 20년 동안 나비목 애벌레를 기르면서 신종 1종과 미기록종 8종 등 9종을 발견하는 성과를 거뒀다. “힘들고 돈이 되지 않는” 기초연구를 공공기관이 아닌 개인이 사비를 털어 해왔다.

c10.jpg » 칡 잎을 먹으며 활동 중인 갈고리재주나방 애벌레. 조홍섭 기자
 
취미로 나비 애벌레 한두 종 기르기라면 몰라도 이처럼 대규모로 애벌레를 사육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알이나 애벌레 또는 나방을 채집해야 하고, 애벌레마다 대개 독특한 먹이 식물을 싱싱한 상태로 공급해야 한다. 연구소 주변에만 860종의 식물이 있는 산속에서나 다양한 먹이 조달이 가능하지 도시에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영하 35도에서 살아남는 비밀
 
c11.jpg » 애벌레를 돌보는 일은 아이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하는 이정옥씨. 조홍섭 기자

애벌레 사육은 이 소장의 부인 이정옥씨를 비롯한 연구원 7명이 맡아 한다. 이씨는 “애벌레 기르기가 꼭 아기 돌보듯 손이 많이 간다”고 말한다. 사육 상자에는 신선한 먹이 식물을 넣고 바닥에 물에 적신 키친타월을 까는데, 몇 시간마다 배설물을 제거해주지 않으면 곰팡이가 슬기 십상이다. 이씨는 “채집할 때는 멀쩡해 보이던 애벌레 몸을 뚫고 기생한 맵시벌 새끼가 나오기도 한다”며 “기생벌이 침입하면 애벌레마다 몸속에 알을 낳기 때문에 사육장에 난리가 난다”고 말했다.
 
영하의 날씨였지만 사육장 밖에서 여전히 활동하는 애벌레가 있었다. 한지성 나비로 유명한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는 요즘 알에서 깨어나 먹이를 먹기 시작한다. 연구원들이 “오늘 새로 29마리가 깨어났다”고 말한다. 이 애벌레에는 동결을 막는 단백질이 있어 영하 35도에서도 생존한다. 갓 태어난 1~2㎜ 길이의 검은 애벌레가 말라버린 기린초에서 돋아나는 미세한 새싹을 갉아먹는 모습이 앙증맞다. 이씨는 멸종위기종인 이 나비의 대량 증식에 성공했고 내한성을 규명해 국제학술지에 투고 중이다.

c13.jpg »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 사육장.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추운 날씨에도 기린초 싹을 먹으며 자란다. 조홍섭 기자

영양가 많고 버릴 것 없는 애벌레는 생태계 포식동물의 주식이다. 그런 만큼 생존을 위해 숨고, 속이고, 겁주는 다양한 전략을 진화시켰다. 이강운 소장의 말대로 “애벌레는 생존의 달인”이다. 

가시가지나방은 몸을 구부리면 완벽한 새똥 모양이다가 길쭉하게 펴면 나뭇가지로 변신한다. 멧누에나방은 독사가 노려보는 것 같은 가짜 눈 무늬를 지녔다. 

c6_가시가지나방.jpg » 몸을 구부리면 새똥처럼 보이는 가시가지나방 애벌레.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이보다 한 수 위 애벌레도 많다. 암청색줄무늬밤나방은 온몸을 흔들어 상대를 위협하고 천적의 공격 초점을 흩트린다. 이 소장은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쐐기풀이나 왜모시풀에 매달려 몸을 흔들고 소리를 내면 사람도 깜짝 놀란다”고 말한다.

c2.jpg » 몸을 흔들어 천적을 위협하는 암청색줄무늬밤나방 애벌레.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대왕박각시나방은 몸이 큰데다 공격을 받으면 옆구리의 숨구멍에서 바람을 빼면서 쉭쉭 소리를 내는데 화들짝 놀랄 정도로 소리가 크다. 산왕물결나방은 섬모가 아주 긴데다 지지직 하는 전자음을 내고, 털북숭이인 흑백알락쌍꼬리나방은 기름 성분으로 온몸을 미끌미끌하게 만들어 포식자의 입맛을 달아나게 한다.

c8_대왕박각시.jpg » 옆구리의 숨구멍으로 쉭쉭 소리를 내어 천적을 위협하는 대왕박각시나방 애벌레.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c5_산왕물결나방.jpg » 긴 섬모로 지지직 하는 전자음을 내는 산왕물결나방.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c9_흑백알락쌍꼬리.jpg » 기름 성분을 분비해 먹기 힘들게 만드는 흑백알락쌍꼬리나방 애벌레,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해 끼치는 나방은 4천종 중 극소수
 
애벌레가 징그럽다는 말에도 연구자들은 억울해한다. 이 연구소 이재록 연구원은 “애벌레에는 예쁘고 귀여운 것들도 많다”며 “으름덩굴을 먹는 으름밤나방 애벌레는 짙은 벨벳에 은하수를 수놓은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c4_으름밤나방.jpg » 아름다운 으름밤나방 애벌레.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고추나 배추 등에 해를 끼치는 나방도 있지만 그런 나방은 전체 4천여종 가운데 극소수라고 이 소장은 강조한다. 오히려 이들 애벌레가 다른 동물을 먹여 살리는 생태적 기능이 더 클 것이다. “도시농업이 점점 중요해지는데 농약을 치지 않고 피해를 줄이려면 곤충의 생활사를 알아야 천적을 이용하거나 특정 시기에 소량의 농약으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이 소장은 말한다. 

그는 또 나고야의정서가 발효돼 생물자원의 중요성이 커지는데, 곤충은 신물질을 개발하는 무궁무진한 보물창고라고 강조한다. 게다가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보고처럼 애벌레는 미래 인류의 소중한 식량자원이기도 하다. 2016년 12월 현재 우리나라의 나비목에는 3784종이 기록돼 있고 이 가운데 나방은 93%인 3505종이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블로그 http://m.blog.naver.com/holoce58 전자우편 holoce@hecri.re.kr  전화 (033)345 2254/ 010-3993-2254

횡성/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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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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