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김삿갓', 서울을 떠나다.

김성만(채색) 2012. 0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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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색과 유하의 한반도 도보 여행기 ① 서울 청계천

 

떠나기 전 얼굴·손·발 사진 찍었다…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물때 깔린 청계천, 실리콘 성형수술한 하천 같아

 

언제 떠나세요?” 

내가 떠난다고 떠벌리고 다닌 뒤로 사람들이 나를 때마다 인사차 던진 말이다. “삼월 초순경이요라고 대답한 잠깐씩 고민에 빠졌다. ‘정말 떠날 있을까?’

 

생각은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다녔지만 몸은 구석에 붙어 꼼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얼마 갖고 있지도 않은 돈만 축내고 있었다. 날씨가 풀리기 전까지 책도 읽고, 운동도 하겠다고 다짐했건만 10분의 1 못한 같다

서울의 집도 문제였다. 전셋집이었지만 재계약을 불과 몇달 전에 터라 아무 생각없이 여행이 끝나면 돌아와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달이 걸릴지도 모를 여행이어서 짐을 가만히 놔두는 것도 찜찜하거니와 그저 집을 비워두는 것도 께름칙했다. 단기간 집을 임대해주는 방식도 생각해 보았으나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가 걸려 포기해 버렸다.

결국 문제는 유하 어머니께서 답을 주셨다. 짐을 어머니 집에 두고 떠나도 좋다는 것이다. 머릿속이 환해지는 경험을 했다. 전세를 아예 빼고 가는 것이다. ‘집도 절도 없이떠나 버리는 것이다. “ 마이 가뜨!”.

 

여행 가장 목표 하나가 내가 살아갈 동네를 알아보는 아닌가?! 집을 빼고 간다면 여행 언제라도 마음에 드는 곳에 눌러 앉아 버릴 수도 있다. 이보다 자유로울 수가 없다. 자발적으로떠돌이 신세 되는게 나를 이렇게 기쁘게 수가!

제주도에서 올라온 학생들에게 집을 넘겼다. 책상, 책꽂이, 탁자는 물론이고 냉장고와 세탁기까지 넘겼다. 값은 아니었지만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중고센터 처리는 성가신 문제가 여럿 걸렸고, 개별적으로 중고로 팔았다면 돈을 받았을테지만 용달차를 부르는 수고가 귀찮았다.

옷과 , 자잘한 잡동사니들만 남겼는데 어찌나 많은지. 자전거에 실을 만큼만 가지고 살자는 다짐이 떠올랐다. 짐들을 보며 과거 다짐이 무너진걸 그제야 떠올린 것이다. 배낭을 보며배낭에 들어갈 만큼만 가지고 살자라는 다짐을 했다

유하 어머니 집은 의정부에 있었다. 한켠에 짐을 쌓았다. 그것들은 이제 내가 다시정착하기 전까지는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아마 여행중에 이런 많은 것들이 필요없다는 깨닫게 될지도 모르겠다. 일년 가까이 배낭의 짐들로만 살아갈 것인데 이상을 살지 못하랴


"니가 김삿갓이가, 이노마…"

떠나기 전날 부산 고향집에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께서 전화를 받으셨다. 

 

엄마 내 내일 떠난다. 전세랑 문제없이 다 빼고...

니 또 어디 그래 싸돌아댕길라꼬 그라노... 삿갓은?"

뭐라고?

니가 김삿갓 아이가.. 이노마….

엄마도…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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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동반자 유하, 무게가 20㎏ 안 된다. 쌀이나 반찬류 식량을 주로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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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색, 짐 무게가 28㎏이다. 텐트와 무거운 침낭을 담았다. 노트북과 사진기의 무게가 나간다.  

 

의정부에서 삼 일을 머문 뒤, 3월 1일, 새로운 인생길에 올랐다. 새벽같이 일어나 짐싸기를 마무리했다. 유하 어머니께서 해 주신 밥을 먹었다. 왠지 오랫동안 이런 밥을 먹지 못할 거라 생각하니 아쉬움이 생겼다.

 

배낭을 체중계에 올렸다. 유하 배낭은 18㎏이고, 내 배낭은 25㎏이다. 카메라 가방을 따로 재 보니 3㎏ 이다. 이 무거운 짐을 어떻게 메랴. 뒤뚱거리며 배낭을 메는 우리를 어머니와 유하 언니는 안쓰럽게 바라본다. 두 분께 꾸벅 인사를 하고는 집을 나섰다.

 

머리 위까지 올라오는 배낭이 왠지 부끄러웠다. 공휴일이어서 사람이 많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사람들은 힐끔힐끔 쳐다는 보지만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 때의 지하철 1호선은 여행 내내 생각날 것만 같았다. 오랫동안 보지 못하게 될 서울풍경을 뚫어져라 쳐다 보았다. 창 밖으로는 높고 메마른 아파트들이 즐비했다.

 

동대문 역을 빠져나왔다. 햇살은 곱게 내리쬐고 있었지만 동대문은 공사를 하느라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이곳 동대문에서 출발할 것이다. 원래는 동숭동 집에서 출발 하고 싶었지만 이미 그곳은 나와 계약관계가 끝나 있었기에 ‘출발 명분’이 없었다.

 

티베트에서 만났던 스위스 자전거 여행자가 어디서 출발했냐는 나의 질문에 ‘집에서’라는 답을 했었다. 그 말에 깊이 감명받았고, 앞으로 여행을 하게 된다면 꼭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나마 예전 집과 가까운 동대문에서 출발한다. 아쉬웠다.

 

기념사진을 찍었다. 얼굴과 손, 발도 따로 찍었다. 걸으면서 크게 변화가 일어날 부분들이기 때문이다. 하얗고 고운 유하의 얼굴, 손발이 변할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왔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도시에 살면서 도시인의 피부와 몸을 갖고 있었다. 볼록 튀어나온 배는 누가 봐도 못났다. 얼굴은 검어지고 손과 발에는 굳은 살이 붙을 것이다. 몸은 홀쭉해지겠지?

 

붙기도 하고 빠지기도 하는 것이니 ‘도시의 때를 벗긴다’라는 표현보다 ‘자연을 닮아간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정말 그러길 바라면서 청계천으로 향했다.

 

이 일대에서 위험없이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곳은 그나마 청계천밖에 없었다. 그 일대의 ‘땅’ 높이에서 네모지게 움푹 들어간 청계천. 누가보더라도 하천이라기보다 수로에 가까웠다. 약간의 비릿한 냄새가 났고, 물 속에는 물 때가 껴 거무스름하게 변한 자갈들로 가득했다.

 

청계천 양쪽에 바짝 붙어 세워진 건물들로 높은 축대를 쌓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수로처럼 돼 버린 이 하천을 좀 더 자연에 가깝게 복원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게 아쉬웠다. 청계천을 걷던 중에는 고가다리의 흔적도 남아있었다. 과거에 하천을 덮는 것도 모자라 그 위에 고가다리까지 이어져 있었던 걸 생각하니 끔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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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바닥. 위로 드러난 돌의 일부를 제외하곤 물때가 형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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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하지 않고 남겨둔 옛 청계천 고가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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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도시에서는 하천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건 아예 불가능한 걸까? 생태적인 도시를 꿈꾸며 청계천을 빠져나왔다.

하천을 덮을 때도 그랬고, ‘복원 한다며 난리를 쳤을 때도 그랬지만 여전히 하천은 그들에게는 그저수로 뿐이다. 하천 속에서 살아가던, 하천 덕에 살아가던 생명은 안중에도 없다. 복원은 물이 흐르게 하는 아니라 생명들이 살아갈 있도록 만드는 것까지다엄청난 전기를 써서 억지로 물을 끌어다 흘려보내는 물길은 마치 실리콘을 넣은 성형수술 같은 아닐까.

청계천을 벗어나고 찻길로 접어들었다. 신호 때문에 멈출 때만 잠깐 조용할 언제나 굉음에 갇힌 길이었다. 지하철 5호선 따르는 길이라서 입구를 때마다 그냥 도시는 건너뛰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래도 이런 것도 느껴보는 것이 좋을 거라 여기며 마냥 걸었다.

어느 결에 도시 외곽에 다다랐다. 어깨와 다리가 아팠지만 첫 날이라 그럴 거라 여겼다. 높은 건물들은 사라지고 흔히 도시 외곽에서 있는 화훼시장이 나왔다. 하남시로 넘어가는 고갯길이 끝나고 드디어 서울의 경계가 나타났다.

 

그런데 길을 따라 함께 있는 인도는 사라져 버렸다. 또한 어떤 길로 가야하는지 이정표도 없었다. 사람을 위한 배려는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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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길은 언제나 굉음에 갇혀 있다. 속도가 멈출 조용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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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경계를 통과하는 길은 어처구니 없게도 굴다리였다. 그것도 '숨겨진' 곳에

스마트폰으로 찾아보니 그곳에서 돌아 빠져나가는 길이 있었다. 걸어간 그곳 역시 공사중인 건물로 인해 공사자재가 여기저기 널려있어 마치 길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겨우 찾아낸 서울의 경계를 넘는 길은 다름아닌 거대한 도로 아래 차량 지나갈 있는 좁은 굴다리였다. 자동차에 의존해 살아가는 우리들이 만들어 놓은 길이라 생각하니 서글펐다.

서울을 벗어난 뒤부터는 힘들어졌다. 발바닥에 문제가 생겼는지 뜨거웠다. 유하는 걷던 도중에 물집이 터져 쩔뚝거리기도 했다. 배낭이 어깨를 짓누르는 힘도 굉장했다. 자주 쉬며 걸었다. 아침의 가벼웠던 마음이 이제는 무거워졌다. 앞날이 다소 걱정이 되었지만, 여기까지 속도로 걸어온 것만 해도 체력은 괜찮은 편이었다.

목표했던 하남시청에 이르자 긴장이 풀려 버렸다. 어차피 주변에서는 야영하기 어려웠으므로 모텔에 짐을 풀었다. 유하의 발에는 군데나 물집이 잡혀 있었고, 발에는 군데 잡혀 있었다. 물집에 실을 뀄다. 하루를 보내고 이른잠을 청했다.

 

글·사진 김성만(채색)/ 생태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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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만(채색) 생태활동가
녹색연합 자연생태국, 4대강 현장팀에서 활동했었다. 파괴를 막는 방법은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이라 믿고 2012년 3월부터 '생태적인 삶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여행을 떠난다. 중국 상하이에서 포르투갈의 리스본까지 자전거로 여행하고 <달려라 자전거>를 냈고, 녹색연합에서 진행한 <서울성곽 걷기여행>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메일 : sungxxx@hanmail.net      
블로그 : http://plug.hani.co.kr/likeb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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