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 벙커 속 개미떼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조홍섭 2019. 11. 19
조회수 6156 추천수 1
고립된 벙커 100만 마리 일개미 집단…동료의 주검이 유일한 먹이

an1.jpg » 벙커 속에 형성된 개미둥지. 벽 쪽에 사체가 버려진 묘지가 보인다. 보이체크 스테판 제공.

캄캄하고 추운 데다 먹이가 전혀 없는 콘크리트 방에 100만 마리의 일개미가 고립됐다. 그곳에서 개미들이 여러 해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동료의 사체 덕분이었다.

폴란드 서부 독일 국경 가까운 템플레보에는 1960년대부터 소련의 핵기지가 자리 잡았다. 1992년 폐쇄된 이후에도 핵무기를 보관하던 핵심 벙커는 남았다.

바닥이 가로 3m, 세로 1.2m이고 높이가 2.3m인 벙커는 1m 두께의 철근콘크리트로 지어져 여름에도 10도를 유지하고 주변 환경과 거의 완벽하게 차단돼 있다. 유일한 연결은 지름 40㎝, 길이 5m인 환기 파이프였다.

2013년 박쥐의 월동실태를 조사하던 과학자들은 벙커 한가운데 커다란 개미집이 만들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보이체크 체코프스키 폴란드 과학아카데미 교수팀의 조사 결과 100만 마리에 가까운 붉은숲개미가 집을 짓고 유지 관리하며 정상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an2.jpg » 핵 벙커 위에 자리 잡은 붉은숲개미의 둥지. 여기서 환풍구를 통해 개미가 벙커 속으로 떨어져 내린다. 보이체크 스테판 제공.

연구자들은 2016년 ‘벌목 연구 저널’에 실린 논문을 통해 어떻게 핵 벙커에 거대한 개미 무리가 살게 됐는지 분석했다. 벙커 지붕 위에는 붉은숲개미의 큰 둥지가 자리 잡았다. 그런데 둥지 밑에 벙커의 환기 파이프 출구가 놓여있어, 돌아다니던 개미가 종종 벙커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벙커 속 개미둥지에선 여왕과 수컷은 물론 애벌레나 번데기기 전혀 발견되지 않아 번식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됐다. 그런데도 2015년 확인 때는 일개미 집단이 여전히 활기차고 수도 오히려 불어나 있었다. 개미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체코프스키 교수팀은 ‘벌목 연구 저널’ 최근호에 실린 후속 논문에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과 함께 갇힌 개미떼의 구조 과정을 밝혔다. 외부에서 먹이가 전혀 공급되지 않는 벙커에서 처음부터 동족살해는 생존 수단의 유력한 후보였다.

조사 결과 벙커 안 ‘개미 묘지’에는 약 200만 마리의 개미 사체가 놓여있었다. 사체의 93%에서 날카로운 주둥이에 물린 구멍과 배에 뚫린 구멍을 통해 내용물을 섭취한 흔적이 남았다.

an3.jpg » 연구자들이 탈출시키기 직전 핵 벙커 속 둥지에 붉은숲개미가 빽빽하게 몰려 있는 모습. 벙커 위에 떨어진 이들은 수년째 성공적으로 적응해 살아갔다. 보이체크 스테판 제공.

연구자들은 “벙커의 일개미 집단이 여러 해 동안 살아남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벙커 위에서 지속해서 떨어져 내려오는 새로운 일개미와 축적된 동료들의 사체 덕분”이라며 “사체야말로 극도로 불리한 여건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고갈되지 않는 먹이원”이라고 논문에 적었다.

연구자들은 붉은숲개미가 일상적으로 동종포식을 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았다. 해마다 단백질 먹이가 고갈되는 봄이면 붉은숲개미 집단은 이웃 무리와 대규모 전쟁을 벌여 수많은 주검이 발생한다. 개미들은 사체를 둥지로 가져가 새끼에게 먹인다.

이번 사례는 개미의 생존능력을 새롭게 보게 한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생존 한계를 넘어선 여건에서 개미들이 자기 조직을 유지하는 능력은 기념비적”이라며 “개미가 한계 서식지와 적정하지 않은 조건에 적응하는 새로운 차원의 능력을 보였다”고 연구자들은 말했다.

an4.jpg » 벙커에 갇힌 개미떼를 구하기 위해 개미 둥지에서 환기구를 통해 설치한 나무 기둥. 탈출 통로를 설치한 이후에도 개미는 계속 떨어져 내렸지만 더는 고립되지 않는다. 보이체크 스테판 제공.

한편, 연구자들은 갇힌 개미를 구출하기로 하고 일차로 100마리를 벙커 위 둥지로 보내 적대감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환기구와 개미집을 연결하는 나무다리를 설치해 벙커에 떨어진 개미가 원래 둥지로 돌아갈 수 있도록 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Rutkowski T, Maák I, Vepsäläinen K, Trigos-Peral G, Stephan W, Wojtaszyn G, Czechowski W (2019) Ants trapped for years in an old bunker; survival by cannibalism and eventual escape. Journal of Hymenoptera Research 72: 177–184. https://doi.org/10.3897/jhr.72.38972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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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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